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부지王夫之의 독통감론讀通鑑論 – 권2 한고제漢高帝 5

한고제漢高帝

14. 고조가 상인을 억압한 것은 정치의 근본을 아는 처사였다

나라에 신분 높은 귀인(貴人)이 없으면 백성은 흥성하기에 부족하고, 부유한 이가 없으면 백성은 번성하기에 부족하다. 나라에서 임자(任子)가 높은 지위를 누리면 나라가 갈수록 보잘것없어지고, 상인이 부유하면 나라가 갈수록 가난해진다. 임자가 높은 지위를 누리지 못하게 할 수는 없으나 그 지위를 함부로 남용하지 못하게 통제해야 하고, 부자가 부유해지지 못하게 할 수는 없으나 부를 이용해 교만해지지는 못하게 해야 한다. 고조가 처음 천하를 평정했을 때 상인에게 비단옷을 입거나 무기를 소지하거나 말을 타지 못하게 했으니, 정치의 근본을 알았다고 할 수 있다.

아! 상인이란 폭군과 탐관오리가 지극히 추천하며 총애하는 자들이다. 폭군은 상인이 아니면 자신이 즐길 성색(聲色)을 제공 받을 수 없고, 탐관오리는 상인이 아니면 급할 때 필요한 것을 제공 받을 수 없으니 좋은 표정으로 온갖 요구를 다 들어주며 또 무엇을 꺼리겠는가! 상인의 부는 가난한 이가 스스로 모은 것이다. 간사한 계책으로 쉽게 이익을 취하면 재물을 쓰는 것도 가볍게 하고, 품은 뜻이 작으니 판단할 줄 모르고, 지혜가 어두우니 평안하도록 동정을 베풀지 못하며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멸시하며 자랑하니, 나라가 어찌 가난해지지 않고 백성이 어찌 퇴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조는 민간에서 태어나 자라서 그들의 이로움과 해로움을 잘 알았기 때문에 그들을 무겁게 억제하여 백성이 기운이 소생하게 했다. 그러나 효문제(孝文帝) 때에 이르러 천자와 황후의 복식이 가의(賈誼)가 비판했던 것처럼 되었으니, 말단(=상업)을 억제하고 근본(=농업)을 숭상하는 것은 오래가기 어렵다.

15. 누경(婁敬), 천하에 재앙을 끼치다

누경(婁敬)의 자잘한 지혜는 군주를 움직이기에는 충분했으나 그가 천하에 끼친 재앙은 너무나 크다! 6국의 후예와 호걸 및 명문 가문을 관중(關中)으로 이주시켜 근본을 강화하고 말단을 약화하고자 한 것은 그럴 듯하다. 여자를 흉노에게 시집보내 그녀가 아이를 낳으면 반드시 태자로 삼아 예의를 가르쳐서 감히 예의를 어기지 못하게 함으로써 점차 신하로 자칭하게 한다는 것은 중원의 문화로 오랑캐를 변화시키겠다는 것이니 그럴 듯하다. 그러니 잠시의 이해관계에 현혹된 이들은 누구나 마음이 동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백성의 본성과 어긋나고 인도(人道)의 방비를 분열시킨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고 그의 주장에 따라 절충했지만, 누경의 주장이 어찌 충분히 훌륭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부호와 큰 가문이 강한 이유는 그들이 자리한 지역 때문이다. 전씨(田氏)는 발해(渤海)의 생선과 소금이라는 이점이 없었다면 강해지기에 부족했고, 굴씨(屈氏)와 소공(昭公), 경공(景公)의 초(楚) 지역 가문은 운몽(雲夢)의 못과 숲이라는 밑천이 없었다면 강해지기에 부족했다. 세가(世家)들은 왕성한 혼인 관계와 친우들의 모임을 유지하고, 백성들이 어울려 서로 돕지 않았다면 강해지기에 부족했다. 그런 그들의 전답과 고을을 버리고 종친을 떠나게 하여 그들의 편의를 빼앗고 익숙한 것을 없앤 채 관중과 토번 사이에서 타향살이하게 한다면 십 년이 되기도 전에 생업이 쇠락하고 기세가 꺾일 것이다. 조비(曹丕)는 늘 “나그네를 늘 다른 사람을 두려워하기 마련”이라고 했으니, 참으로 그렇지 않은가! 남을 두려워하는 이가 스스로 강해져서 나라를 강하게 해 줄 수 있겠는가? 차라리 백성들을 쉬게 하여 인구를 늘리고 경제력을 축적하게 하는 게 더 낫다. 그러므로 가난한 백성은 이주시켜도 되나니, 그들의 척박한 땅을 버리고 비뚤어진 풍속을 바꾸면 강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호족과 큰 가문은 기세가 꺾여서 나날이 쇠락할 것이다. 생업을 잃고 원망을 품은 백성을 천자의 수레 아래에 모으면, 약한 자들은 복종하겠지만 강한 자들은 원망할 것이니 어찌 행운이 따르겠는가? 그러니 당시의 그런 행위는 너무나 심한 학대였다.

