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각박안경기初刻拍案驚奇 제3권 2

제3권 유동산은 순성문에서 무예를 자랑하고,
십팔형은 주막에서 기이한 행적을 보이다
劉東山誇技順城門 十八兄奇蹤村酒肆

범은 뭇 짐승의 추앙을 받으니,
뭇 짐승들은 땅에 엎드려 꼼짝 못하네.
하지만 사자후(獅子吼)와 맞닥뜨리면,
범도 아무 소용없다네.

명(明)나라 가정(嘉靖)년간에 직예성(直隸省) 하간부(河間府) 하현(河縣)에 성은 유(劉)가요 이름이 금(嶔)인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동산(劉東山)이라 불리며 북경(北京) 순포아문(巡捕衙門)[1]에서 집포군교(緝捕軍校)의 우두머리를 맡고 있었다. 이 사람은 능력이 뛰어나 활과 말타기에 숙련되었고 활을 쏘면 백발백중인지라 사람들은 그를 연주전(連珠箭)[2]이라 불렀다. 아무리 지독한 도적이라 할지라도 그를 만나면 독 안에 든 쥐가 되어 손만 쓰면 그대로 붙잡혔으니, 이리하여 그는 재산을 꽤 모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30여 세가 되자 이런 길에 싫증을 느껴 이 곳을 떠나 달리 살아갈 방도를 찾으려 하였다.

늦겨울 세밑 어느 날 나귀와 말 십여 마리를 팔러 서울로 가 대략 백여 냥의 은전을 벌었다. 거래를 마치고 순성문(順城門, 즉 宣武門)에 이르러 나귀를 세내어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나귀 주인의 가게에서 우연히 이웃 장이랑(張二郞)을 만나 함께 음식점에서 밥을 사 먹게 되었다. 이랑이 물었다.

“동산이 어디로 가는 길인가?”

동산은 사정을 한차례 이야기하고는 말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나귀를 빌렸으니 오늘은 여기서 묵고 내일 떠나려 하네.”

이랑이 말하였다.

“요즘 길 다니기가 여간 힘들지 않아. 양향(良鄕), 정주(鄭州) 일대에 도적이 출몰하여 백주에도 약탈을 하거든. 자네는 은자를 많이 지니고 있는 데다 동행도 없이 혼자 다닌다면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 조심해야 하네.”

동산은 이 말을 듣자 수염과 눈썹이 곤두세우고 입술과 이를 부르르 떨면서 양손으로 주먹을 쥐어 활 쏘는 시늉을 해 보이며 하하하고 크게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십 년 동안 활쏘기로 적수를 만난 적이 없어. 이번에 거래도 끝냈는데 손해볼 수는 없지.”

가게 안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그가 이렇게 큰소리를 치는 것을 듣고는 모두들 돌아보았다. 또 사람들 중에 그의 이름을 물어보고는 말했다.

“존함은 오래 전부터 들어 알고 있습니다.”

이랑은 스스로 실언을 했다고 느끼고는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갔다.

동산은 오경(五更)까지 자고 머리 빗고 세수를 끝낸 후, 은자를 복대 안쪽에 단단히 묶어 허리춤에 동였다. 어깨에는 활을 매고 옷 바깥에 칼을 차고 양 무릎 밑에 활 20발을 재었고, 크고 건장한 나귀를 골라 기세 좋게 올라타고는 채찍을 후리며 달렸다. 삼사십리를 달려 양향(良鄕)에 다다랐다. 뒤편에 한 사람이 말을 달려 쫓아오다 동산의 나귀에 이르러 고삐를 당겨 잠시 멈추었다. 동산이 눈을 들어 자세히 바라보니 20세쯤 된 미소년이었는데 아주 잘 차려 입고 있었다.

황색 빛 털모자에 단검과 장궁(長弓). 전통(箭筒) 속에는 화살이 이십여 개, 말 이마엔 붉은 술 한 무더기. 복대가 눈부신 흰 얼굴의 낭군. 고삐 바짝 당기니 내뿜는 울음소리, 크고도 멋진 말이로다!

동산이 막 쳐다보려고 할 때, 그 소년이 동산에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 같이 가시지요.”

“급히 길을 가십니다만 존함을 여쭙고 싶습니다.”

“저는 성이 유이고 이름은 금, 별호를 동산이라 합니다. 사람들은 저를 그저 유동산이라고 부르지요.”

“형님의 존함은 익히 들어 알고 있사온대 소인이 운좋게도 만나뵙게 되었습니다. 지금 형님께서는 어디로 가십니까?”

“저는 고향인 교하현(交河縣)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마침 잘됐습니다. 소인의 집안은 임치(臨淄)에 있는데 역시 뼈대있는 집의 자제인지라 어렸을 때에는 제법 글도 읽을 줄 알았지만 기질이 활과 말을 좋아하여 책을 놓았지요. 삼년 전에 밑천을 좀 가지고 서울로 가서 장사를 하여 돈을 꽤 벌었습니다. 지금은 결혼을 하러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마침 형님과 함께 동행을 하게 되었으니 마음이 든든합니다. 하간부(河間府) 성까지 가서야 길이 갈리니 정말 다행입니다.”

