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구천현녀는 천서 일곱 권을 가르치고
태청도조는 단약 세 알을 하사하다
九天玄女敎天書七卷, 太淸道祖賜丹藥三丸
원래 묘고는 집에 돌아간 뒤에 부모가 곧바로 혼처를 정해서 이미 양가의 합의가 끝난 상태였다. 하지만 묘고가 거절하며 그날 밤에 스스로 목을 매었고, 간신히 구해 내자마자 머리카락을 자르고 고운 얼굴을 손상시킨 채 밤낮으로 통곡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이렇게 달랬다.
“조카인 새아도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지금은 이미 남편이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는 왜 굳이 스스로 평생을 망치려 드는 게야?”
“거기는 빚을 갚아야 하지만 저는 남한테 신세 진 게 없어요!”
얼마 후 임 도령이 죽자 묘고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어때요? 빚을 갚고 나니 바로 떠났군요. 저도 이제 새아 언니랑 한마음으로 도를 공부할래요.”
부모가 보내 주려 하지 않자 또 죽느니 사느니 난리가 벌어졌다. 요 수재는 도무지 방법이 없어서 그저 이 딸을 낳지 않은 셈으로 치고, 또 혼수비용을 아꼈으니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하여 제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묘고는 즉시 부모님께 작별인사를 하고 당새아의 집으로 와서, 그녀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이제부터 영원히 언니 시중을 들 거예요!”
그리고 엎드려 절을 올린 후 전후 사정을 자세히 얘기했다. 당새아는 무척 기뻐하며 유모와 만다니에게 데려가서 인사를 시켰다. 그리고 들보 위의 천서와 보검을 보여주며 일일이 설명해 주었다. 이어서 유모가 말했다.
“곧 현녀낭낭께서 왕림하시어 천서를 가르치실 텐데, 네가 언니 시중을 들면서 미묘한 이치를 귀동냥하게 된다면 그것도 좋겠지.”
묘고는 무척 기뻐했다. 당새아가 두 선사에게 물었다.
“이곳은 속세의 누추한 거처인데, 어떻게 감히 현녀낭낭의 행차를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유모가 말했다.
“내가 진즉 생각해 둔 바가 있다. 여기는 바다에서 멀지 않고 그곳 용왕은 만다니의 시아버지가 아니냐? 그러니 옛 며느리를 시켜서 궁전을 몇 개 빌려 바닷가로 옮기고 밤이슬로 숨겨 놓으면 속세와 격리되지 않겠느냐?”
만다니가 말했다.
“할망구가 또 미쳤구먼! 자네가 용왕의 딸한테 중매를 서서 괜찮은 사윗감을 붙여 준다 해도 방 한 칸조차 빌리지 못할 걸? 결국 남들 앞에 얼굴조차 들지 못하는 꼴이 될 게야.”
“무슨 발뺌이야? 부부가 혼례를 올리고 나면 바로 중매쟁이를 냉대하기 때문에 중매쟁이를 ‘빙인(氷人)’이라고 부르는 거 아냐?”
당새아가 유모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태평광기(太平廣記)》나 《염이편(豔異編)》, 《광여기(廣輿記)》에 기록된 유모의 행적이 모두 진짜라는 거예요?”
“다 사실이지. 다만 평범한 인간들이 목격한 게 적어서 쥐구멍 속 생쥐가 밖을 보거나 우물 안의 개구리가 하늘을 보듯이 식견이 좁을 뿐이지. 그래서 소문을 듣거나 직접 보지 못한 것들은 바로 의심하는 거야. 옛 시에 ‘산속에서 겨우 이레를 지냈는데, 인간 세상에서는 몇 천 년이 지났구나.[山中方七日, 世上幾千年]’라고 했듯이, 신선이 보기에 인생 백년은 아침에 태어나서 저녁에 죽는 하루살이와 다를 바 없지. 그러니 인간의 견문이 많아 봐야 얼마나 되겠어?”
취운 등이 의심하는 듯한 표정을 짓자 만다니가 그들을 향해 말했다.
“지금 용왕에게 궁전을 빌리려는 얘기를 하고 있지만, 너희들이 저쪽에 가면 속으로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할 테니 후세 사람들이 어찌 믿을 수 있겠어?”
그러면서 다시 노매를 가리키며 말했다.
“쟤도 믿지 못하니, 함께 데려가야 되겠구나.”
노매가 무척 기뻐했다.
“어떻게 데려가실 건가요?”
“먼저 용을 두 마리 잡아서 그걸 타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야지.”
그러면서 노매에게 대나무 장대 하나와 나뭇가지 하나를 가져오라고 했다. 만다니가 먼저 대나무 장대를 손들 들고 문지르면서 입김을 불자 그것이 작은 청룡으로 변했다. 또 나뭇가지를 쓰다듬자 백룡으로 변했다. 잠시 후 비늘이 찬란히 빛나고 눈동자가 불룩 튀어나오고 다섯 발가락이 생겨나더니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녀들이 모두 놀라 말찌감치 피했다. 노매는 잠깐 유심히 쳐다보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런 용은 헌원황제(軒轅黃帝)나 타는 것이지 저는 기껏 그 분의 신하에 지나지 않아서 용의 수염에 매달려 울어 대기나 할 뿐이지, 용을 탈 복이 어디 있겠어요?”
그 말에 당새아와 묘고가 폭소를 터뜨렸다.
결국 만다니가 청룡을, 유모가 백룡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라 달빛 속에서 곧장 동해로 들어가 파도를 뒤집으로 나아갔다. 바다를 순찰하던 야차(夜叉)가 다가와 물었다.
“어느 곳에서 오신 신선이신지요? 말씀해 주시면, 용왕님께 보고하겠습니다.”
유모가 말했다.
“한 쪽은 남해 관음보살의 법지를, 한 쪽은 요지 서왕모의 법지를 받들어 용왕을 만나려 하니, 속히 나와서 맞이하라고 해라!”
