中國民家紀行 – 23 동티베트 조방과 조루

동티베트 조방과 조루 – 티베트 고원의 네 가지 아름다운 별들

티베트라 하면 핍박받는 소수민족의 아이콘 달라이라마, 그를 찾아 경의를 표하는 사람들, 수시로 들려오는 시위와 분신 뉴스, 오체투지로 고난의 순례를 마다치 않는 사람들, 차마고도에서 마방을 반겨주는 순박한 사람들, 그리고 설산으로 둘러싸인 고원의 척박하지만 신비로운 자연환경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 풍경 속에 큼직한 막돌로 투박하고 탄탄하게 3∼4층을 쌓아 올리고, 지붕의 네 귀퉁이에 뾰족하고 작은 하얀 탑을 세우고, 거기에 꽂힌 깃발들이 고원의 강풍에 몸부림치는 강건한 인상의 석조주택을 기억해낼 수 있다. 바로 티베트 사람들이 사는 전통적인 살림집 조방碉房이다. 마치 군사용 망루碉와 비슷해서 조방이라고 한다.

그러나 티베트의 조방을 보기 위해 티베트가 아닌 쓰촨성 서부로 간다. 독자 여러분에게 티베트란 존재를 조금 다르게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티베트Tibet는 7세기경 티베트 고원을 최초로 통일한 왕조와 그 국가를 칭하는 토번吐蕃(중국어 발음으로 투보)이란 말의 로마자 표기다. 그들은 스스로를 보파Bod-pa, 蕃巴라고 한다. 중국어로는 티베트어 Gtsang을 짱zang, 藏으로 표기하는데, 이것은 야루짱부강이 흐르는 땅이란 뜻이다. 야루짱부강은 히말라야산맥의 북록에서 발원하여 티베트의 수도 라싸를 흘러가는 강이다.

그리하여 중국에서는 티베트 사람을 짱족藏族이라 하고, 행정구역은 시짱자치구西藏自治区라고 한다. 시짱은 ‘서부의 짱’이란 뜻으로 청조 초기의 행정편제를 반영하여 사용한 지명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중국 지도를 보고는 시짱자치구라는 행정구역만을 그들의 강역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티베트 사람들의 강역인 티베트고원은 시짱자치구에 칭하이성靑海省 전부, 윈난성 북부의 샹그리라 지역, 그리고 쓰촨성 서부의 간쯔甘孜 짱족자치주와 아바阿坝 짱족·창족자치주를 합친 것이다.

이 지역 모두 현지 거주민 가운데 티베트 사람들이 가장 많다. 행정구역 시짱자치구는 티베트 고원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티베트는 중원의 중국과 갈등과 교류를 반복해온 독립된 강역이었지만, 만주족의 청나라가 몽골족과 연대해 동아시아를 정복하고 경영하면서 청조에 복속되었다.

이때 티베트는 정치적으로 행정적으로 크고 작은 네 조각으로 분할된 것이다. 그리하여 티베트 독립을 주장하고 중국 정부의 탄압에 항의해 분신을 하거나 시위가 격화되면 시짱자치구뿐 아니라 쓰촨성 서부 지역도 여행이 금지되거나 검문검색이 강화되곤 한다.

이곳 쓰촨성 서부의 간쯔와 아바 두 지역은 필자를 포함해 우리나라 여행사나 여행객 또는 언론매체에서 ‘동티베트’란 조어로 부르기도 한다. 티베트 고원 또는 티베트 강역에서 동부란 뜻이기도 하고, 시짱의 동쪽이란 의미도 된다. 그런데 동티베트란 말은 중국의 상용어는 아니다. 우리의 국토를 우리 것으로 존중받고, 과거의 강역을 사실史實로 인정받기 원하는 것처럼 티베트 사람들의 강역을 기억하고 존중해주자는 차원에서 필자 역시 이렇게 표기하는 것이다.

