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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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빙잉谢冰莹(1906∼2000)
셰빙잉은 원래 이름이 셰밍강谢鸣岗이고, 자는 펑바오凤宝이며, 후난 성湖南省 신화 현新化县 둬산 진铎山镇(지금의 렁수이쟝 시冷水江市)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아버지에게서 사서오경을 배우다가 후난 성립湖南省立 제1여교第一女校(후난제1여자사범학교湖南第一女子师范)에 입학했지만 졸업은 하지 못했고, 1926년 겨울 우한武汉의 중앙군사정치학교中央军事政治学校(황푸군관학교黄埔军校 우한 분교武汉分校)에 입학해 단기 훈련을 받고 북벌 전선에 투입되었다. 1927년에 군정학교军政学校 여생대女生队가 해산되자 상하이예술대학上海艺大를 거쳐 베이핑여사대北平女师大를 졸업했다. 1931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으나 만주국 황제 푸이溥仪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환영 행사에 참가하는 것을 거부하다가 일본 특무特务에 의해 체포되었다. 온갖 고문을 받다가 추방되어 귀국하였으나, 1935년 이름을 바꾸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에서 공부했다. 그러나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귀국하여 “전지 부녀 복무단战地妇女服务团”을 조직하고 스스로 단장이 되어 전선으로 향해 부상병들을 돌보는 한편 선전宣传 활동을 벌여나갔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베이핑여사대北平女师大와 화베이문학원华北文学院 교수가 되었다가 1948년 타이완台湾으로 건너가 타이완사범대학 교수가 되었다. 일찍이1921년부터 작품을 발표했는데, ‘5·4’ 시기 문명을 떨쳤던 셰완잉谢婉莹, 쑤쉐린苏雪林, 펑위안쥔冯沅君 등과 같은 여 작가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렸다. 평생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굴곡진 중국현대사의 운명에 따라 중국 대륙과 타이완, 미국 등지를 떠돌다 말년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생을 마감했다.

베이징에 와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깊은 인상을 받지 않는 이가 없고, 베이징을 떠난 뒤에도 늘 그리워하지 않는 이가 없다.

베이징은 모든 사람의 연인이고, 모든 이의 어머니 같다. 베이징은 불가사의한 마력으로 외부에서 온 유랑객들을 빨아들인다. 베이징에 살고 있을 때는 그게 어떤 것인지 못 느끼지만, 일단 그곳을 떠나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그리워하게 된다. 어느 곳에 가더라도 베이징 같이 좋은 데는 없다고 느끼는데, 그 이유를 개괄하자면 다음의 두 가지를 벗어나지 않는다.

첫째, 고도의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이허위안頤和園이나 징산景山, 태묘太廟, 중난하이中南海, 베이하이北海, 중산공원中山公園,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 톈탄天壇, 디탄地壇……과 같이 역사적인 고적과 명승지는 위대하고 장관이라 여행객의 마음을 탁 트이게 하고 돌아갈 것을 잊게 만든다. 아울러 베이징 시 전체가 커다란 공원과 같아 곳곳에 나무가 있고, 꽃이 있다. 모든 집의 정원에는 가난뱅이든 부자든 몇 그루의 나무를 심고 화분이 있다. 집들은 또 얼마나 가지런하고 정교하게 배열되어 있나? 이들 사합원 집은 보기에는 아주 간단한 듯하지만 사실은 아주 복잡하다. 집 안에는 본채에 딸려 있는 두 개의 방이 있고, 큰 정원 안에도 작은 정원이 있는데, 작은 정원의 뒤에는 화원이 있다. 잘 꾸며진 정원에는 안에 가산假山이 있고, 회랑이 있으며 기이한 꽃과 나무가 있다. 여기에 고색창연한 향기가 나는 가구가 더해지면, 거실 안이 각별히 그윽하고 고아한 분위기로 점철되기에 누구나 베이징이 가장 살기 좋은 집이라 말한다. 후통 안의 작은 정원에서는 아이들과 한 가족이 아주 고요하고 쾌적하게 살 수 있으니, 절대 그대를 귀찮게 할 사람이 없다. 설사 시끄러운 저잣거리 부근에 살더라도 수레와 말 우는 소리가 그대의 귀에 그렇게 많이 전해지지 않는다.

