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대소설 평점 간론 – 소설평점의 연원 1

1. 소설평점의 연원

  중국 고대의 문학평점은 그 원류가 길고 멀어, 시간으로 말하자면, 대체로 당대에 그 발단이 엿보이고, 남송대에는 자못 흥성했으며, 원과 명, 청 삼대를 거쳐 청말에 이르러 역사의 무대에서 퇴출 되었다. 문학 형식으로 말하자면, 중국의 고대문학 가운데 거의 모든 중요한 문체, 이를테면, 시, 사, 곡, 부, 문, 소설, 희곡 등에 평점이 출현했다. 더욱 심한 것은 중국 고대의 중요한 작가와 그 작품은 거의 모두가 평점가의 비점을 거쳤는데, 어떤 것은 한 번 비(批)한 것을 다시 비한 것도 있다는 사실이다. 《시경》, 《초사》, 《사기》,  《한서》, 리바이(李白), 두푸(杜甫), 쑤스(蘇軾), 신치지(辛棄疾), 《수호전》, 《삼국연의》, 《서상기》, 《모란정》과 같이 중국문학사의 유명 인사가 지은 거작들은 그 자체의 전파사에서 모두 평점가의 심각한 흔적을 남겼다. 그렇다면 이런 류의 문학비평 방식은 어떻게 태어난 것인가? 일종의 비평 형식으로서 ‘평점’은 중국 고대에 연속적으로 장구하게 이어왔으며, 하나의 단어로서 ‘평점’이라는 말은 이미 흔히 쓰이는 관용어가 되었다. 우리는 소설평점에 대한 연구와 해석을 ‘평점’이라는 단어의 뜻풀이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1) ‘평점’에 대한 뜻풀이

  하나의 비평 형식으로서 평점은 그 자체로 발전해 오는 가운데 획일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송대 이래로 이러한 비평 형식은 대량의 명칭을 갖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주요한 것으로는 ‘비평(批評)’, ‘평림(評林)’, ‘평석(評釋)’, ‘평품(評品)’, ‘평정(評定)’, ‘평정(評訂)’, ‘평(評)’, ‘비점(批點)’, ‘평열(評閱)’, ‘비(批)’, ‘평차(評次)’, ‘평교(評校)’, ‘평점(評點)’, ‘평론(評論)’, ‘열평(閱評)’, ‘비열(批閱)’, ‘점평(點評)’, ‘품제(品題)’, ‘참평(參評)’, ‘비교(批校)’, ‘가평(加評)’, ‘점열(點閱)’, ‘평선(評選)’, ‘비선(批選)’, ‘평초(評鈔)’ 등이 있다. 이런 용어들은 혹은 제목에 쓰이거나, 혹은 제서(題署)에서 설명되고 있다. 그 함의는 대략 비슷하지만, 구체적인 사용과 사용되는 시간에 있어서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 이에 그 가운데 긴요한 것을 골라서 풀어보겠다.

  중국 고대문학 평점 가운데 가장 상용되는 것은 ‘평점’과 ‘비점’, ‘비평’ 이렇게 세 가지 용어이지만, 아마도 ‘비점’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남송의 고문 선본 중에서 비교적 보편적으로 운용되었는데, 이를테면 《신편제유비점고금문장(新編諸儒批點古今文章)》[류쟝쑨(劉將孫) 편]과 《비점분격류의구해론학승척(批點分格類意句解論學繩尺)》[웨이톈잉(魏天應) 편] 등이 그것이다. 남송 이후의 문학 평점 중에도 ‘비점’이라는 단어는 보편적으로 운용되어 상용 빈도에 있어서는 심지어 ‘평점’이라는 단어를 넘어서기까지 했다. 문학 평점 중의 몇 가지 다른 용어들은 기본적으로는 모두 ‘비점’이라는 단어에서 나왔는데, 이를테면, ‘비말(批抹)’, ‘미비(眉批)’, ‘방비(旁批)’, ‘협비(夾批)’, ‘총비(總批)’ 등이 그러하다. ‘비’는 곧 ‘평론’을 가리키고, ‘점(點)’은 곧 ‘권점(圈點)’이다. ‘비’ 자는 어원으로 볼 때 중의적인 항목들을 갖고 있는데, 그 가운데 ‘평론’이라는 항목의 나중에 나온 의미가 ‘비점’의 ‘비’와 상관 있는 것말고도 ‘비각도관(批卻導窾)’의 ‘비’와 ‘비풍말월(批風抹月)’의 ‘비’나 혹은 ‘비점’이라는 단어의 내원 역시 상관이 있다.

