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의 첫마디 ‘學而時習(학이시습)’을 와당 문양으로 새겨보았다.
‘學而時習(학이시습)’은 만고불변의 공부 비결이자 전문가가 되는 비결이다. ‘배우고(學)’ ‘시간 날 때마다(時)’ 반복해서 ‘익히는(習)’ 것이다.
현재 중국 지도자의 성이기도 한 ‘習(습)’은 아기 새가 날기 위해 끊임없이 날개를 퍼득이며 나는 연습을 하는 글자이다.
유명 강사의 명강의만 전국 각지로 찾아다니며 듣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별로 쌓이는 건 없다. ‘學(학)’만 있고 ‘습(習)’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야구 천재라도 배트를 남보다 더 많이 휘둘러보아야 홈런왕이 되고, 아무리 축구 천재라도 공을 남보다 더 많이 차보아야 득점왕이 된다.
와당은 기와의 얼굴이다. 지붕에 기와를 얹을 때 켜켜이 쌓고 마지막 마무리로 덮는 기와이다. 여기에 글씨나 문양을 넣은 경우가 많았다. 전문 예술가나 문인이 쓰고 그린 것이 아니어서 대체로 투박한 편이다. 와당의 그 투박미가 종종 디자인 소재가 되었다. 나는 이 투박미도 잘 살려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세련된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더욱 많은 ‘習(습)’이 필요하다.
그래서 조선의 어느 김씨 문인은 이름을 ‘시습(時習)’으로 지었을 것이다. 한국학의 요람 한국학중앙연구원 기숙사 이름도 ‘시습재(時習齋)’이다. 안동 도산서원 어딘가에도 ‘시습재’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가물가물). 내 사무실이 있는 건물 이름을 ‘학이관(學而館)’으로 하자고 제안을 올렸는데, 아직 연락이 없다. 받아들여질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