톈챠오天橋 풍경

야오커姚克(1905~1991)
야오커는 저명한 번역가 겸 극작가이다. 본명은 야오즈이姚志伊이며, 야오커는 필명이다. 안후이 성安徽省 시 현歙县 사람으로 푸졘 성福建省 샤먼厦门에서 태어나 둥우대학东吴大学을 졸업했다. 1930년대 초반 외국문학작품의 소개와 번역에 힘을 쓰는 한편, 루쉰의 『단편소설선집』을 영어로 번역했다. 루쉰은 “서양 언어로 중국의 현실을 소개하는” 그의 작업에 대해 높이 평가했고, 그와 평생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 뒤 예일대학에서 연극을 공부했으며, 항일전쟁시기에는 상하이에서 활발한 극단 활동을 벌여나갔다. 1948년에는 홍콩으로 건너가 자신의 희곡 작품을 영화화하는 작업에도 참여한 바 있고, 이후 홍콩 중문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1968년 미국 하와이대학으로 건너가 중국현대문학과 중국철학사를 강의했다. 저서로 『초패왕楚覇王』, 『은해창랑銀海滄浪』, 『청궁비사淸宮祕史』 등이 있다.

베이징 선농단의 북쪽은 커다란 공터이다. 선농상가의 입구에 서서 양쪽을 바라보면 모두 옷 파는 가게와 노점들이다. 사계절의 각양각색의 옷들이 만국기가 펄럭거리는 것 같고, 떠들썩한 소리가 공기 속에서 울리고 있다.

“에이! 검은색 주름 면바지를 단돈 2위안 4마오에 팔아요!……애가 입으면 딱 맞는 작은 코트.……남색 무명……”

여기서 동남쪽으로 길을 따라 걸어가면 수준 있는 중국인들은 가지 않는 ‘톈챠오天橋’―베이징 하층계급의 낙원이다.

울퉁불퉁한 도로 옆으로 늘어선 것은 ‘노점’들로 옷과 일용품, 심지어 고서와 골동까지 갖가지가 모두 있다. 나는 개미떼 같은 군중을 따라 이 흙길에서 앞으로 헤쳐 나갔다. 앞에는 작은 점포, 노천 식당, 찻집, 작은 연극 공연관, 삿자리로 엮은 천막, 나무 시렁 그리고 점쟁이, 호금胡琴, 징과 북, 노래하고 큰소리로 물건 파는 소리가 내 귓가에 울려 퍼지고, 파와 마늘과 기름 냄새가 내 콧속을 후벼 파고 들어왔다.

삿자리 천막 아래에 새카맣게 들어찬 사람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입을 헤 벌린 채 얼굴에 온통 연지를 바른 열여덟이나 아홉 쯤 된 아가씨를 바라보았다.

“아리따운……젊은이……아이, 아이, 요……”

그녀는 손 안에 있는 두 개의 구리 조각을 때리면서 간드러지게 노래를 불렀다.

“이 가시나 괜찮은데……재미있어.”

내 앞에 서 있는 말랑깽이와 귀 뒤에 작은 혹이 있는 동행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인근의 작은 천막으로 걸어갔다. 여기는 피황皮黃의 청창淸唱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두 사람 중 하나는 박판拍板을 때리고 하나는 호금을 켜는데, 머리를 땋아 내린 예닐곱 살 먹은 여자 아이 둘이 의자 위에 서서 얼굴을 밖으로 향한 채 목청을 돋우고 관객들에게 노래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이곳은 너무도 고요해 사람들은 몇 푼 더 주고 메이란팡梅蘭芳을 들으러 간 듯했다.

이 천막을 나와 다시 앞으로 걸어가니 노천의 공연장들로, 천막을 친 것도 있고, 나무 시렁을 세운 것도 있지만, 그 나머지는 천막이나 나무 시렁도 없이 그저 머리 위는 푸른 하늘이고, 발 아래는 검은 흙에 누런 얼굴의 하릴없는 사람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말 공연장―하겐베크 말 공연은 아니고―으로 사면이 새끼 그물과 막으로 둘러쳐 있고, 아주 높은 ‘삼상조三上吊’를 노는 나무 시렁이 허공에 솟아 있는데, 몇 푼의 동전을 써야만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신기하달 게 없으니, 남방에서는 흔히 보는 것이다.

