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과 해석 방법론- 《홍루몽》의 특수 독자와 《홍루몽》의 해석 4-6

3. 신홍학 시기의 지연재 비평 연구

2) 비평가의 신분과 비평의 권위 설립

(5) 작자의 권위에 기대기

이상에서 논의한 문제를 총괄해 보면 비평의 권위가 비평가의 신분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일찍이 피수민(皮述民)은 “비평을 자세히 읽어 보면 누구나 이 비평의 권위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또한 그 때문에 《홍루몽》에 대해 지연재(지연[脂硯], 지연[脂硏], 지재[脂齋]라고 칭하기도 함)라는 인물이 가지는 중요성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것은 지나치게 절대화한 말인 듯하며, 또한 피수민은 지평가의 중요성과 비평가의 권위가 사실 작자에게서 비롯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서구의 독자 반응 비평이 유행한 이래 ‘내포 독자(implied readers)’, ‘허구적 독자(fictive readers)’, ‘이상적 독자(ideal readers)’, ‘고급 독자(super readers)’ 등등의 용어들이 생겨났지만 지연재나 기홀수처럼 작자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 독자를 형용할 수 있는 용어는 하나도 없다. 우리는 테스트 문제를 논의할 때에 작자의 본래 의도를 얘기하려면 가장 믿을 만한 자료는 텍스트라고 했던 위잉스의 말을 언급한 적이 있다. 사실상 신홍학 연구자들도 작자의 의도를 매우 중시했는데 마침 비평가가 작자의 ‘친척’이거나 “조설근의 의도와 문체를 이처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석두기》에 대해 그(비평가)는 작자의 대변인으로서 그 안에 담긴 깊은 의미를 모두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러므로 비평은 ‘작자의 의도’를 알 수 있는 지극히 믿을 만한 증거가 되었다. 우리는 또 작자 문제를 논의할 때 윔새트(W. K. Wimsatt)와 비어즐리(M. Beardsley)의 ‘의도적 오류’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들의 논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작자의 본래 의도’는 ‘알 수 없는(not available)’ 것이라는 점이다. 데니스 듀튼(Dennis Dutton)은 〈의도주의는 왜 사라지지 않는가?〉에서 윔새트와 비어즐리의 주장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썼다.

분석파 학자들은 의도적 비평에 대해, 우리는 작자의 의도가 무엇이거나, 무엇일 수도 있다거나, 무엇이었다고 확실히 알 수 없다고 비판한다.

지연재 비평의 비평가와 작자의 진밀한 관계 때문에 많은 《홍루몽》 연구자들은 지연재 비평이 작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에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지연재 비평이 있음으로 인해 후세의 독자들은 작자의 의도에 ‘접근’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1990년대에는 지연재와 기홀수 등은 ‘작자의 절친한 친척이나 벗’도 아니고 《홍루몽》 창작의 ‘사정을 아는 사람[知情者]’나 ‘참여자’도 아니라는 지적이 나왔다. 지연재 비평에 얹어졌던 작자의 권위는 소실되고, 지연재 본인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악행을 저지른 지연재[作惡多端罄竹難書的脂硯齋]’라고 비판을 받았고, 지연재 등의 글도 《홍루몽》 연구의 ‘장독안개[霧瘴]’ 속에 빠져 버렸다. (‘지연재 타도’를 주장하는 논의의 논거들도 주로 지연재 판본에서 나왔으며 또한 그 비판자들 역시 지연재 비평의 몇몇 항목은 믿고 있다는 점은 풍자적이라 하겠다.)

앞서 우리는 위핑보가 지연재 비평을 인용하여 ‘설보차와 임대옥을 합일시키는(釵黛合一)’ ‘작자의 의도’를 설명한 방법을 살펴보았다. 이제 이어서 후스가 지연재 비평은 운용하여 ‘작자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서술한 것’이라고 설명한 방법과 저우루창이 같은 방식으로 ‘작자 스스로 서술한 사실[自傳的事實]’을 설명하는 방식을 살펴보자.

