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보타산에서 용왕들은 보물을 바치고
용금문에서 연등고불은 인간의 태에 들어가다
補陀山龍王獻寶 涌金門古佛投胎
종에 관한 시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旣接南隣磬 남쪽의 경쇠 소리 이어받고
還隨百里笙 또 백리 밖 생황 소리 따르네.
平陵通曙響 평릉에서는 새벽을 알리며 울렸고
長樂警宵聲 장락궁에서는 밤에 시각을 알렸지.
秋至含霜動 가을이 오면 서리 머금고 울렸고
春歸應律鳴 봄이 돌아오면 음률에 맞춰 울렸지.
欲知常待扣 언제나 울릴 준비하고 있음을 알고 싶거든
金簴有餘淸 황금 틀에 넘치는 청아함을 보게나!
북에 관한 시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軒制傳匏質 헌원황제(軒轅黃帝)가 박으로 만들어 전하니
堯年韻土聲 요 임금 시절에 흙의 소리 울렸다네.
向樓疑欲擊 누각을 바라보면 치고 싶어지는데
震谷似雷驚 우레처럼 계곡을 울려 놀라게 한다네.
虓虎迎風起 포효하는 호랑이 바람을 맞아 일어나듯
靈鼍帶水鳴 신령한 악어가 물에 젖어 울어 대듯
樂雲行已奏 즐거운 구름 멈추어 모이고
禮日冀相成 의례 올리는 날에는 서로 어우러지기 바란다네.
관음보살이 말했다.
“나의 이 종은 예사로운 게 아니라서, 그 재질은 본래 돌이고 모양은 종을 닮았지. 자회(子會)에 하늘이 열린 이래 가볍고 맑은 영기(靈氣)들이 모두 이 돌에서 잉태되어 자랐기 때문에, 이 돌 종의 왼쪽에는 해와 달의 무늬가 있고 오른쪽에는 별들의 형상이 있지. 이 종이 말라 있을 때는 하늘이 맑고 공기가 청량하지만, 젖어 있을 때는 날이 어두워지고 비바람이 불지. 그 소리는 서른세 곳 하늘까지 다 들릴 정도여서, 조금 전에 종을 울리니까 하늘 관청에서 놀라는 바람에 하늘 꽃잎이 떨어졌던 게야.
이 돌 북도 예사로운 게 아니라서, 그 재질은 본래 돌이고 모양은 북을 닮았지. 축회(丑會)에 땅이 열린 이래 무겁고 두터운 기운들이 이 돌에 녹아 엉켰기 때문에 이 돌 북의 왼쪽으로는 산악(山嶽)의 무늬가 있고 오른쪽에는 강과 바다의 형상이 있지. 이 북이 말라 있을 때에는 바다와 강이 맑고 평온하지만, 젖어 있을 때에는 풍랑과 파도가 거세게 일어나지. 그 소리는 칠십이 층 지옥까지 들릴 정도여서, 조금 전에 북을 울리니까 바다의 신들이 놀라는 바람에 용왕들이 강설을 들으러 왔던 게야.”
마하살과 가마아가 합장을 하며 일제히 말했다.
“아아, 훌륭합니다! 공덕이 헤아릴 수 없이 크옵니다.”
그때는 이미 칠칠 사십구, 마흔하고도 아흐레가 지났는지라 연등고불이 설경대에서 내려오자 관음보살이 허리를 숙여 절을 올렸다. 그러자 연등고불이 말했다.
“현천상제께서 인간 세상에 강림하셨는데 마하승기가 그곳에 재난을 가져다준다고 하니, 그걸 어떻게 풀면 좋겠소?”
“연등고불께서 인간 세계에 내려가셔서 대중들의 재난을 풀어주셔야 합니다.”
“그러면 좋은 장소와 훌륭한 부모를 어떻게 구할지 좀 얘기해 주시구려.”
원래 관세음보살은 남선부주에 신령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집집마다 극진한 예로 공양하면서 모두 그에게 귀의했다. 그렇기 때문에 착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선행을 한 이든 악행을 한 이든, 못난이든 재주 많은 이든, 못된 이든 자상한 이든 간에 모두 관음보살의 지혜로운 눈에 모두 비쳐서 그야말로 “어두운 방 안에서 양심에 어긋나는 짓을 해도 신령한 눈은 번개처럼 환히 본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관음보살은 연등고불이 찾는 좋은 장소와 훌륭한 부모를 금방 찾아내고 공손히 합장하며 연등고불에게 알려주었다.
“남선부주에는 항주(杭州)라는 유서 깊은 곳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蘇州)와 항주가 있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여기가 좋은 지역입니다.”
“그럼 이제 훌륭한 부모를 찾아야겠구려.”
“항주성 용금문(涌金門) 밖 왼쪽에 원외랑(員外郞)을 지낸 김(金) 아무개가 있습니다. 그는 원래 옥황상제의 문서 시중을 들던 이였는데, 인간 세상에 내려가 아욕다라삼막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깨닫고자 했습니다. 이 사람이라면 훌륭한 아비가 되겠습니다.”
“그럼 어미만 찾으면 되겠구려.”
“김 원외랑의 아내 유(喩)씨는 원래 옥황상제 밑에 있던 선녀였는데, 인간 세상에 내려가 아욕다라삼막보리를 깨닫고자 했습니다. 이 사람이라면 훌륭한 어미가 되지 않겠습니까?”
연등고불은 좋은 지역과 훌륭한 부모를 찾게 되자 즉시 몸을 날려 떠나려 했다. 그러자 마하살이 큰 소리로 외쳤다.
“저도 사부님을 따라 인간 세계로 내려가고 싶으니, 좋은 지역과 훌륭한 부모가 필요합니다.”
