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시기 중국 현대시 연구자 윤영춘尹永春

나는 2003년에서 2005년까지 경북대 인문과학연구소에서 [근대의 도전과 지역의 대응]이란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우리나라 근현대 중국문학 수용사를 연구한 적이 있다. 당시에 놀랍고도 흥미로운 사실을 확인했다. 지금은 사계의 연구자들에게 꽤 알려진 내용이다.

나는 근대 잡지를 두루 확인하는 과정에서 [白光]을 뒤적이게 됐는데, 거기에서 활엽(活葉)의 「현대중국신시단의 현상(現代中國新詩壇의現狀)」([白光] 1937년 제6집)이란 글을 발견했다. 활엽을 추적하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 활엽은 바로 윤영춘(尹永春)의 필명으로 그는 시인 윤동주의 오촌 아저씨 즉 당숙이었다. 윤동주의 부친 이름이 윤영석(尹永錫)이니, 파평윤씨 영(永)자 항렬 사촌 형제였던 것이다. 그럼 가수 윤형주와는 어떤 사이인가? 윤영춘은 바로 윤형주의 아버지다.

윤영춘은 1912년 간도 명동(함북 회령이라고도 함)에서 태어나 1978년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다. 일본 메이지대학 영문과와 니혼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한 후 미국 프린스턴대학에 유학하고 경희대 영문과 교수를 지냈다. 흥미롭게도 전공은 영문학인데 1930년대 후반부터 중국현대문학 특히 중국 현대시를 소개하고 연구하는데 막대한 공헌을 했다. 26세인 1937년에 발표한 위의 「현대중국신시단의 현상」이란 글을 비롯하여, 30세인 1941년에 발표한 「現代支那詩抄」([人文評論]제3권 제1호, 1941년 1월)는 일제강점기에 중국 현대시를 소개한 매우 중요한 글이다.

영문학 전공자인 윤영춘이 어떻게 이처럼 중국 현대시 또는 중국 문학에 깊은 조예를 가졌을까? 첫째, 그는 1934년 [新東亞] 신춘문예에 [지금은 새벽]이란 시를 응모하여 당선되었다. 이 집안의 유전자 속에는 시적 재능이 잠복해 있는 듯하다.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 그가 중국 현대시에 관심을 기울인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둘째, 그는 윤동주와 마찬가지로 간도 명동 출신이이므로 중국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했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현대문학 중에서도 현대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런 연구와 소개의 결정판이 바로 1947년 청년사에서 출간한 [현대중국시선](청년사, 아래 왼쪽 사진)이란 책이다. 이 책은 중국 현대시를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최초의 시선집이다. 후스(胡適), 궈모뤄(郭沫若), 주쯔칭(朱自淸), 궈샤오위(郭紹虞), 쉬즈모(徐志摩) 등 20명에 가까운 중국 현대시인의 작품 번역과 원시가 실려 있다. 중국 현대시 수용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 시선집을 놓쳐서는 안 된다.

또 흥미롭게도 윤영춘은 연구의 범위를 넓혀 1947년 우리나라 최초로 [현대중국문학사](계림사)(아래 가운데 사진)를 출간했다. 지금 시각으로 바라보면 다소 아쉬운 점도 있으나 당시로서는 매우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중국 현대문학 연구 저작이었다. 우리나라에 중국 현대문학사가 대중화된 것이 1987년 서울대 김시준 교수가 출간한 [중국현대문학론]부터이니 윤영춘의 이 저서가 갖는 선구적 의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아래 둘째 사진은 [현대중국문학사] 초판본 표지이고 셋째 사진은1984년에 서문문고로 출간된 중간본 가죽 표지 판본이다. 성경도 아닌데 가죽 표지 문고판이라니… 상상이 되시는지? ㅋㅋ

또 하나 특기할 만한 일은 윤영춘이 [현대중국문학사]에 그치지 않고 1954년에 [중국문학사](白映社, 아래 오른쪽 사진)까지 출간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알기로는 중국문학 전공자 차상원이 출간한 [중국문학사]가 1958년에 나왔고, 한학자 이가원이 출간한 [중국문학사조사]가 1959년에 나왔다. 따라서 윤영춘의 [중국문학사]는 이 분야를 처음 개척한 기념비적 저작이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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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춘의 중국문학 관련 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