  ‘비각도관’이라는 말은 《장자》 <양생주>에 “큰 틈새를 가르고 비어있는 곳을 따르면(批大卻, 導大窾)”이라는 대목에 나오는데, 주에서는 “경계지어진 곳이 있어 그 곳을 가르면 분리된다(有際之處, 因而批之令離)”고 하였다.[1] 곧 뼈마디가 맞물리는 곳을 가르면 다른 부분은 그에 따라 분해된다는 것이다. ‘비풍말월’은 문인의 집이 가난해 손님을 대접할 게 없다는 것을 비유하는 우스개 말이다. 쑤스(蘇軾)의 <화하장관륙언차운(和何長官六言次韻)>의 제5에는 “가난한 집은 어떻게 손님을 대접하는가? 다만 달을 가늘게 자르고 바람을 얇게 자르는 것만 알 뿐이다(貧家何以娛客, 但知抹月批風)”라는 구절이 있다. ‘말(抹)’은 ‘가늘게 자르고(細切)’, ‘비(批)’는 ‘얇게 자른다(薄切)’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으로 ‘비’ 자가 역대로 동작이 정밀하고 세밀한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학의 비점은 단어와 구절의 정밀하고 세밀한 곳의 분석을 중시했으니, ‘비점’의 내원이 이것과 관련이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총비(總批)’는 왕왕 거시적인 안목에서 평석(評析)한 것이었고, 세밀한 곳에 대한 분석은 ‘미비’, ‘협비’, ‘방비’라는 명칭은 있을지언정, ‘미평(眉評)’이라는 말은 없었다. ‘평점’이라는 단어는 이미 이런 류의 문학비평 형식에서는 통용어가 되어 버렸지만, 이 용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된 것은 오히려 ‘비점’보다는 늦다.

  송원 시기의 문학평점 저작들에서는 ‘평점’이라는 명명이 매우 드물게 사용되었다. 명대에 들어선 뒤에는 ‘평점’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이를테면 《제명가평점장자집주(諸名家評點莊子輯注)》[루푸(盧復) 집(輯), 명 간본]나 《평점순자(評點荀子)》[쑨쾅(孫鑛) 평, 명 만력 간본] 등의 서명에서 쓰였고, 구체적인 평론 중에서도 늘상 보였다. 이를테면, “보통 평점은 초학자가 책을 보는 데 편리한 점이 있는데, 세련된 문체는 아니다(時常評點, 以便初學觀覽, 非大方體).”[명 천방쥔(陳邦俊), 《광해사(廣諧史)》 <범례>] “책은 평점을 숭상하는데, 이것으로 작자의 생각과 통하고, 보는 이의 마음을 열어준다(書尙評點, 以能通作者之意, 開覽者之心也.)”[《충의수호전서》 <발범(發凡)>, 명 만력 연간 위안우야(袁無涯) 각본] 총체적으로 말해서 ‘평점’이라는 단어는 아직까지는 이런 비평 형식에서 가장 넓게 사용된 용어는 아니었고, 청대에 들어서야 이 용어가 진정 보편적으로 운용되었던 것이다. ‘비평’이라는 단어 역시 문학 평점 중에서 가장 높은 빈도로 운용되었던 용어 가운데 하나이다. 총괄하자면, ‘비점’, ‘평점’과 ‘비평’은 고대의 문학 평점 중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세 가지 단어로, 이 삼자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선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옛사람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했다.