시짱이든 동티베트든 티베트 사람들이 사는 지역을 가면 조방을 쉽게 볼 수 있다. 배낭을 메고 떠난 길이라면 동티베트의 단바丹巴를 추천할 만하다. 단바는 쓰촨성 수도 청두成都에서 버스로 열 시간 정도 가야 한다. 행정구역으로는 현县이다. 티베트 고원의 끝자락에서 협곡을 거칠게 흘러가는 다두하大渡河의 양안 비탈에 집들이 늘어선 작은 도시이지만, 중국인들이 가장 아름다운 향촌으로 꼽는 곳이다. 지붕의 모서리를 하얗게 회로 칠한 살림집들이 파란 하늘 아래 반짝반짝 빛을 내면서 보석처럼 박혀 있다.

조방은 방형의 대지에 짓는다. 평면으로 보면 ㄷ자나 ㅁ자 형태가 많다. 벽체는 큼지막한 막돌로 벽면이 반듯하도록 쌓고는 흙으로 틈새를 메워서 세운다. 막돌에 흙을 섞어서 쌓은 우리나라의 전통 돌담과도 유사하지만, 그보다는 큰 돌을 사용하는 편이다. 돌로 쌓은 벽체가 외벽을 이루지만 내부에서는 여전히 목구조를 이용하여 각 층의 바닥면을 만든다.

조방의 벽체는 하부가 두껍고 위로 갈수록 얇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사다리꼴로 보인다. 그러나 벽체의 바깥으로만 경사를 주었을 뿐 안쪽 면은 수직이다. 외벽에는 회칠을 해서 흰 띠를 두른 모양을 내거나 불탑 문양을 그려 넣기도 한다. 멀리서 보면 강렬한 고원의 햇살에 회칠이 반짝인다.

대개 3∼4층인데 1층은 가축들을 키우거나 창고로 사용하고, 2층은 주방과 침실 등으로 사용한다. 꼭대기 층에는 부처님을 모신다.

조방에서 또 하나의 특징은 옥상이다. 옥상은 평면으로 곡식을 말리는 등 가사와 오락의 공간이다. 가을이면 옥수수를 늘어놓고 햇볕에 말리는데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집집마다 샛노란 옥수수가 눈부시게 빛난다. 한 폭의 유채화처럼 아름답다.

옥상 네 귀퉁이에는 작은 탑을 세워 장식한다. 여기에 경번經幡(아래 사진)이라고 하는 화려한 깃발들을 꽂는다. 파란 하늘에 대비되는 색깔의 어울림이 아름답다. 바람이 불면 몸부림치는 깃발은 티베트인들의 강인함을 과시하는 듯하다. 마치 티베트 고원을 통일한 송찬간포松贊干布가 토번 왕조를 세우고, 당시 세계 최강의 당나라와 당당히 맞서서 당나라 문성공주文成公主까지 취해가던 기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2층의 화장실(위 우측 사진)이 밖으로 돌출된 것도 재미있다. 사람의 배설물이 벽체 바깥으로 직접 떨어지는 구조인데, 화장실과 돼지우리가 연결된 우리나라 제주도의 전통 화장실과 상통하는 느낌이다. 현재 관념으로 보면 불결하고 민망스러운 것이지만, 전통시대에서는 별다를 것 없는 생활의 한 단면이다.

단바에서 산비탈에 알알이 박혀 있는 조방이 보석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자면 첫 번째가 자쥐甲居다. 단바현 중심지에서 자동차로 20분이면 갈 수 있는데 꽤 높은 산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단바가 강가 마을이라면, 자쥐는 산상의 마을이다.

산비탈에 밭이 있고 그 사이에 조방이 두어 채씩 자리 잡고 있는 평화로운 농촌이다. 마을에 들어가면 객잔이 두어 개 있어서 외국 여행객들도 큰 불편없이 머물 수 있다.

단바에서 민간건축으로서도 가장 특색 있는 마을은 단바현 남쪽 3km에 있는 쒀포梭坡라는 곳이다. 이곳은 조루碉樓(위 사진)가 유명하다. 조루는 동티베트의 특징적인 민간건축의 하나다. 조방보다 대지는 작지만 훨씬 높은 망루 형태의 건축물이다. 보통 20여 m 높이이고, 더 높은 것은 50여 m가 되는 것도 있다. 조루는 6∼10층이다. 평면은 사각이 대부분이지만 삼각, 오각, 육각, 팔각, 십이각도 있고, 십삼각도 있다. 재료는 주로 돌이지만 흙을 다져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조루는 군사적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 살림집으로 연계되거나 살림집의 일부로 바뀐 것이다. 군사 요충지에 방어용으로 지은 것은 요애조要隘碉라고 한다. 봉화대로 지은 것은 봉화조烽火碉라 하고, 마을 공동의 시설물로 사용하는 것은 채조寨碉라 한다. 현재 가장 많은 것은 살림집 가조家碉인데, 평시에는 창고이고 유사시에는 방어용 망루가 된다.

