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의 인상 1

서문

이번에 『루쉰의 인상』이 「가도가와 선서」에 들어 중판重版되었다. 『루쉰의 인상』이 처음 고단샤講談社에서 출판된 것은 쇼와 23년(1948년)이었지만, 사실 그 전해에 『중국문학』 잡지에 『루쉰 잡기』라는 제목으로 몇 개월인가에 걸쳐서 연재되었던 것을 합쳐서 책으로 만들 때 『루쉰의 인상』으로 바꿨던 것이다. 그리고 그밖에도 『루쉰과 일본』(쇼와 23년, 중일문화연구소 편 『루쉰 연구』에 수록)을 추가하고, 내가 루쉰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정리해 덧붙였다. 거기에 부록으로 『바진巴金의 일본 문학관』(쇼와 22년, 『신중국』 잡지에 수록)도 추가한 뒤 우치야마 간조內山完造 씨가 발문을 써주었다. 그것은 우치야마 씨야말로 나를 루쉰에게 소개해주었고, 또 루쉰과 나와의 사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15년 뒤인 쇼와 37년(1962년)에 『루쉰의 인상』이 같은 출판사의 밀리언북스 시리즈로 재판되었지만, 그때는 초판본에 들어있던 『바진巴金의 일본 문학관』이 빠졌고, 그 대신 (원래 이와나미岩波[에서 발행하는 잡지인] 『도쇼圖書』에 실렸던) 『루쉰의 죽음』이 들어갔다. 다만 『바진巴金의 일본 문학관』에 흥미를 갖고 있는 사람도 있어서, 나중에 졸저 『중국문학사 연구』(1968년, 이와나미서점岩波書店)에 수록했다. 이제 『루쉰의 인상』을 세 번째 출판하게 되매, 읽기 어려운 원래 문장에 약간의 수정을 가함과 동시에, 「추기追記」를 삽입했다. 또 별도로 루쉰과 관계가 깊은 사람들이 추억의 말을 남긴 자료적인 책 몇 가지를 추가해 「보기補記」로 삼았다.

이번에 나오는 3판에서는 재판 본에 수록되었던 것 이외에도 『루쉰 잡기』라고 해서 근년에 신문, 잡지의 의뢰를 받아 쓴 루쉰에 관한 추억담과 에세이 류도 집어넣었다. 그밖에도 여전히 루쉰에 관해 쓴 것이 몇 가지 있다고 생각되지만, 지금은 주변에 그것들의 간행물들이 남아 있지 않아 이 정도로 그쳤다. 이밖에도 루쉰에 관해 쓴 것으로 지면이 좀 많은 것으로 『루쉰의 생애』와 『루쉰의 잡감문과 그 배경』이 있지만, 이 두 편은 앞서 말한 『중국문학사 연구』에 들어갔기에 여기서는 뺐다.

루쉰의 부인 쉬광핑許廣平 여사에 관해 쓴 것 역시 루쉰의 생활과 행동의 일부를 전해주는 것이라 생각되어 함께 수록했다. 그밖에도 루쉰과 동시대의 문학가로(나이로는 루쉰보다 약간 어리지만), 루쉰과의 관계가 간단치 않은 마오둔茅盾과 궈모뤄郭沫若(궈모뤄는 루쉰과 직접적인 면식이 없지만, 문단에서는 대립적인 그룹의 한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에 관계가 간단치 않다)에 관해 쓴 것도 어느 정도 참고가 될 수 있기에 부록으로 추가했다.

루쉰에 관해서는 중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일본에서도 여러 사람들에 의한 연구가 나와 있다. 다만 나는 그와 접촉해서 마음에 남은 인상을 이야기하고, 또 그것으로 얻을 수 있었던 약간의 고찰을 더한 것이다. 연구라고 할 만한 태도나 자세라는 측면에서 볼 때 [내 경우에는] 그의 일상적인 이미지가 선행되어 항상 그것이 들러붙어 있기에 객관적으로 추상화한 루쉰을 포착하기에는 적임자가 아닌 듯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로서는 그런 이미지를 버리고 그에 관한 것을 해석해 보는 방법 말고는 루쉰을 파악할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이 책이 루쉰의 생활과 루쉰의 주변사에 관해 다소라도 연구자들에게 실마리가 되는 자료를 제공한다면 다행이겠다.

