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각박안경기初刻拍案驚奇 제4권 3

제4권 정원옥은 주막에서 대신하여 돈을 보상하고,
십일낭은 운강에서 협객을 자유롭게 논하다.
程元玉店肆代償錢 十一娘雲岡縱譚俠

처음에는 평탄하여 걷기가 쉬었으나 어느 정도 걷자 땅 밑이 점점 돌멩이 투성이라서 말이 걷기에 매우 불편하였다. 또 걸어갔는데 험준하고 가파른 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 산을 돌아가도 빽빽한 숲이라 고개를 들어 보아도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정원옥과 하인은 당황하여 그 사람을 원망하였다.

“어떻게 이런 길을 갑니까?”

그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앞쪽에는 평평해집니다.”

정원옥은 할 수 없이 그를 따라서 걸어갔다. 다시 언덕을 지났는데 이전보다 더 험준하였다. 정원옥이 낌새를 알아차리고 “큰일났다. 큰일났어”라고 하며 급히 말을 돌려 되돌아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그 사람이 휘파람을 불자 산 앞에서 사람들이 뛰어나왔다.

우락부락한 용모 그 몸을 곧추세웠네. 어두운 밤 살인하는 것, 바람 불 때 불지르는 것처럼 쉽다네. 도적에게도 도리가 있어 크게는 일찍이 유학자의 허명을 몰래 배웠다. 대장은 이름이 없으나 장군 가문을 본따서 써 먹을 수 있다네. 사람들 사이에서는 우연히 도둑이라 불리나 지금 세상에서 대부분은 군자라네.

정원옥은 사정이 좋지 않음을 보고 모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황급히 말에서 내려 읍하며 말했다.

“여기 있는 재물은 태보(太保)께서 가져가십시오. 다만 안장과 옷가지들은 남겨서 돌아갈 여비로 삼게 해 주시오.”

그 도둑떼들은 그 말을 듣고 과연 보따리를 취하고 은냥을 거두어 갔다.

정원옥이 다급하게 몸을 돌려 찾았을 때 그 말은 고삐가 풀려 어디 갔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인도 피난하여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쓸쓸하니 한 사람만이 남겨져 높은 언덕 위에 서 있게 되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강도가 출몰한 곳은커녕 하인과 말의 자취도 없었으며 주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날도 점점 저물어가니 그는 탄식할 수 밖에 없었다.

“내 명이 다 하였구나!”

마침 다급해하고 있는데 숲 속에서 나뭇잎 소리가 사각사각 하고 들렸다. 정원옥이 고개를 돌려보니 어떤 사람이 칡넝쿨을 잡고 올라오는데 대단히 가벼워 보였다. 앞으로 걸어오는데 여자였다. 정원옥이 그녀를 보고 마음에 적지 않니 두려움이 가라앉았다. 막 그녀에게 물어보려고 하는데 그녀가 갑자기 정원옥의 앞으로 걸어와서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저는 위십일낭의 제자 청하(靑霞)입니다. 스승님께서 나리가 곤경에 빠진 것을 아시고 특별히 저에게 여기에서 기다리라고 하셨어요. 스승님은 앞에 계시니 나리는 가서 만나십시오.”

정원옥은 위십일낭이라는 말을 듣고 자신의 곤란한 처지에 마음 속으로 그녀가 구해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다. 조금은 대담해져서 청하를 따라서 앞으로 갔다. 반 리도 안되어 주막에서 만난 부인이 와서 맞이하며 말했다.

“나리께서 그렇게 놀라셨는데 일찍 맞이하러 하지 못해 대단히 죄송해요. 나리의 물건은 이미 찾았고 하인과 말도 있으니 근심할 필요 없어요.”

정원옥은 깜짝 놀라서 한참동안 말하지 못했다.

“나리께서는 오늘밤 가실 수 없어요. 제 암자가 멀지 않으니 암자에서 음식을 드시고 그곳에서 머무르시면 됩니다. 앞길로는 가실 수 없어요.”

정원옥은 감히 어길 수 없어 따라갔다. 언덕 두 개를 지나 앞에는 험준한 산으로 사방에는 아무런 연결된 것이 없고 높은 봉우리와 구름뿐이었다. 위십일낭이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이 운강(雲岡)인데 제 암자는 그 위에 있어요.”

