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설古今小說-배진공이 제 짝을 찾아주다裴晋公義還原配 1

배진공이 제 짝을 찾아주다裴晋公義還原配

지극히 높은 벼슬에 수만금의 재산,
그걸 누리기도 전에 백발이 먼저 나를 찾아오는구나.
어진 마음으로 선행을 베푸는 것만이,
이 세상에 썩지 않는 뭔가를 남기는 길이지.

한 문제 치세에 황제의 총애를 독차지한 신하가 있었으니 바로 등통鄧通이었다. 황제가 외출하면 가마를 뒤에서 수행하고 황제가 잠자리에 들면 침대 옆에서 모실 정도였으니 그 총애를 넘볼 자가 없었다. 그 때 천하의 관상가 허부許負가 등통의 얼굴을 보더니 주름이 세로로 입꼬리까지 이어지고 있어 종국에는 굶어 죽을 것이라 예언하였다. 문제가 그 말을 듣고 버럭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천하의 부귀영화가 다 나에게서 말미암아 생겨나는 것인데, 뉘라손 감히 등통을 가난하게 만들 수 있단 말이냐?”

문제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촉도의 구리 광산을 등통에게 하사하여 동전을 주조하게 하였다. 당시 등통이 만든 동전이 천하에 널리 퍼지니 그의 부는 온 천하를 덮을 정도였다. 어느 날 문제에게 종기가 나고 피고름이 줄줄 흐르니 문제는 너무도 아파서 참을 수 없었다. 그때 등통이 문제 옆에 무릎을 꿇고서 종기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니 문제는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문제가 등통에게 물었다.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사이가 누구인가?”

“그야 부자지간이지요.”

마침 황태자가 병문안을 하러 왔기에 문제가 황태자에게 종기를 빨아보라고 시켰다. 황태자가 하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핑계를 대었다.

“소자가 방금 생고기를 먹었기에 혹여 폐하께 감염이라도 시킬까 봐 걱정입니다.”

태자가 물러갔다. 문제는 탄식하였다.

“부자지간은 세상 그 어떤 사이보다 가까운 사이라는데 저 아들놈은 내 종기조차 빨아주지 않는구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등통이 친아들보다 낫구나.”

이 일을 계기로 문제는 등통을 더욱 총애하였고, 황태자는 이 일을 계기로 등통을 시기하고 미워하게 되었다. 후에 문제가 붕어하고 황태자가 즉위하여 경제가 되니 경제는 마침내 등통의 죄를 물었다. 선대 황제의 종기를 빨아주며 아부를 하고, 제멋대로 동전을 주조하였다 하여 등통의 재산을 몰수하고 아무도 없는 빈 옥에 가둬 놓고는 먹을 것을 하나도 주지 아니하였다. 결국 등통은 굶어 죽고 말았다.

한편 경제 때의 승상 주아부周亞夫 역시 세로 주름이 입꼬리까지 이어지는 관상이었다. 경제는 주아부의 위세가 너무 커지는 것을 시기하여 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옥에 가둬버리니 주아부는 분에 못 이겨 식음을 전폐하고 죽고 말았다. 이 등통과 주아부는 지극히 높은 벼슬과 지극히 많은 재산을 누리고 있었으나 굶어 죽을 관상을 타고나서 과연 말년이 좋지 못하였다. 그러나 모든 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설도 있으니 얼굴 관상보다는 마음 관상이 더욱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얼굴 관상을 타고났어도 마음씨를 곱게 쓰지 못하면 그 관상 덕을 다 깎아 먹고 도리어 끝이 안 좋은 경우가 태반이다. 반대로 관상은 별로 좋지 않아도 마음씨를 곱게 쓰고 늘 선행을 쌓으면 외려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물론 이것은 사람의 정성이 하늘에 닿은 것이지 관상법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당나라 때에 배도裴度라는 자가 있었으니 어려서 집안이 가난할 적에 관상쟁이가 배도의 관상이 세로주름이 입꼬리에 닿은 형상이라 굶어 죽을 상이라고 한 적이 있다. 배도가 언젠가 향산사에 갔다가 우물 난간에서 보석이 박힌 허리띠 세 개를 발견하고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다른 사람이 잃어버린 모양이구나. 다른 사람 물건을 함부로 취하여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히고 나의 이익을 취한다면 그건 양심 없는 짓이지.”

배도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한참을 기다렸다. 조금 있으려니 부인 하나가 울면서 다가오는 것이었다.