  문학 평점 가운데 비교적 특수한 용어는 ‘평림(評林)’으로, 문학 평점에 대한 특수한 호칭으로서 ‘평림’이라는 단어는 명대에만 출현한다. 특히 명대 만력 이후의 문학 평본 중에 비교적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를테면, 《사기평림(史記評林)》[링즈룽(凌稚隆) 집, 명 만력 간본], 《신각주석초당시여평림(新刻注釋草堂詩餘評林)》[리팅지(李廷機) 집, 명 만력 간본], 《노자평림(老子評林)》[웡정춘(翁正春) 집평, 명 간본], 《경본증보교정전상충의수호지전평림(京本增補校正全像忠義水滸志傳評林)》[위샹더우(余象斗) 평, 명 만력 간본], 《삼국지전평림(三國志傳評林)》[위샹더우(余象斗) 평, 명 만력 간본], 《당시선맥회통평림(唐詩選脈會通評林)》[저우팅(周挺), 명 숭정 간본] 등이 그것이다. ‘평림’은 곧 집평(集評)을 뜻한다. 이를테면 만력 초년 링즈룽(凌稚隆) 집 《사기평림(史記評林)》이 그러하다. 쉬중싱(徐中行)의 <각《사기평림》서(刻《史記評林》序)>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싱(吳興)의 링즈룽이 《평림》을 편찬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쓰마쳰이 《사기》를 완성한 것도 반드시 가업에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2] 링 씨 집안은 역사학으로 뛰어난 바, [그 아비인] 링웨옌 때부터 대략 갖춰졌지만, 큰형인 링즈저가 채록한 것까지 추가되다 보니, 취지가 달라 결론이 같지 아니 하였다. 링즈룽은 그 범례에 따라 선친의 뜻을 완성했는바, 숲처럼 모아 쓰마쳰 뒤에 첨부했다.(凌以棟之爲評林何謂哉?……推本乎世業, 凌氏以史學顯著, 自季墨有槪矣, 加以伯子稚哲所錄, 殊致而未同歸, 以棟按其義以成先志, 集之若林而附于司馬之後.)”[3] 그래서 이른바 ‘평림’은 평어를 “숲처럼 모았다(集之若林)”는 것, 곧 ‘집평’을 말한다. 일종의 집평 형식으로서 ‘평림’은 주로 시문 평선에서 보인다. 통속소설 평본 중에는 ‘평림’이라 명명한 것은 위샹더우 평본에서만 보이는데, 위 씨 역시 ‘평림’의 이름만을 취했을 뿐 실제로는 집평이 아니다[자세한 것은 이 책의 하편 <소설평점 형태의 분석>을 볼 것]. 희곡 평점은 이와 반대로, 실제로는 집평이지만, ‘평림’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은 것이 있다. 이를테면, 치펑관(起鳳館)의 명 만력 38년 간본 《원본출상북서상기(元本出相北西廂記)》에는 왕펑저우(王鳳州), 리줘우(李卓吾) 평이라 제(題)하였고, 우청(烏程) 민 씨(閔氏) 명 천계 간본 《서상회진전(西廂會眞傳)》에는 선징(沈璟), 탕셴쭈(湯顯祖) 평, 후이진탕(滙錦堂) 명 숭정 간본 《삼선생합평원본북서상(三先生合評元本北西廂)》에는 탕셴쭈, 리줘우, 쉬웨이(徐謂) 등으로 제(題)했다.

  ‘평석’과 ‘평품’, ‘평정’, ‘평교’, ‘평열’, ‘평론’ 등의 용어에는 일반적으로 특수한 함의는 없고, ‘참평’, ‘가평’ 등은 원평(原評) 본의 기초 위에 덧붙여진 평점을 가리킨다.