정원옥을 이끌고 나무를 잡고 올라 걸어갔다. 험준한 곳에 이르러 위십일낭과 청하가 함께 겨드랑이를 부축하고 몇 보 걷다가 쉬었다. 정원옥은 숨을 헐떡였지만 그 두 사람은 마치 평지를 걷는 것 같았다. 높은 곳에 도착하니 구름은 아래에 있었다. 대략 10여 리를 가니 돌계단이 있었다. 돌계단이 백여 층이 있었고 층이 끝나는 곳은 평지였다. 초가집 한 채가 있었는데 대단히 아름다웠다. 정원옥에게 앉도록 하였다. 십일낭은 또 여동 표운(縹雲)을 불러 다과, 야채, 송진으로빚은 술을 준비하여 정원옥에게 들게 하였다. 또한 식사를 준비하라고 했는데 대단히 정성스러웠다. 정원옥은 성정이 바른 사람이라 읍을 하며 말하였다.

“제가 조심성이 없어 소인들의 흉계에 빠졌습니다. 부인께서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겠습니까? 다만 부인께서 어떤 법술로 그들을 제어하고 저의 물건을 되돌아오게 하였는지요?”

“저는 검협이고 보통 사람이 아니에요. 예전에 주막에서 나리의 고상하심을 보고 다른 사람처럼 경박스럽지 않아서 존경하게 되었어요. 나리의 안색에 맺힌 것이 있어 우환이 생길 것이라 보고 일부러 돈이 없다고 하여 나리의 마음을 시험했지요. 나리께서 의리가 있으신 것을 보고 유념하여 이곳에서 기다리며 나리의 덕에 보답한 것이지요. 방금 전의 무뢰배들이 무례하게 굴어 이미 그들의 잘못을 훈계했어요.”

정원옥은 그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기뻐하며 경모하게 되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사서를 보아서 이러한 법술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그녀에게 물었다.

“듣기로는 검술은 당(唐)대에 시작하여 송(宋)대에 없어졌다고 하던데요. 그래서 원(元)대에서 명(明)대에 이르기까지 이런 일을 듣지 못하였는데 부인은 어디에서 배운 것인지요?”

“이 법술은 당대에 시작된 것도 아니고 송대에 없어진 것도 아니에요. 황제(黃帝)가 구천현녀(九天玄女)에게 병부를 준 것으로부터 이런 법술이 있었어요. 그 신하 풍후(風侯)가 그것을 익히고 치우(蚩尤)를 격파했지요. 황제가 이 법술이 신기하여 사람들이 함부로 사용할까 저어했고 상제께서는 대단히 엄히 경계하셨기에 감히 널리 퍼뜨리지 못하고 다만 열심히 하는 한두 사람을 뽑아 입으로 전수하셨어요. 그래서 이 법술은 실전하지 않았고 널리 퍼지지 않았지요. 후세에 장량(張良)이 역사를 모집하여 진시황(秦始皇)을 공격하고, 양왕(梁王)이 사람을 보내어 원앙(袁盎)을 살해하며, 공손술(公孫述)이 사람을 시켜서 내흡(來歙)과 잠팽(岑彭)을 살해하고, 이사도(李師道)가 무원형(武元衡)을 살해한 것 등이 모두 이러한 법술이지요. 이러한 법술은 쉽게 얻을 수 없었는데, 당의 번진(藩鎭)들이 흠모하고 모방하여, 기이한 행적을 지닌 사람들을 극력 찾았으니, 한동안 사기꾼들이 옳고 그름을 상관하지 않고 모두 쓰였으니 유독 당대에는 그러한 것이 있었지요. 그 사람들은 실제로 상제의 계율을 범하여 후에는 모두 화를 당하였어요. 그러므로 그때의 선사가 다시 이전의 계율을 진술하니 대략 다음과 같아요. 망령되이 사람에게 전하고 살인하지 말라. 악인을 위해 힘을 쓰고 선인을 해하지 말라. 살인하여 명성을 얻지 말라. 이러한 몇 가지 계율이 가장 큰 까닭으로 조원호(趙元昊)가 파견한 자객이 감히 한위공(韓魏公)을 죽이지 못한 것과 묘부(苗傅), 유정언(劉正彦)이 파견한 자객이 감히 장덕원(張德遠)을 죽이지 못한 것도 계율을 범할까 두려워한 것일 따름이에요.”