야차가 나는 듯이 용궁으로 달려가 보고했다. 잠시 후 용왕이 아들손자들을 거느리고 나왔다. 두 마리 가짜 용은 진짜 용을 보자 곧 본래 모습을 드러냈다. 용왕은 두 신선을 알아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고 보니 가짜였구먼.”
만다니가 발끈했다.
“설마 우리가 받은 법지도 가짜란 말씀이시오? 게으른 용이 너무 상대를 무시하는구나!”
용왕이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용궁의 대전으로 안내하고, 향안(香案)을 마련하라고 분부했다. 그러자 만다니가 말했다.
“상제의 칙지가 아닌데 무슨 조서(詔書) 같은 게 있겠습니까? 용왕께서도 너무 늙어 총기가 흐려지신 모양이군요!”
“그럼 말씀으로 전해 주시구려.”
유모가 말했다.
“그대는 동해 용왕이니 포대현에 태음낭낭이 인간 세계로 내려오셨다는 얘기를 들으셨을 것이오. 이는 상제의 칙명에 따라 재난의 운수를 없애는 여주(女主)가 되기 위한 일이오. 그러니 그대 또한 태음낭낭의 관할에 속하오. 이제 남해 관음보살께서 만다니 선사에게 천서 일곱 권을 하사하셨고, 요지의 서왕모께서 구천현녀낭낭께 청하여 인간 세계로 친히 내려와 천서의 내용을 설명하여 전수해 주도록 하셨소. 그런데 저자의 건물이 정결하지 못해서 용궁의 건물을 하나 빌려 잠시 바닷가로 옮겼으면 하오. 백일을 넘기지 않고 모든 일이 끝날 것이니, 그 뒤에는 원래대로 용궁으로 돌려줄 것이오. 방세를 내라고 한다면 관례에 따라 지불하겠소. 어떻소이까?”
용왕은 연신 “어찌 감히!” 하더니 이렇게 물었다.
“두 선사께서 왕림해 주셨으니 어찌 분부를 따르지 않을 수 있겠소이까? 오늘 밤중으로 옮겨 놓으면 되겠지요?”
“현녀낭낭께 따로 분부를 청해서 강림하실 날짜를 확정하고, 사흘 전에 용왕께도 통지해 드리겠소.”
용왕은 공손히 응낙했다.
두 선사가 일어나려 하자 용왕이 재삼 만류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을금(鬱金)으로 빚은 술을 한 잔 마셔야 했다. 용왕은 더위를 피하는 피서주(避暑珠) 한 알과 먼지를 막는 코뿔소 뿔인 피진서(避塵犀) 하나를 꺼내어 두 선사에게 맡기며 태음낭낭에게 드리는 자그마한 성의라며 전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두 선사에게는 통천서(通天犀)와 산호수(珊瑚樹)를 하나씩 선물했다. 그러자 만다니가 말했다.
“쳇! 이따위 걸 배웅 선물이라고 주다니, 과연 용왕다우시군요!”
그들은 당새아에게 전해 달라는 두 가지 선물만 챙기고 작별했다. 용왕이 용궁 밖으로 나와 전송하자 만다니가 말했다.
“내가 만든 가짜 용이 사라져 버렸으니 진짜 용 두 마리만 내어 주셔요. 타고 가야 하지 않겠어요?”
“가짜는 사람이 몰 수 있지만, 진짜는 일단 용궁 밖으로 나가면 구름과 비가 따를 게요. 그러면 어린 용들이 하늘과 땅을 놀라게 하는 큰 죄를 짓게 되지 않겠소?”
“그럼 용을 타고 왔는데 걸어서 돌아가라는 건가요?”
“저번처럼 변하게 하면 되지 않겠소?”
“댁의 못난 얼굴을 빌리고 싶은 생각은 없네요!”
그러면서 대나무와 나뭇가지를 두 마리 해마(海馬)로 변신시켜서 그걸 타고 바다를 나갔다.
당새아와 묘고 등이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때, 동남쪽에서 신령한 바람이 일어나더니 구름 한 조각이 날아왔다. 유연 등이 둘러서서 무릎을 꿇으며 맞이하자, 유모와 만다니가 구름을 내렸다. 당새아가 물었다.
“어떠게 용을 타고 바다로 들어가셨는데 말로 변했어요?”
만다니가 대답했다.
“이건 그놈들이 낳은 준마[龍駒]야.”
노매 등은 그 말이 진짜라고 여기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진짜 이상하게 생겼네! 보살님들, 한 필만 선물로 주시면 안 될까요? 이걸 타면 구름을 타는 기분이 들겠네요.”
만다니가 말했다.
“이 말이 마침 구름 위로 오르고 싶어 하니 이 청백(靑白)의 털이 뒤섞인 놈을 너한테 주마.”
노매가 뛸 듯이 기뻐하며 즉시 말에 올라타자, 만다니가 호통을 쳤다.
“올라가라!”
말은 순식간에 지붕 처마까지 올라가더니 갑가기 허리가 휘청거리면서 머리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노매를 바닥으로 팽개칠 뻔 했다.
“아이고, 쓰러지겠어요! 공중에서 내던지면 이 몸이 예닐곱 조각이 나 버릴 거예요. 보살님, 제발 내려 주셔요. 다시는 태워 달라고 하지 않을게요!”
모두들 배꼽을 잡고 웃어 대자, 만다니가 다시 소리쳤다.
“내려와라!”
그 말은 땅에 내려오자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노매가 침을 탁 뱉으며 투덜거렸다.
“알고 보니 이놈의 대나무 장대였군! 흥! 네까짓 게 감히 사람을 속여?”
그때 두 선사는 이미 방으로 들어가서 피서주와 피진서를 당새아에게 건네주었다.
“용왕이 선물한 토산품이다.”
“궁전을 빌렸는데 오히려 선물을 받는다니, 이럴 수 있나요?”