가마아도 소리쳤다.
“저도 그렇습니다.”
연등고불이 말했다.
“그것도 전부 보살께서 안배해 주시구려.”
관음보살은 말없이 소매 안에서 두 개의 비단 주머니를 꺼내서 마하살과 가마아에게 하나씩 건네주었다.
연등고불은 그걸 보더니 곧 몸을 날려 떠나려 했다. 그런데 또 사해용왕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크게 소리쳤다.
“부처님, 잠시만요!”
자비롭기 그지없는 연등고불은 그 모습을 보자 갈 길이 바쁜 몸임에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 그러는 겐가? 불문(佛門)에는 머무는 법이 없다네.”
사해용왕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저희들이 오늘 부처님의 지고한 설법을 듣고 깊은 고해(苦海)에 빠지는 것을 면하게 되었으니, 이는 모두 부처님의 헤아릴 수 없는 공덕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감사하는 마음에서 각기 몇 가지 예물을 바치고자 합니다.”
“탐욕을 뿌리를 뽑아버리지 않으면 괴로움의 나무가 늘 자라는 법이니, 그런 것은 필요 없네.”
“다라다라! 그저 부처님께 귀의하려는 저희의 오롯한 마음을 나타내려는 것일 따름입니다.”
연등고불이 입을 열기도 전에 관음보살이 옆에서 칭송했다.
“하나의 마음을 비우면 비우고자 하는 마음까지 포함한 모든 마음이 비워지고, 하나의 마음이 깨달으면 모든 마음이 깨닫게 되는 법이지요.”
연등고불이 말했다.
“그대는 선한 보살이니 다른 이들도 좀 아껴줘야 하지 않겠소?”
“하하, ‘바다 용왕에게 보물이 모자랄까?’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사해용왕들이 일제히 외쳤다.
“부처님께서 인간 세계에 내려가시면 육신을 빌려 머물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듣자 하니 오조(五祖)에게 소나무가 하나 있었는데 집안을 꾸미기보다는 바람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했고, 육조(六祖)에게는 디딜방아가 하나 있었는데 그 축(軸)을 밟고 있다가 비로소 유(有)와 무(無)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더이다. 부디 받아 주시옵소서. 이를 통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덕을 쌓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쁨이 생겨나게 하시옵소서.”
연등고불이 고개를 들어 보니, 맨 앞에 꿇어앉은 검푸른 얼굴에 푸른 옷을 입고 갑의 도를 따르며 을의 술수를 익히고 있는 이가 휘황찬란한 진주를 하나 들고 있었다. 연등고불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저는 동해의 보잘것없는 용신(龍神)인 오광이라 하옵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동정옥(東井玉)을 꿰어 만든 팔찌입니다.”
“어디서 난 것인가?”
“제가 맡은 바다의 여룡(驪龍)의 목에 걸려 있던 것입니다. 용이 늙으면 진주가 저절로 벗겨지는데, 제가 그의 것을 거둬두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 서른세 알이 되었으니, 삼십삼 조(祖)라는 수에 들어맞습니다.”
“무슨 쓰임새가 있는가?”
“제가 맡은 바다는 위쪽은 짜서 먹을 수 없지만 아래쪽은 그렇지 않아서 먹을 수 있습니다. 이 진주는 오랜 세월 동안 여룡의 목에 걸려 있어서 담수(淡水)와는 잘 어울리지만 짠물과는 반대되는 성질이 있습니다. 햇빛이 비치는 곳에서 보면 안쪽에 층층의 물결무늬가 있고, 어두운 곳에서 보면 안쪽에서 눈부신 붉은 빛이 나옵니다. 바다에서 배가 표류할 때 이걸 바닷물에 놓으면 위쪽의 짠물을 분리하여 아래쪽의 담수가 나타나게 해서 차를 끓이거나 밥을 짓는 데에 쓸 수 있습니다.”
연등고불이 고개를 끄덕이며 쓸 만한 데가 있다고 생각하고 나직이 말했다.
“그럼 그걸 남선부주에 두어서 나중에 내가 쓰도록 하세.”
용왕이 공손히 바치자 그 팔찌에서 한 줄기 노을빛이 하늘로 비쳤다.
두 번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있던 이는 붉은 얼굴에 붉은 옷을 입은 채 병의 방위를 가리키며 정의 방위에 서 있었는데, 그의 손에는 털이 보송보송한 야자를 들고 있었다.
“자네는 누구인가?”
“저는 남해의 보잘것없는 용신인 오흠이라 하옵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바라허유가(波羅許由迦)라고 하는 야자열매입니다.”
“어디서 난 것인가?”
“이 야자는 서방 극락의 마라수(摩羅樹)에서 자란 것인데, 모양이 둥글어서 부처님 머리 뒤쪽의 둥근 후광(後光)과 비슷합니다. 쪼개기 전에는 태극(太極)이라고 부르고, 쪼갠 후에는 양의(兩儀, 즉 음양[陰陽])이라고 부릅니다. 옛날 나타도(羅墮闍) 존자께서 바다에 강림하셨을 때 수신(水神)에게 주신 것입니다.”
“무슨 쓰임새가 있는가?”
“제가 맡은 바다에 팔백 리에 걸친 연양탄(軟洋灘)이 있는데, 그곳의 물은 위는 부드럽고 아래는 딱딱합니다. 위쪽의 부드러운 물은 바로 깃털이나 부평초 하나도 뜨지 못하기 때문에 동서남북의 배들이 지나다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야자를 쪼개 바가지 모양으로 만들면, 보십시오, 어지간히 큰 호수나 사방의 바다보다 훨씬 큽니다. 배가 표류하여 부드러운 물이 있는 바다에 이르렀을 때 그걸로 반 바가지만 뜨면, 부드러운 물이 모두 없어지고 딱딱한 물이 저절로 위로 올라옵니다. 그러면 바퀴 달린 커다란 탈것으로 동서남북 어디든 마음대로 다닐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연등고불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도 쓸모 있다고 생각하고 나직이 말했다.
