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임 도령에게 시집가서 반년의 묵은 빚을 청산하고
아름다운 기생은 세 번의 격전 끝에 원양을 탈취하다
嫁林郞半年消宿債, 嫖柳妓三戰脫元陽
대동부(大同府)의 기생인 유연(柳烟)은 자가 비연(非烟)이었다. 그녀는 알씬한 몸매와 요염한 용모를 타고나서 가벼운 동작 하나에도 온갖 교태가 넘쳤다. 어려서부터 노래책[曲本]을 공부하여 글자를 읽을 줄 알았고 또 총명한 성품을 타고나서 응대도 영민하게 잘했다. 열세 살에 첫 손님을 받고 나자 순식간에 변방에 널리 명성이 자자했고, 특히 음탕한 부분의 기술이 절륜해서 ‘만상비(滿牀飛)’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런데 만나는 손님들 가운데 귀공자나 왕손은 없고 죄다 장사치들뿐이라 풍류를 몰랐기 때문에 애꿎은 경국지색의 미녀를 쓸쓸한 변방에 묻어 버린 셈이었다. 이에 그녀는 소주(蘇州)나 양주(揚州) 같이 번화한 곳에서 이름을 날리는 기생이 되고 싶었다. 그 기생집과 기생어미는 오로지 이 여자 덕분에 먹고사는지라 그녀의 계획대로 연경(燕京)에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제녕 땅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기생어미가 병이 나서 어쩔 수 없이 서쪽 성문 밖에 작은 집을 빌려 살게 되었다.
마침 임 도령이 전통포를 정리하려고 고향에 돌아왔다가 새로 온 유명한 기생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곧 하인을 대동하고 유연의 집으로 찾아갔다. 이때 비연은 손님을 받을 생각이 없어서 매일 불시에 찾아오는 사람이 있지만 대부분 병을 핑계로 거절했다. 하지만 “기생어미는 돈을 밝힌다.”라고 하지 않던가? 포정사에 오른 임씨 집안의 도련님이라는 대단한 물주가 나타나자 기생어미는 황급히 유연에게 알렸다. 유연도 권세와 이익을 추구하는 기생의 본성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병을 앓는 시늉을 하며 화장도 대충 하고 나와서 맞이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네 눈동자가 마주치는 순간 양쪽 모두 벌써 마음이 동했다. 임 도령은 즉시 은 삼백 냥을 꺼내 ‘사랑의 정표’로 삼아 기생어미에게 건넸다. 술상이 차려졌지만 그저 저자에서 파는 그럴 듯한 음식들뿐이었지만, 물건보다 사람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둘은 잔을 주고받으며 한참 동안 온화하고 다정한 얘기를 나누었다.
그때 임 도령의 이불과 요 등이 도착하자 기생어미는 재빨리 잘 펼쳐 놓았다. 비단에 수놓은 화려한 금침과 봉황을 장식한 휘장과 원앙을 수놓은 베개뿐만 아니라, 신기하게도 여덟 겹으로 접을 수 있는 간이침대는 일곱 가닥 끈을 엮어서 만든 것으로서 등나무로 만든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 끈을 가는 녹나무 구멍에 끼웠는데, 나무는 여덟 치[寸]를 하나의 단(段)으로 삼았다. 그걸 접으면 여덟 겹이 되는데, 펼치면 여섯 자[尺] 네 치 길이의 대자리인 도생점(桃笙簟)처럼 되는 것이었다. 그 자리는 크고 널찍하면서 모두 끈으로 엮었기 때문에 분해하고 합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이 자리를 침상 위에 놓으니 솜처럼 부드럽고 또 웬 만한 무게는 견뎌낼 수 있었다. 두 남녀는 곧 야간 등을 밝히고 함께 이 침상에 올라갔다. 한 쪽은 풍류계의 으뜸이라 용맹하게 직진하고, 한 쪽은 화류계의 날랜 장수인지라 기회를 엿보며 응대했다. 애석하게도 도화동(桃花洞)의 이 전투는 벽을 쌓아 놓고 구경하는 이가 없었으니, 〈꽃그늘 아래 취하다[醉花陰]〉라는 노래가 이를 증명한다.
봉황 문양 촛불은 붉은 화염 밝게 토하고
상서로운 용뇌향 연기 서린다.
금실 수놓은 베갯맡에서 가는 허리
어지러이 흔드는 미녀는
상투도 흐트러지고 비녀는 팽개쳐졌지.
끝없는 봄바람에 봄 물결 출렁이고
아득한 향기에 혼까지 떨린다.
연꽃이 마음을 거꾸로 한 채
진한 이슬 모두 쏟으며
무소 뿔 같은 장난감 부드럽게 쥐었지.
鳳蠟熒熒吐絳焰, 瑞腦凝香篆.
金縷枕纖腰, 攪亂佳人, 髻散釵抛燕.
以春風脈脈春波灧, 飄渺香魂顫.
菡萏倒垂心, 濃露全傾, 細把靈犀玩.
이윽고 종이 바른 창문에 기우는 새벽달이 비추자 분 바른 장군은 결국 원문(轅門)을 향해 절을 올리며 쓰러져 버렸다. 임 도령이 이틀 밤을 더 묵자 매번 세 차례 격전을 벌여 모두 승리했다. 유연이 신묘한 무기를 꺼내어 단번에 전세를 뒤집으려 하자 임 도령이 웃으며 말했다.