  옛사람들의 평점이라는 비평 형식에 대한 직접적인 해석은 많이 보이지 않는데, ‘평점’의 명목과 실질, 의미의 한계 문제에 대해서는 특히 논의한 것이 없다. 평점에 대한 몇 가지 단편적인 해석을 덧붙인 것은 대부분 문학 평점의 실천가 손에서 나왔기에, 경험을 이야기한 것이 많고, 집중해서 논의한 것은 문학 평점의 유래와 기능, 방법 등의 문제이다. 오히려 사람들이 ‘평점’으로 자못 많은 경계를 정하게 했다. 그들의 ‘평점’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연구의 필요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자기의 연구 대상에 의해 그 범위가 획정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요즘 들어 평점이 점점 더 연구자들의 중시를 받게 됨에 따라 ‘평점’의 해석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다른 의미도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다. 여기서 대략적으로 정리하고 변증(辨證)하여 이러한 기초 위에서 이 책에서 말하는 ‘평점’의 의미를 확정하고자 한다.

  요즘 사람들의 ‘평점’에 대한 이해는 대부분 전통적인 관념을 갖고 있는데, 곧 ‘평점’은 특수한 문학비평 방식으로 그 가운데 ‘평’은 문학작품과 한데 얽혀 있는 비평 글이고, ‘점’은 곧 권점이다. 다만 몇몇 연구자들은 ‘평점’에 새로운 개념 규정을 했으니, 그 가운데 비교적 대표적인 것으로 다음의 몇 가지 의견이 있다.

  한 가지 의견은 “평점에는 협의와 광의의 구분이 있는데, 협의의 평점은 비점이 결합된 형식을 가리키며, 작품을 벗어난 평론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광의의 평점은 개방적인 개념으로 무릇 작가와 작품의 평론이 모두 평점학의 범주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점’의 “상용어는 ‘비’와 ‘평’의 구분이 있고, ‘비’는 곧 ‘평’이지만, 형식상으로는 반드시 ‘비(批)’ 되는 작품과 결합을 해야만 하기에, 원작을 떠나면 ‘비’할 길이 없게 되고, ‘평’은 형식상 원작을 벗어날 수 있게 된다.”[4] 이런 의견은 문학평점을 협의와 광의 두 가지 함의로 나누고, 단어의 쓰임에서도 ‘비’와 ‘평’을 나누어 겉으로는 ‘평점’에 대한 함의를 정밀하게 구분짓는 듯하나 실제로는 문학평점의 실제 함의를 혼란케 만들어 평점이라는 특수한 문학비평 형식을 무제한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런 의견에 의하면 이른바 ‘평점’은 실제로는 일반적인 문학 비평과 다를 게 없게 된다. 이런 구분은 문학비평으로서 평점이 갖고 있는 일종의 형식적인 특수성을 “뽑아내 버리게” 된다. 이렇게 하면 이른바 평점의 역사 연구는 어느 정도 문학비평사 연구를 대체할 수 있게 되므로, 이런 관념은 확실히 불합리하다.