“그것도 남선부주에서 내가 찾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게.”
용왕이 공손히 바치자 바라허유가에서 한 줄기 푸른빛이 나와서 하늘을 쓸며 지나갔다.
세 번째 자리에 꿇어앉은 이는 하얀 얼굴에 하얀 옷을 입고 경신의 방위를 호흡하고 있었는데, 손에는 선명한 푸른빛의 매끈한 유리를 들고 있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저는 서해의 보잘것없는 용신인 오순이라 하옵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금시폐유리(金翅吠琉璃)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디서 난 것인가?”
“이 유리는 수미산에 사는 금시조(金翅鳥)의 껍질인데, 그 색이 서역 승려의 눈동자처럼 파랗습니다. 대단히 단단해서 어떤 보물로도 깰 수 없으며 생철(生鐵)을 잘 먹습니다. 이것은 제 시조(始祖) 때부터 갖고 있다가 지금까지 영원한 가문의 보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건 어디 쓰는 것인가?”
“제가 맡은 바다에 오백 리 흡철령(吸鐵嶺)이 있는데, 그 오백 리 바다 밑에는 첩첩으로 빽빽하게 흡철석(吸鐵石)들이 쌓여 있어서 철기(鐵器)들이 그곳에 이르면 모두 바다 밑으로 가라앉습니다. 배를 타고 바다를 지날 때 이걸 뱃머리 아래에 늘어뜨려 놓으면 흡철석들이 마치 쇠가 용광로에서 녹듯이 찌꺼기까지 완전히 없어져서 부처님의 자비로운 뱃길이 곧장 피안(彼岸)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연등고불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도 쓸모 있겠다고 생각하여 조용히 말했다.
“그것도 남선부주에 갖다 두라고 하게.”
용왕이 공손히 바치자 금시폐유리에서 한줄기 맑은 바람이 불어 나와 땅을 휩쓸고 지나갔다.
네 번째 자리에 꿇어앉은 이는 검은 얼굴에 검은 옷을 입은 채 임의 방위를 머리에 이고 계의 자리를 밟고 서 있었는데, 그의 손에는 시커먼 승려의 신[禪履]을 한 짝 들고 있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저는 북해의 보잘것없는 용신인 오윤이라 하옵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무등등선리(無等等禪履)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디서 난 것인가?”
“이것은 달마조사(達摩祖師)의 신입니다. 달마조사는 서천의 제28대 조사이십니다. 동진(東晉) 초기에 동녘 땅에 재난이 있어서 조사께서 물길로 동쪽으로 오시면서 탐마국(耽摩國)과 갈다국(羯茶國), 불서국(佛逝國)을 지나 제가 맡고 있는 바다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큰 태풍이 일어나 하늘 관문 지축을 흔드는 바람에 항해하던 배들이 모두 가라앉았는데, 달마조사만은 마치 평지에 있는 것처럼 물 위에 의연히 앉아 계셨습니다. 제가 다가가 살펴보니 신을 한 짝 벗어서 그 위에 앉아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분을 동녘 땅까지 모셔다드리고 바다를 다스리도록 그 신 한 짝을 제게 달라고 청했습니다. 달마조사께서는 또 이 신에다가 이와 같은 네 구절의 시를 적어주셨습니다.”
吾本來兹土 내 본래 이 땅에 온 것은
傳法覺迷津 불법을 전하여 미혹을 깨우치기 위함이라.
一花開五葉 한 송이 꽃이 다섯 잎을 피우니
結果自然成 결과는 자연히 이루어지리라.
“그건 어디 쓰는 것인가?”
“제가 이 신을 얻은 뒤로 바다에는 파도가 일지 않아 물속에 사는 족속들이 평안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 배가 바다를 지나다가 태풍을 만났을 때 이것을 물 위에 두면 풍랑이 저절로 가라앉아 아주 잠잠해져서 아무 탈 없이 평안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연등고불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도 쓸모가 있겠다고 생각하고 조용히 말했다.
“그것도 내가 찾을 때까지 남선부주에 두도록 하게.”
용왕이 공손히 바치자 무등등선리에서 검은 구름이 피어나 머리를 쓸고 얼굴을 스치며 지나갔다.
사해용왕들은 무척 기뻐하며 합장한 채 무릎을 꿇으며 작별인사를 했다.
연등고불이 다시 일어서려 하는데 물속에 사는 족속들 가운데 수많은 이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소리 높여 외쳤다.
“부처님,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자비로운 연등고불은 중생들이 이렇게 외쳐 부르자 분명히 갈 길이 바쁜데도 잠시 돌아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왜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는가? 불문에는 떠남이란 없는 법이니라.”
“저희들은 영원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싶어서 각자 예물을 올리며 삼가 부처님께 귀의하고자 하옵니다.”