“잠시 자네하고 따뜻한 관계로 지냈는데, 나중에 또 만났으면 좋겠네.”
유연이 말했다.
“제가 천한 기생의 몸으로 도련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진심으로 첩이 되어 평생 모시고 싶어요.”
“자네가 정말 그런 마음이라면 내 아내가 아주 현숙하니 받아들여 줄 걸세. 하지만 지금은 상중이라 아직 혼례를 올리지 못했으니, 자네도 잠시 이렇게 지내도록 하게. 제녕에는 이미 내 집이 없으니, 이제 포대로 가서 혼례를 치르고 나서 자네를 데리러 오겠네. 절대 약속을 저버리지 않겠네!”
유연이 임 도령에게 맹서하라고 했다. 이에 둘이 생년월일을 종이에 써서 서로 보여주고는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유연도 임 도령과 동갑으로서 8월 15일 진시(辰時, 오전 7~9시)에 태어났던 것이다. 임 도령이 말했다.
“아내는 유시(酉時: 오후 5~7시)라서 내가 태어난 묘시(오전 5~7시)보다 조금 멀지만, 자네가 태어난 시각이 오히려 나하고 가까우니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작은 아내로구먼. 이후로 서로 자매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겠어.”
유연도 속으로 기뻐하며 임 도령과 손을 맞잡고 등불 아래에서 서로 네 번씩 절을 주고받았다.
이튿날 임 도령은 유연과 작별하고 전당포를 정리하여 또 수만금을 챙겼다. 포대현으로 돌아온 뒤에는 성실해진 것처럼 가장하여 낮에는 책을 읽고 밤에는 궁술을 연습하여 화살 하나로 두 마리 새를 잡듯이 홍향과 취운을 동시에 꿰었다. 당새아가 또 춘예(春蕊)와 추도(秋濤)라는 두 명의 예쁜 하녀를 보내 주며, 아예 합환(合歡) 대잔치를 벌이게 해 주었다. 임 도령은 늘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제 네 명의 미녀를 얻었으니, 얻기 어려운 두 가지를 아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얼마 후 양가의 상을 치르는 기한이 끝나서 임 도령은 이모부인 백청암을 찾아가 길일을 택해 혼례를 올릴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했다.
“내 생각도 그렇구나. 그래야 네 선친께서 부탁하신 중임을 완수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에 2월 16일을 혼례일로 정하고, 원래의 중매쟁이를 통해 당시 집에 첩지를 보내니, 유모도 승낙했다. 임 도령은 신부를 맞이하는 예법에 따라 풍악을 울리고 등롱을 밝힌 채 오색 깃발을 앞세우고 화려한 가마에 신부를 태워 자신이 사는 집으로 돌아갔다. 당시 여러 친척들이 모두 모이자 들러리가 신부에게 나오라고 청했다. 당새아는 머리에 비단 보자기도 덮지 않고 단정하게 차려입은 채 사뿐사뿐 아름다운 걸음으로 천천히 당상(堂上)으로 걸어갔다.
아황색 적삼 위에
바느질 자국 없는 생명주 웃옷 입어
완연히 무산 신녀 같은 모습이요
선홍빛 신 신고
파도 타듯 하얀 버선 신으니
그야말로 낙수의 선녀로다.
화장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환하고
향을 쐬지 않아도
타고난 신령한 풍기 온 몸에서 풍기지.
넘실거리는 가을 호수 같은 눈빛
쳐다보면 때로 정이 다겨 있는 듯하지만
결국 무정하고
담담한 봄날 산과 같은 눈썹
찡그려도 마음이 담겨 있지 않으니
혹여 착각하지 마라.
손바닥에 올릴 만큼 날씬한 몸매지만
한나라 황후보다 단정하고 엄숙하고
바람을 일으킬 듯한 가는 허리는
남방 미녀보다 더 유연하다.
그야말로 이런 모습:
대적할 이 없는 경국지색으로
삼천 미녀들을 위압하고
여자들 가운데 제일이나
가슴속엔 십만의 사나운 맹수를 품고 있도다!
鹅黃衫子, 外蓋着無縫綃衣, 宛似巫山神女.
猩紅履兒, 上罩着凌波素袜, 伊如洛水仙妃.
鉛華不御, 天然秀色明姿.
蘭麝不薰, 生就靈香玉骨.
盈盈秋水, 流盼時有情也, 終屬無情.
淡淡春山, 含顰處無意也, 休疑有意.
身來掌上, 比漢后但覺端嚴.
腰可回風, 較楚女更爲婀娜.
眞個是國色無雙, 威壓三千粉黛.
女流第一, 胸藏十萬貔貅.
그 모습을 본 임 도령은 눈앞이 어지럽고 마음이 놀라 자기도 모르게 온 몸에 흐물흐물 맥이 빠져 버렸다. 들러리의 도움으로 천지신명께 절을 올리고 나서 신랑신부가 맞절을 했다. 임 도령이 무릎을 꿇고 절하자 당새아가 단정히 선 채로 네 차례 허리를 숙여 답례하니, 구경꾼들이 모두 입을 가리고 웃었다. 평소 임 도령은 대단히 거친 성격이었는데, 이때는 순하지 그지없는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이모가 당새아에게 말했다.
“포 마님께 나오시라고 하시지요.”
