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일언一字一言18-진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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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을 가진 進(나아갈 진)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자라고 할 수 있다. 두 개의 글자가 결합하여 새로운 뜻을 가지는 회의자(會意字)에 속하는 進은 새를 지칭하는 隹(새 추)와 다리, 혹은 천천히 걷다 는 뜻을 가진 辵(쉬엄쉬엄 갈 착)이 합쳐진 형태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글자의 유래와 뜻을 정확하게 살피기 위해서는 隹와 辵에 대해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물 현상의 모양을 본뜬 상형자(象形字)에 해당하는 隹는 새라는 뜻을 가지지만 같은 의미를 지닌 鳥(새 조)와 구별하여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隹는 꼬리가 짧은 새를 총칭하는 것이고, 鳥는 꼬리가 긴 새를 총칭하는 뜻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이 글자는 꼬리 짧은 새가 앉아 있는 모양을 본떠서 만든 것으로 초기의 글자는 새의 머리, 몸통, 꼬리 등이 그대로 그려져 있는 정도여서 얼핏 보아도 앉아서 머리를 치켜들거나 돌리고 있는 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초기에는 이런 모습이었던 것이 시대가 바뀜에 따라 글자의 모양도 달라져서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되었다고 보면 된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을 가진 進에 하필이면 꼬리가 짧은 새라는 뜻을 가진 隹를 넣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글자를 넣은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꼬리가 짧은 새들은 사람이 사는 주변에서 생활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어서 예로부터 먹거리로 하기 위해 잡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새를 잡기 위해서는 그물을 주로 사용했는데, 이것이 바로 꼬리 짧은 새의 특성을 잘 반영한 기구였다. 이런 새들은 앞으로만 가고 뒤로는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그러한 성질을 이용해서 만든 도구가 바로 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인해 隹를 넣음으로써 앞으로, 혹은 앞으로만 나아간다는 뜻을 가지는 進을 만들어냈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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辵은 조금 걷는다는 뜻을 가진彳과 발, 혹은 멈추다 는 뜻을 가진 止가 결합한 모양의 글자이다. 彳은 걷는 것을 나타내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정강이(胫)를 그린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동물이나 사람 등은 정강이가 움직여서 걷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彳은 조금 걷다 는 뜻으로 쓰였다. 止는 발의 모양을 본뜬 것으로 멈추다는 뜻을 가지는 글자다. 그렇기 때문에 辵은 천천히 걷는다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다만, 이 글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辶으로 모습이 바뀐다.

이렇게 글자를 나누어서 이해하고 보면 進이 왜 이런 모습으로 구성되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걷는다는 뜻을 가진 辵 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을 나타내기에 충분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사람은 앞으로 걷는 것도 가능하고, 뒤로 걸을 수도 있으며, 옆으로 걷는 것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을 정확하게 나타내기 위해서는 오직 앞으로만 가는 성질을 가진 隹를 결합함으로써 그 뜻을 온전히 나타낼 수 있게 되었고, 글자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과거의 것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면서 미래로 향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이 글자는 매우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그래서 그런지 흔히 과거의 것이나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거나 지키려는 성향을 지닌 保나 守와 상대되는 것으로 사용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보수와 진보 같은 진영 나눔도 이런 의미에서 활성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긍정적으로 쓰이는 進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어서 눈길을 끈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 부담이 매우 크다.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예로부터 선인들은 앞으로 나아갈 때는 모든 것에 조심하고, 또 신중해야 함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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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禮記)에서는, ‘교양있는 사람이 앞으로 나아갈 때는 공경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왼손을 오른손 위에 놓고 두 손을 마주 잡은 모양으로 얼굴 앞으로 들어 올려 허리를 반쯤 공손하게 구부렸다 펴면서 손을 내리는 읍(揖)을 세 번 한 다음에야 비로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君子三揖而進). 그런 다음에는 손님이 오르는 서쪽 계단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다시 경계하고 있다. 앞으로 나아갈 때 이처럼 조심하고, 또 신중해야 하는 이유는, 첫째,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다해야 하기 때문이며, 둘째, 앞으로 나아갈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미리 살펴 예측함과 동시에 그에 대한 대비책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정의고, 최선이며, 최고라 생각하고 별생각 없이 나아가기만 한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아주 커질 것이며, 개인적으로는 패가망신하기에 십상일 것이다. 또한 단체나 나라를 운영하거나 지도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을 생각하면서 일을 한다면 그 역시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조직이나 나라를 이끄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進을 행함에 있어서는 많은 생각과 고려를 한 후에 해야 한다는 점을 우리 모두 잊어서는 안 될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