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서적사 1

신시아 J. 브로카우 Synthia J. Brokaw

중국에서 책과 글이 갖는 특별한 중요성에 대해서 이론(異論)을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문헌을 생산하고 그 학술적 수준을 유지하는 데에 중국만큼 오랜 전통을 향유했던 문화는 거의 없다. 또한 글을 배워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인식을 중국인들만큼 끊임없이 표현해왔던 민족도 거의 없었다. 늦어도 송대(宋代, 960-1279년)에 이르러서는 과거제도를 통해 평가되는 글쓰기 능력과 교육수준이 사회적 지위와 부, 그리고 정치적 권력으로 가는 관문이 되었다. 요컨대 책을 소유한다는 것, 아니면 적어도 책에 접근한다는 것은 중국 사회에서는 입신출세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였다.

또 책은 미학적 대상이자 문화의 상징으로 높이 평가되었다. 서적 수집은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갈망하는 부유한 상인들과 지주들에게도 보편적인 취미였다. ‘책의 향기[書香]’는 한 가정에 일정한 정도의 체통을 세워주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필사되거나 인쇄된 문자에 어떤 신성한 가치나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대중적인 종교 서적에는 일반적으로 공덕을 쌓는 방법으로 문서 쪼가리를 불사르는 의식이 수록되어 있었다. 조금 더 후대의 왕조에 와서는 그 같은 문서 쪼가리들을 조직적으로 수집하고 의례를 통해 처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특별한 모임인 ‘석자회(惜字會)’가 발달하였다.

중국 역사에서 책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중국에 유구한 서적 연구의 전통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현대의 학자인 차오즈(曹之)는 중국의 판본학에 관한 그의 개설서에서 이러한 전통의 기원을 한대(漢代, 기원전 206-220년) 류샹(劉向, 기원전 79?-6년)의 목록 작업에서 찾고 있다. 책(과 책에 관한 기록)에 대한 이러한 초창기의 열정은 중국 역사의 전 과정에 걸쳐 거듭 확인된다. 그것은 정사(正史)의 「예문지(藝文志)」나 건륭(乾隆, 재위 기간은 1736-1796년)의 칙령에 의해 작성된 유명한 《흠정사고전서총목제요(欽定四庫全書總目提要)》처럼 조정의 지시로 만들어진 것 뿐 아니라, 개인 서적 수집가들과 목록학자들이 만든 방대한 양의 목록과 서지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렇듯 방대한 규모의 목록과 서지들 이외에도, 학자들은 종종 “서화(書話)”라고 부르는 독서기를 썼는데, 이러한 서화는 다양한 장서각에서 검토할 수 있었던 선본(善本)들에 대한 논평이었다.

소장가들과 애서가들은 또 초기의 희귀 판본들의 보존과 전파를 위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였고, 여건이 허락될 경우 그것들의 복각본[影刻本]을 찍어냈다. 아마도 이 방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마오진(毛晉, 1599-1659년)의 업적일 것이다. 창수(常熟, 江蘇)에 있었던 그의 서재 겸 서사(書肆)인 지구거(汲古閣)에서는 중요한 송대와 원대(元代, 1279-1368년)의 판본들(뿐만 아니라 기타 당대의 많은 서적들)을 다시 펴냈다. 이러한 복각본 출판의 전통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은 장서가들과 학자들이 함께 공유했던 관심사인 고증작업, 즉 선본(또는 선본을 가장한 모조품)의 연대를 비정(比定)하고 그 유래와 출처를 따져 묻는 작업이었다. 수백 년 넘게 일련의 기술, 즉 판각 스타일, 판식과 편집, 장정, 그리고 종이의 질에 대한 분석과 같은 기술이 발전하면서, 또 각각 판본들의 문헌적 계보와 역사에 대해 주의 깊은 연구가 진행되면서, 텍스트 감정의 기초적 여건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고증작업과 그 작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개발된 기술에 대한 관심은, 풍부한 서지학적 전통과 선본 복각본 출판의 경험과 더불어, 20세기 중반 현대 판본학 분야의 기본원칙들을 세우는 데 기반이 되었다.