쇼와 45년(1970년) 7월

마스다 와타루增田涉

구판 서

근래 중국에 관해 혹은 중국 문학에 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는지 졸저 『루쉰의 인상』이 이번에 밀리온북스의 한 권으로 재판되었다.

루쉰에 관해서는 신중국이 탄생한 이래로 특히 관심이 높아져 중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에서도 연구자가 점점 늘어나는 듯하다. 마오쩌둥은 그의 『신민주주의론』에서 “루쉰은 가장 강직한 성품으로 노예근성이나 아첨하는 태도가 추호도 없었다.……루쉰의 방향이 곧 중국 민족 신문화의 방향”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열악한 환경과 맞서 싸우는 불굴의 정신, 환경에 억눌리지 않고, 억누르려는 힘에 끝까지 저항하고 되받아쳐 싸우는 정신의 완강함은 비할 데 없었으니, 그는 그 어떤 아첨도 타협도 없는 ‘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루쉰은 겸손하고 온화하며 친하게 지낼 만한 인품을 가졌다. 처음에는 『망원莽原』 잡지를 함께 냈으나 나중에는 루쉰과 결별했을 뿐 아니라 루쉰을 공격하기까지 했던 청년 작가 가오창훙高長虹은 루쉰의 인상을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내가 처음 루쉰과 이야기했을 때의 인상은 사람들의 전설 속의 루쉰과는 달랐을 뿐 아니라 『외침吶喊』의 작자와도 어울리지 않게……문장을 쓸 때의 태도는 고집스러웠지만, 친구들과 말하고 있으면 아주 화기애애하고 겸손했다.”(『약간의 회고一點回憶』)

내가 받은 인상도 완전히 똑같다. 문장으로 보는 루쉰과 직접 이야기 나눌 때의 루쉰은 조금 사정이 다른 듯한 느낌이었다. 심각해 보이는 얼굴과 말투는 전혀 없이 항상 가벼운 유머를 날리고 빙글빙글 웃고 있는 스스럼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함께 마주하고 있는 동안 긴장감 등을 느낄 수 없었다. 그의 문장에 보이는 야유나 독설은 그림자조차 없고, 오히려 어린애 같은 천진한 인품이었다. 그렇다면 붓을 잡을 때의 그와 일상적인 담화를 나눌 때의 그가 왜 그렇게 달랐던 것일까? 밖으로 향할 때와 안으로 향할 때의 그가 다른 것은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이를테면, 한 장의 판자벽이라도 바깥쪽으로 향하고 있는 면은 비바람에 시달리고 마구 두들겨 맞아 거칠게 들뜨고 색깔도 검게 보이지만, 안쪽 면은 원래 판목 그대로 거칠어지지 않고 색깔도 밝다. 원래는 같은 성질이었지만, 드러난 면이 달라서인데, 나는 그것이 사실은 그의 인품이, 밖으로 향하든, 안으로 향하든 그저 겸허하고 천진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깥의 비바람을 가볍게 받아 넘기면서, 비바람은 비바람대로 겸허하고 성실하게 그것을 막아서서 받아들이고 방위하는,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 그의 성격 때문에, 바깥 쪽 피부가 거칠고 부스스하게 일어나 거무스름한 색으로 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바탕은 안이나 밖이나 성실함 한 가지였다.

바깥으로 향한 루쉰, 요컨대 그가 써서 남긴 문장은 많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읽고 또 여러 가지 해명한 바 있기에 나는 일상적인 루쉰을 그의 인상의 범위로 한정해 보고 들은 것을 덧붙이고, 그의 인품의 일단을 소개하려고 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루쉰의 인상』이다.

