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대소설 서발문中國古代小說序跋文 <장지에게 다시 답장을 보냄重答張籍書>

<장지에게 다시 답장을 보냄重答張籍書>

한위韓愈[1]

【原文】

駁雜之譏[2],前書盡之[3],吾子其復之[4],昔者夫子猶有所戱[5],《詩》不云乎[6]:󰡒善戱謔兮,不爲虐兮󰡓。《記》曰:󰡒張而不弛,文武不能也󰡓[7]。惡害於道哉!吾子其未之思也。

【우리말 옮김】

  잡스럽다는 비판은 먼저 서신에 답을 드렸습니다. 선생께서 다시 그것을 되풀이 하시는군요. 옛날 쿵쯔께서도 유희游戱하시는 바가 있었습니다. 《시경詩經》에도 다음과 같이 이르지 않았습니까? “……장난도 잘 치시지만, 해롭지 않네……善戱謔兮, 不爲虐兮.” 《예기禮記》에는 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활을 팽팽하게 당기기만 하고 놓지 않은 것은 문왕·무왕도 할 수 없었다.張而不弛, 文武不能也.” 어찌 도道에 해가 된다고 하겠습니까! 선생은 미처 이를 생각하지 못하신 것입니다.

【해설】

  장지張籍와 한위韓愈가 “잡스러운 이야기駁雜之說”에 대해 토론하며 왕래한 서신은 당시 사회에서 유명한 사건이었다. 이들의 토론 내용에는 당시 사람들이 갖고 있던 소설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가 반영되어 있다. 한위는 장지의 경직되고 보수적인 논점을 비판하면서, 소설 류의 창작은 “유희하는 것所以爲戱”이로되 성인의 도를 해치는 것이 아니며, 《시경詩經》에서 말하는 “장난치되 해롭지 않은 것戱而不虐”이나 《예기禮記》에서 말하는 “활을 팽팽하게 당기기만 하고 놓지 않은 것은 문왕이나 무왕도 못한 일張而不弛, 文武不能”과도 부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쿵쯔 역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종일 밥만 먹고 아무 일도 안해서는 딱한 일이지. 장기나 바둑 같은 일도 있지 않느냐? 그런 거라도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나으니라飽食終日, 無所用心, 難矣哉! 不有博奕者乎? 爲之猶賢乎已.” 한위의 주장은 쿵쯔의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당시 한위는 ‘도통道統’이라는 관념을 내세워 문단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소설 류의 문장을 즐기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옹호까지 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로 말미암아 소설이라는 장르가 그 나름의 지위를 유지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석]

 [1] 한위韓愈(768~824년)의 자字는 투이즈退之이고, 허난河南 난양南陽 사람이다. 한창리韓昌黎는 그 마을의 명문가 출신으로, 정원貞元 8년에 진사에 급제하였다. 문文이라는 시호를 얻어 세칭 한문공韓文公이라고 한다. 한위는 시문詩文 방면에서도 뛰어난 업적이 있지만 소설 류의 문장도 매우 좋아하였다. 여기에 선록된 장지張籍와 왕래한 서한은 아마도 정원 12년(서기 796년)에서 정원 15년(서기 799년) 사이의 것으로 보이는데, 이 때 한위와 장지는 모두 볜저우汴州에 있었다.

 [2] 박잡지기駁雜之譏 : 장지는 앞서 한위에게 보낸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선생께서 잡스럽고 허황된 이야기를 좋아하여 사람들을 시켜 앞에서 이야기하도록 해놓고 즐기시는 것을 보았는데, 이는 아름다운 덕에 누를 끼치는 것입니다.·····比見執事多尙駁雜之說, 使人陳之於前以爲歡, 此有以累於令德.”

      박잡駁雜 : 순수하지 않고 잡스러운 것이다. 《당척언唐摭言》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한위가 《모영전毛穎傳》을 짓고, 도박과 같은 유희를 좋아하였는데, 장지가 서신으로 이를 충고하였다.韓愈著《毛穎傳》, 好博塞之戱, 張水部以書勸之.” 사실 《모영전》이 잡스럽고 허황된 이야기일지는 모르나, 그 저작 년대는 이보다 몇 년 뒤이다. 서신 속에서 장지가 말한 “잡스러운 이야기”는 마땅히 《모영전》 등 소설에 가까운 잡문 혹은 《획린해獲麟解》 등의 유희성을 가진 잡문을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책들은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3] 전서진지前書盡之 : 한위는 《장지의 서신에 대한 답答張籍書》에서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대는 또 내가 사람들에게 허황되고 잡스러운 이야기를 주었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문장은 내가 즐기려고 쓴 것일 뿐이오. 술과 여색에 비교하면 무슨 차이가 있겠소? 그대가 이것을 비판하는 것은 마치 함께 목욕을 하면서 벌거벗었다고 욕하는 것과 같소이다.吾子又譏吾與人爲無實駁雜之說, 此吾所以爲戱耳. 比之酒色, 不有間乎? 吾子譏之, 似同浴而譏裸裎.” 여기서 라정裸裎은 벌거벗은 몸이다.

 [4] 오자吾子 : 장지를 가리킨다.

    복지復之 : 《장적이 한유에게 보낸 두 번째 서신籍遺愈第二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군자는 도리에서 멀리 벗어나게 말을 하거나 거동하지 않는 법이니, 잡스럽고 허황된 이야기를 유희로 삼았다는 말을 아직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선생께서 매번 그러한 이야기를 듣고 손뼉을 치며 크게 웃는 것은 기氣를 억압하고, 본성性을 해치며 정도正道를 얻지 못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만약 정도를 얻지 못한다면 무슨 일인들 못 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합당할 뿐 정도를 잃지 않았고 여러 사람들을 즐겁게 할 뿐이라고 여기는데, 이는 사람을 희롱하는 것이요, 놀리는 것이지, 의義의 정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하겠습니다.君子發言擧足, 不遠於理, 未嘗聞以駁雜無實之說爲戱也. 執事每見其說, 亦拊抃呼笑, 是撓氣害性, 不得其正矣. 苟正之不得, 曷所不至焉, 或以爲中不失正, 將以苟悅於衆, 是戱人也, 是玩人也, 非示人以義之道也.”

 [5] 부자夫子 : 쿵쯔孔子를 가리킨다. 옛 사람들은 쿵쯔가 《시경詩經》을 산정刪定하였다고 생각하였다.

 [6] 《시詩》 : 본문의 구절은 《시경詩經》<위풍衛風>에 있는 <기오淇奧>다. ‘학謔’은 ‘우스운 말’이다. ‘학虐’은 ‘해를 끼친다’는 뜻이다.  

 [7] “장이불이,문무불능야張而不弛,文武不能也” : 이 대목은 《예기禮記》<잡기 하雜記下>에 나오는 말이다. “활을 팽팽하게 당기기만 하고 놓지 않은 것은 문왕·무왕도 못한 일이요, 놓기만 하고 펴지 않은 것은 문왕·무왕도 하지 않았다. 한 번 펴고 한 번 놓는 것이야말로 문와과 무왕의 도인 것이다.張而不弛, 文武弗能也. 弛而不張, 文武弗爲也. 一張一弛, 文武之道也.” 활이라는 것은 오랫동안 펴기만 하고 놓지 않으면 힘이 다해 버리고, 또 오랫동안 놓고만 있으면 형체가 변하고 만다. 백성들도 오랫동안 힘만 쓰고 쉬지 않으면 끝내 피로에 지치게 되고, 반대로 항상 놀기만 하면 그 뜻이 해이해진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