연등고불이 고개를 들고 보니 곤오(鯤鰲)는 머리를, 장경(長鯨)은 입을, 신령한 악어[靈鼍]는 북을, 똬리 튼 교룡[蟠蛟]은 가는 목을, 푸른 용[蒼虬]은 빳빳한 구레나룻[棱髯]을, 현귀(玄龜)는 기주(箕籌)를, 척리(尺鯉)는 비단 북[錦梭]을, 괴이한 악어[怪鰐]는 백묘(百卯)를, 신륜(神蜦)은 구름과 비를, 물소는 짐승 모양을, 대모(玳瑁) 거북은 그 등껍질을, 정위(精衛)는 나무와 돌을, 충용(蟲庸)은 뱀의 형상을, 추모(蝤蛑)는 한 쌍의 집게발가락을, 유명(蜼螟)은 교룡의 둥지[蛟巢]를, 산삼(山滲)은 외발[獨足]을, 대합조개[蚌蛤]는 야명주(夜明珠)를 남쪽의 악어[南鰐]는 제찬(祭撰)을, 커다란 조개는 커다란 국자[車渠枓斗]를, 알유(猰貐)는 용의 발톱과 호랑이 무늬를, 알유(窫窳)는 사람의 얼굴에 뱀의 몸을 한 형상을, 독사([虫+禿]蛇)는 붉은 모자와 자주색 옷을, 복어[魨魚]는 서시유(西施乳)를 바쳤다. 연등고불이 말했다.
“장하고 훌륭하도다! 그대들은 무슨 인과(因果)를 짓고 싶은가?”
“각자 지닌 바를 내놓고 삼가 부처님께 귀의하고자 하옵니다.”
“그대들의 보시는 받지 않아도 되느니라.”
“부디 살펴보시고 거둬주십시오.”
“여기서는 받지 않겠노라.”
“내놓지도 못하게 하시고 거둬주시지도 않으면 저희 중생이 어떻게 고해에서 벗어나 피안으로 가는 깨달음을 얻겠습니까?”
“장하고 훌륭하도다! 일체의 현상은 부질없는 것이니 버림[舍]도 받음[受]도 없고, 버리지 않음[無舍]도 받지 않음[無受]도 없도다.”
그러면서 연등고불은 중생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게송(偈頌)을 읊조렸다.
若以色見我 색(色)으로 나를 보고
以聲音求我 소리로 나를 구하는 것은
是人行邪道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이니
不能見如來 여래를 볼 수 없으리라!
물속의 중생들은 연등고불의 진리의 말씀을 받들어 날고, 뛰고, 손을 치고, 춤을 추며, 위로 올라가고, 아래로 내려가고 해서 멀리 있는 이는 먼 곳으로, 가까이 있는 이는 가까운 곳으로 일제히 물러났다. 연등고불이 다시 일어서려 하자 깃털 달린 족속과 털에 덮인 족속들 가운데 수많은 중생들이 두 무리로 나누어 무릎을 꿇고 일제히 소리쳤다.
“부처님, 잠시만 돌아와 주십시오! 잠시만요!”
자비롭기 그지없는 연등고불이 그들이 이렇게 외치자, 분명히 길을 떠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멈춰 서서 다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왜 잠시 돌아오라는 게냐? 떠남도 돌아옴도 없는 법이거늘.”
“물속의 족속들은 이미 진리의 가르침을 받았으니, 부디 저희도 제도(濟度)하여 고해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옵소서.”
연등고불이 고개를 들어 보니 깃털 달린 족속들 가운데는 봉황과 난새[鸞], 원추리[鵷], 해오라기, 독수리, 물수리[鶚], 댓닭[鵾], 붕새[鵬], 매, 새매[鸇], 물오리, 학, 닭, 집오리, 제비, 꾀꼬리, 큰 기러기, 고니, 거위, 황새, 그리고 가마우지[鷿鵜], 되강오리[鷿鸕], 자고새[鉤輈], 사다새[鸅鸆], 올빼미(鷅[晉+鳥]), 할미새[雝[渠+鳥], 제비[鷾鴯] 등이 아름다운 깃털과 알록달록한 무늬를 자랑하며 밝고 어두운 데에서 무리를 나누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또 털에 덮인 족속들 가운데는 기린과 천리마[驥], 호랑이, 비휴(貔貅), 표범, 뿔 없는 용[螭], 송아지, 코뿔소, 코끼리, 꿩[雉], 기(夔), 성성이[猩], 큰 노루[麂], 바퀴벌레[蜚], 때까치[鵙], 담비[貉], 맥(貘), 원숭이, 긴 팔 원숭이, 말, 소, 개, 돼지, 그리고 살무사[雄虺], 추여(騶狳), 합유(合窳), 거저(蜛蠩), 설결(蛥蚗), 구인(朐䏰), 쥐며느리[蛜蝛] 등의 무리가 옥 같은 발톱과 황금 같은 비늘에 굽은 발굽으로 빽빽하게 들어서서 쌍쌍이 짝을 이루고 있었다. 연등고불이 물었다.
“장하고 훌륭하도다! 그대들은 무슨 인과를 짓고 싶은가?”
“진리 말씀으로 구원을 받아 정과(正果)를 수행하여 궁극적인 깨달음[菩提]을 얻고 싶습니다.”
“장하고 훌륭하도다! 수행도 깨달음도, 장애도 기쁨도, 제도할 중생도,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 주는 궁극적인 깨달음도 없는 법이니라.”
그리고 그 중생들을 향해 게송을 읊조렸다.
一切有爲法 모든 현상이라는 것은
如夢幻泡影 꿈같고 거품 같으며
如露亦如電 이슬과 번개처럼 순간에 지나지 않으니
應作如是觀 마땅히 이렇게 통찰해야 할지라!
깃털 달린 족속들과 털에 덮인 족속들은 연등고불의 진리의 말씀을 받들고서 뛰어오르고, 내달리고, 쫓아가고, 울부짖고, 소리치고, 울어 대고, 읊조리고 하면서 일제히 물러갔다.
