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소설의 진실 또는 허위 【부록】 삼베 천 한 가닥(一縷麻)

포천소包天笑 저 / 민정기 역

모某 여사는 그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데, 항주杭州 서호西湖 가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소주蘇州에서 벼슬을 했기 때문에 아름다운 정원이 달린 저택에서 성장했다. 자태가 아주 아름다워 선녀같았고 거동에 절도가 있어 함부로 경솔하게 떠들거나 웃지 않았으며, 글을 잘 읽고 문장에도 뛰어났으니 처녀 진사였다.

여사는 오중吳中의 중흥中興여학교를 나왔으니, 본디 옛 학문을 배운 데에다가 신지식까지 보태게 된 것이었다. 학업이 나날이 발전하였는데, 총명하고 아름다운 자태에 공부까지 좋아하여 시험을 보면 또래들 가운데에서 으뜸이었다. 동창들은 그 재주를 흠모하였고 또한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그녀를 서양 소설에 나오는 이른바 ‘앤젤’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녀를 본 친척들은 감탄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섞어 “잘난 여자아이가 아깝구나! 잘난 여자아이가 아까워!”라고 말하곤 했다.

여사가 어렸을 적에 아버지는 그녀를 과거시험 동기인 모씨의 아들과 혼인시키기로 약조를 맺었다. 그런데 모씨의 아들은 바보 못난이었다. 타고나길 어리석은데다가 생김새까지 추했던 것. 오吳 지방에는 중매쟁이가 거짓말을 많이 보태는 풍조가 있는데다가, 그 남자아이는 독자로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고 또한 집안이 부유한 것에 끌려 여사의 부친은 혼사를 허락했던 것이다. 당시에 여사는 겨우 열 살이었는데, 사윗감의 바보스러움이 아직 확연히 드러나지 않았을 때라서 사람들은 양쪽 아버지가 모두 소주의 관리들인지라 잘 어울리는 가문끼리의 혼사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사윗감의 나이가 점점 많아지면서 그가 바보라는 소문이 점점 이웃 마을에까지 퍼지게 되었다. 요컨대 사내는 갈수록 바보가 되어갔고 여인은 갈수록 총명해진 셈이니, 두 사람의 지성 발달의 궤도는 완전히 반대로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여사의 아버지는 듣게 된 바가 조금 있어서 “손바닥 위의 구슬을 어찌 똥무더기 위에 던져야 한다는 말인가!”하고 탄식했다. 그렇지만 하녀들에게는 절대로 딸에게 말하지 말라고 일렀는데, 그녀의 성품이 고고하여 최상의 것만을 좋아한다는 점을 알았기에 혹여 남편 될 사람이 바보라는 것을 알면 사태를 수습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여사의 어머니가 각혈병으로 세상을 떴다. 여사는 몹시도 비통하게 곡을 했다. 장례를 치르던 날, 모씨 집안에서는 아들을 잘 단장하여 문상토록 했다.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것이며 절을 하는 것 등 일체의 것을 사오일 동안 연습시켰는데, 마치 큰 제사에 임하게 하는 듯 했다. 그렇지만 그 모습은 원숭이를 목욕시켜 모자를 씌워 놓은 꼴이었다. 어떻든 그 의도는 문상하는 동안의 행동거지를 통해 아들이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장례일이 되어 그는 수레와 말에 종복을 거느리고 여사의 집에 당도했다. 여사의 집안에서는 진작에 사윗감이 얼뜨기라는 소문을 들어왔던 터라 그 날 그가 도착하자 그 바보스러운 꼴을 한 번 보고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싶어했다. 그래서 친척들은 병풍 뒤에 숨어 있었고 하녀들도 장막 뒤에 숨어 엿보았는데, 모두들 신랑 될 사람을 한 번 보고 싶어했던 것이다.

모씨의 아드님이 도착해서는 며칠 간 연습한 것을 모조리 흐르는 냇물에 버리고 왔는지, 앞서 당부 받은 것들과 하나도 어긋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갑을 물으면 을로 대답하고, 오른쪽으로 가라하면 왼쪽으로 도는 것이었다. 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입을 가리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여사의 부친은 크게 속았다고 여겨 노발대발하며 중매쟁이와 따졌다. 중매쟁이는 “제가 댁의 따님을 위해 중매에 나설 때에는 저 집안의 아드님은 한참 총명했고 그 부친 역시 요직에 계셨으니, 가문이 서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때는 사윗감이 막 학당에 들어갈 때였는데 어찌 오늘날처럼 저런 모습이 될 줄 알았겠습니까? 또 제 생각에는 저 댁의 아드님이 풍류의 자태가 설익어서 저런 것이니 좀 더 연륜이 쌓이면 뛰어난 인물이 될 지 누가 압니까? 나리께서는 편안히 생각하셔야지 조급해 하시면 안 될 줄 압니다”라고 둘러댔다.