20세기에는 판본학 분야의 발전과 더불어 중국 인쇄술과 서적사 연구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인 노력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선구적인 업적인 시마다 간(島田翰)의 《고문구서고(古文舊書考)》(1905년), 예더후이(葉德輝)의 《서림청화(書林淸話)》(1911년)와 《서림여화(書林餘話)》(1923년), 그리고 쑨위슈(孫毓修)의 《중국조판원류고(中國雕版源流考)》(1916년) 등은 비록 해제 또는 원시자료의 인용이라는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기는 했지만, 인쇄술과 종이, 장정, 출판, 서적 거래 등에 관한 이후의 연구에 토대가 되었다. 이후 수십 년간 학자들은 중국 인쇄술의 기원과 송대부터 청대(淸代, 1644-1911년)까지의 발전, 목판 삽화, 종이 생산, 그리고 중국 책의 물리적 진화 등에 관해 다수의 연구를 진행했는데, 이 모든 것은 이 분야가 점진적으로 성숙했음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중국 서적 연구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기미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문화대혁명 기간은 책에 관한 연구가 발표되지 않아 하나의 공백으로 남아있지만, 1980년대 중반에서 후반까지 학자들은 다시 한 번 판본학과 인쇄술의 역사에 주목하게 된다. 1989년에 출판된 장슈민(張秀民)의 권위 있는 저작 《중국인쇄사(中國印刷史)》는 이러한 변화의 상징이다. 이 책은 이 시기에 나온 많은 이차 연구 가운데 가장 뛰어나고 가장 포괄적인 것으로, 중국의 선행 연구와 중국의 출판사에 대한 저자 자신의 백과사전식 지식을 훌륭히 결합시켰다. 이후 수십 년 간 중국인쇄술에 관한 통사와 참고서적, 서적 연구 저널, 연합 목록과 장서기구별 그리고 주제별 서목, 지역 출판 산업에 초점을 맞춘 연구들, 그리고 다양한 인쇄 기술에 대한 역사 등이 쏟아져 나왔다. 이러한 저작들은 질적인 면에서 편차가 크지만, 구술사나 기타 현지 자료를 포함하여, 특정한 출판 활동을 상세하게 연구하는 데에 흥미롭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이것들은 궁극적으로 명청 시기 중국의 출판과 책 문화에 대한 좀 더 포괄적이고 정확한 상(相)을 재구성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중국의 책 문화와 인쇄의 사회사

중국의 책과 인쇄에 관한 다량의 연구 저작이 있는 상황에서, 또 다시 중국의 책에 대해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앞서 간략하게 요약한 학문적 성과는 일반적인 수준에서의 중국의 인쇄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며, ‘선본’[善本, 선본이란 적어도 건륭(乾隆) 연간(1736년-1796년)이나 혹은 그 이전에 나온 책으로 정의됨]에 대한 중요한 서지적 길잡이가 된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도서 문화와 인쇄의 사회사가 분석된 경우는 거의 없다. [즉,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인쇄술과 출판사업의 구조가 책의 문화를 만들어내었던 방식은 어떠했는가? 또한 책은 상품이자, 정보의 보고이자, 장사 비결의 가이드이자, 오락물이자, 공예품이었는데, 이러한 성격을 가진 책이 지적 생활, 사회적 교유, 글을 통한 의사소통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 그리고 문화적, 정치적, 과학적 정보나 종교적 신념의 보급에는 어떤 효과를 만들어내었는가? [바로 이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는 실정인 것이다.]