유모가 말했다.
“오늘 용왕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는구나? 이 할망구가 발작을 일으키는 바람에 그저 허리를 숙인 채 ‘예, 예!’ 할 수밖에 없었지. 며느리 기분을 거스르면 시아버지가 무섭지 않겠어?”
“정말 사부님이 용왕과 인척관계인가요?”
만다니가 말했다.
“저 망할 놈의 주둥이! 예전에 용왕이 매파를 보내 말썽 많은 자기 아들과 결혼해 달라고 청하자 내 언니가 이랬지. ‘짐승 따위가 어찌 감히 허튼 소리를!’ 그러면서 용궁을 뒤집어 버리려고 했지. 내 전각에 있던 명주는 용왕이 사죄 예물로 보낸 거야. 그러니 감히 나를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겠어?”
유모가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용궁을 빌리는 데에 자네한테 신세를 많이 졌구먼. 앞으로 또 신선을 모셔 올 일이 있을 때 또 부탁해도 되겠지?”
“찰마성주(刹魔聖主)를 부르려 한다는 걸 나도 아네. 하지만 쉽지 않을 거야. 그 아래에 팔백 명의 마왕들과 팔십만 명의 마병(魔兵)들이 있으니, 행차를 따라 나서 의장을 갖추면 천지가 놀라 진동할 걸세. 게다가 지낼 궁전이며 대접할 진수성찬도 없지 않은가? 그 휘하의 노비들도 걸핏하면 사람의 심장과 간을 씹어 먹으려 든단 말이지. 신선도 그를 보면 무서워하는데, 그는 또 신선을 보면 더욱 화를 내며 싫어하지. 귀모천존(鬼母天尊)이 인간 세상에 내려오신 후라면 누구든 친한 이를 보내서 데려올 수 있겠지만.”
당새아가 말했다.
“어째서 귀모천존하고만 친하지요?”
유모가 말했다.
“찰마성주는 그 분의 조카야. 그러니까 귀모성주가 그의 고모라서 담판을 짓는 데에 유리하지. 하지만 그 면에서는 만다니도 조금 실력이 떨어져서 감히 데리러 가지도 못하지.”
만다니가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갈홍하고 해 볼 만하겠군!”
그 말에 하녀들도 폭소를 참지 못했다. 당새아가 호통을 쳐서 멈추게 하고 두 선사에게 물었다.
“제가 후한 예물을 준비해서 모시러 가면 어떨까요?”
만다니가 말했다.
“찰마성주는 상제보다 더 부자라서 용궁 창고에 있는 것들이며 진귀한 보물들 가운데 없는 게 없지. 부하들에게 상을 내릴 때에도 여차하면 천만 금을 쓰는지라 청정하고 가진 게 없는 승려나 도사, 인색한 유생들하고는 비교할 수 없어. 그러니 예물을 보낸다느니 하는 얘기는 다시 꺼내지도 마.”
유모가 말했다.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내가 구천현녀낭낭께 다녀오겠네. 자네는 그 지살(地煞)의 변화를 써서 우선 여기서 초보적인 것들을 가르쳐 연습하도록 해 주게. 그런 뒤에 훌륭한 사부를 모시게 하면 되겠지.”
당새아는 무척 기뻐하며 밀실 세 칸을 청소하게 하여 만다니의 가르침을 받았다. 아울러 묘고와 유연, 노매도 각자 자질에 따라 술법을 가르쳐서 당새아를 수행하기 편하게 했다.
며칠 후 유모가 돌아와서 말했다.
“현녀낭낭께서 4월 9일에 강림하시겠다고 하셨다. 내가 이미 용궁에 들러 용왕에게 궁전을 바다 서쪽 물가로 옮겨 놓으라고 해 놓았다. 그러니 오늘밤 나하고 묘고를 보내야 되겠다. 정성껏 귀의하는 마음으로 천존께서 강림하시기를 기다리도록 해라. 그런데 묘고를 구름에 태워 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구먼.”
만다니가 말했다.
“묘고라면 청룡이든 백룡이든 해마든 다 탈 수 있지!”
유모가 쌀쌀하게 말했다.
“차라리 나귀를 타는 게 더 안전하지.”
“흥! 나는 그런 걸로 변신시킬 재주는 없다네!”
“호호, 자네가 판교(板橋)의 셋째 아주머니도 아닌데 나귀로 변신시킬 수 있을까? 대머리야 본래 까까중[秃驢]이고, 따로 만들지 않아도 이미 많이 있으니, 그들더러 태우고 가라고 하지 뭐. 어쨌든 천서를 가르치는 것을 귀동냥이라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야.”
만다니 순간적으로 대답이 궁했지만 이내 버럭 화를 냈다.
“감히 아무에게나 천서의 내용을 듣게 하려는 게야?”
그러자 당새아가 물었다.
“그럼 두 분은 함께 가시지 않나요?”
유모가 대답했다.
“옥갑 속의 천서는 도조(道祖)의 비법이라서 관음보살이 아니면 감히 가져올 수 없고, 현녀낭낭이 아니면 감히 가르칠 수 없고, 상제의 칙지를 받든 이가 아니면 감히 전수받을 수 없어. 묘고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래도 같이 가도 괜찮은 거야. 나하고 만다니는 들어 보지 못했기 때문에 현녀낭낭을 모셔온 것이지.”
