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대소설예술기법 9 극성법極省法

극성법極省法

【정의】

‘극성법’은 함축과 절약의 기법으로 경제적인 서술 기교를 가리킨다. 이것 역시 진성탄金聖嘆의 「독제오재자서법讀第五才子書法」 가운데 하나이다.

극성법極省法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우쑹이 양구 현陽穀縣으로 영입될 때, 공교롭게도 우다武大 역시 그곳으로 이사를 와 딱 맞닥뜨린다든지, 쑹쟝이 피파팅琵琶亭에서 어탕魚湯을 먹은 후에 연일 설사한 것과 같은 것이다.

有極省法, 如武松迎入陽穀縣, 恰遇武大也搬來, 正好撞著; 又如宋江琵琶亭喫魚湯後, 連日破腹等是也。

‘극성법’은 앞서 ‘극불성법’에서 말했던 ‘석묵惜墨’에 해당하는데, 작품 속에서의 의의는 이것을 통해 중요한 인물과 주제 사상을 두드러지게 하는 데 있다. 곧 전형적인 인물은 반드시 전형적인 사건과 환경 속에서 빚어지며, 주제 사상은 반드시 전형적인 인물과 환경을 통해 드러나게 마련인 것이다.

【실례】

《수호전》 제22회와 제23회에 걸쳐 우쑹이 양구 현陽穀縣에서 형인 우 대랑武大郞을 만나는 대목이 전형적인 예이다. 사실 우 대랑이 칭허 현淸河縣에서 양구 현으로 이사오게 된 과정은 간단치 않다. 하지만 우 대랑은 주요 인물이 아니라 부차적인 인물에 불과하니 그에 대해서 과도하게 서술하게 되면 주객이 바뀌는 병폐가 생기게 된다. 작자는 형제가 길에서 우연히 만나는 장면을 묘사하는 가운데 우 대랑이 아내를 얻고 동네 사람들에게 수모를 당하다 양구 현으로 이사하기까지의 내용을 간단하게 처리해 버렸다. 여기서 형제가 길에서 우연히 만나는 것은 일종의 ‘교합법巧合法’이라 할 수 있으니, 이런 이야기의 의외성을 통해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으니, 인물의 성격을 좀더 풍부하게 심화시키고 있다. 곧 우쑹이 애당초 형을 만날 때 “아니, 어떻게 여기 와 계시오?”라고 소리치는데, 이것은 뜻밖의 기쁨을 드러내 보여주는 동시에 형에 대한 진한 그리움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 뒤에 이어지는 형제 간의 대화 역시 말은 그리 많지 않지만, 오가는 정은 진실하다 할 수 있다. 작가는 장황한 묘사를 통해 해야 할 이야기들을 형제 간의 대화를 통해 간략하면서도 충분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탁월한 전략가는 ‘정병精兵’을 조련하는 데 뛰어나고, 우수한 작가는 ‘기필奇筆’을 잘 운용한다. 곧 작가는 ‘교합법’을 통해 우연한 기회를 간략하게 서술함으로써 복잡하고 묘사하기 힘든 인물과 사건의 상당히 긴 시간과 공간의 관계를 무리 없이 연결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극성법’을 ‘축지축시법縮地縮時法’이라고도 부른다. 다만 다른 기법과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생동감 있는 서술에 유의해야 하는데, 만약 생동감을 잃는다면 ‘극성법’은 단지 거칠고 투박한 묘사에 지나지 않게 된다.

【예문】

다시 이삼일이 지났다. 우쑹武松은 현청 앞으로 나가서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는데 문득 등 뒤에서 어떤 사람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우 도두武都頭, 자네는 출세했네 그려. 그런데 어째서 나를 본 척도 안 하나?”

우쑹은 뒤를 돌아보고 소리를 질렀다.

“아니, 어떻게 여기 와 계시오?”( 《수호전》 제22회)

우 도두는 돌아서서 그 사람을 보자 넙죽 엎드려서 절을 하였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쑹의 친형이 우 대랑武大郞이었다. 우쑹은 절을 하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일 년이 넘도록 형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어찌 여기 계십니까?”

우다武大가 대답하였다.