모씨의 아들이 문상을 다녀간 이후로 이웃의 친척들은 모두들 그를 가지고 입방아를 찧었다. 부엌에서 일하는 하녀나 시중을 드는 계집종까지 모씨 댁 아들의 바보스러움을 비웃는 것이었다. 그러다가는 휴우 한 숨을 쉬면서 우리집 아가씨가 어쩌다가 그런 사람의 배필이 되었는가하고 탄식을 했다. 또한 중매를 선 사람은 고통이 끊이지 않는 아비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욕을 했다. 어느 날, 하녀들이 속닥거리는 것을 여사가 듣고는 저들이 저렇게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을 여러 차례 보았는데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일의 전말을 캐어 결국은 그 이유를 다 알게 되었다. 여사는 너무나도 기가 차서 살고 싶지 않았고, 이승에서의 삶은 끝장이라고 여겼다. 어찌 그런 얼치기와 평생을 산다는 말인가? 그때에는 아직 어머니의 상중이었는데, 여사는 밤낮으로 곡을 하면서 어머니 곁으로 가서 깊고 깊은 어둠 속에 잠겨 다시는 해를 보지 않고 이러한 고통도 당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랬다. 마음속의 분함을 이렇게 한바탕 곡을 해서 씻어내곤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울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버지도 늘 비탄에 잠겨 수척한 늙은이가 되어버렸다. 딸이 가슴에 통한을 쌓아두고 있는 것을 보고는 때때로 넌지시 다독거려 주었지만, 여사의 마음은 항상 우울하여 기쁠 날이 없었다.

마침 상해에서 발간되는 『시보時報』에 「신부의 명이 박하기도 하지」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이 실렸다. 마리아라는 여인이 멋진 청년 찰스와 약혼을 했는데 뒤에 찰스가 부상을 입어 불구가 되었지만 마리아가 끝내 그를 버리지 않고 결국 두 사람이 결혼한다는 이야기였다. 아버지는 이 이야기를 읽고는 아주 기뻐하면서 이를 통해 딸아이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싶었다. 그는 여사에게 유럽의 풍조가 수입된 이후 미풍양속이 사라져 정절을 지키는 것이 낡은 관념이라고 종종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서양 여인 역시 고통을 감내하며 운명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해주었다.

여사는 그 소설을 읽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친이 “그 사람됨이 어떻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 여사가 대답했다:

“마리아는 정이 깊은 사람입니다. 결코 남자가 불구가 되었다고 해서 그 사랑을 저버리지 않았으니까요. 정절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아버지가 말했다:

“세상의 귀감이 될 법하지 않느냐? 요즘에는 신학문이 발흥하여 옛 도덕은 땅에 팽개쳐져 있다. 이혼을 부추기는 풍조가 일어 부부 관계를 무슨 여관집에서 만나 헤어지는 사이쯤으로 여기는데, 한 번 혼인하면 죽을 때까지 헤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옛 성현의 말씀은 케케묵은 먼지와 같은 말이 되어버렸지. 배우자 사이에 어찌 어긋나는 부분이 없을 수 있겠느냐만, 다 형편에 맞추어 사는 것이지.”

여사가 말했다:

“아버지 가르침은 참으로 맞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마땅히 사안을 분별해서 살펴야 할 것으로 봅니다. 우선 마리아와 찰스는 서로 깊이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중매쟁이의 한 마디에 따라 억지로 두 사람을 맺어준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 다음, 찰스는 비록 불구가 되기는 했지만 정신은 또렷했습니다. 바보는 아니었으니 서로 오손도손 이야기하는 즐거움까지 없는 것은 아니었지요. 그러니 마리아가 찰스를 버리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혼인 습속은 야만스러워서 아무나 골라 짝을 지워줍니다. 결국 결혼이란 평생을 좌우하는 일인데, 어찌 죽을 때까지 고통을 지고 가겠습니까? 그러니 이혼이라는 것에 대해 저는 그렇게 큰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딸아이의 속마음을 알고는 거듭 탄식하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가버렸다.