동산은 그가 허리춤이 두툼하고 말이 온화하고 정중하며 용모가 뛰어나고 몸이 가냘픈 것을 보고는 악인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게다가 가는 길에 동행이 있어 적적하지 않을 것이니 마음속으로도 기뻐하며 말했다.

“당연히 같이 가야지요.”

이날 밤 함께 머물 곳을 정하여 한 자리에서 먹고 자니 마치 형제같이 사이가 좋았다.

다음날 말을 나란히 하고 탁주(涿州)로 향하며 소년이 말 위에서 물었다.

“형님께서 도적을 잡는데 명수라고 들었는데 지금까지 얼마나 잡으셨습니까? 호걸을 만난 적은 없으신지요?”

동산은 마침 자신의 능력을 뽐내려 하던 차라, 이 물음은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나이가 어려 잘 속을 것 같아 이렇게 허풍을 떨었다.

“저는 평생 두 주먹과 활 하나로 도적놈들을 잡아 없앴는데 그 수는 기억할 수도 없고 단 한 명의 맞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조무래기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지요! 하지만 지금은 나이도 들고 귀찮아서 이 길을 버렸습니다. 그래도 만약 가는 길에 맞닥뜨린다면 즉시 본때를 보여줄 테니 제 솜씨를 보십시오.”         

소년은 잔잔히 냉소를 지었다.

“원래 그랬군요.”

말에서 손을 뻗어 말했다.

“활을 잠시 보여 주세요.”

동산이 나귀 위에서 활을 건네자 소년은 왼손으로 활을 잡고 오른손으로 가볍게 시위를 잡아당기니 만월 모양이 되었다. 당기고 펴는 것이 마치 부드러운 비단 띠 같았다. 동산은 대단히 놀라며 소년의 활을 빌려 살펴보았다. 소년의 활은 대략 20십근이 나갔다. 동산은 온 힘을 다 써 얼굴이 붉어 졌으나 둥글게 당길 수 없었다. 더욱이 상현 모양이 되었을 뿐이지 더 이상 구부릴 수 없었다. 동산은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혀를 내두르고 말하였다.

“좋고 강한 활을 사용하시는군요. 동생의 신령스러운 힘이 어떻게 이런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습니까! 저는 감히 바랄 수 없군요.”

“소인의 힘이 어찌 신령스럽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선배의 활이 매우 부드러울 뿐입니다.”

동산은 재삼 감탄하였고, 소년은 대단히 겸손해 하였다. 그 날밤도 함께 머물렀다. 아침이 되어서도 동행하다가 해가 뉘엿뉘엿할 때 웅현(雄縣)을 지나게 되었다. 소년이 말을 채찍질하자 그 말은 구름을 탄 것처럼 빠르게 앞으로 사라졌다.

동산은 쫓아갔으나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도둑 소굴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으로 이러한 행동거지를 보니 어떻게 당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늘이 나에게 이런 추태를 보이게 하셨구나! 나쁜 사람이었다면 그러한 뛰어난 힘을 어떻게 대적할 수 있었을 것인가? 뚜렷한 방도가 없구나.”

마음속으로는 마치 두레박으로 물을 긷다가 열다섯번 중에 예닐곱번 엎지르는 것과 같이 불안하였으나 어쩔 수가 없어 머뭇거리며 이십여리 정도 가다가 멀리 소년이 백보 밖에 있는 것을 보았다. 활에 화살을 차고 만월 모양으로 잡아당기며 동산에게 말하였다.

“오랫동안 그대에게 적수가 없다고 들었는데 오늘은 우선 화살 소리를 들려 들이지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쏴’하는 소리가 나니, 동산의 귀엔 재빠르게 작은 새가 앞뒤로 날아가는 것과 같았으나 동산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다. 다시 화살을 동산의 얼굴을 향해 재면서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동산은 사리가 밝으니 허리와 나귀 위의 돈을 빨리 나에게 건네주고 꼼작마라.”

동산은 그에게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먼저 손발을 허둥대며 안장에서 뛰어내렸다. 허리에 찬 은 주머니를 풀어 두 손으로 받들고 무릎으로 소년의 말 앞까지 기어 가 고개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은전을 삼가 바치오니 대장부께서는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소년은 즉시 손을 내밀어 은 보따리를 잡고 대갈일성하며 말하였다.

“너의 목숨을 취하여 무엇 하리오! 빨리 가거라, 빨리 가! 네 형님께서는 여기 볼 일이 있는 지라 내 놈과는 같이 못 같겠구나.”

말머리를 돌려 북쪽으로 연기처럼 달리니 뿌연 연기가 일면서 삽시간에 보이지 않았다.


[1] 북경순포아문(北京巡捕衙門)은 북경 병마지휘사(兵馬指揮司, 永樂 2년에 설치)를 가리키는 것으로 도적의 체포, 거리와 수로의 정리 및 죄수와 화재 예방에 관한 일을 지휘하였다.

[2]. 연주전(連珠箭)이라 함은 말 그대로 구슬을 꿰는 듯한 화살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활을 매우 잘 쏜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