여기에는 남방에는 없는 기예가 몇 가지 있다. 가장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목발을 짚으며 부르는 ‘앙가秧歌’이다. 멀리서도 각양각색의 연희 복장을 입은 일고여덟 명이 허공에서 흔들거리며 여러 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여기에는 사반앙가四班秧歌가 있는데, 최소 예닐곱 명에서 최다 아홉 명까지 각각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배역으로 분장하고 다리에는 삼 척 높이의 목발을 짚었다. 그 가운데 한 명은 옛날 종처럼 생긴 ‘화고花鼓’라는 북을 비스듬히 메고, 연기를 하는 한편으로 동동거리며 북을 치며, 다른 사람은 작은 징을 친다. 시종일관 하나의 박자로 마치 유성영화 중의 아프리카 흑인의 음악과 같다.

가오챠오 공연

이름은 앙가지만, 그들이 노래 부르는 것은 보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하늘거리며 벙어리 극을 할 따름이다. 연기하는 것이 무슨 이야기인지 나는 잘 알지 못하지만, 경극 가운데 『봉양화고鳳陽花鼓』 류의 남녀가 서로 희롱하는 듯한 것도 있고, 『팔랍묘八蠟廟』 식의 무술극도 있어 펄쩍 뛰어올라 공중제비를 돌았다. 극의 내용을 모를지라도 아주 흥미롭다.

하차河叉를 노는 것도 있는데, 남방에도 있다. 내 기억으로는 상하이 신세계新世界나 대세계大世界 같은 극장에서 본 적이 있는데, 성황묘城隍廟에는 이게 없다. 여기서 ‘하차’라는 것은 4,5척 길이의 양 끝에 세 갈래 뾰족한 끝이 있는 차叉이다. 이것을 노는 이는 웃통을 벗고 하차를 상하로 돌리다가 어떤 때는 한 길 높이로 날렸다가 떨어지면 자신의 몸 위에 받으면서 떼구루루 구른다.

끄트머리까지 걸어가니 노천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다. 나도 비집고 들어가 보니 커다란 몸집의 두 씨름꾼이 거기서 힘을 겨루고 있다. 그들은 웃통을 벗고 거친 삼베로 만든 특별한 조끼를 입었는데, 가슴과 배를 모두 드러냈다. 그 중 하나는 배불뚝이로 배가 표주박처럼 튀어나온 모습이 아주 우스웠다.

“이런 법이 어디 있어! 너는 나를 넘어뜨릴 수 있는데, 나는 너를 넘어뜨리면 안 된다니. 이따가 내가 넘어져서 소리를 지르면 사람들이 다들 재미있다고 웃겠지.”

“하……하……”

관객들이 웃음보를 터뜨렸다.

근육과 근육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는 가운데 배불뚝이와 그의 상대가 한 덩어리가 되었다. 눈 깜작할 사이에 그는 이미 상대방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그 사람은 손발이 재서 두 손으로 그의 목을 잡아당기며 두 발은 그의 불룩 튀어나온 배를 꽉 끼고 있어 만약 그를 넘어뜨리면 배불뚝이 자신도 넘어지게 생겼다.

“하……하……”

관중들은 배불뚝이가 어찌할 바를 모르자 모두 아주 즐거워했다.

“봐라! 저 사람들은 네 편만 드는구나!”

배불뚝이는 상대방을 내려놓고는 식식대며 말했다.

“하……하……”

관객들이 다시 웃었다.

나는 곧 그곳을 떠났다. 등 뒤에서 웃음소리가 다시 터져 나왔다. 돌아보니 배불뚝이가 그의 상대에게 넘어가서 땅 위에 엎어져 숨을 쉬고 있었다.

내가 지나왔던 앙가 공연했던 곳에서는 목발을 짚은 연기자들이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인사하면서 관객들에게 돈을 걷고 있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열심히 쳐다만 볼 뿐 허리춤에 찬 주머니를 열 생각은 않고 이내 흩어져버리고 썰렁한 기운만 남았다.

마늘 냄새가 코를 찌르는 사람들 무리에 뒤섞여 쳰먼다졔前門大街에 이르렀다. 내 등 뒤로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보시하는 광막한 ‘낙원’이 있었다. 차가운 삭풍이 내 얼어붙은 귓바퀴에 불어오는 가운데 멀리서 피황皮黃의 노래 소리가 실같이 가느다랗게 들려왔다.

의자 위의 두 여자아이가 여전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1934년 1월 7일 『신보申報』 부간副刊 『자유담自由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