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民家紀行 – 14 광시좡족자치구 간란주택

광시좡족자치구 간란주택 – 노동이 만들어낸 대지와 건축의 예술

지금까지 베이징에서 시작해 강남의 합원, 푸젠·광둥의 토루와 조루를 돌아봤다. 중국의 동해안을 따라 남행을 해온 셈인데 이제 내륙으로 들어가 광시, 구이저우, 윈난 등으로 여행하려고 한다.

베이징에서 광둥까지의 민가는 대부분 가운데 마당(원락院落 또는 천정天井)을 방들이 둘러싼 합원식合院式인데, 집의 몸체가 지면에 붙어 있다. 지금부터 내륙으로 들어가 만나는 민가는 간란식干欄式 주택이다. 쉽게 말해 집을 지표에서 떼어내 올려 지은 집이다.

광시의 토착민인 좡족壯族의 말로 간은 상층이란 뜻이고, 란은 집이란 뜻이다. 땅에 기둥을 박고 그 위에 목조 가구를 얹은 것으로서 지면과 집 사이에 빈 공간을 두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상식高床式이라고 한다.

대개 3층으로 짓는데 1층은 농구나 땔감, 목재 등을 쌓아두거나 가축을 키우는 공간으로 사용한다. 2층은 주거와 취사 공간으로, 3층은 창고다. 이런 구조는 지면에서 올라오는 습기 뿐 아니라 벌레나 뱀 등을 차단하는 동시에 경사면에 집을 짓기 위한 효율적인 방편이 된다.

간란식 주택은 광시, 구이저우, 윈난 지역에 많다. 이 지역은 산지가 많고 교통이 불편한 탓에 각 지방마다 간란주택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게다가 중국 서남부의 여러 소수민족이 사는 지역이기 때문에 간란식 주택을 찾아가는 것은 곧 소수민족 답사가 되기도 한다.

우선 중국의 소수민족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은 좡족의 간란식 주택을 찾아가 보자. 좡족은 중국 내 인구가 1700만여 명으로 주로 광시좡족广西壯族자치구와 광둥, 구이저우, 윈난 등지에 살고 있다. 옛날에는 남월南越이라 불렀고 송대 이후 1949년 신중국까지 좡족僮族이란 명칭이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965년 저우언라이가 주창하여 장하다는 뜻을 가진 좡壯자로 바꿨다.

좡족이 자기 문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7세기 당대에 한자의 부수를 차용한 고장자古壯字를 사용했다. 이 문자는 신앙과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했는데 좡족 전체가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던 탓에 지금은 한자에 덮여버렸다.

좡족은 중국 남부에서 도작문화稻作文化의 주인공이다. 만주에서는 조선족 동포들이 추운 지방 끝까지 벼농사를 가져갔고, 중국 남부 산간 지역에서는 좡족이 산꼭대기까지 벼농사를 끌고 올라갔다. 경사가 심한 산기슭에는 촘촘하게 계단식 논을 일구고 물을 끌어 벼농사를 지었다. 좡족들이 만들어낸 계단식 논은 물을 댔을 때나 모내기할 때, 추수하기 전후에 일대 장관을 연출한다.

좡족의 간란식 주택이 빼곡한 산골 마을과 계단식 논이 연출하는 장관을 감상하자면 광시좡족자치구 구이린시桂林市 룽성현龙胜县의 룽지산龙脊山을 찾아갈 만하다. 이곳은 룽지 계단식 논 풍경구龙脊梯田景区로 유명한 곳인데, 구이린시에서 80km 정도로 멀지 않다. 이 지역은 좡족과 야오족瑶族이 많이 산다. 구이린에서 321번 국도를 타고 룽성현 방향으로 가다가 허핑향和平乡에서 동쪽으로 10km 정도 빠지면 된다. 숙박은 룽성현도 무난하지만, 이왕이면 산골 마을 객잔을 찾아 산골 마을의 밤하늘과 계단식 논에 부서지는 아침 햇살도 함께 느껴보는 게 좋을 것이다.

산골에 들어서면 간란식 주택이 먼저 보인다. 계단식 논은 산 위로 올라가야 비로소 내려다보인다. 계단식 논이 멋진 마을은 룽지龙脊, 핑안平安, 진컹金坑 등 세 곳이다. 간란식 주택은 좡족이든 야오족이든 다르지 않다. 이곳에 외지인이 들어오면 전통복장을 한 중년 여인네들이 약간의 수고료를 받고 계단식 논으로 올라가는 길을 안내해주곤 한다. 굳이 안내가 없더라도 산길을 찾아가는 데 문제는 없으나 30위안 정도 내면서 집 구경도 함께 청하면 자연스레 산골 마을의 간란주택을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앞서 언급했지만 간란식 주택은 3층이다. 1층에는 농기구 창고나 축사, 화장실이 있다. 목판으로 벽체를 치기도 하지만 허술한 수준이고 층고는 2m 정도다.

2층은 핵심적인 주거공간이다. 출입문은 골목과 대지의 지형에 따라 1층을 통해 계단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2층으로 직접 출입하기도 한다. 대부분 문짝이 없다. 닭이나 오리가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무릎 높이의 낮은 문을 설치하는 정도다.