그러므로 여전히 사회적, 경제적, 지적, 문화적인 측면에서 서적사를 충분히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중국에서 인쇄술은 우선 송대에 보급되었고 명말(1368-1644년)과 청대에 더욱 빠르게 확산되었는데, 이러한 확산이 가져온 사회적, 지적 충격은 무엇인가? 명청 시기에는 책을 어떻게 출판하고 홍보하고 팔았는가? 조정, 개인, 기관, 출판상 등 서로 다른 형태의 출판 사업체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었으며, 또 이들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으로서 어떻게 기능했는가? 유통의 주요한 방식은 무엇이었으며, 이것이 중국에서 지식이 유포되는 경로에 대해 무엇을 알려줄 수 있을까? 인쇄 산업의 확장이 지역적 정체성을 표출하기 위한 통로를 제공했는가, 아니면 조금 더 광범위한 지역이나 국가의 문화적 통합을 촉진했는가? 명청 시기에는 인쇄물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이것이 지식을 정의하고 분류하는 데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 책의 생산과 유통이 어떤 방식으로 정치에, 또 제국 시스템의 작동에 영향을 주었는가?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문어 대한 비교적 새로운 연구 방법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할 수 있는데, 그 새로운 접근방법이란 서구의 창시자들이 “서적사(histoire du livre)”라 명명했던 것이다. 서적사(또는 좀 더 정확하게는 서구에서의 서적사)는 프랑스의 아날 학파 연구자들 사이에서 1950년대 말에 하나의 두드러진 연구 분야로 시작되었다. 뤼시엥 페브르(Lucien Febvre)와 앙리-장 마르탱(Henry-Jean Martin)의 《책의 탄생(L’Apparition du livre, The coming of the book, 1958)》은 “인쇄를 통한 사회적, 문화적 소통의 역사”를 진지하게 학술적으로 다룬 첫 번째 시도였다. 서구의 도서 연구의 주요 학자인 로버트 단턴(Robert Darnton)은 “소통 회로(communication circuit)”에 대해 조사함으로써 새로운 분야에 대한 청사진을 수립하였다. 그 관계망에는 저자와 편집자, 출판업자, 인쇄업자(또 인쇄부품 공급업자), 운송업자, 서적상과 독자들이 함께 묶인다. 이러한 관계망을 연구할 때는 그 각각의 영역에서 지적인 파급력, 사회경제적 조건, 그리고 정치적, 법적 규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는 측면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문제에 대해 서구의 학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답안을 제시했다. 다시 말해, 개별적인 인쇄소와 출판 기획에 대한 철저한 연구도 있고, 인쇄가 과학혁명과 종교개혁의 수단이었다는 주장도 있고, 식자율(識字率)의 변화나 말과 글의 전통 사이에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도 있고, 특정한 독서 대중의 사회적 구성을 밝히려는 노력도 있고, 다양한 독서습관에 대한 고찰도 있고, 또 기타 등등 여러 가지 연구가 있다. 조금 더 최근에는 서구의 연구자들이 인쇄본 도서를 물질적인 객체나 상품이라는 관점에서 더욱 면밀하게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관심사들을 실제 독서 행위에 대한 연구로 연결시켰다. 이를테면, 코덱스와 같은 책의 형식이 어떤 식으로 지적인 논쟁과 토론을 촉진시켰는가 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코텍스가 등장함에 따라 독자가 텍스트 안에서 이러 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내용을 검토하고 서로 다른 페이지를 상호 교차적으로 참조할 수 있게 되었는데, 사실 이것은 텍스트가 두루마리 형태로 되어 있을 때는 훨씬 더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가 아니라 책이 어떤 식으로 읽혔는가 하는 것에 대한 관심도 점점 증가하여, 독자-반응 비평이라는 작업, 곧 독자가 텍스트의 의미를 구축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하려는 기획을 탄생시키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경제, 사회, 학술, 종교, 문학, 문화, 그리고 심지어 정치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서구의 서적사 못지않게 중국의 서적사도 학제간이나 다면적인 측면에서 다루어질 수 있다. 이를테면 출판 사업의 구조와 운영 원리, 서적의 제작 비용, 서적의 가격에 대한 연구를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연구는 중국의 독특한 출판 형태가 출판물의 선정, 텍스트의 배포, 독서물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설명함으로써, 경제사나 상업사 연구자들의 관심사와 문학사나 사회사 연구자들의 관심사를 연결할 수 있다. 종교 연구의 영역에서는 승원과 사묘(寺廟)가 필사본이나 인쇄본의 출판자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에 대한 연구를 통해, 당대(唐代) 이래로 인쇄의 확산 뿐 아니라 종교 기관의 조직과 기능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전보다 광범위한 범위의 경전과 소책자를 찍어내고 그 텍스트를 더 널리 배포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쇄의 발전이 종교적인 신념과 교육에 대해서도 일정한 영향을 주었던 것은 확실하다. 정치와 법을 연구하는 역사가라면, 출판에 대한 연구에서 당연하게도 검열과 지적 재산권 문제를 다루게 된다. 다시 말해, 반복된 시도에도 불구하고 명청 시기 대부분의 시간 동안 정부가 상업적인 출판을 효과적이고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데 실패했던 것은, 중국 정부의 제도적인 한계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저작권 개념이 매우 엉성하게 발전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여전히 현재 중국에서 중요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소유권과 법의 기능에 대한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