두 번째 이유는 베이징의 풍속과 인정이 각별히 순박해, 상하이나 난징 일대의 시끌벅적함이나 번화함이 없고, 칭다오나 쑤저우, 항저우 일대의 귀족스러움도 없다는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넉넉하고 대범하면서도 점잖은 군자이고, 안으로는 아리따운 소녀같이 불꽃같은 열정을 갖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고 있다. 베이징은 태생적으로 사근사근하면서도 진실되고, 충실하면서도 검박하다. 나는 고향을 사랑하는 만큼이나 베이징을 사랑한다. 심지어 베이징의 모든 명승고적, 모든 후통과 거리가 각별히 매혹적이다. 아마 이건 내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베이징이 정말 좋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베이징에 와본 적이 없는 사람과 베이징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그 사람은 유감스러운 듯 그대에게 대답할 것이다.

“정말 애석하게도, 아직 베이징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뒤 반드시 베이징에 가볼 것이다.”

벗이여, 위에서 내가 베이징을 치켜세운 것을 보고도 아직 만족하지 못한다면, 내가 다시 몇 개의 예를 들어보겠다.

그대가 처음 베이징에 가서 기차에서 내렸을 때, 기차역에 그대를 마중 나온 친구가 없다면 첫 번째로 관계를 맺는 사람은 머리에 붉은 모자를 쓰고 푸른 색 조끼를 입은 인력거꾼이다. 역을 나오면 인력거를 불러야 한다. 인력거꾼이 나이가 어린 젊은이이라면 거리를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반드시 인력거를 세우고 경찰에게 가야 한다. 베이징의 경찰을 이야기하자면, 정말 칭송이 자자하다. 누구라도 그들이 전국에서 가장 예의바르고 가장 열심히 복무하는 모범 경찰이라고 말할 것이다. 믿지 못하겠다면, 번거롭지만 초급소학교의 제5책 국문 상식 교과서를 찾아보라. 제14과가 「경찰의 좋은 친구」인데, 베이징의 경찰이 얼마나 공손하고 어떻게 상대방을 배려하는지 기술되어 있다. 그에게 길을 물으면 손으로 자세하게 동쪽과 서쪽을 가리키면서, 몇 걸음을 가면 담배 파는 작은 상점이 있고, 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틀면 이발소가 있으며, 다시 남쪽으로 가면 무슨 후통을 지나는데, 그러고 나면 아무개 후통이라고 알려 줄 것이다. 늙은 노부인이 길을 물으면, 서 있던 단에서 내려와 아마도 그녀를 모시고 어느 정도 길을 가서 곧장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것이다.

그들이 호구를 조사할 때는 더욱 예의가 있다. 그들은 그대의 문 앞에 와서 가볍게 문고리를 두드릴 텐데, 그대가 듣지 못하면 다시 가볍게 몇 번 소리를 내고 절대 조급하지도, 성깔을 부리지도 않으면서 그대의 정원에 들어와 거기서 미소를 띠고 말을 물어볼 것이다. 아울러 세찬 비가 내리지 않는 한 절대 거실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에게 담배를 권하더라도 피우지 않고, 차를 따라주어도 마시지 않는다. 묻고자 하는 말을 다 묻고, 보고자 하는 호구의 명부책을 다 보고 나서 주인이 도장을 찍으면 그는 다시 공손하게 미소를 짓고 떠난다. 떠날 때도 손님인 양 연신 주인에게 “폐를 끼쳤습니다! 폐를 끼쳤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베이징에 사는 사람들은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대의 형제, 친구와 같다. 하지만 그가 네거리에 서서 손에 지휘봉을 들고 근무를 설 때는 엄격하고 진지하며 추호도 사사로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사리에 맞게 행동한다. 베이징의 경찰 근무지는 아주 적다. 하지만 누구라도 법을 준수하고, 신호등의 지시에 따라 정지하거나 앞으로 나아간다. 시창안졔西長安街와 푸유졔府右街 입구의 네거리에는 경찰 지휘 건물 한 동이 허공에 높이 걸려 있는데, 교통경찰이 안에 앉아 있다. 나는 늘상 자동차가 사람을 상해하고 경찰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가해자가 몇 리나 달아나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나 그런 기우杞憂일랑은 접어두기 바란다. 베이징은 절대 다른 곳과 달리 1년 동안 한 두 차례의 교통사고도 있기 어렵고 특히나 차가 사람을 치어 죽이는 기사도 있을 수 없다. 됐다. 이제 화제를 바꾸어 풍경을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가을의 베이징은 행락객들이 즐거움을 누리기에 최적의 계절로, 바람도 없고 비도 없고 해도 하루 종일 따사롭게 내리쬔다. 드높은 푸른 하늘은 맑고 끼끔하며, 옅은 회색 구름이 눈처럼 흰 구름을 좇아가는 것이 때로는 느리게 산보하는 듯하고 또 때로는 서로 포옹하는 듯하다. 정오의 태양은 소녀의 얼굴 위에 비추어 발그레한 홍조를 띠게 하지만, 일단 저녁 무렵이 되면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편안한 느낌이 들며 약간 쌀쌀하기까지 하다.