내가 상하이에서 루쉰과 직접 만난 것은 쇼와 6년(1931년) 3월부터 같은 해 12월 말까지이다. 그 뒤 쇼와 11년(1936년) 6월부터 7월에 걸쳐 그를 병문안하기 위해 재차 상하이로 건너갔다. 앞뒤로 약 1년 간 그의 얼굴을 보고, 그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쇼와 6년 말 귀국하고 난 뒤에도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대체로 매달 2회 가량 편지가 오갔기 때문에, 그 기간도 간접적으로는 그와 접촉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열 달 동안은 매일 오후 세 시간이나 네 시간 정도 그의 집에서 머물렀고, 저녁이 되면 자주 저녁 대접을 받았다.

지금 내가 루쉰에 대해 말한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그 당시의 견문이 중심을 이룬다. 또 그에 관해 생각하는 모든 경우에 있어 그 당시의 인상이 나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루쉰의 모든 것에 대해 말할 자신은 없다. 직접적인 인상을 바탕으로, 그의 인간, 혹은 좁게는 인품의 일단을 전한다고 한다면, 어떤 시기의 루쉰으로 한정할 수밖에 없는데, 이거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그의 문장, 그의 저서를 읽고 받았던 인상이 여기에 뒤섞여 작용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의 저서 『중국소설사략』과 첫 번째 소설집 『외침』, 두 번째 소설집 『방황』은 거의 한 글자 한 구절씩 직접 그에게서 강해를 들었고(매일 오후에 그의 집에 갔던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회상 소품집 『아침 꽃 저녁에 줍다朝花夕拾』와 산문시 『들풀野草』 혹은 단평 수필집 『열풍』, 『화개집華蓋集』 및 그 속편 『이이집而已集』 등에 관해서도 군데군데 자구를 질의하면서 그의 앞에서 읽었다. 지금 당시의 강해에 관해서는 메모해둔 게 약간 남아 있는 것 말고는 대부분 잊어버렸다. 그러나 그런 저서들을 매일 그의 탁자 앞에 나란히 앉아서 읽어나가는 사이, 그리고 동시에 그의 풍모와 행동거지를 보고, 그가 하는 말과 웃음소리를 듣고 있는 사이 차츰 ‘나의 루쉰’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게 20여 년 전의 일이다. 20여 년 전의 견문인데도 오히려 세월에 지워지지 않고 인상에 남아 있는 것은 틀림없이 그때그때 내 마음을 울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결국 내 자신의 그릇이 문제다. 당시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학교를 갓 나온 미숙한 나로서는 물론 생각도 얕고, 지식도 부족했으며, 원래부터 그릇이 작아 아무래도 루쉰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어울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불가능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때 내가 루쉰이라는 희유의 인간을 만나 그때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강한 인상을 받은 것은 사실이고, [그렇게 해서] 직접적인 인상이 만들어진 것일진대 그것만으로도 저서와는 별개로 뭔가 얼마간은 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루쉰의 인상』을 8년 전 처음 펴냈을 무렵 친구 몇 명이 모인 자리에서 오노 시노부小野忍가 만약 루쉰이 괴테 정도로 훌륭한 사람이라면, 『괴테와의 대화』를 썼던 에커만같이 내 이름도 후세에 남을 것인데 라는 농담을 하자, 다케우치 요시미竹內好가 아니야 루쉰은 괴테에 못지않으니 이것도 뒤에 남을 거라는 의미의 가벼운 반박을 덧붙였다. 일시적인 좌흥이었다 하더라도 나는 오랜 친구들이 다소나마 이 책의 출판을 우정으로서 인정하고 싶은 마음으로 전하고 있는 것을 알고 고마웠다 또 최초의 출판사에 관해서는 오쿠노 신타로奧野信太郞가 수고해주었다는 것을 부기하면서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쇼와 31년(1956년) 6월

마스다 와타루增田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