재미있는 것은 조루에 이름은 물론 남녀 구분까지 있다는 것이다. 목량木梁이 외벽 밖으로 튀어나온 조루는 여성이고, 지을 때부터 목량을 노출시키지 않은 것은 남성이다.

단바는 오래된 조루가 잘 보존되어 있어 천조지국千碉之國이라고 한다. 쒀포梭坡, 중루中路, 푸자오딩蒲角顶의 세 마을이 유명하다. 이런 조방과 조루에 머물면서 티베트 사람들의 전통문화와 푸근한 정을 느껴보는 여행은 어떨까.

티베트의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건축물인 라싸의 포탈라궁도 조방과 조루를 기초로 한 것이다. 백성들의 소박한 살림집 조방과 조루에 머물면서도 포탈라궁의 장엄한 역사와 위대한 건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조방에 사는 한 티베트 가정을 방문하여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그들과 함께 동티베트의 네 가지 별들을 찾아가려고 한다.

동티베트에는, 사춘기에나 써봤음직한 유치한 표현이지만 서로 다른 ‘네 가지 별’들이 제각각 촘촘히 박혀 있다. 밤이 되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들이 첫째이고, 낮이면 멀리 하얀 설산이 강한 햇살에 반짝이니 두 번째 별이다.

천상에서 내려다보면 설산 사이사이에 촘촘히 박혀 거울처럼 빛나는 크고 작은 호수들이 세 번째 별이다. 지상에 내려와 길을 걸으면 치장도 않은 여인네가 수려한 이목구비로 빛을 발하니 네 번째 별이라고 하는 것이다.

단바에서 북쪽으로 60여 km 가면 만나는 당링산党岭山도 별처럼 빛나는 설산이다. 당링산의 주봉 샤창라夏羌拉는 해발 5470m인데, 그 바로 아래의 다하이쯔大海子와 후루하이葫芦海 두 개의 호수가 더없이 아름답다.

고원과 설산의 호수는 산 아래가 아니라 정상 부근의 고지대에 많다. 설산의 만년설이 녹아서 만들어진 호수들이다. 호수의 물은 지하로 스며들어 산 아래 계곡으로 흘러나간다. 워낙 높은 지대의 호수들이라 일반인의 눈에 쉽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구글 지도를 조금씩 확대해보면 얼마나 많은 호수가 유리 조각처럼 뿌려져 있는지 쉽게 볼 수 있다. 천상의 누군가가 소쿠리에 담겨 있던 별들을 티베트 고원에 쏟아부은 것 같다.

동티베트의 또 하나의 별은 미인들이다. 단바에는 미인곡美人谷의 전설이 있다. 13세기 전반 칭기즈 칸이 몽골고원을 통일하던 시기에 간쑤성 일대에 있던 서하西夏의 귀족과 궁녀들이 단바 지역으로 피난 와서 정착했다고 한다.

지금도 단바현 바디향巴底乡 계곡 10km 안쪽에 있는 궁산촌邛山村은 미인곡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이곳에서는 전통적으로 매년 미인을 선발하는 행사를 열기도 한다.

필자가 단바를 서너 차례 답사하면서 느낀 것은 특별히 꾸미지 않아도 미모가 빛을 발하는 여인네들이 꽤 많다는 것이다. 이목구비에 동양적인 부드러운 선이 돋보이는 미인들이다.

동티베트의 네 가지 별이란 말에 조금이나마 공감한다면 네 가지를 한데 모아 별빛에 빠져보는 색다른 트레킹에 도전해보자. 동티베트 오지 마을의 미녀 목동을 따라 야크의 여름유목 산길로 당링산을 오른 다음, 샤창라 주봉 아래 호숫가에 캠핑을 하면서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들을 감상하는 것이다. 한번 나서보시겠는가?