“사전(史傳)에서는 황제가 치우를 정벌한 것에 법술이 있다고 하지 않고 장량이 역사를 모집한 것에도 법술을 말하지 않습니다. 양왕, 공손술, 이사도가 파견한 자도 모두 도적이라고 하지 어떻게 법술이 됩니까?”

“나리의 말씀은 틀린 거에요! 이것은 바로 우리가 공명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이예요. 치우가 기이하게 생기고 특이한 법술을 가지고 있는데 어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겠어요? 진시황은 천하의 주인으로 호위가 따르고 있는데 얼마나 위세가 등등했겠어요? 게다가 진의 법이 대단히 엄하여 누가 감히 그를 치려고 하겠어요? 그를 치지 않았다해도 빠져나갈 수 있는 거에요. 원앙 같은 이는 관직이 근시(近侍)이고 내흡, 잠팽은 대원수이며 무 승상은 천자를 보필하는 대신 자리에 있었기에 군중 사이에서 수레 안을 직접 공격한다는 것은 신술이 있지 않으면 어떻게 할 수 있었겠어요? 게다가 무원형의 죽음은 두개골을 취하여 간 것이에요. 그렇게 황망한 때에 누가 이러한 한가한 틈이 있겠어요. 사전에는 원래 분명하지만 나리께서는 그 뜻을 자세히 알지 못하신 겁니다.”

“사전에서 과연 그러하다면 태사공(太史公)이 전한 자객은 바로 이 법술일 거라 생각됩니다. 형가(荊軻)가 진왕을 찔렀을 적에 그의 검술이 생소하다고 하였지요. 앞에서의 이 몇 자객은 거의 법술을 가진 자겠군요?”

“사마천은 그릇된 거에요. 진이 진실로 무도하였지만 역시 하늘이 내린 주인이라 검술을 가졌다고 해도 어찌 가벼이 시행할 수 있어요? 전제(專諸), 섭정(聶政) 등의 사람들은 의기로 한 것으로 열혈남아에 불과하지 원래 법술이 있는 것이 아니에요. 만약 이런 것들을 모두 검술이라고 한다면 세상에서 살인하고 자신은 지키지 못하는 게 다 이 술법이겠지요.”

“곤륜(昆侖) 마륵(摩勒)은 어떤가요?”

“그것은 초보적인 것이지요. 섭은낭(聶隱娘), 홍선(紅線)이야 말로 대단한 것이지요. 마륵은 형세를 사용하여 다만 위헙을 거쳐서 민첩한 수단을 시험할 수 있었을 뿐이에요. 섭은낭과 같은 부료들은 신비로운 기술을 사용하는데 매우 뛰어나서 귀신도 헤어릴 수 없을 정도라서 바늘구멍도 헤아릴 수 있고 피부도 숨길 수 있어 갑자기 천리에 있다가 왕래함에 흔적이 없으니 어찌 법술이 없다고 하겠어요?”

“제가 보기에 󰡔규염객전(虯髥客傳)󰡕에서 원수의 머리를 먹었다고 하던데요. 검술도 사적인 복수를 할 수 있나요?”

“그렇지 않아요. 규염의 일은 우언이지 사실이 아니에요. 설사 복수를 한다 하더라도 곡직을 논해야 해요. 나에게 허물리 있다면 감히 법술을 써서 복수를 할 수는 없어요?”

“만약 법술가가 말하는 원수 중에 어떤 것이 우선인가요?”

“원수는 몇 가지가 있는데 모두 사적인 원수가 아니에요. 세간에 백성을 학대하고 뇌물을 탐하고 그 생명을 해치는 수령관, 권세를 남용하고 아부하기만 좋아하고 정직한 자를 해치는 상사, 심복을 심어놓고 자기와 다른 자를 해하고 현자와 간신의 위치를 바꾸는 재상, 사사로이 청탁하고 뇌물을 쓰며 흑백을 섞고 재주 없는 자가 요행을 얻고 재사가 억울하게 되는 시험관, 군량미를 탈취하고 무술에 근면하지 않고 변경을 지키는 자를 망치는 장수가 있어요. 이들은 모두 우리가 반드시 주벌해야 하는 자에요. 문서를 어지럽히는 관리, 독재적인 토호는 주재하는 형벌이 있어요. 패륜아, 배신자들도 뇌부(雷部)에서 관장하므로 우리는 상관하지 않아요.”