“유모는 내일 절을 받으실 거예요.”
친척들은 모두 당새아의 성격의 괴상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각자 간단히 인사만 하고 돌았다.
신방으로 들어간 부부는 합환주를 마셨다. 이때 임 도령은 하늘나라에 들어가 선녀를 만난 듯한 기분이어서,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서둘러 시녀들에게 물러가라고 했다. 그러나 당새아가 호통을 쳤다.
“안 된다!”
시녀들이 움찔하여 제 자리에 서자 당새아가 도령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느긋하게 한 잔만 더 잡수셔요. 제가 물어볼 게 있어요.”
그리고 시부모가 어떻게 동시에 세상을 떠났는지, 형님들과 동서들이 임 도령을 어떻게 대했는지 등을 자세히 물었다. 묻는 말에 진정이 배어 있으니 임 도령도 자세히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당새아도 자신이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어머니를 여의고 유모에게 양육을 받은 일 등을 계속 이야기하니 임 도령도 맞장구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벌써 닭이 세 번이나 울자, 임 도령이 말했다.
“오늘밤은 좋은 때를 놓쳐 버렸구려.”
“부부 간의 일이란 게 기껏 이런 것일 뿐이지요.”
그리고 임 도령과 함께 유모의 방으로 찾아가 인사를 올렸다. 인사를 마치자 임 도령은 실례하겠다고 말하고 방으로 돌아가 단잠에 빠졌다. 그는 점심때가 되어서야 깨어나서 시녀에게 마님을 모셔 오라고 분부했다.
당새아는 몸소 등롱을 밝히고 와서 즉시 술상을 차리라고 분부했다. 그러자 임 공자가 말했다.
“나는 간밤의 술이 아직 안 깨서 더 이상 마실 수 없소. 이만 잠자리에 드십시다.”
“하루 내내 주무시고도 또 주무신다니요!”
당새아 직접 술을 따라 권하니 임 도령도 어쩔 수 없이 받아 마시고, 당새아에게 잔을 권했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마시다 보니 벌써 밤이 깊어졌다. 이에 당새아가 말했다.
“듣자하니 바둑을 잘 두신다고 하던데, 한 판 두어 볼까요? 제가 지면 바로 잠자리에 들고, 당신이 지면 한 집에 한 잔씩 술을 마시는 겁니다.”
이에 임 도령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내가 바둑은 고수이니 질 리가 없지.’
그래서 당새아에게 다짐을 받았다.
“또 속임수를 써서 잠자리를 피할 생각은 마시오!”
“부부 사이에 속임수를 쓰다니요!”
하지만 임 도령은 마음이 조급해서 두 판을 내리 지고 술을 스물다섯 잔이나 마셨는데, 억지로 마시다 보니 주량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쿨쿨 잠이 들고 말았다. 당새아는 시녀에게 침대에 있는 이불을 덮어 주라고 하고 각자 돌아가서 자라고 분부했다. 그리고 자신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노매와 함께 방 안에서 운공(運功)했다.
임 도령이 깨어 보니 날이 이미 밝아 있었다. 그는 당새아가 방 한가운데 단정하게 앉아 있고 그 옆 낮은 자리에 노매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둘이서 마치 좌공(坐功)을 운용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도 조금 할 줄 아오.”
당새아가 그 틈을 이용해서 말했다.
“좌공을 할 줄 아신다면 어째서 신선이 되는 법은 내버려두고 타락할 일만 하시는 건가요? 타고난 재능이 아깝지 않나요?”
“내가 예전에 신선을 만나 보았지만 그렇게 되기는 싫었소. 그저 밤낮으로 미녀들과 즐겁게 지낼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소.”
당새아가 한숨을 쉬며 곧 시녀들에게 물을 가져오라 했다.
“어서 양치질을 하셔요. 오늘이 사흘째 되는 날이니 부모님의 영전에 절을 올려야 해요.”
절을 올리고 나자 당새아는 다시 한바탕 통곡을 하고 유모의 방으로 갔다. 임 도령은 술이 덜 깨서 다시 침실로 돌아가 쉬었다.
저녁이 되어 당새아가 다시 술상을 차리라고 하자 임 도령이 다급히 말렸다.
“오늘 저녁은 당신 처분에 맡기고 죽은 듯이 있을 테니, 제발 술은 마시지 맙시다.”
“안 마시면 그만이지 무얼 그리 정색을 하셔요? 노래를 잘 하신다고 알고 있는데, 저한테도 한 곡 들려주실래요. 제가 퉁소를 불어서 반주를 맞출게요.”
임 도령은 속으로 기뻐했다.
‘작업용으로 적당한 노래가 있지!’
그는 곧 잔에 술을 따라 당새아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자, 그럼 들어 보시구려.”
이어서 그는 《서상기(西廂記)》에 나오는 “부드러운 옥의 따스한 향기 품에 가득 품지.[軟玉溫香抱滿懷]”라는 가사가 들어간 음란한 노래를 불러 당새아의 마음을 움직여 보려 했다. 노래가 끝나자 당새아가 칭찬하면서 한 곡 더 불러 보라고 했다. 임 도령은 어쩔 수 없이 또 《모란정(牡丹亭)》에서 ‘꿈속에 찾아가다[尋夢]’라는 부분을 노래했다. 그리고 여운이 끝나자마자 임 도령이 갑자기 당새아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그녀의 발을 꼭 잡은 채 그녀의 무릎에 이마가 닿도록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었다. 시녀들은 모두들 남몰래 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피했다. 그러자 임 도령이 말했다.