“연로하신 아버님이 옥중에 갇히셔서 제가 이 보석 박힌 허리띠 세 개를 빌려 속전으로 삼아 아버님을 구해드리려고 하였습니다. 이 향산사에 이르러 잠시 그 허리띠를 내려놓고 손을 씻고 향을 사르고는 그만 여기에다 두고 가버렸습니다. 누군가가 그걸 주우셨다면 저를 가련히 여기사 돌려주셔서 우리 아버님을 구할 수 있게 하여주시길 바라나이다.”

배도는 그 말을 듣자마자 허리띠 세 개를 바로 부인에게 건네주었고 부인은 그걸 받고서 감사인사를 올리고 돌아갔다. 그런 다음 우연히 전에 자신의 관상을 봐준 적이 있는 그 관상쟁이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놀라서 말하였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관상이 싹 변할 수 있단 말이오. 전에 보이던 굶어 죽을 관상이 전혀 아니로구먼. 혹시 어디 음덕을 쌓은 적이라도 있소?”

이 말을 듣고서 배도는 뭐 그런 일까지 있었을까 하는 태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지만 그 관상쟁이는 자꾸 다그치며 이렇게 물었다.

“곰곰이 생각해보시구려. 그대가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거나 불속에서 사람을 구해준 적이 있는가 하고.”

그 말을 듣고서 배도가 여인에게 보석 박힌 허리띠 세 개를 찾아준 이야기를 하였다.

“이거야말로 정말 대단한 음덕을 세운 것이지요. 나중에 틀림없이 재산도 늘고 지위도 올라갈 것이니 지금 미리 축하드리오.”

나중에 과연 배도는 승승장구 재상이 되고 천수를 누렸다.

얼굴 관상보다는 마음 관상,
사람은 모름지기 음덕을 쌓아야지.
팔자는 절대 바꿀 수 없는 거라면,
굶어 죽을 팔자가 어찌 재상까지 되었겠는가.

여보슈, 이야기꾼 그대는 그저 배도가 음덕을 쌓아 부자가 된 이야기만 하는데, 실은 배도가 부자가 되고 높은 벼슬에 오른 이후에 더 많은 공덕을 쌓은 일은 왜 이야기하지 않는 거요? 그런가, 지금 내가 배도가 제 짝을 찾아준 이야기를 해 줄 것이라. 그 사연은 특히 더 감동적이라오. 그 이야기를 하자면 당나라 헌종憲宗 황제 원화元和 13년, 배도는 군사를 거느리고서 회서淮西의 반적 두목 오원제吳元濟를 무찌르고 조정으로 돌아와 재상 직위에 올랐고 진국공晉國公이라는 작위를 받았다. 그 후로 배도는 배진공이라 불렸다. 이제까지 한참 위세를 키우던 번진들도 모두 진국공의 위세에 질려 표를 올려 땅을 바치고 스스로 항복하였다. 항기절도사恒冀節度使 왕승종王承宗은 덕주德州와 예주隸州를 바치고, 치청淄靑절도사 이사도李師道는 기주沂州, 밀주密州, 해주海州 삼도를 바치겠다고 하였다.

헌종은 외치가 어느 정도 안정되고 천하가 태평하여졌다고 생각하고는 용덕전龍德殿을 짓고, 용수지龍首池를 파고, 승휘전承暉殿의 건축을 시작하는 등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일으켰다.

한편 도사 유필柳泌의 말을 듣고서 불로장생약을 찾았다. 배진공이 몇 차례 간언을 하였지만 듣지 않았다. 궁정 살림을 맡고 있는 간신 황보박皇甫鎛, 소금과 철의 전매를 담당하는 정이程異 등이 앞장서서 백성들의 재물을 뜯어냈다. 그들은 태평성대를 살아가는 백성들이라면 모름지기 임금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든 걸 아껴 쓰고 남는 것은 나라에 바쳐야 한다는 구실을 갖다붙였다. 이 둘은 헌종의 총애를 등에 업고 평장사平章事의 직까지 겸직하였다.

배진공은 그들과 함께 관직을 수행하는 것이 너무도 수치스러워 황제께 표를 올려 사직을 구하였으나 황제가 허락하지 않고 오히려 배진공이 붕당을 짓고 타인을 시기하고 있다고 은근히 질책하였다. 배진공은 공을 세움이 크고 자리에 올라감이 높아질수록 거꾸러지고 넘어지는 일이 많아질 것임을 직감하고서 조정의 일은 거의 관여치 아니하고 그저 주색잡기에 몰두하며 여생을 그렇게 마감하고자 하였다.

