셴눙탄先農壇

쉬디산許地山

한때 번영을 누린 적이 있던 향 공장은 지금은 낡아빠진 건물만 남아 있는데, 어쩌다 지나갈 때면 광장에서 병사들이 국기國技를 단련하는 것이 보였다. 남쪽을 향해 다시 걸어가면 노점상들이 예전 그대로인데, 좋은 물건들은 갈수록 적어지고, 곳곳에 보이는 것은 외국에서 온 빈 술병과 향수 용기, 연지합 및 최신식 동양 자기, 옷 노점상의 유행에 뒤떨어진 옷가지 등속이 보일 따름이다. 물건을 파는 점원이 “1위안 80전”, “2위안 40전”을 외치며 연신 손님을 끌었지만, 사는 사람은 없고 오히려 구경꾼만 많았다.

요철이 심한 대로를 걷다보니 잠깐 사이에 셴눙탄先農壇 경내로 들어섰다. 예전에는 단 안에 유일한 새 건축물로 ‘사면종四面鐘’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저 가운데가 비어 있는 높은 대만 남아 있고, 사방의 측백나무는 이미 부자들의 관재棺材나 가구가 되어버렸다. 동쪽에 있는 예배당은 새로 지은 것이다. 구장에서는 연습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면양綿羊 너댓 무리가 있는 곳은 누렇게 시든 풀뿌리가 뒤덮고 있다. 바람이 약간 불자 먼지가 멋대로 날렸는데, 애석하게도 색깔이 너무 안 좋았다. 눈처럼 희거나 주홍색이었다면 어찌 아주 좋은 국산 화장 재료가 안 되겠는가?

셴눙탄 경내. 오른쪽에 천하의 명산과 사해四海를 상징하는 비가 세워져 있다.

단의 북문에 도착해 늘 그렇듯 표를 사서 들어갔다. 오래된 측백나무는 예전과 같고 찻집의 탁자는 모두 비었는데, 병사들이 대전大殿 안에 주둔하면서 아주 보기 좋았던 문과 창호는 모두 뜯겨져 땔감이 되어버렸다. 베이징 시 유람구가 획정된 뒤 대대적인 수리가 있기를 희망한다. 베이징의 옛 건축물은 점점 줄어들고, 집주인들도 끊임없이 집을 팔고 있다. 최근의 딩왕푸定王府 같은 곳은 원래 명대의 후다하이胡大海의 저택이었으니 건축 년대로 따지면 족히 5백 여 년이 되었는데, 정부에서 베이징의 옛 물건을 보존할 생각이 있었다면, 시민들이 멋대로 철거하고 훼손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하나를 철거하면 하나가 사라진다. 현재 단 안에서는 병사들이 공공 건축물들을 철거하고 있다. 애국이란 것은 공공의 산업을 아끼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고, 먼저 역사의 자취를 아끼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관경대觀耕臺 위에 남녀가 앉아 밀담을 나누고 있는데, 진정 심정의 뜨거움이 환경의 차가움을 막아내고 있다. 복숭아나무, 버드나무는 모두 잎을 떨구고, 삼동三冬의 긴 잠에 빠져 바람이 흔들어대고, 새가 우짖어도 듣지 못한다. 우단雩壇 주변의 사슴은 영리한 눈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놀러온 사람들이라고 해봐야 두서너 명 정도밖에 안 되지만 그 놈들은 각별하게 친밀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게 드넓은 원림에서는 근본적으로 그 놈들을 가두어둘 필요 없이 그저 사방에 7,8 척 정도 깊이의 구덩이를 파고 구덩이의 안쪽 벽을 비스듬히 깎아내어 가운데에 둥근 언덕을 만들어 놓은 뒤 사슴들을 그 안에 풀어놓으면 울타리가 없어도 뛰어넘을 수 없게 된다. 이렇게 하면 원림의 경치가 훨씬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관경대

성운단星雲檀은 악독단岳瀆檀에 비해 더 형편없이 파괴되었다. 마른 쑥이 벽돌 틈과 기와 틈 사이를 가득 덮고 있어 그것을 쓸어내는 사람의 옷자락에서는 맑은 향이 피어난다. 노송은 석양 아래 묵묵히 서 있다. 사람들은 이것이 똬리를 튼 규룡虯龍 같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날개를 활짝 편 공작과 같다. 솔방울 하나하나가 짙은 녹색의 솔잎을 배경으로 있는 것이 멀리서 바라보면 더 그럴싸하다.

소나무는 중국인의 이상적인 성격으로, 화가치고 그것을 그리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다. 공자가 이것이 나중에 잎이 진다고 말한 것은 사실을 곡해한 것으로, 잎이 지지 않는다고 말해야 맞다. 영국인들이 고무나무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중국인들이 소나무에 대해 느끼는 것과 같다. 중국인들이 소나무를 사랑하는 것은 그것이 장수하기 때문만은 아니고, 눈보라 휘날릴 때도 능히 감내하고 서 있으면서 생명이 끊어지지 않고, 일단 번영의 시간이 도달하면 짙푸르러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소나무에 대해서는 실망할 수가 없다. 소나무는 사람들을 흥분시킨다. 나무에 수많은 마른 나뭇가지가 남아 있어도 오히려 원숙미가 더해가는 것으로 보인다. 고사하더라도 다른 나무처럼 부질없이 넘어지지 않는다. 천년이고 백년이고 그렇게 서 있으면서 등나무가 휘감고, 줄사철나무가 들러붙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더 우월하고 더 수려하게 보이게 한다.

옛사람들은 송뢰松籟가 용이 읊조리듯이 듣기 좋다고 하였다. 용이 읊조리는 것이야 우리가 들은 적이 없지만, 소나무가 내는 고아한 정취는 진정 명리를 잊게 하고 탈속의 상념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런 소리는 결단코 한 치나 한 자 짜리 작은 소나무가 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백년 천년의 단련을 거치고 풍상을 맞거나 도끼 세례를 당하고 나서도 능히 꿋꿋하게 서 있을 수 있어야 도달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장년이 되어서는 송백의 저항력과 인내력, 증진력을 배워야 하고, 노쇠해진 뒤에도 무심히 고아한 울림을 내야 한다.

셴눙탄의 정전 격인 타이쑤이뎬太歲殿

소나무를 대하고 반나절을 앉아 있다. 황금색 노을마저 지고 나니 하릴없이 우단雩壇을 떠나 대문을 나섰다. 문밖에는 몇 년 전에 파놓은 참호가 아직도 메워지지 않은 채 있고, 양떼가 나보다 앞장서 귀로에 접어들었다. 길가에는 한 무더기 국화가 피었고, 꽃 파는 이가 어느 집 문 앞에서 옅게 화장한 아가씨와 값을 흥정하고 있다. 그런데 주의하지 않고 있다가 양들이 멜대 안의 국화 몇 가지를 먹어치웠다. 그 사람은 할 수 없이 진흙덩이가 묻은 국화 두 가지를 양떼에게 던지고는 입으로 욕을 했다.

“이 빌어먹을 양새끼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양들이 먹고 남은 꽃이 길 위에 흩어져 차바퀴에 짓눌려 으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