당새아는 그제야 대라선(大羅仙)도 천서의 내용을 들어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에 그녀는 묘고와 함게 두 선사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천서와 보검을 받든 채 유모의 인도를 받아 곧장 바닷가 궁전으로 갔다. 그곳은 사방이 모두 구름과 노을로 덮여 있었고, 알고 보니 궁전이 공중에 떠 있었다. 그 안쪽 중앙에는 커다란 구슬이 걸려 있고, 네 귀퉁이에도 각기 오색의 명주(明珠)가 걸려 있었다. 위쪽에는 침향목(沈香木)에 칠보(七寶)를 장식한 침대와 가남목(伽南木)에 다섯 종류의 옥을 장식한 궤안(机案)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책상 위에는 석 자 높이의 산호 두 개와 저절로 타는 향로 하나가 놓여 있었다. 수정으로 만든 작은 상자에는 자반향(鷓斑香)이 가득 담겨 있었고, 자줏빛 옥으로 만든 쟁반에는 이무기 모양의 초가 꽂혀 있었다. 또 교어(鮫魚)가 짜서 바느질 자국이 없는 반룡자초장(蟠龍紫綃帳)이라는 휘장이 하나 걸려 있고, 바닥에는 염교 잎으로 짠 삿자리인 해엽점(薤葉簟)이 깔려 있는데, 모든 것이 다 반듯했다. 사방을 둘러보니 또 화리목(花梨木) 뿌리로 만든 천연의 등받이의자도 두 개가 있었다. 유모가 말했다.
“용왕이 확실히 요령이 있구먼.”
잠시 후 유모는 당새아와 작별하고 떠났다.
한편 당새아와 묘고는 매일 한밤중까지 북쪽을 향해 경건히 절을 올리고, 인시(寅時: 새벽 3~5시)가 되면 또 절을 올렸다. 그들이 매일 먹는 것은 모두 용왕이 보내 주었다. 초아흐레가 되자 당새아와 묘고는 모두 남쪽을 향해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올렸다. 잠시 후 멀리서 수많은 오색구름이 피어나 바다 위를 날아오는데 은은한 신선의 음악이 울리면서 어느새 난여(鑾輿)의 선두에서 인도하는 의장대가 도착하여 무지개 깃발과 푸른 덮개, 붉은 수실이 달린 신선의 깃발들이 달과 별 사이에서 선회하는데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헤아릴 수 없었다. 잠시 후 그것들이 숙연하게 두 줄로 늘어서자 자줏빛 봉황을 탄 구천현녀가 주작(朱雀)안 붉은 오리[紅鳧], 황학, 하얀 원추새[素鵷] 등을 탄 선녀들을 거느린 채 공중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앞에 선 두 선녀는 각기 용의 수염으로 만든 먼지떨이와 요광검(瑤光劍)을 받들었고, 두;쪽의 두 선녀는 각기 구채란우선(九彩鸞羽扇)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당새아가 공손히 맞이했다.
“신 당훤이 삼가 성스러운 행차를 맞이하나이다.”
구천현녀는 궁전 앞에 이르자 분부를 내렸다.
“일어나라, 달의 신 월군(月君)이여. 선계의 관리들은 잠시 물러가라.”
그리고 남쪽을 향해 자리에 앉아 당새아와 묘고가 올리는 아홉 번의 큰절을 받고 나자, 구천현녀가 선녀들에게 분부했다.
“내 옆에 월군이 않을 자리를 마련해 주어라.”
그러자 당새아가 말했다.
“저는 응당 이대로 무릎을 꿇은 채 경청해야 마땅하옵니다.”
구천현녀가 선녀에게 분부하여 당새아를 부축하여 자기 옆자리에 앉히자 묘고가 그 옆에 시립했다. 구천현녀는 궤안에 놓인 천서와 보검을 보고는 곧 옥 상자를 가볍게 쪼개서 천서 일곱 권을 꺼내 궤안 위에 놓고 당새아에게 물었다.
“천서의 유래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느냐?”
“예전에 광한궁에 있을 때에도 몰랐는데 하물며 인간 세계로 내려온 상황이니 어찌 알겠사옵니까? 성은을 베푸셔서 가르쳐 주시옵소서.”
“일어서라. 이후로는 선 채로 들으면 된다. 도가에는 세 상자[笈]의 천서가 있으니 불가에 삼승(三乘)이 잇는 것과 마찬가지이지. 이 천서는 도조(道祖)이신 영보천존(靈寶天尊)께서 만드셨지. 상제께서 가져와 보라고 청하시자 미라보각(彌羅寶閣)에 보관하시고 짐에게 여러 차례 그것을 가르치게 하셨기 때문에 칙령을 받들어 전수하곤 했다. 천지가 개벽한 이래 오직 헌원황제만이 맨 아래 상자에 든 책을 전수받아 치우(蚩尤)를 평정했고, 태공(太公) 강자아(姜子牙)는 겨우 반만 전했는데도 《음부(陰符)》를 저술했지. 하지만 황석공(黃石公)과 제갈량(諸葛亮), 그리고 청전현(靑田縣)에 사는 강자아의 후손들이 얻은 것은 그 책의 내용을 열이라고 했을 때 겨우 두셋에 지나지 않지만 모두 제왕을 가르치는 스승 노릇을 하기에 충분했지. 맨 아래 상자의 천서는 육정육갑(六丁六甲)과 기문둔술(奇門遁述), 포진행군(布陣行軍)의 비법을 담고 있다. 중간 상자의 천서에는 천강(天罡)과 지살(地煞), 장소와 모습 등을 바꾸는 108종의 기묘하고 오묘한 변화가 들어 있어. 진실한 사람이 이걸 얻으면 하늘과 땅을 오가고 안개와 구름을 몰고 다니면서 생사를 초탈하여 신선의 경지로 들어가는 입문의 방법으로 쓸 수 있지. 하지만 사악한 사람이 얻으면 그걸 이용하여 세상을 미혹하고 나라를 어지럽히다가 결국 천벌을 받게 되지.”
그리고 맨 위쪽 상자의 천서를 한 권씩 가리키며 알려주었다.