단바에서 북쪽의 진촨金川 방향으로 68km 계곡 길을 따라가면 당링산 입구에 당링촌党岭村이 있다. 해발 3300m의 당링촌에서 출발하여 시계방향으로 해발 4500m 고개를 넘어 해발 4200m 호숫가에서 캠핑을 하고 다음 날 내려오는 코스다. 현지인의 안내가 필수다. 당링촌에서는 몇 사람이 산길 안내와 캠핑을 도와줄 수 있는데, 그 가운데 ‘차이란 조마’라고 하는 20대의 티베트 미녀 목동을 만나면 여행운에 대박이 터진 것이다.

안내를 부탁하기 전에 그녀의 사는 이야기를 좀 들어보자. 차이란 조마는 보통 ‘조마’라고 부른다. 티베트 사람들은 네 음절로 된 이름을 짓지만 일상에서는 뒤의 두 음절만 애칭처럼 부른다. 성은 없다. 조마는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부모님을 도와 생업에 종사하는데 학교는 가본 적이 없다.

차이란 조마는 오빠가 하나 있고, 아래로 여동생만 넷, 그러니까 딸 부잣집의 큰딸이다. 10대 후반의 큰동생은 타궁塔公의 불학원佛學院에 들어가 비구니의 길을 걷고 있다. 셋째 딸 진조는 10대 중반이지만 조마와 함께 가업을 영위하는 집안의 기둥이다. 넷째 딸은 집안에서는 처음으로 중국의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막내동생은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늦둥이로 여느 집과 다를 바 없이 부모는 물론 언니·오빠의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이 깊은 산골의 생업은 어떤 것일까. 해발 3300m의 산골 오지에 농사랄 것은 없다. 조마와 진조의 가업은 야크 목축이다. 야크는 해발 3500m의 마을 뒷산에서 키운다. 야생의 야크는 해발 4000m 이상에서만 사는데 가축화하면서 약간 낮은 곳으로 내려왔다. 여름에는 가축화된 야크도 4000m가 넘는 곳으로 다시 올라가야 한다. 이때 조마와 진조 두 자매는 7∼8월 두 달간 야크 떼를 몰고 당링산 정상 근처로 여름유목을 나간다.

조마와 진조가 길안내를 하기로 했다면 본격적인 캠핑 준비를 해야 한다. 산 위에서 하룻밤을 지내자면 여름에는 타푸와 침낭이면 족하지만 봄·가을에는 개인용 텐트까지 가져가야 한다. 간단한 개인 배낭 이외에는 서너 마리의 말에 싣고 갈 수 있다.

짐을 챙겨 아침에 출발해서 해가 지기 전에 샤창라 주봉과 다하이쯔가 내려다보이는 해발 4500m의 고개를 넘어서야 한다. 조마나 진조와 같이 고지대에 완전히 적응한 사람이라면 너댓 시간 정도에 오를 수 있지만, 외지인들은 산악 전문가라 하더라도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여덟 시간 정도를 걸어야 한다. 고산증 때문에 속도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을을 출발해 뒷산을 타기 시작해 산록을 거슬러 두세 시간을 올라가야 비로소 계곡을 벗어난다. 멀리 끝도 없이 겹쳐지고 이어진 고원의 능선, 이것만으로도 너무 아름답다. 두세 시간을 더 오르면 고원의 크고 작은 호수가 나타나기 시작한다(위 좌측 사진). 정말 이렇게 높은 고지대에 거울 같은 호수가 있다는 것 자체가 신비롭다. 설산의 눈이 녹아 고인 물이다.

그렇게 자잘한 호수 몇 개를 지나고 해발 4500m의 마지막 고개를 힘겹게 넘어서는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에 질식할 것만 같은 감동에 빠진다. (앞쪽 호수 사진, 위 우측 사진).

당링산의 주봉 샤창라의 웅장한 자태! 그 아래 자리 잡은 커다란 호수의 짙은 물빛! 그리고 주봉과 호수 사이를 조용히 흘러가는 구름!

