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와 루쉰 문학

우리나라 문인 중에서 이육사는 루쉰과 직접 대면한 사람 중 하나다. 그는 1932년 중국국민당 정권 특무에 의해 피살된 양싱포(楊杏佛)의 장례식장에서 그 장례를 주관하던 루쉰과 만났다. 장소가 장례식장이었던 만큼 의례적인 인사만 오고갔겠지만 이육사는 이 사실을 1936년에 쓴 「루쉰추도문(魯迅追悼文)」에 기록했다.

「루쉰추도문」은 루쉰이 1936년 10월 19일 세상을 떠난 후 4일만인 10월 23일부터 10월 27일까지 이육사가 당시 「조선일보」에 연재한 글이다. 제목이 ‘추도문’이므로 루쉰의 생애를 요약하고 루쉰 문학의 전개 과정과 특징을 분석한 후 마지막에 그에 대한 애틋한 애도의 마음을 부치고 있다.

그러나 이 「루쉰추도문」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단순한 감상문이 아니다. 이육사는 루쉰 문학의 성숙한 깊이에 주목하면서 당시 혼란한 중국 사회 현실에 맞서 명확하고 진실한 묘사로 감동 깊은 문학작품을 창작한 측면에 객관적이고 정당한 평가의 잣대를 대고 있다. “당시의 혁명과 혁명적인 사조가 민중의 심리와 생활의 ‘디테일스’에 어떻게 표현되는가를 가장 ‘레알’하게 묘사한 것”이라고 루쉰 소설의 특징을 간파한 이육사의 시각은 현재 연구가들의 관점에 비교해봐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할 만하다. 「루쉰추도문」은 당시에 루쉰과 루쉰 문학을 언급한 문장 중에서 가장 수준 높은 경지에 이른 글임을 부정할 수 없다.

xin
『신천지』 표지,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굿윌헌팅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이 「루쉰추도문」에 루쉰의 잡문이 여러 편 발췌 번역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앞에서 루쉰의 잡문이 국내에 처음 번역된 것이 1946년 7월호 [신천지(新天地)](제1권 제6호)에 게재된 [혁명시대의 문학(황포군관학교서의 강연)](裵澔 역)과 [현대사–‘위자유서’에의 취득](역자 미상)이라고 언급했다. 또 이후 1948년 9월 양주동이 편집한 [세계기문선(世界奇文選)](청년사)이란 책에도 루쉰의 잡문 3편이 번역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완역된 잡문으로 말하자면 이런 진술이 가능하지만 완역이 아닌 발췌 번역을 포함하면 이육사의 「루쉰추도문」에 실린 몇 편의 잡문이 국내 초기 번역의 주요 사례(최초일 수도 있음)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외침(吶喊)』 자서』 중 두 단락, 「상하이 문예의 일별(上海文藝之一瞥)」(『이심집二心集』 수록) 중 장편 한 단락, 「꽃이 없는 장미 2(無花的薔薇之二)」(『화개집속편華蓋集續編』 수록)의 한 단락, 「유헝선생에게 답함答有恒先生」(『이이집而已集』 수록)의 한 단락이 그것인데, 모두 루쉰 정신과 루쉰 문학의 주요 특징을 보여주는 산문들이다.

qiwen
양주동, 『세계기문선』

당시 문단 일각에서는 루쉰을 좌경화한 급진 프로 작가로 매도하는 경향이 있었고, 또 다른 일각에서는 루쉰을 계급의식이 없는 쁘띠부르주아 작가로 백안시하는 경향도 있었다. 그러나 이육사는 “노신에게 있어서 예술은 정치의 노예가 아닐 뿐 아니라 적어도 예술이 정치의 선구자인 동시에 혼동도 분립도 아닌, 즉 우수한 작품, 진보적인 작품을 산출하는 데만 문호 노신의 위치는 높어갔”다고 분석하여, 루쉰이 일찍이 “모든 문학은 선전이지만, 모든 선전이 문학인 것은 아니다”라고 갈파한 문예관의 핵심을 짚어냈다. 루쉰의 사상과 문학은 편협한 좌・우의 칼춤을 넘어선 자리에 위치한다.

「루쉰추도문」을 연재한 후 이육사는 루쉰 단편소설의 정점이라고 할만한 「고향故鄕」을 우리말로 처음 번역하여 1936년 『조광朝光』 12월호에 발표했다. 「고향」은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우리말로 번역되었지만 이육사를 능가하는 번역은 없는 듯하다. 이육사는 그의 나이 22세 때인 1925년 처음 베이징 나들이를 한 후 그의 나이 41세 때인 1944년 베이징 일제 감옥에서 순국하기까지 거의 20년 동안 중국을 왕래했다. 물론 이 기간 동안 이육사는 김원봉이 교장으로 있던 ‘조선군관학교’에서 군사 훈련을 받기도 했고 중국대학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이육사는 현대중국어도 어렵지 않게 구사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어릴 때 받은 한학 교육에다 직접 중국에서 습득한 현대중국어 실력에 시인으로서의 적절한 우리 고유어 구사 능력까지 더해져서 이육사의 「고향」 번역은 루쉰 문학 번역사에서 매우 뛰어난 번역의 하나로 인정되고 있다.(이 글은 2005년 11월 30일, 정림사에서 출간한 『근현대 대구・경북지역 중국어문학 수용사』 제7장 김영문, 「이육사의 중국 현대문학 수용 양상 연구-노신 수용을 중심으로」를 참고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