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부지王夫之의 독통감론讀通鑑論 – 권1 진시황秦始皇 1

진시황秦始皇

1. 봉건제封建制를 군현제郡縣制로

양편에서 승패를 다투는데 쓸데없이 무익한 논의만 하는 자는 봉건제를 옹호하는 이들이다. 군현제가 2천 년을 이어져 왔지만 고칠 수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신분의 위아래를 막론하고 모두 그것을 편안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군현제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면 그런 추세가 어떻게 형성될 수 있겠는가? 하늘이 인간 세계에 반드시 군주가 있도록 한 것은 결코 그런 의도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덕망 높은 어른과 많은 이들을 위해 공을 세운 사람을 추대해 받들었다가 더욱 받들어서 천자로 모시게 되었다. 사람이 스스로 존귀해지고 싶어 하지 않는 존재는 아닐지라도 반드시 받들어 높여 주는 이들이 있어야 공평한 것이다. 그런데 그 지위에 안주하며 그 방식에 익숙해짐으로 인해 세습이라는 도리가 생겨났다. 그런 이들은 어리석고 포악할지라도 아무 데도 기댈 곳 없는 초야의 인사보다 오히려 현명하다. 이렇게 수천 년을 지나면서 제도가 안정되었다.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서로 싸우면서 옛 체제를 모두 잃었고, 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간신히 살아남은 나라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어찌 이 몇 명밖에 안 되는 제후왕에게 구주(九州)를 다스리게 할 수 있겠는가? 이에 나라를 쪼개 군을 두고, 다시 그것을 쪼개 현을 두어서 백성의 어른 노릇을 할 만한 재능을 가진 이를 윗자리에 두어서 그 재능을 다해 기강을 다스리게 했으니, 어찌 천하의 공평한 제도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옛날에는 제후들이 세습해 나라를 다스리고, 그 뒤에 대부(大夫)들이 대를 이어 벼슬을 살았으니 참람한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형세였다. 사(士)의 자식은 늘 사가 되고, 농부의 자식은 늘 농부가 되는데, 태어날 때 하늘이 부여하는 재주는 신분을 가리지 않아서 사 가운데 아둔한 이가 있을 수 있고 농부 가운데 빼어난 이가 있을 수도 있다. 빼어난 재능을 가진 이라면 끝내 아둔한 이에게 굽히고 지낼 수 없으니 상대를 누르고 흥성하기 마련인지라, 그 또한 충돌할 수밖에 없는 형세이다. 봉건제가 무너지고 인재를 선발하는 과거가 시행되어 태수와 현령이 제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자사(刺史)가 방백(方伯)의 임무를 맡게 되니, 훌륭한 덕망과 현저한 공훈이 있더라도 자신의 못난 자손을 비호(庇護)할 길이 없어졌다. 형세가 충돌하면 이치도 그에 따라 바뀌나니, 이것이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음과 양 가운데 어느 하나만 쓸 수는 없고 인의(仁義)가 서로 도와야 길하고 이로운 일이 생기기 마련이니, 성인이라 한들 어찌 그걸 어길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인재를 신중히 선발하지 않으면 백성을 해치고, 대대로 쌓은 공덕이 끝나지 않으면 제후가 기강을 어지럽히니 둘 다 해롭다. 그러니 백성이 태수와 현령의 탐욕과 잔혹을 물리치거나 선정(善政)을 칭송하여 승진시키는 데에 기댈 바가 있어야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진(秦)·한(漢) 이래로 천자가 현명한 신하들의 보좌를 받지 못하고 고립되어 있다면 그 왕조는 상(商)·주(周)보다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그리고 도읍을 동쪽으로 옮긴 뒤에도 잦은 전쟁으로 백성을 해독을 끼치고, 정책과 풍속을 자주 바꾸고, 멋대로 착취하며 갖은 형벌을 시행하여 백성을 해치는데, 이런 일이 수백 년 동안 끝나지 않으면 혁명이 일어나서 후세의 백성이 당할 재앙도 가벼워진다. 군현이라는 것은 천자의 이익을 위하지 않는다면 나라의 운명이 오래가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그리고 천하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해독은 봉건제보다 훨씬 심하다. 아! 진나라는 천하를 사유(私有)하려고 제후를 없애고 군현을 설치했는데 하늘은 그 사적인 욕심을 빌려 크나큰 공도(公道)를 시행했으니, 신(神)의 생각은 이처럼 헤아릴 수 없구나!

지위를 세습하면 그 방식에 익숙해지니 법(法)의 측면에서 편하고, 그 방식을 익힌 이에게 적합한 일을 맡기는 것이 이치에 마땅하다. 법은 삼왕(三王) 때에 갖춰졌고 도리는 공자에게서 분명히 나타나서 사람들이 익힐 수 있게 되었다. 현량하고 빼어난 이들은 모두 군자의 지위에 오르도록 장려하여 백성의 우두머리 노릇을 할 수 있데 했으니, 성인의 마음은 지금까지 밝게 빛난다. 그런데 인재를 신중하게 선발하지 않아서 백성을 해치는 관리가 등용되면 천지도 책임질 수 없거늘 하물며 성인이 어찌 책임질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군현제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왕조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의 왕족 입장에서 하는 말이지 공적인 도의를 뜻하지는 않는다. 진나라가 만세(萬世)에 죄를 지은 이유는 천하를 사유하려 했기 때문일 따름이다. 그런 진나라를 비판하면서 자손이 오래도록 부귀를 누리도록 사심(私心)을 갖는다면 어찌 천하의 크나큰 공도(公道)에 맞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