“너희들은 나를 위해 마님께 간청해야 마땅하거늘, 오히려 비웃다니!”
이에 시녀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는데, 유모가 또 노매를 통해 전갈을 보냈다.
“아가씨, 그만 잠자리에 드셔요.”
당새아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니 임 도령이 얼른 와서 옷을 벗겼다. 시녀들은 모두 진즉 물러갔고, 두 사람은 함께 침상으로 갔다. 당새아의 살결이 양의 기름이나 옥반지보다 새하얗고 부드럽고, 삼만 육천 개의 솜털 구멍에서 기이한 향기가 풍겨 나오니 임 공자가 혼이 녹아내리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자 당새아가 말했다.
“이제 부부의 정이 다했으니, 당신은 아끼는 하녀들과 즐기도록 하셔요.”
“하하, 부부의 정은 아직 시작도 안 했잖소! 내가 감히 무례하게 굴 수는 없으니, 당연히 편안하게 할 방법이 있소.”
그러면서 속옷마저 벗기니 당새아는 이것이 묵은 죄업인 줄 알기 때문에 억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고약한 젊은이가 여태 마셔 보지 못한 술을 손에 넣은 것처럼 단숨에 마시려고 덤벼들어 반 모금을 삼키니, 이 또한 당새아로서는 너무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누가 옥거울을 화장대에 내려놓아
이제 신선의 술 한 잔 권하게 했는가?
밝은 달 훔쳐보는 비단 휘장 고요한데
봄바람은 수놓은 저고리 실수로 팔랑이게 하는구나.
방정맞은 하녀야 어찌 익숙하랴?
서방님의 광란의 함부로 추측하지 마라.
악록화의 난새가 모는 수레는 먼 하늘 높은 곳에 있나니
어찌 속세로 와서 시중을 들어 줄 수 있으랴?
誰敎玉鏡下粧臺, 今此瓊漿勸一杯.
明月好竅羅幌靜, 春風錯惹繡襦回.
侍兒佻闥何曾慣, 夫婿顚狂莫漫猜.
萼綠驂鸞烟漢遠, 塵寰豈爲侍中來.
당새아는 날이 새기도 전에 벌써 일어나서 생각했다.
‘설령 하얀 옥에 티가 묻지는 않았지만 이미 원홍(元紅)을 흘렸으니 도를 수행하는 데에 방해가 되겠구나!’
그녀가 슬프고 쓰라린 마음을 견디지 못하고 곧장 유모의 방으로 달려가 애절하게 통곡하자, 유모가 말했다.
“업장(業障)은 씻기 쉬우니, 도를 생각하는 마음을 견지한 채 참아 내도록 해라!”
이후로 임 도령이 당새아와 부부관계를 가지기가 무척 어려워져서 나름대로 방법을 생각해 내고 그녀에게 말했다.
“내가 하녀를 불러서 잠자리를 하는 모습을 보여줄 테니 심심풀이로 구경하는 것은 어떻소?”
“부부 사이의 예법에 따르면 남자의 바른 자리는 바깥이고 여자는 바른 자리는 안쪽이지요. 그런 음란한 일은 본래 하녀들하고나 하는 것이니 그냥 가서 하셔요. 저한테 물어보실 필요 없어요!”
임 도령이 무릎을 꿇고 말했다.
“장난 한 번 쳐보려고 일부러 그런 대담한 소리를 한 거요.”
당새아는 그가 자신의 도력(道力)을 시험하려는 줄 알고 이렇게 대답했다.
“괜찮아요.”
임 도령은 무척 기뻐하며 곧 방탕한 놀이에 이골이 난 취운을 데리고 들어와서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내가 마음이 동하도록 만들어야 해.”
취운은 그 속내를 눈치 채고 황급히 당새아 앞으로 달려가 짐짓 점잖은 체 했다.
“나리께서 체통을 지키지 않으셔요.”
“내가 허락한 일이야.”
당시는 날씨가 더워서 당새아는 휘장 안에 앉아 그들이 자세를 잡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취운은 갈증이 난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했고, 임 도령은 성난 말이 마구간을 뛰어다니듯 했으니, 그야말로 《서상기》에서 묘사한 것처럼, “한 쪽은 쉼 없이 내키는 대로 하고, 한 쪽은 신음 흘리며 사랑 행위에 빠진[一個恣情的不休, 一個啞聲兒廝耨]” 모습이었다. 그들의 모습은 음란한 희곡 대본에 비해 천만 배나 더 야해서 부처라도 마음이 흔들릴 지경이었다. 이를 증명하는 〈점강순(點絳脣)〉 노래가 있다.
비단 치마 가볍게 풀고
옥 같은 몸 학대하며 밤새 함부로 다루지.
얼굴엔 홍조가 피어나고
한 쌍의 쪽진 머리 풀어지는 것 막지 못한다.
생생한 춘화
뒤엉킨 모습 누가 그릴 수 있으랴?
부끄러워
향기로운 영혼 녹으려 하고
사랑의 파도 끊임없이 뿌리는구나.
輕解綃裙, 小憐玉體橫陳夜.
臉暈潮紅, 不禁雙鬟卸.
活現春宮, 顚倒誰能畫.