오랑캐는 여유로우면 사납게 굴고, 부족하면 잔꾀를 부린다. 천성이 그럴 뿐만 아니라 습속도 그렇다. 성품은 타고난 기질에 영향을 받으며, 습속은 어리고 약할 때 이루어진다. 천자가 중원의 여자를 오랑캐와 짝지어 주고 신하와 백성이 그것을 좋아하여 치욕으로 여기지 않아 오랑캐가 장차 중국을 왕래하면, 중국의 여자들 가운데 오랑캐에게 시집가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다. 오랑캐의 어린아이들은 어미의 기운이 섞이고 어미의 말을 좋아하여 그 아비처럼 난폭하고 어미처럼 잔꾀가 생기면 그 부족한 것을 더해서 남은 것을 돕게 할 것이다. 유연(劉淵)이나 석륵(石勒), 고환(高歡), 우문흑달(宇文黑獺) 같은 무리는 그 교활함이 조조(曹操)나 사마의(司馬懿)를 능가한다. 그러니 예절이라는 것은 그저 그들의 간사함을 치장하는 도구일 뿐이며, 그것 때문에 중국에 몸을 굽히고 신하 노릇을 하다못해 심지어 서둘러 중국을 신하로 삼아 버리지 않았던가!

이 두 가지는 모두 누경의 간사함을 깨뜨린 증거이니 누가 여기에 토를 달겠는가? 어질지 못하게 백성을 이주시키고 부끄러움도 모르고 화친한 것은 판명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부러뜨려야 할 처사였다.

16. 상산군수(常山郡守)가 성을 지키지 못한 것은 처벌해서는 안 된다

진희(陳豨)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상산군(常山郡)이 12개의 성(城)을 잃자 주창(周昌)이 태수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고조가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역부족이니 죄가 없다.”

자신이 관할하는 성을 잃고도 죽을힘을 다해 싸우지 않은 태수를 처벌해야 한다는 주창의 주장은 옳다. 그러나 규명할 여지는 있다. 도적이 내부에서 일어나 격발하며 반란을 일으켰는데도 깨닫지 못했고, 깨달은 후에도 숨긴 채 알리지도 않고 대비하지도 않았으면서 급히 구원을 요청하지도 않았으니, 그의 죄를 용서할 수 없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도적이 외부에서 일어나 자신을 공격하지도 않고 깨달을 수도 없었으며, 깨달은 후에는 이미 병력이 경계를 압박하고 있어서 대비해 놓은 것을 쓸 틈도 없고 기원을 기다릴 수도 없었다면 죄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법을 정하는 이는 규정된 법이 없다면 이치에 맞게 짐작해야 나라에 손실을 끼치지 않고 당사자에게 유감이 생기지 않는다. 진희의 반란은 상산에서 제압하거나 조기에 깨달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주창이 법에 따라 처분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는 고조의 견해보다 못하다. 다만 처벌을 하지 않는 데에서 그쳐야지 그 인물을 다시 등용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이른바 “죽은 것과 다름 없는 마음은 생기를 회복할 수 없다.[近死之心不可復陽也]”라는 것이다.

17. 아첨꾼 숙손통, 태자를 바꾸라고 간언하다

숙손통은 태자를 바꾸라면서 이렇게 간언했다.

“저는 처형당해 목에서 쏟아진 피로 땅바닥을 더럽혀도 좋사옵니다.”

숙손통이 이렇듯 열렬한 인물이었던가! 아니면 일부러 그랬을까? 현명한 고조는 이유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여태후의 권력을 믿을 만하고 장량과 상산사호(商山四皓)의 무리가 도와주고 있으며,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함부로 남을 따르는 이들은 고조를 꺼려서 감히 나서서 다투지 못했다. 그러나 숙손통은 절대 죽지 않을 줄 알았고, 설령 죽더라도 오히려 공을 세운 셈이 될 테니 나서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아! 아첨으로 열 명이 넘는 군주를 섬긴 숙손통이니 군주의 노여움을 아무리 크게 건드리더라도 이렇게 할 수 있었다. 위로 현명한 군주가 있고 아래로 현량한 사대부가 있다면 아첨하는 자가 충성할 수 있고, 유약한 자도 강해질 수 있으니, 어찌 천하에 인재가 없다고 걱정하겠는가! 빼어난 지혜를 가졌거나 아주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면 장려해 주기 전에 일을 이룬 경우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