각 지방의 관리들 가운데 이런 상황을 눈치 채고 가기와 무희를 구하여 배진공에게 보내주는 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사실 배진공이 어디 그런 가기와 무희를 보내달라고 했겠는가? 다만 아부하기를 좋아하는 무리들이 배진공이 좋아할 거라 지레짐작하고는 자신들이 비싼 돈을 치르고서 가기와 무희를 사거나 아니면 억지로 가기와 무희를 뺏다시피 하여 좋은 옷을 입히고 치장하여 내실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여자라 둘러대거나 심부름하는 계집아이라고 이름하여 은근슬쩍 배진공 댁으로 보내오곤 했던 것이다. 배진공은 드러내놓고 거절하기도 뭐하여 그냥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한편, 진주晉州 만천현萬泉縣에 한 인물이 살고 있었으니 그 사람의 성은 당唐이요, 이름은 벽璧이며, 자는 국보國寶라. 일찍이 효렴과孝廉科에 급제하여 괄주括州 용종현위龍宗縣尉를 지냈다가 월주越州 회계승會稽丞을 지내고 있었다. 예전에 그가 고향에 있을 시절 동향 황태학黃太學의 여식 소아小娥와 정혼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소아의 나이가 너무 어렸는지라 몇 년 기다린 다음 정식 혼인을 치를 참이었다. 한데 정작 소아의 나이가 찼을 때는 그만 당벽이 두 번이나 연거푸 남쪽으로 발령을 받는 바람에 두 사람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게 되어 정식 혼인은 치르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그 소아의 나이가 바야흐로 열여덟, 얼굴은 꽃 더미를 쌓아 놓은 듯, 몸매는 옥을 깎아 놓은 듯, 음률에 통달하고, 피리를 잘 불고 게다가 비파까지도 잘 다루니 정말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한데 그때 진주자사가 배진공의 비위를 맞추고자 자신의 지역에서 미모와 재주가 빼어난 여아를 선발하여 바칠 심산이었다. 이미 다섯 명의 여아를 선발하였지만 특별히 빼어나 대표로 삼을 만한 자를 아직 구하지 못하였다. 이 때 황소아의 이름을 듣게 되어 관심을 가졌지만 그래도 태학 벼슬아치의 여식이라 함부로 어쩌지 못하고 있다가 마침내 30만 전을 내걸고 만천현의 현령에게 좀 구해오도록 하였다.

만천현령은 자사의 명령을 받들고서 황태학의 집에 사람을 보내어 자사의 뜻을 전하게 하였다. 황태학은 그 전갈을 받고서는 이미 정혼한 몸이니 명령을 받들 수가 없노라고 정중히 거절하였다. 현령이 두세 차례 거듭 부탁하였지만 황태학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청명절이 되자 황태학은 집안에 여식 소아만을 남겨두고 조상묘에 성묘를 하러갔다. 현령이 이 상황을 알게 되자 즉시 직접 황태학의 집에 달려와 소아를 찾아서 가마에 태우고 데리고 가게 하는 동시에 두 명의 여종을 붙여 곧장 진주 자사가 있는 곳으로 보내버렸다. 그리고는 30만 전을 황태학의 집에 몸값으로 남겨두었다.

성묘를 마치고 돌아온 황태학은 소아를 현령이 억지로 데리고 간 것을 알게 되었고 급히 서둘러 현령에게 찾아갔더니 소아는 이미 자사에게 보내졌다고 하였다. 황태학은 다시 진주 자사를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간청하였다. 자사가 황태학에게 이렇게 타일렀다.

“그대의 여식은 재색을 겸비하였으니 재상부에 들어가면 당장 총애를 독차지할 것이오. 그럼 필부의 아내가 되어 집안일이나 하는 것보다 백배 천배 나은 것 아니요. 게다가 내가 이미 딸내미 몸값으로 60만 전을 주었으니 그걸 자네 딸과 정혼한 사위에게 건네주고 다른 여인을 찾도록 권하는 게 어떻소.”

“현령이 저의 가족이 성묘 가는 틈을 타서 제멋대로 돈을 던져 놓고서 제 딸을 억지로 데려간 것이지 제가 있을 때 저의 허락을 받고서 데려간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제가 받은 돈은 30만 전이고 그 돈을 지금 모조리 들고 왔습니다. 저는 제 딸을 원하지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주자사는 책상을 내려치며 버럭 화를 내었다.

“너는 돈을 받고 딸내미를 판 주제에 60만 전을 받고도 30만 전밖에 받지 않았다고 기만하니 이게 무슨 경우인가. 그대 딸은 이미 배진공에게 보내졌으니 딸을 찾고 싶으면 배진공 댁으로 달려가 보게나. 여기서 이래 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