嬌羞怕, 香魂欲化, 滾滾情波瀉.
임 도령은 당새아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 더욱 힘을 쏟아서 마치 옥토끼가 현상(玄霜)을 찧듯이 아주 물러지도록 찧으려고 애썼다. 취운은 울다 목이 멘 아이처럼 신음을 흘리다가 이미 정신을 잃고 있었는데, 임 도령은 그제야 그녀를 놓아주었다. 그녀는 구름 같은 머리카락이 병자처럼 풀어헤쳐진 채 힘없이 비틀거리며 방을 나갔다. 그 모습을 본 당새아가 생각했다.
‘남녀의 음란함이 이런 정도라니. 어쩐지 신선들이 인간 세상에 내려가기만 하면 색욕에 미혹되더라니! 나도 유모가 없었다면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을 거야.’
그녀가 침대에서 내려오자 임 도령이 다가와 끌어안았다. 그러자 당새아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곧 날이 밝으려 하니 더 이상은 곤란해요. 이후로는 하녀들하고만 이렇게 즐기셔도 괜찮겠군요!”
또한 임 도령과 그래도 부부이니 그가 타락하게 내버려두면 안 될 테니, 수시로 도를 공부하도록 일깨워 주는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임 도령은 그 말을 듣는 데에 질려서 유연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사람을 집에 들여서 아내와 한 침대에서 잔다면 순결을 지키려는 성품을 바꿀 수가 있을 텐데……’
그 또한 인연이 닿았기 때문인지 마침 임 도령이 중추절이 되어서 문간에 걸어 나갔는데, 어느 어린 하인이 낌새를 엿보고 있었다. 임 도령은 그가 유연의 집에 있던 하인 소이(小二)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놈은 임 도령을 보자마자 땅바닥에 넙죽 엎드려 고개를 조아렸다.
“누님이 벌써 이 고을 북쪽 성문 밖으로 이사해 와서 저더러 도련님을 모셔 오라고 하셨습니다요.”
“오늘은 나와 아내의 생일이니, 지나면 바로 가겠다.”
“누님께서 애타게 그리워하고 계시니 약속을 어기시면 안 됩니다!”
소이가 떠나자 임 도령이 속으로 생각했다.
‘나도 막 모고 싶었는데 그 사람이 벌써 포대현으로 왔다니 정말 당차구먼! 하지만 지금은 첩으로 들이기가 마땅치 않아.’
이날 밤에 집안에서 잔치가 열려서 당새아는 임 도령에게 공손히 술상을 바치고 서로 잔을 들어 생일을 축하했다. 잔치가 끝난 뒤에는 또 부부가 뜰에 앉아 한담을 나누며 달빛을 감상했다. 그때 임 도령이 말했다.
“이렇게 유유자적한 복을 누리니, 이 또한 신선과 마찬가지로구려!”
당새아 다시 그 기회를 이용해 권했다.
“저와 함께 수련해서 저 난암산(蘭巖山)의 부부처럼 나란히 학으로 변해서 승천한다면 이런 복을 영원히 누릴 수 있지 않겠어요?”
“하하, 신선이 이렇게 냉정한 것은 우연일 뿐이지요. 예를 들어서 순양자(純陽子)도 색욕을 참지 못해서 백모란(白牡丹)을 찾아가 심심풀이를 했는데, 하물며 평범한 사람이야 어떠하겠소? 당신은 정말 흥취가 없구려. 나는 아무래도 흥취 높은 사람을 하나 구해서 함께 지내야 되겠소.”
“금릉(金陵, 지금의 난징시)을 대표하는 열두 명의 미녀라 해도 모두 당신 마음대로 하셔요. 마음에 드는 이가 있다면 저는 당신과 명분상으로만 부부로 지내면서 그 사람과 친구처럼 함께 하겠어요. 어때요?”
“하하, 나중에 다시 상의합시다. 오늘은 이미 밤이 깊었으니 우리 둘의 생일을 헛되이 보낼 수 없지 않겠소?”
그리고 당새아의 손을 잡고 침실로 들어가 운우지락을 즐기려 했다. 당새아도 어쩔 수 없어서 대충 맞춰 주는 수밖에 없었다.