한편, 여사의 이웃에 사는 모씨 청년은 아주 멀끔한 공자였는데, 모 학당의 우등생으로 매우 총명한데다가 공부도 열심히 했다. 매주 일요일이면 노모를 뵈러 집에 왔는데 그 때면 여사를 방문하여 문학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여사 역시 일가 중에 이 사람을 빼고는 이야기를 나눌 만한 이가 없다고 여겼다. 두 집이 이웃한지도 오래되어 이들은 죽마고우였고 오빠, 동생하며 지냈는데, 아버지도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세상에서 정情의 그물이 사람을 옥죄는 일은 종종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법. 청년은 여사에게 정혼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가 바보였기에 어찌 저 옥과 같은 여인의 배필이 될소냐 하고 생각해 왔다. 아름다운 꽃이 돼지우리에 떨어진 격이요, 흰 벽옥碧玉이 깊은 연못에 던져진 격이라고 여겨 늘 한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사 역시도 연정이 생겨나 마음속으로 그의 사람됨을 흠모하였고, 재주도 있으며 지혜롭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서로에 대한 마음이 깊은 남녀 사이에 사랑의 뿌리가 자라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아버지도 역시 그 기미를 눈치 채고서는 두 사람이 치정의 바다로 빠져버리지는 않을까 걱정하여 남자의 집에 결혼을 서두르라고 은근히 권했는데, 어서 이 악연을 마무리 짓자는 심사로, 아버지로서도 그 상황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어떻든 혼례일은 정해졌지만 여사는 결코 시집가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했다. 아버지는 그녀를 위로하며 말했다:

“이 혼인을 네가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일이 여기까지 이른 이상 우리와 같은 뼈대 있는 집안에서 어떻게 진작에 한 혼약을 파기한다는 말이냐? 네가 이 아비를 좀 불쌍히 여겨다오. 만약 도무지 견디지 못하겠다면 그때 가서 친정에 돌아오면 될 것이다. 내 생각에 시부모님도 그런 바보 아들을 둔 처지니 너를 그다지 책망하지는 않을 게야.”

여사는 효성스럽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원망스러웠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없었고 그저 내 일생은 이것으로 끝이다라고 생각했다. 듣기로 시집이 제법 부유하다고 하니 남편을 위해 첩실이나 한 명 들여 바보 서방 시중을 들게 하고 자신은 자유로운 생활을 영위한다면 누가 나를 구속하겠는가 싶었다.

혼례 며칠 전에 옆집 청년은 자신의 내심을 토로하기 위해 특별히 휴가를 내어 돌아왔다. 그가 말했다:

“십 년 동안 동생과 글을 논하고 예술을 이야기해 왔지. 하지만 그저 글을 함께 공부한 친구만은 아니오, 의를 함께 나눈 벗이기도 해. 이제 동생이 시집가게 되었으니 나는 외로워 어찌할지 모르겠소.”

여사가 말했다:

“누군들 그런 저열한 인간과 짝이 되길 기꺼워하겠습니까? 갔다가는 돌아올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자유롭게 서신을 나눌 권리가 있으니 연정을 전해주는 파랑새의 힘을 빌 수 있겠지요.”

혼례를 올릴 날이 되어 음악소리가 떠들썩한 가운데 여사를 데리고 갔다. 신랑은 격식대로 절을 하긴 했지만 멍청한 꼬락서니가 웃음을 자아냈다. 급기야 신방에 등불을 밝히고 침상에 둘이 앉아 신부의 얼굴을 덮었던 천을 걷어 올리는데, 친지들이 엿보면서 모두들 절세미인이라고 찬탄을 했고 여사를 더욱 가련하게 여기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보 신랑은 곁에 서서는 마음으로는 그녀를 좋아하면서도 그렇다고 말은 못하고 그저 헤벌쭉 웃기만 할 뿐이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신부가 예쁘지?”하고 묻기라도 하면 그저 “좋아! 좋아!”하고 방이 떠나가라 큰소리로 웃었다. 여사는 더욱 화가 나서 속으로 “이들이 양가집 여자를 노리개로 아는가? 인권이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말이냐?”하고 생각했다. 상념이 이에 미치자 그녀는 눈물을 뚝뚝 떨구어 붉은 비단 치맛자락을 적셨는데, 눈물방울이 큰 구슬만 했다.