연등고불도 벌떡 일어서니 온 몸에서 수만 가닥 지혜의 빛이 쏟아져 나와 하늘의 별에까지 환히 비쳤다. 그는 마하살과 가마아에게 각기 인간의 몸을 빌려 세상에 태어나라고 분부하면서, 자신도 바람을 타고 안개 장막을 펼쳤다. 순식간에 보타산 위에는 하늘의 향기가 자욱하게 퍼지고 초목들이 아름다움을 다투며 새들이 산을 둘러싸고 날아돌며 많은 대중들이 부처에게 귀의했다.
혜안이 소리쳤다.
“부처님!”
선재동자(善才童子)도 소리쳤다.
“부처님!”
용녀(龍女)도 소리쳤다.
“부처님!”
여러 불제자들도 소리쳤다.
“부처님!”
앵무새도 소리쳤다.
“부처님!”
심지어 관음보살이 들고 있는 정병(淨甁)까지 소리쳤다.
“부처님!”
하지만 연등고불은 전혀 지체하지 않고 곧장 떠나갔다. 혜안은 연등고불이 떠나면서 두 제자에게 분부한 말을 들었기 때문에 몇 마디 더 소리쳤다.
“마하! 마하!”
그러다가 연등고불이 떠나자 그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저번에 처음 보았을 때는 제자만 마하살인 줄 알았는데, 오늘 작별할 때 보니 사부도 마하살이었네.”
관음보살은 연등고불을 전송하고 혜안과 제자들을 데리고 다시 돌아가 각자 맡은 일을 하게 했는데, 그 이야기는 그만하겠다.
한편 연등고불은 보타산에서 관음보살과 작별하고 구름을 타고 안개를 펼친 채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사이에 어느새 전당강(錢塘江)을 지나 항주성으로 들어섰다. 그가 눈을 들어 살펴보니 과연 동녘 땅에서 비할 데 없이 아름답고 복 받은 땅이었다. 이를 증명하는 〈망해조(望海潮)〉라는 노래[詞]가 있다.
東南形勝 동남쪽 빼어난 곳
錢塘自古繁華 전당은 예로부터 번화해서
烟柳畵橋 안개 머금은 버들과 그림 같은 다리가 펼쳐졌지.
風簾翠幕 바람을 휘 삼고 녹음을 장막 삼아
參差十萬人家 올망졸망 십만의 인가들이 들어서 있다네.
雲樹繞堤沙 구름 같은 숲이 모레 제방을 두르고 있고
怒濤卷霜雪 성난 파도는 눈서리처럼 말려 오르는데
天塹無涯 강물은 끝없이 흐르네.
市列珠璣 저자에는 진주와 옥이 늘어서 있고
戶盈羅綺 집집마다 고운 비단 가득 차 있어
競豪奢 호화로움을 다투지.
重湖疊巘淸嘉 겹겹 호수 첩첩 산봉우리들 맑고 아름다워라.
有三秋桂子 가을엔 계수나무 열매 맺히고
十里荷花 연꽃은 십리에 걸쳐 피어 있지.
羌管弄晴 피리소리 청아하게 울리고
菱歌泛夜 마름 따는 노랫소리 밤중까지 울리는데
嬉嬉釣叟蓮娃 즐거워라, 낚시꾼과 연꽃 따는 아가씨들
千騎擁高牙 수천의 기마병들 높은 깃대를 옹위하는 듯
乘醉聽簫鼓 얼큰한 술기운 속에 퉁소소리 북소리 들으며
吟賞烟霞 안개와 노을 감상하며 노래 읊조리네.
異日圖將好景 나중에 이 멋진 풍경 떠올리며
歸去鳳池夸 돌아가거든 글을 써서 자랑해야지.
그는 어느새 용금문 밖으로 나가 김 원외랑의 집 위에서 잠시 살펴보았다. 이 집은 비록 일반 백성의 저택이었지만 예사롭지 않아서, 인간 세상의 복을 모조리 차지하고 해상(海上)의 기이함까지 나눠 가진 곳이었다. 뒤쪽으로는 봉황산(鳳凰山)을 베개 삼아 기대고 있는데, 산세가 마치 봉황이 날아오르려는 듯한 모양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었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다.
滄海桑田事渺茫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역사 아득하나니
爲言故國遊麋鹿 옛날에는 이곳에 사슴들이 노닐었다며
漫指空山號鳳凰 느릿하게 빈산을 가리키며 봉황을 부르네.
春盡綠莎迷輦道 봄이 지난 푸른 모래밭엔 황제의 수레 다니던 길 흐릿하고
雨多蒼薺上宮墻 잦은 비에 파란 냉이가 궁궐 담장 위에 자라네.
遙知汴水東流畔 멀리 동쪽으로 흐르는 변하(汴河) 강가에는
更有平蕪與夕陽 더욱이 잡초 우거진 평원에 석양이 비치겠지.
또 이런 시가 있다.
荒山欲逐鳳凰騫 황량한 산은 높이 나는 봉황을 쫓으려는 듯한데
誰構浮圖壓寢園 절 지어 황릉(皇陵) 지킨 이 누구인가?
土厚尙封南渡骨 두터운 흙은 남쪽으로 온 이의 유골을 아직 덮고 있고
月明不照北歸魂 밝은 달빛도 북으로 돌아가는 영혼 비춰주지 않네.
海門有路雙龍去 바다로 통하는 길 있어 쌍룡은 떠나고
沙溆無潮萬馬屯 밀물 들어오지 않는 물가 모래밭엔 수만의 기마병 주둔하네.
莫向秋風重惆悵 가을바람 바라보며 다시 슬퍼하지 말지니
梵王宮殿易黃昏 절집 위로 황혼이 바뀌어 비치네.