이튿날 아침, 임 도령은 당새아에게 성 밖에서 친구들과 모임이 있는데 오늘 밤은 귀가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얘기하고, 하인도 대동하지 않은 채 혼자 유연의 거처로 갔다. 그를 본 유연은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을 본 것처럼 기뻤지만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미리 준비된 안주가 있어서 술상이 차려지자, 그들은 어서 마시고 얼큰히 취해 잠자리에 들기만 바랐다. 원래 유연은 북방에서 온 어느 승려와 잠자리를 한 적이 있는데, 그에게서 채양보음(採陽補陰)의 기술을 배워서 그녀의 옥문(玉門)은 자유자재로 삼키고 뱉고 열고 닫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예전에 제녕에 있을 때에는 임 도령이 강적이라고 생각하지 못해서 그 기술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그 기술을 자랑하며 마음대로 쥐었다 놓았다 해서 임 도령이 자신을 첩으로 들이려는 마음을 확실히 다지게 만들 작정이었다. 그 기술은 세 가지였는데 각기 양물을 잠그는 쇄양(鎖陽), 양물을 붙드는 확양(攫陽), 양기를 빨아들이는 흡양(吸陽)이라고 했다. 잠근다[鎖]는 것은 기회를 잡아 제압하는 것으로서, 마치 복숭아를 물고 있다가 원숭이가 훔치러 오면 갑자기 쇠사슬을 채워 훈련시켜 복종하게 하는 것과 같다. 붙든다[攫]는 것은 비결을 써서 유혹하는 것이니 마치 제비 고기로 만든 육포로 용을 낚는 미끼로 삼아 그놈이 미끼를 먹으려 할 때 여의주를 붙들 듯이 하는 것이다. 빨아들인다[吸]는 것은 기운으로 감화시켜서 마치 자석이 철을 당기듯이 자연스럽게 감응하는 이치를 이용하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방법을 쓸 때마다 단약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쇠사슬을 채워 잠가도 굴복하지 않으면 묶어 붙드는 방법을 쓰고, 그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빨아들이는 방법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빨아들이는 방법을 쓰려면 또 반드시 먼저 잠가서 붙들어 놓아야 하는데, 이렇게 붙들리게 되면 설사 신선이라 할지라도 그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유연은 그것들을 차례로 선보였다. 첫날밤에는 우선 양물을 채우는 방법을 썼는데 상대가 신령함을 깨우친 원숭이처럼 고약해서 쇠사슬을 채워 잠그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복사꽃의 꽃대마저 죄다 짓밟혀 버렸다. 둘째 저녁에는 양물을 붙드는 방법을 썼는데 그 고약한 용의 기세가 사나워서 물결을 뒤집고 파도를 일으키니 도무지 여의주가 어디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셋째 저녁에는 양기를 빨아들이는 방법을 썼다. 먼저 사슬로 잠그고 붙들어둔 다음에 빨아들였으니, 음양의 위치를 뒤집어 유연은 임 도령의 척후가 뿌리던 날카로운 기세가 다한 뒤에 강력한 무기로 한가운데로 몰아 포위하고, 그 와중에 두 구멍을 맞추어 기운을 빨아들이자 임 도령이 소리를 질렀다.
“아아, 좋구나! 끝내주는구나!”
그의 원정(元精)이 치솟는 샘물처럼 맹렬히 치달리다가 결국 모란꽃 아래 쓰러져 버렸다. 유연은 그가 사정하여 양기가 고갈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원래 기운을 이어 양기를 돌려주는 방법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임 도령의 배 위에 앉아 보았으나 술법을 쓸 수 없어서 손도 쓰지 못한 채 그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몸을 일으키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기지를 발휘했다. 날이 밝아오자 그녀는 서둘러 화장을 하고 잡일을 하는 남자와 기생어미에게 말했다.
“소이하고 당씨 댁에 가서 자수할 테니, 조금 있다가 관아에 신고하셔요.”
당새아는 남편이 사흘 동안 돌아오지 않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지기가 전갈했다.
“어떤 여자가 마님을 뵙고 나리의 소식을 전하겠다고 합니다.”
“들여보내게.”
당새아는 유연을 보자마자 요물이라는 것을 알고 남편이 흉한 일을 당했으리라고 짐작했다.
“너는 누구냐? 무슨 소식을 전한다는 것이냐?”
“저는 기생으로 제녕에서 손님을 접대하는데, 이 댁 나리와 만난 지 네 해가 되었습니다. 근래에 편지를 보내 저를 부르시기에 이곳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임 도령이 양기를 잃고 죽게 된 사연을 자세히 설명한 후,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통곡했다. 당새가 깜짝 놀라 다급히 유모를 모셔오자, 유모가 말했다.
“이건 운수 때문이구나!”
그러면서 유연에게 물었다.
“너는 무슨 생각으로 온 것이냐?”
“하녀라도 되어 마님 시중을 들면서 나리를 위해 수절하고자 합니다. 장례는 모두 제 힘으로 처리할 테니, 제발 크나큰 은혜를 베푸시어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그렇다고 해도 관청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당새아는 곧 유연을 포박하게 하고, 가마를 마련해서 남편을 보러 갔다. 잠시 후 도착해 보니 임 도령은 뻣뻣하게 굳어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비단이불 하나가 덮여 있었지만 그의 양물은 여전히 서 있었으니, 선단(仙丹)의 힘이 아직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임 도령이 배항 도인의 말에 따라 양생하며 기운을 주천하는 회수를 지키지 않고 너무 일찍 함부로 욕정을 배출하다가 죽음까지 이르렀으니, 이게 바로 운수에 따른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당새아는 그 자리에서 남편의 시신을 끌어안고 목 놓아 통곡했다. 그때 여러 명의 이웃들이 달려 들어와 말했다.
“현감께서 검시하러 오셨소!”
당새아는 시신을 다시 내려놓고 의자에 단정히 앉았다. 잠시 후 현감 주상문(周尙文)이 들어왔다가 당새아가 안에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에게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시신을 마당으로 옮겨 놓고 검사해 보니 양기가 고갈되어 죽은 것이었다. 이에 그는 예방(禮房)에게 당새아를 집에까지 모시게 하고 유연과 기생집의 모든 이들을 붙잡아 갔다. 다만 기생어미는 진즉 도망친 뒤였다.
관아로 돌아온 현감은 취조를 시작하여 먼저 유연을 형틀에 묶고 두어 차례 고문을 했다. 교활한 유연은 애절하게 하소연했다.