이란탕漪瀾堂과 우룽팅五龍亭 및 베이하이 연변의 찻집은 저녁 시간이 되면 나들이 나온 손님들로 만석이다. 그들 가운데 여자 친구를 데리고 온 이도 있고, 온 가족을 대동한 이도 있으며, 두세 명의 지기들끼리 모임을 갖는 이들도 있다. 조용히 앉아서 천천히 룽징龍井 샹폔香片을 마시고, 베이징 특유의 간식거리인 완더우가오豌豆糕나 미짜오蜜棗, 기름에 튀긴 땅콩 등을 먹는다. 그들의 태도는 한가롭고 심경은 평온하다. 젊은 남녀들은 일엽편주를 타고 베이하이 위에서 천천히 노니는 것을 즐긴다. 미풍은 연꽃 잎을 가볍게 흔들어대 사각거리는 소리가 나고 작은 물고기들은 옥같이 푸른 물속에서 도약을 한다. 때로 작은 배가 연꽃 무리 사이로 들어가면, 사람이 그림 속에 있는 듯, 아주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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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하이 츙다오瓊島

때로 바람이 일면 푸른 파도가 놀잇배를 흔들어대 삐걱 삐걱하는 소리를 낸다. 청춘 남녀들은 푸른 파도에 미소를 짓는데, 어떤 이는 경쾌하게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어떤 이는 하모니카를 불고 어떤 이는 자기가 마음속으로 좋아하는 곡조를 흥얼거린다. 그들은 하늘 위 천사들처럼 걱정 근심 없이 아주 즐겁기만 하다.

베이하이는 아름답고 사람을 취하게 한다. 몇 백 년 동안 약간의 변화를 겪긴 했지만, 여전히 근심거리라고는 조금도 없다. 극락세계의 불상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은 채 여전히 소서천小西天에 단정하게 앉아 있고, 구룡벽九龍壁 앞에 서 있는 수많은 유람객들은 정교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이란탕에서 호수를 건너 우룽팅으로 가는 유람객들은 여전히 붐비고, 사공들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쁘기만 하다. 백탑은 더 장려하게 수리되었고, 유리 세계처럼 회칠을 했으며, 아동체육관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고 적지 않은 어른들이 그 곁의 의자에 앉아 미소를 띠고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자신이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또 어떤 이들은 아이들의 즐거움을 함께하고 있다.

베이하이를 유람하고도 아직 흥취가 남아 있다면, 다시 둥안시장東安市場을 구경하러 가도 괜찮다. 여기는 분위기가 또 다르다. 과일이 진열된 매대 위의 수정 같은 한 꾸러미의 백포도와 마노 같은 자주색 포도, 분홍색의 사과, 물이 오른 커다란 복숭아, 하나에 2,30근이나 나가는 커다란 수박, 예쁘장한 작은 능금, 크고 신선한 대추, 또 향기롭고 달콤한 량샹良鄕의 탕차오리쯔糖炒栗子……겨울에 가장 보기 좋고, 맛있고, 아이들이 가장 환영하는 것은 빙탕후루冰糖葫蘆인데, 정말 있어야 할 것은 모두 있다. 경태람景泰藍의 예술품, 유리로 만든 각종 장난감, 아가씨나 부인네들이 좋아하는 커우화扣花나 귀걸이는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둥안시장 전체를 자기 집으로 옮겨놓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정도다.

베이징의 가장 큰 특징은 전국의 문물의 정화精華가 모두 여기에 모여 있다는 데 있다. 평생을 이곳에 살면, 아이들이 소학교, 중학교, 대학교를 모두 여기서 끝낼 수 있고, 졸업한 뒤에도 베이징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고 싶지 않다. 베이징도서관의 책 역시 전국에서 첫손가락 꼽는데, 그곳에서 수십 년 간 연구에 몰두하면 유명한 학자가 되는 것을 보장한다.

앞서 이미 말했듯이 베이징 사람들의 인정은 순박해 우리가 그곳에서 일을 하거나 거주할 때 무슨 낡은 옷을 입더라도 절대 그것을 비웃는 사람이 없다. 외출했다가 차를 타는 대신 천천히 걸어서 집에 돌아오든, 방쯔몐棒子麵이나 워워터우窩窩頭를 먹든, 절대 그대를 비웃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베이징에 다녀온 적이 있는 사람은 부자건 가난뱅이건 그것을 찬미하고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1947년 가을 베이징에서

(『문학의 베이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