교육, 사회, 문화, 학술사와 연결된 것은 너무 많기 때문에 여기에서 포괄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 대신 몇 가지 중요한 문제점을 언급하도록 하겠다. 집필과 편집 과정에서 출판업자가 빈번하게 관여했던 정황은 청말과 근대 초기 중국에서의 저작권(특히 통속 소설) 문제, 심지어 도서 그 자체의 속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바꿔놓았다. 출판된 책의 범주, 내용, 언어에 대한 정보는 사회사 연구자들이 당시 독자들에 대해 더 뚜렷한 상을 얻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고, 더 나아가 식자 수준에 따른 혹은 성별에 따른 독자의 범위와 다양성을 더욱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이러한 정보들을 서적 유통의 방식에 관한 연구와 겹쳐놓고 보면, 지식이 유포되는 과정이나 문화가 전국적으로 혹은 지역적으로 통합되는 과정도 더욱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예가 그러하다. 즉, 예절이나 가정살림에 대한 안내서, 통속 소설, 가정 의학서, 윤리도덕에 대한 소책자 등과 같은 특정한 대중서들이 유통되었는데, 이러한 현상은 공유된 문화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를 했을까? 아니면, 더욱 세분화된 지방 텍스트의 출판이 증가하여 특정 지방의 어휘를 사용한다거나 지방에 국한된 관습들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통합 과정의 토대를 약하게 했을까?

이런 몇 가지 문제에 관해서 과거 20년 동안 주로 일본어나 서양 언어로 씌어진 저작들이 많이 출간되었는데, 이를 통해 중국인들의 삶에서 차지하고 있는 도서의 출판과 역할에 대한 궁금증들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그 대부분은 출판과 도서가 지식인들의 지적이고 문학적인 삶에 대해 끼쳤던 영향을 다루고 있으며, 또한 필사본 문화에 대한 연구, 도서 문화에 대한 대중의 참여, 도서의 삽화와 서체, 검열과 정부의 통제, 그리고 특정 출판업의 조직과 출판물에 대한 연구 분야도 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이런 작업들을 확장하고 심화시키려는 노력의 표현이자, 학술적 관심의 초점을 책과 도서문화의 역사에 두어 더욱 날카롭고 집중적으로 다루어 보려는 시도이다. 요컨대, 중국의 사회적, 지적, 정치적, 역사적 전체 맥락 속에서 중국 서적의 연구를 개시하려는 것이다. 위에서 제기한 논점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 책에서는 매우 높은 수준의 학제적 연구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중국문학 연구자나 학술사, 사회사, 정치사 연구자, 또 예술과 판본학(版本學) 전문가들의 글들을 함께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