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李贄-분서焚書 하지 말라는 네 가지四勿說

하지 말라는 네 가지四勿說[1]

사람들과 함께 지키는 것을 예(禮)라고 하고, 나만 홀로 지키는 것을 ‘기’(己)라고 한다. 학자는 자기 한 개인의 고정된 견해를 고집하는 경우가 많아서 세속과 대동(大同)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예(禮)가 아닌 것에 빠져들게 된다. “예가 아닌 예”[非禮之禮]를 대인(大人)은 행하지 않으며, 진정한 ‘기’(己)는 개인의 편견인 ‘기’(己)가 없는 것으로, ‘기’(己)가 있으면 그것을 극복한다. 이것이 안회(顔回)의 ‘하지 말라는 네 가지’[四勿]이다. 이 ‘사물’(四勿)은 곧 ‘사절’(四絶)이요, ‘사무’(四無)요, ‘사불’(四不)이다.

‘사절’(四絶), 즉 “끊어야 할 네 가지”’란 자기의 잣대로 추측하는 것을 끊고[絶意], 반드시 어떠하다고 확신하는 것을 끊고[絶必], 고집 또는 집착을 끊고[絶固], 자아를 끊는 것[絶我]이다. ‘사무’(四無), 즉 ‘없어야 할 네 가지’란 타당하다고 여기는 것이 없고[無適], 타당한 것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 없고[無莫], 괜찮다고 여기는 것이 없고[無可], 안 된다고 여기는 것이 없는 것[無不可]이다. ‘사불’(四不), 즉 ‘하지 않는 네 가지’란, 《중용》의 마지막 장에서 말하는, 보이는 것이 없고[不見], 움직이는 것이 없고[不動], 말하는 것이 없고[不言], 드러나는 것이 없는 것[不顯]이다.[2]

안회는 이것을 터득하여 ‘자기의 감정을 남에게 옮기지 않았고 한 번 실수한 것을 다시 반복하지 않았다’[不遷不貳]. 이는 ‘물’(勿)을 통하여 ‘불’(不)에 이른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예(禮)에 맞지 않는 것은 보지 않고 듣지 않았다’[勿視勿聽]. 이는 ‘불’(不)을 통하여 ‘물’(勿)에 이른 것이다.[3] 이는 영원히 뛰어난 학문이다. 오직 안회만이 이것을 이루었다고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 안회가 죽자 그 학문은 마침내 없어졌다. 그래서 공자는 안회가 죽은 뒤에 안회만큼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을 아직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증자(曾子)나 맹자도 이것을 터득하지 못했는데, 하물며 염계(濂溪)⋅낙양(洛陽) 군자[4]라는 사람들은 말할 것이 있겠는가?

그들은 이것을 터득하지도 못한 채 경솔하게 ‘사물’(四勿)을 말했다. 이로써 그들은 자기의 역량을 모른다는 것을 많이 보여주었을 뿐이다. 그저 널리 주해(註解)를 달아서, 여러 학자들에게 바로잡아 주기를 청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안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예(禮)라고 하고,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것을 ‘비례’(非禮)라고 한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을 예(禮)라고 하고, 사람으로부터 얻은 것을 ‘비례’(非禮)라고 한다. ‘불학(不學)⋅불려(不慮)⋅불사(不思)⋅불면(不勉)⋅불식(不識)⋅부지(不知)’를 통해서 이르는 것을 예(禮)라고 하고, 귀와 눈을 거쳐 듣고 보고, 마음으로 헤아리고 따져보고, 앞사람이 말한 것을 따라 행하면서 비슷하게 되려고 하는 것을 통해 이르는 것을 ‘비례’(非禮)라고 한다. 이렇다 저렇다 말로 설명할 길이 끊기고, 마음으로 무엇을 행하겠다 하여도 길이 끊기고, 혹시 있으면 따라갈까 하면서 찾아볼 오솔길도 없고, 따라갈 길이나 바퀴자국도 없고, 지켜야 할 울타리나 경계선도 없고, 한정지을 경계나 정량도 없고, 열어야 할 창이나 자물쇠가 없으면,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사물’(四勿)을 깨우치게 된다.[5] 이 경지에 도달하지도 않고 경솔하게 ‘사물’(四勿)을 말하므로, 성인은 이러한 사람들을 ‘학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평가한 것이다.(권3)


 [1] 안회(顔回)가 실천했다는 ‘예(禮)에 맞지 않으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움직이지도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는 네 가지를 ‘사물’(四勿)이라고 한다.

 [2] 여기서 이지가 해석한 사물(四勿)․사절(四絶)․사무(四無)․사불(四不)은 공통적으로 자기의 견해와 입장에 아무리 신념이 있다 해도 그것을 모든 것에 적용시키려는 고집․집착 등에서 벗어나 자아를 버리고 만물과 동화(同化)를 이루는 것을 지향한다.

 [3] 같은 부정어이지만, ‘물’(勿)과 ‘불’(不)은 어감이 다르다. ‘물’은 ‘~하지 말라’는 뜻으로, 외부에서 가해지는 명령의 어감을 지니고, ‘불’은 ‘~하지 않다’는 뜻으로, 자신의 내부로부터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 어감을 지닌다. 여기서 이지는 아무리 훌륭한 덕목이라 할지라도 외부에서 가해지는 제약에 따라서 예에 맞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은 결국 남의 것이므로, 스스로 체득해서 즉 자기화해서 예에 맞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요체임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말미의 결론을 통해 보면, 이지는 궁극적으로 ‘물’과 ‘불’의 단계를 넘어서 완전히 자기와 하나가 되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보았다.

 [4] 염(濂)⋅낙(洛)은 북송(北宋) 이학(理學)의 양대 학파를 일컫는 말로, 염계(濂溪)의 주돈이(周敦頤)와 낙양(洛陽)의 정호(程顥)․정이(程頤) 형제로부터 비롯되었다.

 [5] 사람이 각자가 추구하고 지켜야 할 도란 말로 설명하려 해도 설명할 수 없고, 어떻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려 해도 그 길을 모르고, 이미 예전 사람들이 갔던 길을 따라가는 것으로도 되지 않는 것이어서, 어떻게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각에 의하여 자기와 하나가 되는 것이라야 한다는 말이다.

卷三 雜述 四勿說

人所同者謂禮,我所獨者謂己。學者多執一已定見,而不能大同于俗,是以入于非禮也。

蓋禮之禮,大人勿為;真己無已,有己即克。此顏子之四勿也。是四勿也,即四絕也,即四無也,即四不也。四絕者,絕意、絕必、絕固、絕我是也。四無者,無適、無莫、無可、無不可是也。四不著,《中庸》卒章所謂不見、不動、不言、不顯是也。顏子得之而不遷不貳,則即勿而不,由之而勿視勿聽,則即不而勿。此千古絕學,惟顏子足以當之。顏子沒而其學遂亡,故曰“未聞好學者”。雖曾子、孟子亦已不能得乎此矣,況濂、洛諸君子乎!未至乎此而輕談四勿,多見其不知量也。聊且博為注解,以質正諸君何如?

蓋由中而出者謂之禮,從外而入者謂之非禮;從天降者謂之禮,從人得者謂之非禮;由不學、不慮、不思、不勉、不識、不知而至者謂之禮,由耳目聞見、心思測度、前言往行、仿佛比擬而至者謂之非禮。語言道斷,心行路絕,無蹊徑可尋,無塗轍可由,無藩衛可守,無界量可限,無扃鑰可啟,則于四勿也當不言而喻矣。未至乎此而輕談四勿,是以聖人謂之曰:“不好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