그 왼쪽에는 남고봉(南高峰)이 있고 오른쪽에는 북고봉(北高峰)이 있어서 서로 친밀하게 마주 서 있으니, 마치 두 사람이 함께 서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 역시 시로써 증명할 수 있다.
南望孤峰入翠微 남쪽을 바라보니 외로운 봉우리 푸른 녹음으로 들어가고
雲中犬吠劉安過 구름 속에 개 짖는 소리 들리니 유안(劉安)이 들렀다 갔을까?
樹杪春深望帝歸 나무 끝에 봄이 깊어지니 망제(望帝)가 돌아오려나?
白鶴曾留華表語 백학은 일찍이 화표(華表)에서 말을 남겼고
蒼宮合受錦衣圍 푸른 궁전은 마침 금의위(錦衣衛)에게 포위되었네.
朱襦玉柙今何許 황제의 붉은 옷과 옥합(玉柙)은 지금 어디 있는가?
一笑人間萬事非 잘못된 인간만사 한바탕 웃음에 부치네.
또 이런 시가 있다.
杳杳孤峰上 어둑하고 외로운 봉우리에
寒陰帶遠城 차가운 음기가 먼 성을 둘렀네.
不知山下雨 산 아래에는 비가 오는지 모르지만
奎斗自爭別 규수(奎宿)와 북두칠성 다투어 작별하네.
또 이런 시가 있다.
翠出諸峰上 녹음은 여러 봉우리들에서 나오고
湖邊正北看 호숫가에서 똑바로 북쪽을 보네.
夜來雲霧散 밤이 되자 구름과 안개 흩어지고
獨臥斗杓寒 홀로 누워 있을 때 북두칠성 쓸쓸하네.
앞쪽에는 서호(西湖)가 있고 산천이 빼어나며 풍경이 아름다워서 당(唐)나라 이래 지금까지 동남쪽 지역에서 유명한 명승지로 알려져 있는 곳이었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다.
湖上春來似畵圖 호숫가에 봄이 오니 그림 같아서
松排山面千重翠 산 앞에 늘어선 소나무는 한없이 푸르고
月點波心一顆珠 물결 가운데 비친 달은 한 알의 진주 같네.
碧毯線頭抽早稻 푸른 양탄자 같은 볏논에는 벌써 이삭이 패고
靑羅裙帶展新蒲 새로 자란 창포는 치마에 두른 푸른 비단 띠 같네.
未能抛得杭州去 항주를 버리고 떠나지 못하는 것은
一半勾留是此湖. 반쯤은 이 호수에 미련이 있기 때문이지.
또 이런 시가 있다.
混元神巧本無形 신묘한 천지는 본래 형체가 없지만
匠出西湖作畵屛 서호를 만들어 고운 병풍으로 삼았네.
春水淨於僧眼碧 봄날 호수는 승려의 푸른 눈보다 맑고
晚山濃似佛頭靑 저물녘 산은 부처의 머리처럼 짙푸르네.
蓼苹翠渚搖魚影 부평초 푸른 물가에는 물고기 그림자 흔들리고
蘭桂烟叢閣鶯翎 난초와 계수나무 안개 속에 우거진 누각에선 꾀꼬리 나네.
往往鳴榔與橫笛 종종 뱃전에 찰랑이는 물소리와 피리소리 들리는데
斜風細雨不堪聽 비껴 부는 바람과 가랑비 속에서는 차마 듣기 어렵다네.
호수 중앙에는 물결 속에 고산(孤山)의 봉우리 하나가 우뚝 솟아 더욱 호수와 산이 어우러진 절경을 이루고 있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다.
樓臺聳碧岑 누대는 푸른 봉우리에 우뚝 솟아 있는데
一徑入湖心 한 줄기 오솔길 호수로 들어가네.
不雨山長潤 비가 오지 않아도 산은 언제나 윤택하고
無雲水自陰 구름 없어도 물은 저절로 그늘지네.
斷橋荒蘚合 단교(斷橋)엔 황량한 이끼 덮이고
空院落花深 빈 뜰엔 떨어진 꽃잎 가득하네.
猶憶西窗夜 아직도 기억하네, 어느 밤 서쪽 창가에서
鐘聲出北林 북쪽 숲에서 들리던 종소리.
이것들은 모두 김 원외랑의 저택 전후좌우의 모습이다.
연등고불은 한참 동안 유심히 살펴보고 한없이 즐거웠다. 그가 막 앞으로 다가가려 할 때 호숫가의 어느 언덕에서 찬란한 노을빛이 빛났다. 노을 속에서 한 줄기 원한에 찬 기운이 북두칠성을 향해 똑바로 비치고 있었다.
‘여기에 아직도 이런 원한의 기운이 없어지지 않았단 말인가?’
연등고불이 정신을 가다듬고 지혜의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니, 그곳은 서하령(棲霞嶺)이었다. 그 아래에는 무목왕(武穆王) 악비(嶽飛)의 무덤과 사당이 있었다. 이를 증명하는 이동양(李東陽)의 시가 있다.
苦霧四塞, 悲風橫來. 짙은 안개가 사방을 막고, 슬픈 바람 함부로 불어오네.
羲景縮地, 下沉蒿萊. 햇빛은 땅에 웅크려들어, 잡초도 땅속으로 잠겨드네.
坤輿內折, 鼎足中頹. 땅은 안에서 부러지고, 솥 다리는 중간에서 기울어졌네.
大霆無聲, 枯櫱槁荄, 큰 천둥은 소리가 없고, 마른 그루터기에는 풀뿌리도 말랐구나.
羯虜騰突, 狼風崔嵬. 오랑캐들 함부로 쳐들어오니, 사나운 바람 거세게 몰아쳤네.