“좀전에 말씀하신 사람들은 확실히 협객이 죽인 것이라고는 듣지 못했는데요.”

십일낭은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사람들이 알게 할 수가 있겠어요? 그런 무리들을 죽이는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니거든요. 심한 놈들은 그 두령과 그의 처자를 죽이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조금 덜한 놈들은 목구멍으로 들어가 숨통을 끊거나 그 내장을 상하게 하기 때문에 그 놈들은 급사한 것으로만 알지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거지요. 또 때로는 도술을 써서 혼을 빨아들여 미친 것처럼 행동하다가 정신을 잃고 죽게 만들기도 하고, 혹은 도술로 미혹하여 그 놈에게 추한 일들이 속출하게 해서 울분에 죽게 만들기도 합니다. 때가 아직 이르지 않은 놈은 괴이한 꿈으로 놀라게만 하고요.”

“검 시범을 한 번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큰 것은 함부로 쓸 수가 없어요. 또 당신이 놀라 해를 입을 지도 모르고요. 작은 것은 괜찮아요.”

그리고는 청하와 표운 두 소녀를 불러서 분부하였다.

“정공께서 검을 보고 싶어하시니 그 분께 시범을 보여 드려라. 이 벼랑에서 바로 뽑아봐라.”

두 소녀가 응락을 하니 십일낭이 소매 속에서 구슬 두 개를 꺼내 공중으로 휙 던져 몇 길 높이로 솟아올랐다가 내려오기 시작하자 두 소녀는 곧장 나무가지 끝으로 뛰어올라 손으로 받는데 털끝만큼의 실수도 없었다. 각기 한 알씩 받아 털어내니 눈처럼 빛나는 예리한 칼이 되었다. 정원옥이 그 나뭇가지를 보니 아래로 휘어져 거꾸로 매달려 있고 밑으로는 깍아지른 골짜기에 닿아 있는데 그 깊이는 헤아릴 수가 없었다. 한 번 굽어보려니 정신이 혼미하고 머리털이 곤두서며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십일낭은 태연하게 담소하고 있고, 두 소녀는 검을 쓰며 서로 싸우는 상황을 연출하였다. 처음엔 그래도 분별할 수 있었으나 나중에 가서는 두 줄기 흰 명주자락이 공중에서 휘감아 도는 것 같을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한 식경쯤 되어서야 내려왔는데, 숨도 차지 않고 얼굴색도 변하지 않았다. 정원옥이 감탄하며 말하였다.

“정말 신인(神人)이로구나.”

이미 밤이 깊어 곧 대나무 침상에 침구를 깔아 정원옥을 줍도록 하고는 겹모피를 더 덮어 주었다. 십일낭은 두 소녀와 인사를 하고 물러나와 석실로 가서 잤다.

바야흐로 음력 8월의 날씨라 정원옥은 이불을 끌어안고 모피를 덮었는데도 추위를 느꼈으니 아마도 거처가 높기 때문이리라. 날이 밝기도 전에 십일낭은 일어나 몸단장을 마쳤다. 정원옥도 씻고 나와 그녀를 만나자 몇 번이고 사례했다. 십일낭은 “누추한 집에 접대가 소홀하여 용서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조반을 대접하고 다시 청하에게 활과 화살을 가지고 산을 내려가 날짐승을 잡아다가 점심을 만들라고 하였다. 청하가 갔다가 한참 후에 아무것도 못잡고 돌아와서는 “날이 아직 일러서 없어요.”라고 말하였다. 다시 표운에게 가도록 하고서 앉아서 얘기를 나눈지 얼마되지 않아 표운이 꿩 한마리와 토끼 한 마리를 들고 올라왔다. 십일낭은 크게 기뻐하면서 청하에게 빨리 요리하여 손님에게 대접하라고 하였다. 정원옥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산속에 꿩이나 토끼가 적을 리 없는데 왜 그리 구하기가 힘든 겁니까?”

“산속에 원래는 적지 않지만 숨어있기 때문에 구하기가 어려울 뿐입니다.”

정원옥이 웃으며 말했다.

“부인의 신술로 어찌 얻을 수 없단 말입니까? 한낱 꿩이니 토끼 따위가 어렵다니!”

