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李贄-분서焚書 벌레 세 마리三蠢記

벌레 세 마리三蠢記

유익(劉翼)은 성격이 올곧아서 남 욕을 잘 했다. 이에 대해 이백약[1]은 사람들에게 “비록 유(劉) 아무개가 아무리 욕을 해도, 사람들은 미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 이백약 같은 사람이야말로 유익의 입장에서는 진정 자기를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성격 역시 남 욕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사람들 또한 일찍이 나를 미워한 적이 없다. 무엇 때문인가? 나의 입은 험하지만 마음은 착하고 말은 험하지만 그 뜻은 착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착하다는 것은 그 사람이 어서 빨리 발전하기를 바라는 뜻에서라는 것이요, 뜻이 착하다는 것은 그 사람이 어서 빨리 발전하려고 하지 않을까 염려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나의 뜻을 알고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비록 나를 미워하지는 않는다고는 해도, 또한 끝내 나와 친해지지도 않는다. 나를 미워하지 않고 또 나와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오직 양정견(楊定見) 한 사람 뿐이다. 미워하지 않으면서 더욱 친해진다는 것은 또한 무슨 말인가?

나는 부귀(富貴)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부귀를 추구하는 것을 사랑한다. ‘귀’(貴)를 사랑하면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한다. 그런데 정견은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욕한다. ‘부’(富)를 사랑하면 반드시 집안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런데 정견은 가정을 이루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욕한다. 부귀를 얻으러 가지 않는다고 욕하는데 나를 미워할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정견에게는 또한 정말 욕할 만한 점이 있다. 내가 악성(鄂城,武昌)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정견은 더위와 눈보라를 무릅쓰고 1년에 서너 번 나를 찾아왔으니, 그의 기골(氣骨)은 과연 남을 뛰어넘는 점이 있다. 나는 그가 무엇언가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끊임없이 종종 욕을 할 뿐이다. 그런데 그가 끝내 변화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책을 읽지 않고, 부지런히 배우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재산을 추구하지 않고, 출세할 꾀를 일삼지 않기 때문이다. 기골은 있지만 원대한 뜻은 없기 때문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는 또한 어리석은 사람일 뿐이기도 하다.

선승(禪僧) 심유[2]는 비록 도를 향해 나아가려는 뜻이 약간 있기는 하지만, 역시 곧장 향상(向上)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 아니다. 왕왕 쓸모없는 틀에 박힌 말을 받아들여 만족하고, 일상 생활에서 고생스럽게 부지런히 애쓰는 것을 족쇄로 생각하고, 부귀를 받아들이는 것을 매우 안락한 자재법문(自在法門)이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그르치고 스스로를 그르치는 것을 면하지 못할 사람이다. 정견은 기골이 있지만 영리함이 부족하고, 심유는 영리함이 조금 있지만 기골이 없어서, 똑같이 산중의 한 마리 꿈틀거리는 벌레일 뿐이다.

꿈틀거리는 벌레와 한 패가 되어, 그저 따라다니는 것을 좋아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그래도 그침없이 꾸짖고 욕을 하니, 정견이 한 마리 벌레요, 심유가 한 마리 벌레요, 나 또한 한 마리 벌레이니, 어찌 벌레 세 마리가 아니리오? 그래서 이 <벌레 세 마리>[三蠢記]라는 글을 쓴다.(권3)

 [1] 이백약(李百藥)은 당대(唐代) 사람으로, 문덕림(文德林)의 뒤를 이어 《북제서》(北齊書)를 편찬했다.

 [2] 심유(深有)는 무념심유(無念深有), 또는 무념(無念)이라고도 한다. 이지가 용호(龍湖)의 지불원(芝佛院)에서 묵고 있던 시절 이지를 곁에서 모셨던 승려이다.

卷三 雜述 三蠢記

劉翼性峭直,好罵人。李百藥語人曰:“劉四雖複罵人,人亦不恨。”噫!若百藥者,可謂真劉翼知己之人矣。余性亦好罵人,人亦未嘗恨我。何也?以我口惡而心善,言惡而意善也。心善者欲人急于長進,意善者又恐其人之不肯急于長進也,是以知我而不恨也。然世人雖不我恨,亦終不與我親。若能不恨我,又能親我者,獨有楊定見一人耳。所以不恨而益親者又何也?蓋我愛富貴,是以愛人之求富貴也。愛貴則必讀書,而定見不肯讀書,故罵之;愛富則必治家,而定見不做人家,故罵人。罵人不去取富貴,何恨之有?然定見又實有可罵者:方我之困于鄂城也,定見冒犯暑雪,一年而三四至,則其氣骨果有過人者。我知其可以成就,故往往罵詈之不休耳。然其奈終不可變化何哉?不讀書,不勤學,不求生世之產,不事出世之謀,蓋有氣骨而無遠志,則亦愚人焉耳,不足道也。深有雖稍有向道之意,然亦不是直向上去之人,往往認定死語,以辛勤日用為枷鎖,以富貴受用為極安樂自在法門,則亦不免誤人自誤者。蓋定見有氣骨而欠靈利,深有稍靈利而無氣骨,同是山中一蠢物而已。

夫既與蠢物為伍矣,只好將就隨順,度我殘年,猶爾責罵不已,則定見一蠢物也,深有一蠢物也,我又一蠢物也,豈不成三蠢乎?作《三蠢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