“제1권은 해와 달을 뒤쫓고 별자리를 바꾸고 우레와 벽력을 다루는 신장(神將)을 소환하는 법이다. 제2권은 바다를 뒤집고 산을 옮기며 숲을 내몰고 바위를 채찍질하여 땅의 신 지지(地祗)를 부리는 법이다. 제3권은 마왕을 소탕하고 요괴를 처단하며 용과 호랑이를 굴복시키는 법이다. 제4권은 강과 바다를 건너고 쇠와 돌을 뚫고 지나며 기름이 펄펄 끓는 솥에 들어가서도 멀쩡하고 칼날을 맞아도 다치지 않는 법이다. 제5권은 하늘과 땅을 축소시켜 병 안에 담고, 산과 강을 바늘 끝에 거둬들이는 법이다. 제6권은 산천을 손바닥에 얹어 마음대로 주무르고 허공중에 누각을 짓는 법이다. 제7권은 인간 세상에서 감정과 형체를 지닌 모든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법이다. 맨 위쪽 상자에 담긴 천서는 현묘하기 그지없어서 오행을 소멸시키고 만겁(萬劫)의 재앙에서 초탈할 수 있게 해 준다. 오직 두모천진(斗姥天眞)이나 서왕모만이 이러한 신통력을 지니고 있을 뿐 나머지 신선들은 모두 이것에 대해 듣도 보도 못했느니라. 너는 이 살겁(殺劫)을 관장해야 하니 단지 맨 아래 상자의 천서만 전수해 주어야 마땅한데, 남해 관음보살이 상제께 아뢰어서 맨 위쪽 상자의 천서까지 전수해 줄 수 있게 되었으니, 이를 잊명심하고 열심히 익히도록 해라.”
당새아가 다시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저같이 보잘것없는 몸에게 관음보살께서 크나큰 은혜를 내려 주시고 천존께서 강림하셔서 친히 가르쳐 주시니 망극하옵니다. 그저 영원히 큰절을 올려 감사하겠노라 다짐할 따름이옵니다.”
“일러 둘 게 또 있으니 잘 들어 두어라. 무릇 재앙의 운수가 도래하면 백성은 칼날의 참화를 겪어야 마땅하지만 가련히 여길 만한 이에게는 아량을 베풀도록 해라. 이 또한 생명을 아끼시는 상제의 덕에 부합하는 일이다. 성을 공격하거나 땅을 공략할 때에는 반드시 병사와 병사, 장수와 장수를 맞붙이도록 하고, 지모(智謀)를 쓰는 것은 괜찮지만 도술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혹시 상대편에 술법을 쓰는 사람이 있을 때에만 이 금기를 깨는 것을 허락한다. 혹시 위험에 빠져 곤란한 상황에 처할 때에 임기응변의 수단을 써도 된다. 이 외에는 도술을 써서는 안 된다. 이 천서에 따라 행한다면 어떤 난관이라도 전화위복으로 뒤집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을 명심할 지어다!”
당새아가 고개를 조아려 감사했다. 구천현녀는 다시 당새아에게 궤안 앞으로 오라고 한 뒤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월군이여, 너에게 천서의 대의(大義)를 알려주마. 예를 들어서 제1권에서 해와 달을 뒤쫓는다고 했는데, 어떻게 하는지 보자. 대개 해와 달이 운행하는 것은 모두 ‘일기(一炁)’의 운동에서 비롯된다. 도가에서는 ‘진기(眞炁)’를 수양하여 하늘과 덕을 합치시키므로 하늘의 ‘일기’가 나를 위해 존재하게 되니 해와 달을 거꾸로 운행하게 할 수 있고 별들의 위치를 바꿀 수 있다. 노양공(魯陽公)이 전투가 무르익을 때 창[戈]을 휘두르며 해에게 호통을 치자 해가 삼사(三舍) 즉 90리나 뒤로 물러났다. 그의 용기로도 그것이 가능했는데 하물며 높은 신선의 기(炁)로 어찌 불가능하겠느냐?
신장을 소환하는 일은 중간 상자의 천서에도 들어 있으니, 모두가 신령한 부적과 진언(眞言)을 쓰는 것으로서 도조(道祖)의 율령(律令)을 받들며 빌려 쓴다. 이것은 오로지 자신의 신(神)을 운용하는 데에 달려 있으니, 신광(神光)을 한 번 비추면서 명호(名號)를 외치면 어떤 신령이라 할지라도 마음대로 소환할 수 있다.
제2권에서 바다를 뒤집고 산을 옮긴다고 했는데, 이것은 신통력을 쓰는 것이다. 산을 옮기려면 거령신(巨靈神)을 부려야 하고, 바다를 뒤집으려면 독룡(毒龍)을 다그쳐야 하지.
제3권에서는 용과 호랑이를 굴복시킨다고 했는데, 용과 호랑이는 금(金)과 목(木)의 두 기(炁)이기 때문에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르지. 그저 ‘진기’를 써서 호통을 한 번 치면 금과 목이 모두 소멸되기 때문에 항복시킬 수 있는 것이다. 마왕(魔王)은 우습게 여겨서는 안 되고, 반드시 자신의 도덕으로 누를 수 있거나 신통력으로 이길 수 있고, 아니면 변화를 더 강력하게 해 낼 수 있는지 헤아려 본 뒤에야 제압을 시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라도 마왕에게 패하게 된다. 네가 도를 수행한 정도로는 아직 마왕에 미치지 못하지.