“진심으로 나리의 장례를 치르고 마님 댁의 하녀가 되고자 하옵니다. 노마님께서도 허락하시며 나리를 돌아가시게 한 죄를 용서하셨으니, 현감께서도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현감도 법률로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당씨 집안에서 어떻게 고발장을 올리는지 보려고, 범인들을 모두 옥에 가두었다. 유연은 지니고 있던 스무 냥 남짓한 은 부스러기들을 간수에게 주면서 기생어미를 잡아오라고 시키려 할 때, 마침 관아에서 붙잡아 간수에게 인계하러 왔다. 유연은 곧 노비가 되어 수절하려는 사연을 기생어미에게 알렸다. 그리고 공문서를 잘 쓰는 사람을 찾아 현청에 청원서를 투서하게 하고, 다시 사정을 감안해 관용을 요청하는 편지를 대여섯 장 써서 임씨와 당씨 두 집안 친척들의 대문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저렇게 얘기하며 바치라고 일러 주었다. 이에 기생어미가 서둘러 떠났다.
한편 당새아는 집에 돌아오자 놀다가 남편을 죽이게 된 사건을 위해 친척들이 여자인 자신을 대신해서 관아의 재판장에 출정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편지와 검시관으로부터 시신을 인수받는 것과 관련된 편지를 써서 진청에 바치게 했고, 현감의 허락을 받았다. 이에 장 도령의 시신을 집으로 옮기고 관을 마련해서 염을 했다. 그리고 유명한 승려와 도사를 모셔서 칠칠 사십구일 동안 천도제(薦度祭)를 지내면서 밤낮으로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하녀들도 모두 억지로 통곡하는 체했지만 춘예만은 눈물을 조금 흘렸다. 이에 당새아가 노매에게 말했다.
“남들은 부부관계에서 색욕만 중시하면 정의(情義)는 가볍게 여기기 마련이니, 권세와 이익을 보고 벗을 사귀면 그 권세와 이익이 다했을 때 모르는 남과 같아져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지. 춘예는 평소 그다지 음란하지 않았지만 진심으로 곡을 하는군. 보라고, 저들 가운데 아직 그 사람을 마음에 두고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이들을 탓할 일이 아니지요. 그나저나 마님도 너무 심하게 곡을 하셨지만, 이젠 선도(仙道)를 공부하기 좋아진 것 같네요.”
“휴! 그래도 이 사람이 남편이었는지라 밤낮으로 도를 공부하라고 권했지만 고집을 피우며 말을 듣지 않더니, 하루아침에 기생에게 목숨을 잃고 음란한 오입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으니 어찌 가슴 아프지 않겠어! 자네는 시집을 가지 않았으니 신선이나 다름없지만, 나는 아직 업장을 다 끝내지 못했나 보구먼.”
그때 문지기가 보고했다.
“요 수재님과 외삼촌께서 오셨습니다.”
당새아가 그들을 만나 현청에서 언제 재판을 하는지 물으니, 요 수재가 대답했다.
“모레일세. 그 창녀가 인정에 호소하는 편지를 써서 양쪽 집에 보내서, 하녀가 되어 조카를 위해 수절하겠다고 했다는구먼. 현청에도 그런 호소문을 넣었다지.”
외삼촌이 말을 받았다.
“그런 건 누가 가르쳐 주었는지 모르겠구먼.”
당새아가 말했다.
“당장 그것의 목을 쳐도 늦었다고 할 판인데도 아직 살 생각을 하는 모양이군요! 이런 추잡한 것이 그 사람을 위해 수절한다느니 어쩌니 하면 시댁의 가풍(家風)을 더럽히는 짓이 아니겠어요? 나중에 제가 직접 법정에 가서 따져 보겠어요.”
유모가 말했다.
“얘야, 내 말 좀 들어 보렴. 수절하는 것은 당연히 보기 좋지 않지만, 창녀가 네 남편의 목숨 값을 치르는 것도 듣기 좋은 일이 아니지. 그러니 차라리 하녀로 거둬들여 죽이든 살리든 네 마음대로 하고, 하루 종일 매질이라도 하면 기분이 좀 풀리지 않겠느냐? 각 아문에서 수도 없이 여러 차례 추궁하고 고문하게 해서 한두 해가 지나도록 사건이 해결되지 않고, 결국 다른 사람까지 연루시켜 죽게 하고도 흉악한 범인에 대한 처분은 그때까지도 내려지지 않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지기가 보고했다.
“현청에서 파견한 분이 오셨습니다!”
당새가 남쪽을 향해 서서 즉시 들여보내라고 분부했다. 현청의 심부름꾼이 현감의 명령을 구두로 전달했다.
“임 도령 사건은 법에 저촉되는 게 없다. 하지만 사형을 선고하려면 반드시 각 아문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재삼 재심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자백을 받아 내기 어렵다. 본관도 이 창녀를 무척 증오하지만 가할 만한 법이 없고, 상부로 이송하면 바로 살 길이 열려 버린다. 그래서 심부름꾼을 통해 부인의 뜻을 묻고자 한다.”
“현감 어른의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친척 어른들과 상의해 보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심부름꾼이 돌아가고 나자 당새아는 어쩔 수 없이 이모부와 외삼촌에게 말했다.
“잠시 이 암탕나귀를 거두어서 매일 못살게 굴고 매질을 해서 죽이고 말겠어요! 수고스럽지만 이모부께서 백청암 어른과 함께 현청에 가서 승인을 받아 주셔요.”