주봉은 날카로운 모서리를 드러낸 채 눈부신 백색의 만년설을 이고 있다. 7∼8시간의 고된 걸음 끝에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시야를 가리기도 한다. 감동의 물결에 현기증이 인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낸다. 지친 몸을 움직여 타푸와 텐트를 치고, 마른 나뭇가지들을 모아 불을 피워야 한다(위 좌측 사진).

이렇게 캠핑 준비를 마치고 식사를 끝내고 나면 밤에는 별들의 잔치다. 하늘에서 무서울 정도로 쏟아지는 별들, 별빛에 반사되는 설산 연봉들, 그 아래 펼쳐진 호수의 수면, 그리고 조마와 진조의 아름다운 눈빛이 영롱한 별들의 잔치를 벌인다. 이렇게 별빛 잔치에 빠져 있다 보면 이대로 죽어도 좋다고 느낄지 모른다.

다음 날 짐을 걷고 하산한다. 말들은 올라온 길을 되돌아가고, 사람들은 다하이쯔 아래로 하산하게 된다. 말들이 다하이쯔 아래의 너덜길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산길에 다하이쯔 물가에 서서 맑은 물에 손을 적셔본 다음, 다시 낮은 능선에 올라서면 후루하이葫芦海라는 또 하나의 커다란 호수가 눈에 들어온다. 이름 그대로 조롱박처럼 허리가 잘록한 호수인데 이것은 능선 위에 올라선 사람들만 만끽할 수 있는 멋진 풍경이다(위 중간, 우측 사진).

두 호수 사이의 너덜길을 힘들게 빠져나와 후루하이의 입구에 도착하면 힘든 코스는 끝이 나고, 그 이후는 비교적 편안한 하산길. 당링산 트레킹을 하는 중국인들은 예외 없이 당링촌에서 출발해 이 후루하이 입구까지만 올라왔다 돌아간다. 4500m 고개를 넘어 고지대에서 캠핑까지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고, 아직은 중국에 트레킹 문화가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어 시간 하산하면 페이지핑飞机坪(위 사진)이란 탁 트인 평평한 계곡을 만난다. 페이지핑은 비행기가 착륙할 수 있는 평평한 땅이란 말로, 말 그대로 좌우의 산자락이 벌려져 2∼3km 정도 넓게 펼쳐진 곳이다. 일부러 만들지 않은 다음에야 험한 산지에 이런 평지가 생겨났을까 신기하기만 하다.

당링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페이지핑을 들어 이곳이 진짜 ‘샹그리라’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샹그리라는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튼이 쓴 《잃어버린 지평선》에 등장하는 소설 속의 이상향이다. 제임스 힐튼은 동양에 한 번도 와본 적 없이 소설가의 상상력으로 샹그리라를 만들어냈지만, 중국 서남부와 인도·파키스탄·네팔·부탄 등지에서는 스스로 샹그리라라고 주장하는 지역이 상당히 많다. 소설의 허구에 빗대어 자기 고장을 홍보하려는 것이다. 심지어 중국 정부는 윈난성 북부의 중뎬中甸이란 도시를 아예 샹그리라香格里拉로 개명해서 관광산업에 빅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런 주장의 중요한 근거의 하나는 비행기가 착륙할 수 있는 활주로와 같은 의외의 평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링산과 당링촌을 두고 샹그리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 페이지핑을 하나의 근거로 드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1박2일의 힘들고 아름다운 트레킹을 마치면, 티베트의 조방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설산과 계곡에 깊이 잠겨보는 최고의 여행을 했다는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이 트레킹은 현지인의 안내만 있으면 일반인에게 꽤 도전적인 여행으로 권할 만하다.

당링산과 주변의 계곡은 유황이 풍부한 천연온천도 좋고, 단풍의 추색도 좋다. 매년 10월에는 중국인 여행객들도 꽤 찾는데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중국 여행이 단체여행에서 개별적인 자유여행으로 넘어가는 가운데 약간의 모험적 요소를 얹은 개성 있는 여행으로 추천할 만하다. 속세의 번잡한 마음을 전부 털어내는 힐링투어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