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대소설예술기법 22 녹엽부화법綠葉扶花法

녹엽부화법綠葉扶花法

【정의】

‘녹엽부화법’은 글자 그대로의 뜻은 ‘푸른 잎이 꽃을 떠받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꽃의 아름다움에 눈길을 빼앗기지만, 사실은 푸른 잎이 그 꽃을 떠받치고 있어 꽃의 아름다움이 더욱 도드라질 수 있다. 이것은 소설 작품 속에서 부차적인 인물들이 주요 인물을 떠받치는 것과 같다. 곧 부차적인 인물들이 있음으로 해서 주요 인물들이 더욱 더 돋보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홍운탁월법烘雲托月法’과 비슷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구름’은 ‘달’에 대해 그저 객관적인 차원에서 ‘두드러지게 하는襯’ 것이라면, 전자는 주동적으로 ‘떠받치는扶’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

【실례】

《경세통언警世通言》 제32권에 실려 있는 「두스냥이 화가 나서 보물 상자를 강물에 빠뜨리다杜十娘怒沈百寶箱」는 ‘녹엽부화’의 좋은 예이다. 작중의 주요 인물은 두스냥이지만, 그의 아름다움을 더욱 더 두드러지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두스냥의 연인인 리쟈李甲의 친구 류위춘柳遇春과 기방의 여러 기녀들, 그리고 작품의 말미에 등장하는 주위의 여러 사람들이다.

애당초 류위춘은 두스냥을 기방에서 빼내기 위한 속전贖錢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리쟈에게 “그게 다 기생집에서 묵은 손님을 쫓아내는 뻔한 수법”이라며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두스냥의 진심을 알고난 뒤에는 태도가 돌변해 “이 아가씨는 심지가 곧고 당찬 사람인 것 같다”고 하면서, 기꺼이 리쟈에게 돈을 빌려준다. 그의 이러한 칭찬은 두스냥의 성격을 한층 더 생동감 있게 드러내 보여준다. 기방의 여러 자매들이 길을 떠나는 두 사람에게 돈을 모아주는 것 또한 두스냥의 행위를 돋보이게 하는 작용을 하고 있다. 모두들 기방을 떠나 올바른 길을 가고 싶어도 감히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가운데 그것을 결기 있게 실행에 옮긴 두스냥의 행위야말로 여러 기녀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결말 부분에서 두스냥이 물에 빠져 죽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본 주위 사람들은 화가 난 나머지 리쟈와 쑨푸孫富를 두들겨 패기 시작한다. 이들이 분개하고 행동에 나섬으로써 두스냥과 리쟈에 대한 평가는 이미 분명하게 내려진 것이며, 이를 통해 두스냥의 행동이 정당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예문】

리쟈李甲는 사흘이나 돌아다녔지만 단 한 푼도 변통하지 못하였다. 리쟈는 이 사실을 두스냥杜十娘에게 차마 그대로 이야기할 수 없었다. 나흘째 되는 날도 마찬가지. 도무지 염치가 없어 두스냥에게 돌아갈 수도 없었다.

평소 두스냥과 같이 지내느라고 따로 숙소를 마련해 놓지도 않았는지라 어디 갈 데도 없어 고향친구 류위춘柳遇春을 찾아가 사정이라도 한번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류위춘은 피골이 상접하고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리쟈를 보고 그 이유를 물었다. 리쟈는 그 간의 사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말해 주었다. 리쟈의 말을 듣고 난 류위춘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두스냥이야말로 화류계에서 제일 가는 기녀 아니던가? 그녀가 자네를 따라나서면 천만 금의 보배가 사라지는 셈인데, 그래 그깟 삼백 냥에 두스냥을 자네에게 넘겨 줄 리 있겠는가? 자네가 지금 수중에 돈 한 푼 없으면서도 두스냥을 꿰차고 있으니 그 기생어미가 자네를 쫓아버리고 싶으나 자네 체면 때문에 차마 막보기로는 못하고 그런 말을 한 것 같네. 자네 이제 더 이상 두스냥을 찾지 말게. 그게 다 기생집에서 묵은 손님을 쫓아내는 뻔한 수법이지. 열흘 기한 동안 돈을 구하지 못하면 자네는 차마 다시 두스냥을 찾지 못할 거고, 또 자네가 염치불고하고 두스냥을 찾아가면 기생어미가 자네를 능력도 없는 주제에 염치마저 없다고 대놓고 욕하고 조롱할 것이니 자넨 아무래도 그녀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좋겠네.”

리쟈는 류위춘의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류위춘이 다시 말을 이었다.

“자네가 진정 고향으로 돌아가려 한다면 도울 사람이 나서겠지만 자네가 삼백 냥을 얻어 두스냥을 구하려 한다면 그건 열흘이 아니라 열 달이라도 불가능할 걸세. 지금 세상 인심이 어디 그렇게 호락호락한가. 기생어미가 다 자네의 그 딱한 처지를 알고 일부러 자네를 골탕 먹이려는 수작인 게야.”