제4권에서 가르치는 것은 신선이 발휘할 수 있는 무상(無上)의 능력이다. 강과 바다에 들어가지만 물에 젖지도 않으니 중간 상자의 천서에 들어 있는 것처럼 손가락을 짚어 물을 피하는 피수결(避水訣)을 만드는 것과는 다르다. 그리고 쇠와 돌을 뚫고 지나도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오둔(五遁)’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기름이 펄펄 끓는 솥에 들어가도 마치 텅 빈 공간에 떨어진 것처럼 멀쩡한 것도 냉룡(冷龍)을 시켜 막는 술법이 아니고, 칼날을 맞아도 다치지 않는 것은 형체를 숨기고 정신이 빠져나와 피하는 것이 아니니,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수련을 해야 한다. 이 또한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5권에서는 하늘과 땅을 축소시켜 병 안에 담는다고 했는데, 병에 들어가도 당연히 동천(洞天) 있으니 진짜로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다. 산과 강을 바늘 끝에 거둬들인다고 했는데 바늘 위에 따로 산천이 나타나니, 이 역시 진짜로 거둬들이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지극히 미세한 것에서 지극히 큰 법력(法力)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제6권에서는 산천을 손바닥에 얹어 마음대로 주무른다고 했는데, 이것은 ‘진기’로 변화시켜야 할 수 있다. 허공중에 누각을 짓는 것은 ‘진기’로 구름과 노을, 연기, 안개를 호흡하여 엮어 내는 것으로서 오직 신선만이 거기에 살 수 있다. 평범한 사람은 태산보다 무거우니 거기에 올라갈 수 없다. 중간 상자의 천서에도 허공중에 누각을 짓는 법이 들어 있지만 이것은 거령신을 시켜서 운반해 온 것인지라 바깥에서 구한 것이다. 이런 것은 평범한 사람도 살 수 있는 건물이다.
제7권에서는 감정과 형체를 지닌 것들을 변화시킨다고 했는데, 이것은 신통력을 극한까지 확대한 결과이다. 진짜 호랑이도 개로 변화시킬 수 있고, 까치도 봉황으로 사람도 가축으로 변화시킬 수 있으니, 그 변화가 무궁하다. 중간 상자의 천서에 담긴 술법은 그저 무정한 사물만을 변화시킬 수 있으니 예를 들어서 호공(壺公)이 대나무 지팡이를 용으로 변화시키고, 장과로(張果老)가 술통을 도동(道童)으로 변화시킨 것 등이 이것이지.
만다니가 이미 네게 중간 상자의 천서에 들어 있는 여러 술법을 전수해 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이제 짐이 맨 위쪽 상자의 천서에 들어 있는 것을 전수해 주마. 도조(道祖)의 정미(精微)한 공부를 모두 터득한다면 나중에 도교를 관장하는 교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비결을 익숙하게 연습하는 것은 차례대로 진행할 것인데, 먼저 신장을 소환하는 것부터 시작하자꾸나.”
당새아는 다시 무릎을 꿇고 설명을 들었는데, 그것은 오경(五更)이 되어서야 겨우 끝났다. 구천현녀가 말했다.
“구구 팔십일일 동안 성심을 다해 운공(運功)해야 충분히 익힐 수 있을 게다. 짐은 아흐레마다 한 번씩 와서 한 편씩 설명해 주겠다. 시녀는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자 공중에서 신장이 내려와 묘고를 데려갔다. 구천현녀는 또 벽곡단(辟穀丹)을 한 알 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백일 동한 화식(火食)을 하지 않으면 운공의 효과가 더욱 배가될 게다.”
당새아는 단약을 먹고 머리를 조아리며 물었다.
“신장을 부르려면 어떻게 조치해야 하옵니까?”
“중간 상자의 천서 안에도 부적과 주문을 통해 소환하는 법이 들어 있는데, 거기에는 반드시 율령(律令)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신(神)을 운용하여 소환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먹은 대로 불러오고 물러나게 할 수 있으니, 무슨 조치 같은 게 필요하겠느냐?”
잠시 후 기이한 향기가 풍기더니 구천현녀를 영접하러 온 신선 관료가 도착했다. 구천현녀가 다시 당부했다.
“경건한 마음으로 성실히 천서를 보관하라. 나도 용맹한 장수 네 명을 파견하여 나도 예측하지 못한 마귀나 요괴가 천서를 훔쳐 가려 할 수도 있는 사태에 대비해 바깥을 순시하도록 하겠다. 아무튼 네 복에 달린 일이겠지만 말이다.”
당새아가 엎드려 절을 올려 전송하자 구천현녀는 바람을 밟고 노을을 몰아 떠나갔다. 당새아는 그저 그 가르침에 따라 지극한 성정으로 익히고 수련했는데, 참으로 타고난 근기(根基)가 특별히 영통하여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거나 놓치는 부분이 없었다.
아흐레가 지나자 구천현녀가 행차했는데, 당새아가 천서 제1권의 오묘한 뜻을 모두 정심하게 익힌 것을 알고 무척 기뻐하면서 제2권의 비법을 전수했다. 이후로 아흐레마다 왕림하여 강의해 주었는데, 그 때마다 반드시 하룻밤을 꼬박 샜다. 구구 팔십일의 수가 다 채워지자 당새아가 아뢰었다.
“알고 보니 일곱 권의 천서는 모두 일관된 묘용(妙用)을 담고 있음을 확인했사옵니다.”
“그러하다. 너의 신통력은 이미 여러 대라선(大羅仙)들보다 뛰어나지만 실행하는 법을 계속 연마하여 유지시켜야 할 것이다. 짐은 이제부터 검술을 전수하겠다.”
그러면서 구천현녀가 보검을 손에 쥐고 말했다.
“이 검은 백 리를 날아가 사람의 수급(首級)을 취할 수 있으니, 협객들이 쓰는 보통의 검은 특별하다고 할 것도 없지.”