“이 사람아 자네는 집을 떠난 지도 오랜데 어째서 그 동안 편지 한 장 없었나? 나는 자네를 원망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하였네.”

“어째서 원망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했단 말입니까?”

“내가 자네를 원망한 것은 이전에 자네가 칭허 현淸河縣에 있을 때 술을 먹고 취하기만 하면 사람을 때려서 툭하면 관청 놀음을 하는 통에 나까지도 관가로 불려가지 않았나. 그래 거푸 한 달을 무사히 보낸 적이 없었으니 당연히 원망할 수밖에 없었지. 그리고 내가 근자에 여편네를 얻었는데, 칭허 현 놈들이 공연히 시샘을 해 가지고는 놈들 마음대로 나에게 수모를 주는데, 누구 하나 나서서 시비를 가려 주는 사람이 없네 그려. 자네만 집에 있었다면 어느 놈이 감히 찍소리나 했겠나. 그놈들 성화에 거기서는 견뎌낼 수가 없어서 사세부득하여 이리로 와서 셋방 살림을 하고 있는 중일세. 그러니 내가 자네를 그리워했던 건 당연하지 않겠나.”

독자들은 들으시라. 우 대랑과 우쑹은 동복 형제로서 우쑹은 8척 장신에 풍채도 늠름하고 온몸에 수천 근의 근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호랑이를 때려잡았겠는가! 그런데 우 대랑을 놓고 말하자면 5척도 못 되는 키에 외모도 추한 데다 머리 생김새조차 우습게 되어 먹었다. 그래서 칭허 현 사람들은 그의 키가 작다고 해서 그에게 ‘세 치 짜리 지푸라기’라는 별명을 붙였다.

칭허 현에는 전 현을 떵떵거리며 사는 한 부잣집이 있었다. 그 집에 계집종 하나가 있었으니 아명은 판진롄潘金蓮이고 나이는 20여 세인데 얼굴이 매우 예뻤다. 주인 녀석이 이 여종한테 자주 집적거리니 여종은 종시 순종치 않고 그의 마누라에게 이 일을 고해 바쳤다. 그러자 그 부자는 앙심을 품고 돈 한 푼 받지 않고 도리어 집과 세간까지 주어 그 여종을 우 대랑에게 주어 버렸다. 우 대랑이 이 여종을 얻게 되면서부터 칭허 현의 몇몇 난봉꾼들이 늘 그 집으로 드나들며 시끄럽게 굴었다. 우 대랑은 키가 작고 인물도 초라한 데다 여인 다룰 줄은 통 모르는 위인이었다. 이와 반대로 그 계집은 모든 일을 능수능란하게 처리했는데, 그 중에서도 서방질에 제일 능했다.

우 대랑이 워낙 사람됨이 나약하고 수더분한 위인임을 잘 나는지라 그가 판진롄을 얻은 뒤로는 난봉꾼 자제들이 무시로 문 앞에 와서는 지껄여댔다.

“맛 좋은 양고기가 개 아가리에 들어갔어.”

우 대랑은 칭허 현에서 도저히 더는 살 수 없게 되자 양구 현陽穀縣 성내의 쯔스 가紫石街로 이사와 셋방살이를 하면서 전과 같이 찐떡을 메고 팔러 다녔다.

우 대랑은 이 날도 현청 앞에서 찐떡을 팔고 있던 중 뜻밖에 우쑹을 만났던 것이다.

“동생, 일전에 나는 거리에서 사람들이 ‘징양강景陽岡에서 범을 때려잡은 장사는 성이 우 가인데 지현이 그에게 도두를 시켰다’고 떠들어대는 것을 듣고 십중팔구는 자네려니 짐작했네. 그런데 오늘에야 이렇게 만났군. 내 오늘 장사를 그만둘 테니 나하고 집으로 가세.”

“형님 집은 어디오?”

우 대랑이 손을 들어 가리키면서 말했다.

“바로 저 앞 쯔스 가에 있네.”

우쑹이 우 대랑의 장삿짐을 메자 우 대랑은 우쑹을 데리고 이 골목 저 모퉁이를 돌아서 곧장 쯔스 가로 갔다.( 《수호전》 제23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