……

두스냥이 일어나 이불을 리쟈에게 건넸다. 리쟈는 예상치 못한 일에 크게 기뻐하며 심부름꾼에게 그 이불을 들고 가도록 하였다. 곧장 류위춘의 집에 도착하여 한밤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이불을 뜯어보니 이불 솜 속에 은이 들어 있는지라 세어 보니 정확하게 백 오십 냥이었다. 류위춘도 적이 놀란 표정이었다.

“이 아가씨는 심지가 곧고 당찬 사람인 것 같네. 이런 사람의 진심을 저버리는 건 사람이 할 일이 아니지. 내 자네를 위해 은자 백오십 냥을 어떻게든 마련해 보겠네.”

“그렇게만 해 준다면 백골난망이겠네.”

류위춘은 거처에 리쟈를 남겨두고 돈을 마련하러 떠났다. 류위춘은 이틀만에 은자 백오십 냥을 마련하여 리쟈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이렇게 은자 백오십 냥을 마련하여 온 것은 자네를 위해서가 아니라네. 두스냥의 진심이 나를 감동시켰기 때문이라네.”

……

셰웨랑謝月朗은 두스냥이 머리도 빗고 옷매무새도 만질 수 있게 하는 한편 사람을 보내 쉬쑤쑤徐素素를 데려오도록 하였다. 웨랑과 쑤쑤는 금팔찌, 옥비녀, 비단옷, 비단 허리띠와 신발 등을 모두 꺼내어 두스냥을 단장시켜주고 술자리도 마련해 주었다. 두스냥과 리쟈는 웨랑의 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 웨랑은 두스냥을 위해 잔치를 열고 기루의 기생들을 초대했다. 평소 두스냥과 가깝게 지내던 자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찾아와 두스냥과 리쟈의 앞날을 축하해 주었다. 그녀들은 악기를 연주한다, 춤을 춘다, 노래를 부른다 하면서 밤늦도록 즐겼다. 두스냥은 기생들에게 일일이 인사하였다. 그 가운데 한 기생이 나서서 말했다.

“두스냥이 그래도 이 바닥에서 알아주는 애였는데, 이렇게 떠난다니 너무도 서운타. 이렇게 떠나가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래, 언제 길을 떠나는 거야? 우리가 배웅이라도 해 줘야지.”

웨랑이 그 말을 받아서 말했다.

“스냥이 출발하게 되면 내가 연락해 주지. 근데 스냥이 남편과 천릿길을 떠나게 되었는데, 수중엔 돈 한 푼 없지 짐도 미리 준비해 놓지 않았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거라고. 우리가 좀 스냥을 도와 주자.”

여러 기생들은 그러마고 약속하고 떠났다.

……

다음 날 두 사람은 셰웨랑과 작별하고 류위춘의 집에 들러 리쟈의 짐을 꾸렸다. 두스냥은 류위춘을 보더니 바닥에 엎드려 인사를 올렸다.

“선비님의 은혜는 언제고 반드시 갚겠나이다.”

류위춘도 황급히 답례하였다.

“리쟈를 사랑하여 그가 수중에 돈 한 푼 없이 빈궁해졌음에도 사랑하는 마음이 변치 않았으니 당신이야말로 여걸 중의 여걸이라 하겠소. 나야 그저 그대들의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옆에서 조금 거든 것뿐인데, 뭐 그런 걸 다 이야기하십니까?”

세 사람은 그 날 같이 술잔을 기울였다.

……

바라보던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모두들 리쟈가 신의를 저버리고 사랑을 배반하였다고 욕하였다. 리쟈는 괴로움과 부끄러움에 눈물을 흘리며 두스냥에게 용서를 빌었으나 두스냥은 패물함을 껴안고 강물에 뛰어들었다. 사람들이 황급히 두스냥을 건지려 하자 강물에 갑자기 검은 구름이 겹겹이 쌓이고 소용돌이가 몰아치더니 두스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애달프다. 옥 같고 꽃 같은 두스냥은 이렇게 수중고혼이 되었구나!

그녀의 영혼은 용궁으로 젖어들고,

그녀의 혼백은 저승길로 떠나는구나.

주위에서 바라보던 자들은 흥분한 나머지 쑨푸孫富와 리쟈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리쟈와 쑨푸는 황급히 배를 몰아 도망쳤다. 리쟈는 쑨푸가 보내온 천금을 볼 때마다 두스냥의 환영이 떠올라 하루종일 슬프고 괴로웠다. 리쟈는 결국 미친병에 걸려 죽도록 낫지 않았다. 쑨푸는 그날의 충격으로 병을 얻어 누웠는데 병석 주위에 항상 두스냥의 환영이 보이는지라 결국 손 한번 못 써보고 죽어버렸다. 사람들을 이를 두고 두스냥의 원혼이 복수한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 《경세통언警世通言》 제32권 「두스냥이 화가 나서 보물 상자를 강물에 빠뜨리다杜十娘怒沈百寶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