“선생님이 잘못 말씀하셨어요. 저의 도술을 어떻게 생명을 해치는데 사용해서 배를 채울 수가 있겠어요? 오직 신리가 아니고서는 용납할 수 없어요. 이렇게 사소한 일에 쓸 수는 없는 거지요. 꿩이나 토끼같은 것들은 활과 화살을 가지고 사람의 힘으로 취해야만 되는 겁니다.”

정원옥은 더욱더 탄복하였다. 잠깐동안에 술이 몇 차례 들어온 후 정원옥이 청하였다.

“부인의 가문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십일낭은 주저하며 말하였다.

“부끄럽지만 선생님은 미더운 분이시니 말해도 괜찮겠군요. 저는 본래 장안(長安) 사람인데, 부모가 가난하여 저를 데리고 평량(平涼)에 가서 손기술로 생활을 꾸리며 살았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와 살았는데, 2년이 지나 저를 같은 마을의 정씨(鄭氏)네 아들에게 시집보내고 어머니도 다른 사람에게 재가를 하셨어요. 정씨의 아들은 경박하기 그지없고 주색잡기를 좋아했는데, 제가 누누히 타이르다가 결국 반목하게 되어 저를 버리고 다른 무뢰배들과 변경으로 건수 올리러 떠나고는 끝내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어요. 아주버님도 불량하여 저를 희롱했지만 제가 정색을 하고 거절을 했습니다. 하루는 몰래 제 침상으로 올라오기에 제가 머리맡에 있는 검을 들고 그를 찔러 상처를 입고 달아나게 했어요. 저는 한낱 부인네고 지아비와도 잘 지내지 못해서 그런 지경에 버려진데다가 아주버님과 같이 사는 것도 불편한데 그에게 상처까지 입혔으니 그곳에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지요. 마침 어려서부터 저를 사랑해주시던 조(趙) 여도사라는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은 신술을 지니고 있어 ‘전수해줄 수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부모님이 계셔서 감히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지요. 하지만 이렇게 된 마당엔 그 분에게 찾아갈 수밖에 없었지요. 이튿날 여도사님을 마나러 갔더니 기쁘게 맞아주셨어요. 그리고 “이 곳은 머물 곳이 못된다. 내 산 중에 암자가 있는데 그 곳에 가서 머무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시고는 저를 데리고 산꼭대기로 올라갔는데, 여기보다 더 험준했고 그 위엔 작은 집이 있어 거기에 머물며 저에게 법술을 가르쳐 주셨어요. 날이 저물면 곧 산을 내려가 저 혼자만 남아 잠을 잤습니다. 도사님은 ‘음주와 간음은 절대로 안된다’고 훈계하셨는데 저는 ‘깊은 산 속에 어떻게 그런 일이 있겠어?’라고 생각했어요. 입으로는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아니었지요. 그러고는 그 작은 집 침상에서 자는데, 한 경 남짓 있으려니까 한 남자가 담을 넘어 들어왔는데 매우 잘 생겼더군요. 저는 황급히 일어나 그에게 물었지만 대답도 하지 않고 소리를 질러도 물러서질 않았어요. 그 사람이 곧장 다가와 저를 끌어 안으려 했지만 저는 응하려 하지 않았지요. 그 사람이 더 강하게 요구하자 저는 검을 뽑아 그를 치려 했고, 그도 검을 뽑아서 서로 싸우게 되었어요. 저는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터라 스스로 상대가 안됨을 알고는 검을 버리고 그에게 애걸하였어요. ‘저는 명이 기박하여 벌써 오래전에 낙담했거늘 어찌 저를 망치려 하십니까? 또한 스승님의 명계가 있으니 맹세코 감히 어길 수가 없어요.’ 그래도 그 사람은 듣지 않고 검을 저의 목에 대로 순순히 따르도록 강요하자 저는 목을 내밀고 칼을 받으며 말했어요. ‘죽일테면 죽겠지만 나의 뜻은 뺏을 수 없다!’ 그러자 그 사람은 검을 거두고 웃으며 ‘너의 마음이 변치 않을 것임을 알겠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어요. 자세히 보니 본래 남자가 아니라 조 여도사님이 저를 시험하러 온 것이었어요. 이것으로 저의 심지가 굳은 것을 알고는 도술을 모두 저에게 전수해 주었어요. 도술을 다 배우자 그 분은 멀리 떠나고 저는 이 산 속에 머물게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