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과 해석 방법론- 총괄 및 비평 5-3

제5장 총괄 및 비평

3. 전체적 결론

이상의 논의를 통해 이른바 ‘작자의 의도’나 ‘작자의 의의’는 종종 해석자가 구축한 것(interpreter’s constructions)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구축의 방식은 사실 그들이 채택한 해석 전략 즉 ‘전제’(또는 배경의 재건)과 ‘전경화’, ‘추방’, ‘전유’, ‘남들보다 조설근의 마음을 더 잘 알고 있음’ 등등의 수법에 의지하는 바가 컸다. 바꿔 말하자면 해석 방식은 종종 해석의 결과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리처드 팔머는 《해석학》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사실 수단과 대상은 분리될 수 없다. 수단은 이미 우리가 보게 될 것을 제한했다.

미국의 독자 반응 비평 이론가 스탠리 피쉬(Stanley Fish: 1938~ ) 역시 비슷한 견해를 제시했다.

이런 (해석의) 전략들은 독서 행위에 앞서 존재하며, 그렇기 때문에 독서의 결과를 결정했다.

이 외에도 컬러(Jonathan Culler)도 《구조주의 시학(Structualist Poetics)》에서 해석의 관습(interpretive conventions)이 텍스트의 의의를 결정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피쉬와 컬러는 해석 전략과 해석의 관습에 결정의 작용이 있으며, 해석자는 해석 전략과 해석의 관습을 위해 봉사하는 데에 지나지 않을 뿐 자주적인 역량은 별로 없다고 주장했다. 《홍루몽》 연구 영역에서도 이런 상황이 나타난 적이 있다. 예를 들어서 1954년에 위핑보 비판 운동이 일어났을 때, 대다수 평론가들은 마르크스 문예이론과 마오쩌둥 사상을 위해 봉사했다. 당시의 정치적 분위기 아래에서 논자들은 그저 그런 해석의 관습들과 해석 수단들 가운데 어떤 것을 채택할 수만 있을 뿐이었다. 강력한 구속 때문에 당시의 해석 집단(interpretive community)이 《홍루몽》에서 풀어낸 것은 주로 ‘계급투쟁’과 ‘봉건사회의 말세(末世)’, ‘인민성’, ‘반역’ 등 대동소이한 담론들이었다. 1970년대의 ‘《홍루몽》 비평 열풍’은 더 말할 필요 없다. 당시에 출판된 《홍루몽》 연구 저작들은 책머리에 대부분 마오쩌둥의 어록을 얹어 놓았다.

《홍루몽》 해석자들이 시대와 문화 풍조에서 영향을 받아 자기도 모르게 당시에 권위가 있었던 해석 수단을 채택했다는 설명도 있다. 이런 설명은 이미 상식에 가까운 전통적인 것이어서 더 이상 해설이 필요 없을 듯하다. 그러나 《홍루몽》 연구에서 실제 해석 활동이 전적으로 해석의 관습에 의해 주재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앞서 몇 장에 걸친 분석을 통해 우리는 어느 역사 시기를 막론하고, 시대 풍조의 영향에 상관없이, 확실히 몇몇 해석자들은 ‘전경화’와 ‘전유’ 등등의 해석 전략을 의식적으로 채택했으며, 개중에 비교적 두드러진 예는 색은파와 마르크스 레닌주의 연구자들이었다. ‘고증파’로 일컬어지는 저우루창 역시 이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론적으로 해석자의 마음속에서 《홍루몽》의 작자는 의미의 원천이자 해석의 권위였지만, 실제적으로는 작자의 권위가 결코 《홍루몽》의 해석 행위를 전면적으로 제약하지 못했고, 텍스트 (즉 《홍루몽》 자체) 역시 마찬가지였다. 작자의 의미(authorial meaning)와 텍스트의 의의는 종종 해석 전략과 해석 관습의 산물이지만, 이런 해석 전략들은 또 종종 해석자에 의해 내쫓기기도 했다. 이 때문에 《홍루몽》 연구 영역에서는 해석자가 반드시 의미의 원천으로 간주되지는 않았지만 종종 해석의 권위가 되기도 했다고 할 수 있다.

문학 작품의 중요한 의의 가운데 하나는 저자의 시각과 사상에 의거하여 인류의 근본 문제를 탐구하는 것이지 작자의 특수한 삶의 경험을 환원하는 것이 아니며, 문학 비평의 중요한 의의 또한 여기에 있다. 다만 《홍루몽》의 해석 영역에서 ‘작자의 기능’이 요처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떨쳐낼 수도 없기 때문에 ‘보편성’은 ‘특수성’에 자리를 양보해야 했으며, 그런 양보는 장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소설 세계의 ‘일반적인 의미’는 종종 작자 세계 소의 ‘특수한 의미’로 독해되곤 했다. 창조적인 허구도 구체적인 사실(‘실록[實錄]’)로 독해되었다. 아마 미래의 《홍루몽》 연구에서 조설근이 완전히 ‘해소’될 가능성은 높지 않겠지만, 조설근의 사상 및 그 가계는 여전히 비할 데 없이 풍부한 ‘해석의 자원’으로서 각각의 연구자들이 해석의 권위를 쟁취하는 데에 관건이 되리라고 예측할 수 있다. 스스로 조설근과 ‘세대의 건너 뛴 지기’라고 주장하거나 자칭 ‘조설근의 심령과 필법(筆法)’을 잘 안다고 하는 논자들도 부단히 나타날 것이다. 조설근의 요소가 잠시 ‘저평가’된다 하더라도 새로운 해석은 종종 또 다른 ‘작자의 역사 언어를 중건(重建)’할 뿐이다. 새로운 자기 권한 부여(authorization)도 여전히 나타날 것이다.

본래 《홍루몽》은 시작 부분에서 뭐라고 하는가? 바로 이 책은 돌이 기록한 것이고, 이 이야기는 “왕조와 연대, 지리와 지방은 고증할 수 없으며[朝代年紀, 地輿邦國卻反失落無考],” “고증할 만한 왕조와 연대가 없고[無朝代年紀可考],” “고증할 만한 왕조가 없다.[無朝代可考]”고 했다.

비평가는 작자에게도 텍스트에게도 의도에 대해 묻지 않으며 단지 텍스트를 자신의 목적에 맞는 모양으로 다듬을 뿐이다.

The critic asks neither the author nor the text about their intentions but simply beats the text into a shape which will serve his own purpose.

――Richard Rorty, Consequence of Pragmatism: 1972~1980, New York: Harvester Wheatsheaf, 1991, p.151.

1994년 6월 초고
2006년 11월 증보
2007년 7월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