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와 사마의의 첫대면

아래의 3분 짜리 동영상은 드라마의 일부인데 이를 본 사람 가운데 그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염려되어 몇 자 적어본다. <사마의> 드라마를 혹애하는 사람조차 아마 모르지 않았을까… 싶다.

사마의(사마중달)는 한나라 때 태위(국방부장관)를 배출한 명문 집안 출인. 조조(47세)가 사마의를 처음 부른 것은 관도전이 일어난 다음해인 201년이었다. 사마의(23세)는 칭병하고 나가지 않았다. 젊은 사마의로서는 조조가 대단치 않아 보였던 것 같다.

영상의 장면은, 208년 적벽전 바로 전에 조조(54세)가 두 번째 사마의(30세)를 불러 만났을 때로, 이때가 첫대면이었다. 조조가 사람을 보내면서 불러서 오지 않으면 죽이라고 했으므로 사마의는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진서><선제기>에 다음 기록이 있다.

“위 무제(조조)는 선제(사마의)가 영웅의 뜻이 있다고 느꼈고 낭고상(이리가 돌아보는 상)이 있다고 들었다. 이를 시험해보려고 하였다. 이에 앞으로 가게 하고선 뒤돌아보라고 하니, 몸통은 그대로인 채 얼굴만 정반대로 돌아보았다.” (魏武察帝有雄豪志, 聞有狼顧相. 欲驗之. 乃召使前行, 令反顧, 面正向後而身不動.)

‘낭고상’(狼顧相)은 이리의 목을 가진 상을 말한다. 사람은 뒤돌아볼 때 어깨도 함께 돌아가는데 이리는 어깨는 움직이지 않은 채 목만 백팔십도 돌아간다고 한다. 이에 조조가 시험해 본 것이다. 이런 관상을 가진 사람은

1) 이리가 길을 가면서 수시로 좌우를 둘러보고 뒤를 돌아보듯 지나치게 신중한 성격이다.
2) 잔인한 성격이다.
3) 배반의 상(相)이다. 는 의미로 해석한다.

드라마에선 조조가 바둑돌을 던져 사마의가 무심코 돌아보게 하는 것으로 처리하였다. 물론 배우가 이리처럼 고개를 백팔십도 홱 돌릴 수 없으니까 영상에서 보듯 그런 식으로 처리했다. 조조는 한편으로 과연 이 친구가 이리처럼 잔인할 것일까 의혹의 눈빛을 보내면서 한편으로 자신의 레떼르인 큰 웃음을 터뜨린다. 드라마에서 “역시~!”하고는 말을 줄이는데 굳이 덧붙이면, “역시 낭고상이란 게 이런 거였군! 하하하!”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첫대면은 조조의 호탕한 웃음이 허공을 채우면서 끝난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의 커다란 복선이다. 조조가 한나라를 집어삼켜 그의 아들 조비에게 위나라를 세우게 했듯이, 사마의가 위나라를 집어삼켜 그의 손자 사마염에게 진나라를 세우게 했기 때문이다. 대장군 조방의 일족을 몰살할 때는 어린 아이까지 죽였으니 잔인하지 않은가? 조씨 종친은 물론 왕조까지 잡아먹었으니 조씨 위왕조의 신하인 자로서 처절한 배반이지 않은가? 그래서 곽가가 조조에게 사마의를 경계하라 했고, 조조가 조비에게 경계하라 했고, 조비가 조예에게 경계하라 했다.

만약 첫대면 때, 사마의가 낭고상으로 돌아볼 때, 조조가 미묘한 감각 속에 운명이 알려주는 미미하지만 깊은 울림을 들었으면 어떠했을까? ‘낭고상’에 모든 미래가 담겨있지 않은가? 그래서 조조가 미리 사마의를 제거했다면? 후대의 자손이 남김없이 몰살되지도 않았을 터이고, 피와 뼈로 깎아 세운 위대한 홍업의 강산마저 사마의에게 빼앗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드라마에선 왜 이렇게 모호하게 처리했을까? 대부분의 시청자는 ‘낭고상’이 지닌 의미를 모르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렇지 않다. 중국에서는 <사마의> 드라마가 방영되기 몇 해 전에 백가강단(百家講壇)에서 <사마의>라는 제목으로 연속 강연을 하면서 이 부분을 인상 깊게 강연했던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 강연을 본 건 아니지만, 일단 중국 사회에 사마의의 ‘낭고상'(돌아보는 이리상)에 대한 지식이 뿌려졌기에 사람들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드라마의 빈 곳을 채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러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기 때문에 드라마의 낭고상 대목은 이해되지 않은 채 지나칠 것이며, 사마의의 이미지로 자주 쓰이는 돌아보는 이 스틸 컷도 무슨 뜻인지 모른 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