그리고 마치 대나무 가지를 죽죽 쩍쩍 쪼개서 수박씨처럼 만들더니, 그것들을 모두 입으로 삼켜 단전(丹田)까지 내려가게 했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한참 동안 앉아 있더니 살짝 입을 벌리고 숨을 내쉬자 길이가 일고여덟 자쯤 되는 한 줄기 푸른 기운이 공중을 맴도는데, 마치 용이 무언가를 낚아채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것을 잠시 공중에서 춤추듯이 날아다니게 하다가 다시 기운을 들이쉬듯 빨아들이자 그것은 온순하게 손바닥으로 돌아왔는데, 자세히 보니 푸른 탄환(彈丸)이었다. 구천현녀가 그것을 당새아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 검을 네가 다시 삼켜서 단전에 넣고 아흐레 동안 연마하면 마음대로 변화를 일으키고 거둬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연마하는 방법을 전수한 후, 옥갑에 담긴 천서를 세상에 남겨 놓지 않기 위해 지니고 돌아갔다. 당새아가 푸른 탄환을 삼키고 비전(祕傳)의 비결에 따라 닷새 동안 신령한 불[神火]을 단련하니, 그것이 뱃속에서 빙빙 돌면서 늘어났다 움츠러들었다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에 입을 벌리고 내뱉으니 일고여덟 자 길이의 푸른 기운이 공중으로 날아갔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라 황급히 빨아들이고 다시 단련했다. 그런데 배 안에서 너무 세차게 움직이는지라 감당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내뱉었다. 그리고 잠시 공중을 빙빙 돌며 춤추듯 움직이게 한 뒤에 다시 빨아들였지만 더욱 감당할 수 없었다. 그녀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구천현녀가 다시 올 때까지 차분히 기다렸다. 아흐레째 되는 날 해시(亥時, 저녁 9~11시)가 되어 구천현녀가 내려오자 당새아가 무릎을 꿇고 영접했는데, 구천현녀의 손바닥에 눈부신 자줏빛을 뿜어내는 옥새(玉璽)가 하나 얹혀 있었다. 구천현녀가 분부했다.
“그대의 신령한 근기가 어둡지 않고 도를 추구하는 마음이 견실하여 천서를 이미 다 배운 것을 보고, 짐이 특별히 상제께 아뢰어 이 재난의 운수를 관장하는 자격을 부여하는 의미에서 이 옥새를 하사하게 하였노라. 성은에 감사하도록 해라.”
당새아는 너무나 기뻐서 즉시 오체투지하며 하늘 궁궐을 향해 아홉 번의 절을 올리고, 다시 구천현녀에게 감사의 절을 올렸다. 구천현녀가 옥새를 건네주었는데, 위쪽에는 기린을 조각한 꼭지[鈕]가 달려 있고 아래에는 봉전(鳳篆)이 새겨져 있었는데, 사각형 한 변의 길이는 각기 두 치[寸] 남짓이었다. 구천현녀가 말했다.
“거기에 적힌 글은 ‘옥허궁(玉虛宮)의 칙명에 따라 살생과 정벌을 주관하는 구천뇌정(九天雷霆)의 법주(法主) 태음원군(太陰元君)’이라는 뜻이다.”
당새아가 다시 고개를 조아려 감사하고 나서 감환(劍丸)을 뱉어내고 더 이상 단련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여쭈었다.
“다행이로구나, 다행이야! 반드시 아흐레의 화후(火候)을 채워야 내뱉을 수 있는 것인데, 이제 겨우 닷새밖에 되지 않아서 화후의 절반밖에 이루지 못했거늘 어떻게 갑자기 내뱉을 수 있게 된 것이지? 신령한 불에서 떨어지면 단단하고 강한 기운이 생겨나기 마련이지. 다행히 이곳에 바람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바람을 만났더라면 단전으로 삼킬 수 없었을 게야.”
그러면서 구천현녀가 검환을 받아 동중으로 던져서 푸른 기운이 뻗어 나오게 했는데, 일고여덟 자를 넘지 않았다. 당새아가 물었다.
“저번에 뱉었을 때는 이랬는데, 어째서 그 뒤로 이틀 동안은 다시 길어지지 않은 건지요?”
“아흐레가 지나서 뱉어야 다시 단련할 수 있는데, 지금은 이미 기가 누설되었으니 어찌 더 길어질 수 있겠느냐? 만물이 모두 그런 것이니라.”
그러면서 자신이 지니고 있던 푸른 탄환과 하얀 탄환을 공중에 던지자 백 길쯤 되는 눈부신 빛발이 뻗쳤다. 그것들은 마치 청룡과 백룡처럼 구름 속에서 싸웠는데, 부딪칠 때마다 챙챙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삽시간에 날아 내려왔는데 예전처럼 두 개의 탄환으로 변해 있었다. 이런 신통력을 보자 당새아는 자신이 너무 일찍 드러낸 것을 후회하며 한없이 안타까워했다. 그러자 구천현녀가 말했다.
“네 검도 쓸 만하다. 푸른 기운이 스쳐 지나면 백 명의 수급을 취할 수 있으니, 이것도 예로부터 드문 일이지. 나머지는 도를 이룬 뒤에 더 단련하면 된다. 어서 삼켜 놓아라.”
당새아가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제가 인간 세상에 내쫓긴 몸으로 성모님께 이렇게 크나큰 은혜를 입었는데, 언제나 다시 존안을 뵐 수 있을지 모르겠사옵니다.”
그러면서 흐느끼자 구천현녀가 위로했다.
“너는 위로 상제의 마음을 따르고 아래로 백성의 바람을 충분히 포용해야 한다. 이 재난의 운수가 끝나서 하늘 조정으로 가면, 거기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홀연히 허공으로 떠올라 떠나가려 할 때 갑자기 동북쪽에서 특이한 광채를 내뿜는 한 줄기 푸른 노을이 나타났는데, 알고 보니 태상노군이 푸른 소를 타고 왕림한 것이었다. 구천현녀가 머리를 조아려 영접하자, 당새아도 구름 아래 엎드렸다. 태상노군이 말했다.
“보아하니 항아가 혼자 천서를 익혔는지라 개중에 실행할 수 없는 것이 적지 않을 것 같구먼! 그래서 조금이나 도움을 주고자 특별히 세 알의 단약을 가져왔지.”
구천현녀가 말했다.
“태음월군에게는 큰 행운이로군요! 하지만 저는 함께 하지 못할 것 같으니, 어떡하지요?”
“현녀는 추밀(樞密)의 업무를 맡고 있으니 한가로이 마음대로 소요하는 나와는 다르지. 어서 돌아가시구려.”