2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당옥이다. 간란주택이 하나의 구조물로서 그 안의 공간을 분할해서 다양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당옥 역시 독립된 한 채가 아닌 2층 중앙의 한 공간을 차지할 뿐이다. 어떤 집에서는 당옥에 큼지막한 마오쩌둥 초상화가 덩그러니 자리를 잡고 있어 생뚱맞아 보이기도 한다.

일상생활은 2층의 화당火塘(위 사진)과 주방에서 이뤄진다. 화당은 우리의 화롯불과 같이 거실 중간에 조그맣게 불을 피우는 곳이다. 1년 365일 불을 꺼뜨리지 않는다. 일을 나가면 재로 살짝 덮어둔다. 아들이 결혼해서 같이 살면 기존의 화당 옆에 화당을 하나 더 내기도 한다.

손님이 많아 화당에 전부 둘러앉을 수 없거나 연회를 열 때에는 화로를 가운데 끼울 수 있는 화당탁火塘桌을 사용한다. 중국의 훠궈 전문점에서 보는 식탁과 비슷한데 다리가 짧은 낮은 테이블이다. 일가족이 모여 돼지고기와 채소를 놓고 훠궈를 즐기기도 하고, 겨울에는 추위에 얼어붙은 몸을 녹인다. 혼인 첫날밤에는 신랑·신부의 친구들과 가족·친지들이 모여 밤샘을 하기도 한다. 비를 맞은 옆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 옷과 신발을 말리기도 하고, 돼지를 잡는 날이면 돼지고기를 불 위에 걸어 훈제를 하기도 한다. 할아버지가 손자·손녀를 안아주면서 세대에서 세대로 감성이 이어지는 곳이다.

연통은 없다. 연기는 2층 천장의 틈새와 3층의 허술한 기와를 통해 빠져나간다. 열기를 실내에 가두면서 벌레를 쫓아주는 것이다.

움집을 기원으로 하는 민가 건축의 발달 과정은 화당에 집중되어 있던 여러 기능이 하나씩 분리되어 독립적인 공간으로 분화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화당 옆에서 자던 것을 침실로 분리하고, 취사는 주방으로 분리하고, 의례는 당옥으로 떼어내고…….

침실(위 좌측 사진)의 경우 주인장 부부는 당옥의 좌우에 있는 방을 각각 사용한다. 사합원에서와 마찬가지로 당옥의 서쪽은 남편이, 동쪽은 부인이 사용하고, 자녀의 침실은 따로 있다.

간란주택의 2층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공간은 지면에 기둥을 세워 받친 테라스와 비슷한 돌출 건조대다. 중국어로는 쇄태曬台(위 우측 사진)라고 한다. 벼와 고추, 찻잎 등을 말린다. 이 지역은 안개가 많고 흐린 날이 많아 습도는 높고 일조량이 부족해 곡식의 건조가 중요하다. 3층은 식량과 잡물을 보관하는 저장공간으로, 2층 실내에서 이어지는 계단을 통해서만 출입할 수 있는 재산의 공간이기도 하다.

간란식 주택은 대부분 경사면에 짓기 때문에 2층의 뒤쪽은 경사면에 직접 걸치고, 2층 앞면은 경사 아랫면에 박아서 세운 기둥 위에 걸쳐지는 구조가 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조각루弔脚樓라고 부른다. 조각루는 경사가 심한 비탈에도 지을 수 있어 산지에 적합한 주택 구조다.

간란주택에서 나와 마을 골목을 다녀보면 취락 구조 역시 산지 마을의 특성을 느낄 수 있다. 가파른 경사에 기대어 늘씬한 나무기둥을 뻗어 지탱하고 있는 집들, 1층보다 2층이 1m 정도 밖으로 돌출되어 있고 3층의 처마는 2층보다 더 돌출된 구조 때문에 가분수같이 보인다. 골목길은 2층을 지탱하는기둥 사이를 지나기도 한다.

룽지 다랑이논 풍경구에 들어와 간란주택을 둘러보았다면 이제는 산으로 올라가서 계단식 논을 둘러볼 차례다. 마을 뒷산을 쳐다보고 산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어느 길이든 산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계단식 논은 산 위에서만 눈에 들어온다. 산길을 따라 오르면 점차 그 자태를 드러내는 계단식 논, 경사가 50도가 되는 곳에도 논을 만들었다. 어떤 다랑이는 폭이 1m도 안 되는데, 1∼2m 위에 또 한 계단의 논이 만들어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논이 온산의 비탈면을 전부 덮는 것이다.

산길을 오르다 보면 한 뼘의 논을 얻기 위해 세대를 이어가면서 쏟아온 그들의 노고에 찬탄을 금할 수 없다. 이 마을의 계단식 논은 원대에 개착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른 것으로 70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한다.

계단식 논은 봄에 모를 내기 전에 물을 담았을 때, 모내기를 할 때, 벼가 누렇게 익어 황금 계단을 보여줄 때, 추수할 때 모두 일대 장관을 연출한다. 이산골 마을에 하루 이틀 유숙하면서 새벽 햇살이 부서지는 계단식 논을, 그 위에 빠른 걸음으로 흘러가는 구름과 안개를, 능선으로 넘어가는 석양을 음미하고, 오늘날에도 전통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간란주택에서의 일상생활을 느껴보면 아주 멋진 여행이 될 것이다. 신비로운 풍경을 사진에 담을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