  또 다른 의견은 문학평점에 대한 연구를 반성하고, 평점에 대한 연구를 지적해 내어 “우리가 과거에 항용 그 비평적 일면을 강조했기에, 이것을 문학에 대해 비평과 평가를 진행하는 형식으로, [또는] 자신의 문학관념을 표출하는 일종의 방식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런 연구는 “불완전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런 의견은 문학평점이라는 개념의 어순을 뒤바꾸어 기왕의 ‘문학평점’을 ‘평점문학’으로 대체하고 있다. 그렇다면 ‘평점문학’이란 무엇인가? 연구자들은 이렇게 그 경계를 규정했다. “평점문학은 일종의 비평과 문학작품의 결합으로부터 형성되고 동시에 병존하는 특수한 현상으로, 비평과 문학의 이중적인 함의를 갖는다. 이것은 이미 비평 방식인 동시에 문학 형식이기도 하다. 문학 형식과 밀접하게 연관되고 함께 결합한 문학비평 방식이기도 하고, 또 비평 성분을 포함하고 있으면서 비평 형식과 한 몸으로 이어져 있는 문학형식이다. 통상적으로 말하자면, 문학비평과 문학작품은 모두 문학 영역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오히려 서로 다른 속성과 서로 다른 텍스트를 갖고 있다. 그래서 평점문학은 문학비평과 문학작품의 이중적인 속성을 겸하고 있는 특수한 문학형태이다.” 아울러 ‘평점문학’이라는 개념 속에서 ‘평점’과 ‘문학’이라는 두 가지 단어 사이의 관계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관계도 아니고, 동사와 목적어의 관계도 아닌 일종의 병렬 관계이며,” “비평방식과 문학형식이 서로 결합된 이중적인 함의를 갖고 있다.”[5] ‘평점문학’으로 ‘문학평점’을 대신하는 것은 사실상 단어를 조정하는 문제에 머물지 않고 평점이라는 형식의 성질에 대해서도 그 한계를 규정한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한계를 규정한 것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중국문학에는 ‘평점문학’이라는 ‘특수한 문학형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른바 ‘평점문학’은 실제로는 ‘평점을 갖고 있는 문학작품’일 따름이므로, 여기에는 시사(詩詞)와 산문, 희곡, 소설 등 여러 문체가 포괄된다. 중국문학 비평에서 이중적인 속성을 겸하는 문학비평이 있는데, 이것은 평점이 아니고 문학형식으로 창작사상을 표현해내는 비평 문장일 따름이다. 이를테면 루지(陸機)의 <문부(文賦)>와 두푸(杜甫)의 <희위륙절기(戱爲六絶句)> 등이 그러하다. 그러므로 평점과 작품 자체를 하나로 연결하면, 한편으로는 양자의 성질이 혼란스러워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평점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에도 불리하게 된다.

  평점이라는 형식에 대해 ‘글자만 보고 대충 의미를 생각해내는(望文生義)’ 식의 해석과 추론을 내놓은 또 한 가지의 의견이 있다. 이것은 이른바 “‘평점’의 ‘평’은 ‘평의(評議)’이고, ‘점’은 ‘하나의 말로 독파한다(一語點破)’는 의미이다. 이 때의 ‘파’는 ‘만 권의 책을 독파한다(讀書破萬卷)’의 ‘파’이고, 선가의 말인 ‘오파(悟破)’의 ‘파’이다. 중국의 시론과 문론에는 이제껏 선(禪)으로 시를 따지고(議), 선으로 문장을 따지는(議) 논법이 있어왔다. 곧 ‘하나의 점으로 깨뜨린다(一點卽破)’는 것에는 ‘한 차례 죽비로 갈파하면 제호를 따르는 듯하다(一棒喝破如灌醐醍[6])’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평점의 ‘점’은 바로 이러한 ‘점파(點破)’를 거쳐 ‘오묘한 깨닫게 된다(妙悟)’는 것을 의미하며, 선가의 논법이 소설 영역에 차용된 것이다.”[바이둔(白盾), <중국소설의 평점 양식을 논함(說中國小說的評點樣式)>, 《예담(藝談)》, 1985년 제3기] 이렇게 한계를 규정하는 것은 단지 한 사람의 말일 따름이라 말할 수 있으며,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에 상응하는 문헌적 근거는 결여되어 있는데, 그것은 중국문학평점의 역사에서 ‘점’의 의미 규정이 권점으로만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평점’에 대해 아래와 같이 그 한계를 규정한다.