이에 구천현녀느니 신선 관료들의 인도를 받아 하늘 궁궐로 돌아갔다. 태상노군이 궁전으로 내려와 정좌하여 당새아에게 아홉 번의 절을 받고 나자 이렇게 말했다.
“너는 요즘 유명인사라서 너무 많은 스승이 생겼구나! 관음보살이 발탁하고, 구천현녀가 가르치고, 서왕모가 보호하고, 직녀가 청탁하고, 포도고가 길러주고, 만다니가 전달했는데 이제 내가 또 영단을 주러 왔으니, 대체 어느 스승의 공로가 더 큰지 모르겠어.”
“제가 수양도 깊지 않은데 높으신 신선님들의 배려를 받으니 부끄럽기 그지없사옵니다. 이런 성덕은 만겁 동안 갚더라도 다 갚지 못할 것이옵니다.”
“얘기하기 편하게 앉아 봐라.”
당새아가 감히 앉지 못하고 옆쪽에 시립하자 태상노군이 말했다.
“이 첫 번째 것은 연골단(煉骨丹)이라고 하는데, 복용하고 사흘 후면 온 몸의 뼈마디가 단단해지기도 하고 부드러워지기도 하고, 굽히고 평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것은 ‘연기단(煉肌丹)’인데, 복용하고 사흘 후면 살이 쇠나 옥보다 단단해져서 펄펄 끓는 기름 솥에도 들어갈 수 있고 칼날도 굽혀 버릴 수 있으며, 화포나 돌 포탄에 맞더라도 다치지 않는다. 세 번째 것은 ‘연신단(煉神丹)’인데 복용하고 아흐레가 지나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변화가 가능해서 크게는 만 길이나 되어서 하늘과 땅이 감당할 수 없이 큰 법신(法身)을 드러낼 수 있고, 작게는 겨자씨 속으로 들어가서 눈에 보이지도 않게 할 수 있다. 이 세 알을 다 복용하고 나면 천서의 내용 가운데 실행할 수 없던 것들도 모두 실행할 수 있게 될 게야.”
그리고 도동을 시켜서 단약이 들어 있는 작은 상자를 건네주게 하고, 그 즉시 첫 번째 단환을 복용하게 했다. 당새아는 단환을 삼키자마자 뼈마디들이 모두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고 다시 고개를 조아려 감사했다.
도동이 궁전 동쪽 귀퉁이에 걸려 있는 붉은 구슬을 보고 떼어내서 갖고 놀려 하자, 태상노군이 호통을 쳤다.
“이놈! 그까짓 게 몇 푼이나 한다고 그렇게 눈치를 보는 게냐?”
도동이 얼른 구슬을 땅바닥에 던지며 말했다.
“연단을 하면서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고생했는데 하필 여자에게 줘 버리다니요! 그런데 보아하니 저 여자는 너무 인색해서 저한테 전혀 사례할 것 같지 않아서 말이에요.”
당새아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도동에게 고개를 숙여 절하자, 도동이 말했다.
“염치없군! 이걸로 때우려고?”
태상노군이 껄껄 웃었다.
“이런 고얀 놈! 내 영단은 비록 천지간의 진귀한 보물을 다 가져와도 바꿀 수 없는 것이야! 네놈이 지금 항아에게 재물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면 오히려 호의에 감사하는 마음조차 사라질 게다.”
당새아가 말했다.
“도동께서 순진하시니 그런 게지요. 단약 화로를 지키느라 얼마나 고생하셨겠사옵니까? 하지만 제게 쓸 만한 물건이 없으니 피서주 하나와 피진서 하나를 선물하겠사옵니다.”
그리고 그 물건을 꺼내어 두 손으로 받쳐 건네자, 도동이 비로소 희죽거리며 말했다.
“밤낮으로 화로를 지키노라면 열기가 무섭고, 또 부채질을 하노라면 재가 날리는 게 짜증스러웠는데, 마침 이 두 물건이 생겼구나!”
그러면서 얼른 받아 챙겼다. 태상노군은 또 항아에게 단약을 복용한 후 반드시 이곳에서 진기를 운행하고 보름 뒤에 돌아가라고 당부했다. 그런 다음 푸른 소에 거꾸로 타니 갑자기 소의 네 발밑에서 자줏빛 구름이 피어났고, 도동이 앞장서서 길을 인도했다. 당새아는 엎드린 채 극진히 절을 올리고 구름이 사라지고 나서야 일어나서, 다시 예전처럼 단정히 앉아 고요한 마음으로 신(神)을 단련했다.
보름이 다 지나자 당새아는 이젠 돌아가도 되겠다 싶어서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그때 네 명의 신장이 모두 와서 허리를 숙여 절했다.
“저희들은 현녀낭낭의 법지를 받들어 이곳에서 천서를 보호해 왔습니다. 이제 태음낭낭께서 공부를 충분히 성취하셨으니 저희도 물러갈까 하옵니다.”
당새아가 그들을 보내고 나니 유모와 만다니가 함께 와서 물었다.
“왜 보름이 늦었느냐?”
당새아가 두 선사에게 사죄하며 태상노군이 단약을 하사한 일을 설명했다. 또 구천현녀가 상제에게 아뢰어서 옥새 하나를 하사받고 ‘월군’이라는 호칭을 받아 너무나 많은 성은을 입은 일들을 자세히 알렸다. 그러자 만다니가 말했다.
“호호, 호칭이 아주 멋지구나! 우리도 이제 그렇게 불러야 되겠구나.”
이후로는 작자도 당새아를 ‘월군’으로 부르도록 하겠소.
아무튼 그들은 곧 용왕을 불러 궁전을 돌려주고, 셋이서 향기로운 바람을 타고 표연히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로 규중의 미녀가 반역을 일으킨 신하들을 모두 토벌하고, 더욱이 은거하여 소요하던 이들이 탐관오리를 처벌하는 일이 차례로 벌어지는데, 자세한 내용은 다음 회를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