龍困沙漠, 鱗傷角摧. 용이 사막에서 곤경에 처해, 비늘 다치고 뿔도 부러졌네.
齊仇九誓, 楚戶三懷. 원수를 다스리리라 아홉 번 맹세하니, 고향은 삼년 동안 가슴에 품었네.
奸宄賣國, 忠臣受參. 악당이 나라를 팔아먹었는데, 충신이 탄핵을 당했네.
積毁消骨, 遺禍成胎. 비방이 쌓여 목숨 잃게 되고, 남겨둔 재앙이 씨가 되었네.
命迫十使, 功垂兩涯. 급한 명령 받아 열 번의 출정 나갔으니, 공적이 장강 남북에 드리웠네.
盟城不耻, 借寇終諧. 오랑캐와 맹약한 걸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오랑캐 덕에 평생 해로했네.
重器同劇, 群兒共咍. 나라의 동량들 함께 부러지고, 아이들만 함께 웃어댔네.
髮竪檀冠, 潮浮五骸. 머리카락이 모자를 뚫고, 물결에 육신이 떠다니네.
氣奮胡醜, 殃流宋孩. 추한 오랑캐 분노를 떨치니, 송나라 자손들에게 재앙이 미쳤다네.
英雄已死, 大運成乖. 영웅은 이미 죽고, 나라의 운세 어그러졌네.
魂作唐厲, 形細漢臺. 영혼은 당려(唐厲)가 되었건만, 형세는 한나라를 약하게 만들었네.
天不祚國, 人胡爲哉! 하늘이 왕조에 복을 내리지 않거늘 사람이 어찌 할 수 있으랴?
壯士擊劍, 氣深殷雷. 사나이는 칼을 휘두르며 우렁찬 우레보다 더 분개하네.
日落風起, 山號海哀. 해는 저물고 바람 일고, 산도 울부짖고 바다도 슬퍼했네.
樹若可轉, 江爲之回. 나무가 몸을 돌릴 수 있다면, 강도 그를 위해 돌아서 흐르리라.
乾坤老矣, 歎息雄才. 하늘과 땅이 노쇠해졌으니 굳센 사나이 탄식하게 하네.
소(邵) 상서(尙書)는 이런 시를 지었다.
六橋行盡見玄宮 여섯 다리 다 지나니 황제의 무덤 보여
生氣如聞萬鬣風 분노가 치밀어 거센 바람에 갈기 수염 곤두서는 듯
松檜有靈枝不北 신령한 소나무 노송나무도 가지가 북쪽을 향하지 않고
江湖無恙水猶東 세상은 별 탈 없이 강물은 여전히 동쪽으로 흐르네.
千年宋社孤墳在 천년의 사직은 외로운 무덤에 묻혀 있고
百戰金兵寸鐵空 수많은 전투 치른 금나라 병사의 무기도 헛되구나.
時宰胡爲竊天意 당시 재상은 어이해 하늘의 뜻을 훔쳤던가?
野雲愁絶夕陽中 들판의 구름도 석양 속에 깊은 시름에 젖었구나.
고(高) 학사(學士)는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大樹無枝向北風 큰 나무에는 북풍을 향하는 가지 없고
千年遺恨泣英雄 천년의 한은 영웅을 눈물짓게 하네.
班師詔已成三殿 철군(撤軍)하라는 조서는 벌써 삼전(三殿)에서 만들어졌고
射虜書猶說兩宮 오랑캐에게 쏜 문서에서는 여전히 두 황제를 언급했네.
每憶上方誰請劍 언제나 누구에게 상방(上方)의 보검을 달라 할까 생각했거늘
空嗟高廟自藏弓 부질없이 탄식했네, 고조께서 활을 창고에 넣어둔 일을.
棲霞嶺上今回首 서하령에 올라 이제 돌아보나니
不見諸陵白露中 흰 이슬 속에서 황릉들도 보이지 않는구나.
어쨌든 악비의 사당에 아직 원한의 기운이 없어지지 않은 걸 보자 연등고불도 탄식을 했다.
‘항주는 정말 훌륭한 곳이고 김 원외랑 내외도 과연 훌륭한 부모가 될 만하구나. 다만 인간의 몸을 빌려 태어난 뒤에도 불법이 충만한 좋은 세상이 필요하겠지. 이참에 우선 내가 직접 골라놓도록 해야겠구나.’