  첫째, 평점은 중국의 고대문학 비평의 중요한 형식으로, ‘화(話)’나 ‘품(品)’ 등과 함께 고대 문학비평의 형식 체계를 구성한다. 이러한 비평 형식에는 그 독특함이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비평 문장과 비평의 대상인 작품이 하나로 융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품과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어야만 평점으로 일컬을 수 있으며 그 형식에는 서발(序跋), 독법, 미비, 방비, 협비, 총비와 권점이 포함된다.

  둘째, 바로 평점과 비평의 대상인 작품이 하나로 융합되어 있기에, 평점을 포함하고 있는 문학 작품은 독특한 텍스트 형식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텍스트는 일반적으로 ‘평본(評本)’이라 칭한다. ‘평본’은 문학작품의 전파 과정 속에서 특수한 텍스트 형태를 이루게 되는 것이지, ‘문학 형태’는 아니다. 이러한 텍스트 형태는 중국 문학비평사의 연구와 중국문학전파사의 연구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셋째, 전체적으로 문학비평의 범주에 속하는 평점은 문학작품에 대한 평가와 판단, 분석이다. 다만 고대 문학비평사에서 평점은 희곡과 통속소설과 같은 속문학 영역에서는 문학비평의 울타리를 벗어나 작품 자체에 대한 수정과 윤색에 개입한다. 이것은 하나의 특수한 예이지만, 소홀히 보아서는 안 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1] 【옮긴이 주】이 말은 유명한 ‘포정해우(包丁解牛)’의 비유에 나온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백정은 칼을 놓고 대답하였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로써 재주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에는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소였으나, 3년이 지나매 이미 소의 모습은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저는 정신으로 소를 대하지 눈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눈의 작용이 멎게 되니 정신의 자연스러운 작용만 있게 되어, 저는 천리에 의해 큰 틈새를 가르고 비어있는 곳을 따라 칼을 놀리고 움직여 소의 본래의 구조 그대로를 따라갈 뿐입니다. 그 기술의 미묘함에 아직 한번도 힘줄이나 질긴 근육을 건드린 일이 없사온데, 하물며 큰 뼈야 더 말할 게 없습니다(庖丁釋刀對曰, 臣之所好者道也, 進乎技矣, 始臣之解牛之時, 所見无非全牛者. 三年之後, 未嘗見全牛也. 方今之時, 臣以神遇而不以目視, 官知之而神欲行. 依乎天理, 批大卻 導大窾因其固然,枝經肯綮之未嘗微礙, 而況大軱乎!)”

[2] 【옮긴이 주】그러니 링즈룽이 《평림》을 편찬한 이유 역시 가업에서 찾아야 한다는 뜻.

[3] 【옮긴이 주】이 인용문은 뒤에 <하편 형식과 유형>의 ‘3) 소설평점 형태의 분해(分解) 그 첫 번째: ‘평림(評林)’과 ‘집평(集評)’ 부분에서 다시 나온다. 자세한 설명과 주석은 뒷부분에서 다시 상세하게 할 것이다.

[4] 주스잉(朱世英) 등, 《중국산문학통론(中國散文學通論)》, 안후이교육출판사(安徽敎育出版社), 1995.

[5] 쑨친안(孫琴安), 《중국평점문학사(中國評點文學史)》, 상하이사회과학출판사(上海社會科學出版社), 1999.

[6] 【옮긴이 주】원문의 ‘호제(醐醍)’는 흔히 ‘제호(醍醐)’라고 한다. 우유를 정제하면 유(乳), 난(酪), 생수, 숙수, 제호의 5가지 단계의 제품이 나오는데, 이 중 제호의 맛이 가장 좋다. 제호는 제호상미(醍醐上味)의 준말로 불교에서 비교할 수 없이 좋은 맛, 곧 가장 숭고한 부처의 경지를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산스크리트어로는 만다(manda)라고 한다. 천태종에서는 불성 또는 진실한 가르침에 비유하여 오시(五時)의 하나인 법화열반시를 뜻하기도 한다. (《두산백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