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2세秦二世
1. 주불(周巿)이 위왕(魏王) 자리를 사양하다
진영(陳嬰)이 스스로 왕위에 오르지 않고 주불(周巿)이 위왕(魏王)이 되지 않는 것은 둘 다 태만한 행위였으나 그래도 주불이 현명했다고 하겠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천하가 혼란해야 충신이 드러난다.”
의로우나 감히 나서지 못하면 해로움도 자연히 멀어진다. 높은 자리에 앉아 천하의 의롭지 못한 무리의 수괴가 되면, “짐을 지고 수레를 타면 강도를 부르는” 격으로 환하게 드러나는데도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의로움으로 마음을 지키려는 뜻이 없어서 세속의 미혹을 받은 이가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이다. 진영도 다행히 말리는 모친이 있었으니, 그렇지 않았더라면 위태로워졌을 것이다! 주불의 한마디는 이른바 “큰 홍수가 하늘에 닿아도 빠져 죽지 않고, 세찬 우레가 산을 무너뜨려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겠는가! 진여(陳餘)는 유학자라고 자부했지만 의로움을 지키지 못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주불은 죽었으나 살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진여는 무능하게 부화뇌동하다가 죽었으니 칭찬할 게 어디 있는가?
2. 이사(李斯), 고금의 누구도 차마 하지 못한 말을 하다
이사는 2세(二世)에게 이렇게 말했다.
“현명한 군주는 인의(仁義)의 길을 없애고 간쟁(諫爭)하는 말을 끊은 채 마음 내키는 대로 탁월하게 실행합니다.”
고금의 현자나 못난 이를 모두 아울러도 차마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없는데, 이사는 거리낌 없이 솔직하게 말했다. 아! 어떻게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가! 이사도 순경(荀卿)에게서 공부하고 진시황과 더불어 천하를 병탄하려고 도모했다. 그런데 그가 어찌 비렴(飛廉)이나 악래(惡來)도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거리낌 없이 했을까? 그의 마음이 진정 그렇게 여겼던 것일까? 진나라 2세가 어리석지 않았고 진시황처럼 교만하고 모난 성격이었더라면 질책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이사는 설마 천하 후세 사람들이 자신을 동정할 여지가 없는 주동자라고 여기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인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죽음을 두려워하고 잃을 것을 걱정하는 마음에 쫓겨 피하지 않은 것이 있었을 따름이다.
죽음을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잃는 것은 걱정해서는 안 되는데 하필 그것을 걱정했을까? 이전에 스스로 벼슬에 나아간 것은 자신의 학문[道] 때문이 아니었고, 이어서 스스로 나라를 위해 힘쓴 것도 자신의 공적이 아니었으며, 그 뒤에 자기를 지킨 것도 자신의 술수(術數)가 아니었고, 물러나 스스로 자리를 마련하려 해도 방도가 없었으니, 잃는 것은 과연 걱정할 만했고 죽는 것은 과연 두려워할 만했다. 두려움도 걱정도 하고 싶지 않은데 차마 하지 못할 말을 말하지 않는 것이 또 어찌 가능했겠는가! 세상에는 반드시 죽는 길이 없고 또 분수에 맞지 않는 행운을 얻는 일도 없다. 일찌감치 뜻을 올바로 가지면 나중에 쫓기는 일이 없으니, 차마 하지 못하고 감히 하지 못하는 마음이 그로써 온전해진다. 먼저 올바른 곳에서 헤아리지 못하면 나중에 ‘잃는 것이 구체화되고 죽음을 맞을 때가 있을 것[失有形, 死有機]’이니, 이 말을 하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게 된다. 상채창응(上蔡蒼鷹)의 한탄을 하기도 전에 이미 애간장이 찢어졌을 것이다. 이사에게 어찌 정말 사람의 마음이 없었겠는가? 《주역》에서도 “서리를 밟으면 곧 단단한 얼음이 온다.”라고 했듯이, 일찌감치 다른 사람을 알아보는 것보다 일찌감치 자신을 알아보는 게 더 낫다.
3. 이사, 독책(督責)의 술수로 아첨을 이끌고 음란을 권하다
사람은 누구나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으며, 많은 사람의 노여움을 사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의 원망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신불해(申不害)와 상앙(商鞅)의 말이 왜 지금까지 없어지지 않았겠는가? 뜻이 올바르고 의로움이 분명하니 제갈량(諸葛亮)도 그 법도를 본받았고, 박학하고 뜻이 넓으니 왕안석(王安石)도 그 마음을 스승으로 삼았다. 이는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신불해와 상앙이 잠깐의 노력으로 오래도록 평안할 수 있는 술수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이 없이 그런 술수를 쓴 이는 제갈량이요, 그 실질을 이용하면서도 그 이름을 꺼린 이는 왕안석이다. 이러니 그들은 마치 수용하지 않고 숨겨놓은 듯이 했는데, 이사는 그걸 드러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독려하고 질책하는 독책의 술수를 쓰고 나면 간쟁(諫爭)의 길이 끊어진다.
行督責之術, 然後絶諫爭之路.
신불해는 이렇게 말했다.
천하를 소유하고도 방자하게 멋대로 굴지 않는 것을 일컬어 천하를 형구(刑具)로 여긴다고 한다.
有天下而不恣睢, 命之曰以天下爲桎梏.
간쟁이 끊어지고 형구를 벗게 되면 신하가 매일 형명(刑名)의 서적에 파묻혀 애쓰더라도 군주는 주색에 빠지고 나들이와 오락을 즐기며 날이 저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 안락하게 즐기고 싶은 심정을 잊지 않는다면 어찌 이것을 일거양득의 술수로 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법에만 맡기면 군주는 평안하나 천하가 곤경에 빠지고, 도(道)에만 맡기면 천하는 평안하나 군주가 고생한다. 스스로 방자하게 멋대로 굴 수는 있는 술수가 전혀 없다면 천하를 잘 다스리고자 하는 군주가 아니더라도 만백성 위에 높이 앉아 멋대로 굴 수 없을 게 당연하다. 제갈량은 담박했으나 초췌해질 수밖에 없었고, 왕안석은 죽을 때까지 학문을 좋아하고 깊이 생각했지만, 그런 그들이 기꺼이 명법(名法)을 받들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가? 검소하고 근면하고 보고 들으면서 마음으로 그 평안하고 즐거운 세상을 따르려 했기 때문이다. 현명한 이들도 이러했거늘 하물며 영호도(令狐綯)나 장거정(張居正)처럼 권세를 끼고 있던 이들이야 어떠했겠는가! 이사의 말을 읽고 그가 아첨을 이끌고 음란을 권한 술수를 행했음을 알게 되면 부끄러워 식은땀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