구경 왔던 사람들은 신부가 즐거워하지 않는 것을 알고는 왁자지껄하며 자리를 파했다. 여사는 시집오기 전에 통 넓은 속바지를 해 입고는 단추를 꼭 맞게 달아 바보 신랑이 범하지 못하게 하리라 했었다. 이제 연회도 파하고 사람들은 흩어졌고 촛불 그림자만 춤을 추고 막 잠자리를 준비할 때였다. 하녀들은 신랑에게 어서 주무시라고 당부했는데 신랑은 무엇을 어찌해야 할 지 모르고 그저 근질근질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기분만 느끼고 있었다. 여사는 몸을 옆으로 하여 안쪽을 향해 누웠는데 바보 신랑은 멍청히 나무로 깍은 수탉 마냥 앉아서 날이 밝을 때를 기다렸다. 그러니 두 사람 모두 눈감고 편안히 잠을 자지 못한 셈이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날이 밝자마자 참담한 구름이 이 집안을 뒤덮게 될 줄이야. 여사는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손질하고 세수를 하는데 목구멍에 뭐가 걸린 듯 껄끄러워 물을 마시기에도 불편했다. 보니까 흰색 덩어리가 목구멍에 빙 둘러 부풀어 있어 크게 놀랐다. 당시 오 지방에는 역질이 성행하고 있어 죽는 이가 연이어 생겼는데 퍼지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때로는 십 여 명이나 되는 한 가족이 며칠 만에 이 역질에 걸려 죽기도 했다. 신부가 집안에 들어오자마자 이 흑사병에 걸리니 온 집안이 허둥댔고 하녀들도 감히 신부의 방에 들어가고자 하지 않았는데, 대개 비천한 이들일수록 생명을 더욱 중히 여기는 법인지라. 그런데 바보 신랑은 피하지 않고 신방에 깊숙이 들어앉아 탕약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일들을 모두 손수 챙기는 것이었다. 부모가 잠시 피해있으라고 명해도 듣지 않으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 모두 역질을 두려워하니, 그렇다면 역질에 걸린 사람은 죽도록 내버려두어야 하나요? 전에 제가 아팠을 때 어머니가 이처럼 간호해 주셨지요. 아니면 저는 죽었을 거 아니에요?”

여사가 듣고는 그 정성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래서 미워하고 비하하는 마음 역시 조금씩 없어졌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이틀이 지나지 않아 신랑 역시 이 가공할 역질에 걸리게 될 줄. 아아! 그 결과 바보 신랑은 결국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고 여사의 병도 점점 심해져 삼사일 동안 혼절하여 인사불성이었는데, 젊은 부부가 그렇게 죽어버리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다행히 유명한 의사의 치료를 받아 목구멍의 덩어리도 제거하고 몸의 열도 내리더니 정신이 조금 맑아졌다. 몸을 뒤채는데 머리채에 뭔가 걸려 손으로 잡아보니 삼베 천 한 가닥으로 머리를 묶어놓은 것이었다. 깜짝 놀라 하녀에게 물으니 “공자께서 이미 돌아가셨답니다”라고 했다. 여사는 침상을 짚고서 대성통곡하였다.

“내가 낭군을 죽게 했구나! 내가 낭군을 죽게 했어!”

이전의 미워하고 경멸하던 마음은 자신을 아껴준 이의 은혜에 감복하는 눈물로 이미 바뀌어 있었다. 낭군은 결코 바보가 아니라 너무나도 진국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또한 집안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바보 신랑은 눈을 감기 전 부모에게 신부를 예쁘게 봐 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 여사가 그 이야기를 듣고는 슬픔을 더욱 가눌 수 없어 자리를 차고 일어나 관 앞으로 가서 통곡을 하니 그 비통함이 사람들의 마음 움직여 길을 지나던 사람도 눈물을 떨구었다. 오호라! 독자들은 아실 것이다. 여사가 오늘에 와서 통곡하는 것은 과부가 되었기 때문도 아니요 신세를 한탄해서도 아니며, 이처럼 정이 많은 사람을 등진 것을 통탄해 하는 것임을.

한 달 후에 여사 이웃의 청년은 여사의 부탁을 생각하고 편지를 써서 그 슬픔을 달래고자 했다. 그는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올 수 없으니 상황에 맞추어 처신하라고 당부하며, 그대는 트인 사람이 아니더냐고 했다. 여사는 그러나 답장을 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난 후 청년은 다시 편지를 써서 문학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동생이 허락했던 바이니 만약 친정에 돌아갈 때를 알려주면 자신도 휴가를 내어 귀가하겠노라고 했다. 여사는 역시 답하지 않았다. 며칠 후에 청년은 또 편지를 보내왔는데 여사는 뜯어보지도 않고는 편지를 들고 온 하녀에게 말했다:

“공자께 이르게. 미망인의 마음은 말라버린 우물과 같아 다시는 일체의 정념情念을 담지 못한다고. 앞으로 남은 삶은 내내 예불을 드리며 보낼 것이라고. 부처님께 귀의하여 속세의 근심 걱정 다 씻으려 하는데 문학과 예술은 논해 무엇 할 것이냐고.”

이후로 여사는 친정에 갈 때면 반드시 청년이 와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고 갔고, 다시 서둘러 시댁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그와는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여사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 타고난 성품이 본디 정분에 얽매이는 것이었다. 이제 흔들리지 않는 고요한 물처럼 되었거늘 어찌 다시 미세한 물결이라도 일으킬소냐.

오호! 밤하늘 기러기는 날아가 버려도 그 울음소리가 하늘 가득 남아있지 않던가! 이제 사람들이 모 여사의 정절을 전하며 그것을 단단한 금석과 희디흰 빙설에 견주더라.

― 『小說時報』 제2기 1910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