그는 걸음을 옮겨 항주성 안팎의 훌륭한 지역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모두들 조금씩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이에 얼른 서호 물가 김 원외랑의 대문 앞으로 돌아와 보니, 백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오래된 절이 하나 있었다. 그 앞에는 아주 작고 낮은 산문(山門)이 있었다. 그 다음에는 천왕전(天王殿)이 있었는데, 양쪽으로 ‘풍조(風調)’와 ‘우순(雨順)’이라는 두 신상이 제법 웅장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 다음에는 금강전(金剛殿)이 있는데, 앞뒤로 ‘국태(國泰)’와 ‘민안(民安)’이라는 두 신이 더욱 위풍당당하게 앉아 있었다. 대웅보전(大雄寶殿) 위에 이르니 쪼그려 앉은 사자와 코끼리의 호위를 받으며 낡은 불상 세 개가 연화좌(蓮花座) 위에 앉아 있었다. 동쪽으로 약간 돌아가니 또 나한전(羅漢殿)이 있는데, 그 안에는 각기 높이가 몇 길쯤 되는 나한상 오백 개가 있었다. 절 앞에는 산봉우리 하나가 우뚝 솟아 있는데 모양새가 부용꽃처럼 아름다웠다. 산봉우리에는 오래된 탑이 높다랗게 서 있었는데, 언제 세운 것인지는 새겨져 있지 않았다. 하나의 절과 하나의 봉우리가 좌우로 날개를 펼친 듯 나누어 서 있어서 마치 자식을 보살피는 어미의 모습 같았다. 바깥을 보니 노을빛이 환히 빛나고 자줏빛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연등고불은 대웅보전 안으로 들어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알고 보니 이 절은 정자사(淨慈寺)라는 곳이었다. ‘정자사’에는 얼마나 많은 고대의 유적이 담겨 있는가! 그걸 어찌 아느냐고? 원래 이 절은 어느 한 왕조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후주(後周) 현덕(顯德) 연간에 지어졌으며, 그 봉우리는 뇌봉(雷峰)이라고 했다. 이 뇌봉에도 얼마나 많은 고대의 유적이 담겨 있는가! 그걸 어찌 아느냐고? 원래 이 봉우리는 항주성 안에 있던 것이 아니라 서천 뇌음사의 부처님의 보좌 아래에 있던 연꽃 한 송이가 동녘 땅으로 날아와 서호의 경치를 구경하느라 제방 위에 서 있다가, 갑자기 들린 닭 울음소리와 함께 날이 밝아오자 날아가지 못하고 이 봉우리가 되었던 것이다. 그 후에 혜리(慧理)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기 때문에 뇌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후주 현덕 연간에 지은 이 절은 뇌음사의 청정하고 자비로운 의미를 따서 정자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연등고불은 본래 서천에 있던 몸이기 때문에 이 뇌봉과 정자사가 모두 서천에서 온 것임을 알아보았던 것이니, 그야말로 “좋기로는 고향의 물만 한 것이 없고, 친하기로는 고향사람만 한 이가 없는” 격이었다. 당연히 그는 무척 기뻐했다.
“진리가 가까이 있는데 멀리서 구한다면 어찌 얻으랴? 암, 그렇고말고!”
그는 곧 돌아서서 김 원외랑의 집으로 들어갔다. 이때가 대략 이경(更, 저녁 9~11시) 무렵이었다. 그야말로 이런 격이었다.
地遠柴門靜 외진 곳이라 사립문 조용하고
天高夜氣凄 하늘은 높고 밤공기 처량하네.
寒星臨水動 차가운 별은 물가에서 흔들리고
夕月向沙堤 저녁달은 모래 제방을 향하네.
원래 김 원외랑은 집에 있으면서 불법을 수행하는 몸이라서 조상 때부터 벌써 일곱 세대를 거치면서 줄곧 재계하며 소식(素食)을 해왔다. 부인 유씨도 태어날 때부터 정결한 몸으로 태어났으니, 그들 부부는 그야말로 하늘에나 있을 법한 한 쌍이었다. 집안에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관음보살을 모셔놓았는데, 음식을 먹을 때면 반드시 제사를 올리고 질병에 걸리면 반드시 그 앞에서 기도했다. 관음보살도 대단히 영험했지만 단지 숨을 돌릴 여력이 없을 뿐이었다.
어쨌든 연등고불이 김 원외랑의 집에 이르렀을 때는 바로 홍무제가 다스리던 때로서 오원년(吳元年, 1367) 10월 15일 하원절(下元節) 즉, 삼품(三品) 수관(水官)이 재앙을 풀어주는 날이었다. 김 원외랑 부부는 오경 삼점(五更三點) 무렵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머리 빗고 공양을 올린 다음, 관음보살의 상 앞에 좋은 초를 꺼내 불을 밝히고 좋은 향을 사르면서 맑은 차를 따라 올리고 정갈한 과일과 젯밥을 차려놓았다. 그리고 삼승(三乘) 오묘한 불법이 담긴 불경을 펼치고 오온(五蘊)의 진리가 담긴 《능엄경》을 소리 높여 읽는데, 입에서 나오는 소리마다 모두 ‘부처님’이요 불경의 구절이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읽고 밤까지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이경 무렵이 되었다.
불경을 읽고 참회의 명상을 하고 나자 부부는 느긋하게 뜰을 산보했다. 하늘에는 밝은 달과 수많은 별들이 속세의 때에 젖지 않은 채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 뜰에는 구리로 된 대야가 얹힌 세수대가 하나 있었는데, 대야 안에는 몇 바가지의 물이 담겨 있었다. 하늘 가득한 별이 대야 안의 물에 비치자 그 빛에 젖은 대야 안의 물이 가볍게 일렁이며 별들이 돌아가니, 그 별들이 하늘에 있는 건지 물이 대야 안에 있는 건지도 모를 지경으로 대야 가득한 별들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김 원외랑이 그걸 보고 연신 소리쳐 불렀다.
“여보, 이것 좀 보구려!”
그의 아내도 그걸 보고 무척 기뻐하면서 얼른 소매를 걷고 대야 안에 두 손을 담가 별들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이리저리 손을 움직여 봐도 별은 잡히지 않았다. 그러자 연등고불이 신통력을 부려서 순식간에 유성(流星)으로 변해 대야 안으로 섞여 들어갔다. 그 모습은 하늘의 별과 똑같았다. 유씨는 아무리 손을 움직여도 별이 잡히지 않다가 갑자기 하나가 손에 잡혔으니, 그야말로 “물을 움켜쥐니 달이 손 안에 들어온[掬水月在手]” 격이었다. 그녀는 말할 수 없이 기뻐하며 손을 들어 별과 물을 한꺼번에 삼켜버렸다.
이 별을 삼킨 뒤에 무슨 길한 일이나 흉한 일이나 무슨 응보(應報) 내지 경사가 생기는지, 아니면 아들을 낳을지 딸을 낳을지는 다음 회를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