요 수재가 백청암의 집에 가서 현감의 뜻을 설명하자, 백청암이 말했다.
“현청에 떠도는 말이 모두 조카가 자초한 재앙이라고 하니, 그나마 이런 식으로 수습하는 것도 괜찮겠구려.”
심문할 때가 되자 친척들은 일제히 현청으로 나아가 재판을 중지하고 유연을 압송해 하녀가 되겠다는 문서를 작성한 후 도장을 찍게 하여 후회하지 않도록 다짐했다. 현감이 허락하자 기생집에서 잡일하던 이는 원래 고을로 돌려보내고, 유연에게는 가볍게 공장 스무 대를 친 후, 당상에서 판결문을 읽었다.
유연을 심문해 본 결과 구미호 같은 여자임이 밝혀졌다. 문간에 기대어 아첨하며 장대(障臺)의 풍류를 차지한 채, 사람을 만나면 노래를 부르면서 다른 술집의 접대부들을 압도했다. 남녀지간의 끈적끈적한 애정행각을 벌이며 밤낮으로 무산(巫山)의 꿈속으로 달려가 규중의 아낙이 시름겨워 원함을 품도록 사계절 내내 나그네의 마음을 붙들어 놓았다. 게다가 뛰어난 방중술로 명성을 날리면서 허리가 꺾일까 염려하지도 않은 채 양기를 갈취하며 기교를 자랑하여 마음의 꽃을 망가뜨리지 않을 능력이 있다. 그야말로 혼백을 낚아 사로잡을 만큼 요염한 여자라 하겠다.
그리고 임 도령이란 이는 평소 풍류계의 장원(壯元)이라 칭송받아 ‘풍류비장(風流飛將)’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둘은 제녕에서 처음 방사를 치르고 서로 호적수임을 알았고, 포대에서 재차 격전을 벌여서 결국 창이 죄다 부러지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일이 끝나자 모두 원래 자리로 돌아갔지만, 이 여자로 인해 한 목숨이 저승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제 유연이 꼬리를 흔들며 동정을 호소하며 당 부인의 하녀로 평생 봉사하고, 용모를 흩트리고 수절하여 죽은 도령의 사적인 은혜에 보답하면서 죽을 때까지 재계하겠노라고 했다. 이에 대해 여러 친척들이 허락했으니, 본 현관도 인가하노라.
이상과 같이 문서로 기록하여 남기노라.
현감은 처분을 끝나고 두 명의 아역에게 유연을 당씨 집으로 압송해 인계하라고 지시했다. 당새아는 심부름꾼들에게 수고비를 주고 돌려보냈다. 유연은 당새아와 유모에 절을 올리고 임 도령의 영전에 무릎을 꿇고 통곡하며 땅바닥에 머리를 찧어 대며 마치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후로 그녀는 매일 영전에서 한밤중까지 통곡하더니, 결국 몸이 말라 뼈가 앙상해져 버렸다.
칠칠 사십구일 지나자 당새아는 친척들을 모셔서 길한 곳을 찾아 부모와 남편을 안장하려 했다. 그러자 외삼촌이 말했다.
“좋은 땅을 찾기란 무척 어렵지. 최근에 무정주(武定州)의 어느 부잣집에서 땅을 사 들인 뒤에 송사에 말려든 일도 있네. 다들 하는 말이 묘지가 불길하다고 하니 그 땅을 팔아 버리려 한다네. 또 두 개의 산언덕이 연결되어 있는데, 태백산(太白山) 서쪽이라고 하는구먼. 일이 공교롭게 되었지만,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
당새아는 즉시 수레를 준비하게 하여 유모와 함께 가서 살펴보았다. 유모가 말했다.
“땅에 용맥(龍脈)이 있으니 모두 안장할 만하구나.”
이에 이모부에게 중개를 서게 해서 땅 주인과 거래하고, 11월 중순에 안장하기로 했다.
장례는 무척 주도면밀하게 진행되었으며, 현감은 각 아문의 관리들과 함께 와서 제사를 올리고 또 일을 도와 줄 사람들을 보내 주었다. 당새아는 성 밖 5리 떨어진 곳에 안장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먼저 부모의 영구를 발인했다. 그리고 자신은 효도를 다하는 딸의 신분으로 양아들로 들어온 은가를 데리고 영구의 뒤를 따르면서 걸음마다 통곡을 했다. 그 모습에 성 안의 모든 사람들이 찬탄하면서 당새아가 용모와 현숙한 부덕(婦德), 그리고 재능까지 뛰어난 ‘삼절(三絶)’이라고 했다.
이튿날 동이 틀 무렵 당새아는 수레를 타고 새로 조성한 묘지로 가서 먼저 부모님을 안장하고 다음으로 남편을 안장했다. 또 조상의 묘지로 가서 제사를 올리면서 사흘이 지난 뒤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춘예에게 유연을 불러 심문하게 했다. 여기서 이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십년 동안 기생으로 명성 날리다가
임시로 여자 사령관의 비장(裨將)이 되고
반평생 절조를 지키다가
결국 부질없이 가짜 군주의 후비가 되었구나.
十年名妓, 且權充女帥的偏裨.
半世貞心, 竟幻作僞主的妃后.
이후의 일이 어떻게 되는지는 다음 회를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