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호이야기-007 시대빈時大彬 정족개원호鼎足蓋圓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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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빈時大彬(1573-1648)은 명 만력에서 청 순치 년간의 사람이다. 자사 4대가 가운데 한 사람인 시붕時鵬의 아들이다. 자사 니료의 배합, 성형기법, 조형설계와 각을 새기는 것 등을 깊이 연구하였다. 지금까지 사용되는 니편과 상감기법 등의 고난도 기술을 확립하였다. 그는 자사니를 배합하여 각종 색깔을 만들어 소박하면서도 힘있는 차호를 제작하였다. 그의 초기작품은 공춘의 대형호를 모방하였으나 나중에는 문인들의 음차 유행에 따라 작은 차호를 만들었다. 특히 쑤저우, 로우둥婁東(지금의 상하이)등을 유람하여 진계유 陳繼儒와 교유한 이후로 대형 차호에서 작은 차호를 제작하는 것으로  차호의 풍격이 일변하였다.  제작년월을 서명에 담았고 자사호의 정통으로 추앙되고 있다.

    명대 허차서許次紓의  《다소茶疏》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예전에는 공춘의 차호가, 요즘에는 시대빈의 차호가  사람들에게 보물로 소중히 여겨지고 있다. 往時供春茶壺,近日時彬所制,大為時人寶惜  

    그는 많은 차호를 디자인하였고 제작공구를 만들었으며 이중방李仲芳, 서우천徐友泉 등의 제자를 키워내어 자사예술을 발전시켰다. 그는 자사호 제작에 매우 엄격하여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바로 깨어버렸다.

    시대빈은 80이 넘는 평생 수많은 차호를 만들어 널리 유통되었다. ‘궁중에서는 시대빈의 호를 선망하여 말하고 해외에서는 진명원의 그릇을 앞다퉈 구하려한다宮中艶說大彬壺, 海外競求鳴遠碟’는 시가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시대빈의 작품이 비록 많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작품은 극히 드물다. 청 건륭 년간에 이미 시대빈의 작품은 희귀한 보물이었다.

    이 차호는 1987년 7월 11일 푸젠성 장푸漳浦현 판퉈盤陀향 먀오푸廟埔촌의 만력 년간 호부시랑과 공부시랑을 지낸 노유정盧維禎의 묘에서 출토되었다. 만력 40년의 묘지명이 적힌 기년표가 함께 발견되었다. 호가 출토되었을 때 뚜껑의 테두리에는 이미 약간의 손상과 마모가 있어 묘 주인이 생전에 사용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호는 전체적으로 벽돌색이고 약간의 오렌지 빛을 띠고 있으며 배 껍질 모양에 흰 자사 알갱이가 차호의 몸통에 가득하고 뚜껑에는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호의 조형은 매우 독특하여 부풀어 오른 뚜껑 위에 세 개의 다리가 솟아 있다. 이 뚜껑을 뒤집어 반듯하게 놓으면 아랫부분을 떠받드는 세 다리를 가진 얕은 접시가 된다.  호의 몸통은 풍만하고 호 안쪽 바닥은 적당히 깊다. 떡벌어진 어깨와 곧은 목, 북처럼 둥근 배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배 아래쪽으로 갈수록 형태가 갸름해진다. 굽다리처럼 보이나 평평한 바닥이다.  물대는 차호의 가운데 배 부분에서 굽으며 뻗어 있으며 단공이다. 손잡이는 원형을 그리고 있고  내벽의 선은 달걀형이다. 뚜껑와 입구는 긴밀하게 물려있다. 특히 뚜껑의 둥근 구면 위로 세 개의 발이 거꾸로 솟아있는데 다리의 외측으로 한 개의 활 모양의 선이 뻗어있고 , 다리의 내측으로는 두 개의 활 모양의 선이 연결되어  있다. 호 밑에는  한 줄 세로의 해서체로 “시대빈제時大彬製”라고 쓰여있다. 힘있고 세련된 정방형의 균형잡힌 정방형의 필치이다. 글씨가 시작되는 부분은 둥글게 꺾여있고 글자의 새김은 깊고 높으며 그 공력은 심후하다. 이 저관의 서법은 진당대의 풍격으로 구양순歐陽詢의 서체임이 확실하다. 이는 그 연대를 확실하게 고증할 수 있는 시대빈의  차호라고 할 수 있다.

    이 차호는 현재 푸젠성福建省 장푸현문화관漳浦縣文化館이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