4. 지연재 비평의 해석 문제: 자서전설과 반(反)자서전설의 대립

앞 절의 논의는 주로 비평가의 신분과 비평의 가치 사이의 관계에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비평 연구가 시작될 때 이미 《홍루몽》의 해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알았다. 위핑보는 일찍이 비평과 작자의 의도 사이의 관계에 주목했다. 저우루창의 ‘상운설’ 자체는 이미 ‘자서전설’과 융합되어 있었다.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지연재 비평을 운용하여 자서전설을 공고하게 다지는 방식은 후스에게서 시작되었다.

1) 지연재 비평과 저작권의 확립, 자서전설의 완성

후스는 〈《홍루몽》 고증의 새 자료〉에서 이미 《홍루몽》 제13회에 들어 있는 “35년을 완곡하게 가리킨다[曲指三十五年矣].”라는 비평과 “30년 전의 일을 30년 후에 책에서 본다[三十年前事, 見書於三十年後].”라는 비평을 인용한 바 있다. 그는 “그것들은 모두 《홍루몽》이 조씨 가문의 사실을 기록한 책으로서 적지 않은 의혹을 타파할 수 있게 해 주는 보조적인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가 거론한 구체적인 증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원비(元妃)가 가족을 찾아간 일[省親]에 대한 비평이다. 갑술본 제16회의 회전총평에서는 “가족을 찾은 일을 빌려 황제의 강남 순시를 묘사함으로써 마음속에 담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과 지금 상황에 대한 감회를 토로했다!”고 되어 있다. 후스는 이 비평이 강희제의 강남 순시와 조인(曹寅)이 네 차례에 걸쳐서 황제의 행차를 영접한 일과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후스는 이 비평의 내용이 바로 자신이 〈고증〉에서 세운 가설을 실증적으로 증명한다고 생각했다. 둘째, 가정(賈政)이 원외랑(員外郞)으로 승진한 일에 대한 비평이다. 후스는 〈고증〉에서 조씨 가문의 가계를 제2회에서 냉자흥(冷子興)이 얘기한 가씨 가문의 가계와 비교했는데 당시 그는 가정이 둘째 아들이어서 처음에는 관직을 세습하지 않았고, 또 원외랑이었던 점이 조부(曹頫)의 상황과 모두 들어맞는다고 주장했다. 지금 갑술본 제2회의 측비(側批)에 “직계가 전하는 실제 사실이지 함부로 지어낸 것이 아니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후스는 여기서 의외의 훌륭한 증거를 찾아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비평 연구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어냈다. 즉 “그러므로 《홍루몽》은 조씨 가문의 일을 서술한 것인데, 이 점은 이제 많은 증거가 있기 때문에 더욱 뒤집을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는 것이다.

후스는 그저 간단히 두 조목의 비평만 인용하여 자신이 〈고증〉(개정판)에서 전개한 주장을 강화했다. 저우루창은 이런 작업을 극한까지 밀고 나갔다. 그의 《홍루몽 신증》(棠棣版) 제8장 제3절 〈지연재 비평을 통해 보는 《홍루몽》의 사실성〉은 완전히 비평을 인용하여 ‘자서전설’을 공고하게 다지는 것이었다. 이후로 비평은 해석자들이 쟁탈하려 하는 진지가 되었다.

〈지연재 비평을 통해 보는 《홍루몽》의 사실성〉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작자를 확립하는 것이고, 둘째는 ‘원작의 의도’를 확립하려는 것이었다. 둘째 부분은 첫째 부분을 토대로 삼고 있다. 저우루창은 글의 첫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요지를 밝히고 있다.

지금 이 고증의 유일한 목적은 과학적 방법으로 역사 자료를 운용하여 이 작품이 사실적인 자서전이라는 주장이 틀리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세 가지 진본 지연재 판본을 보고 나서 이 책의 작자와 의도라는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이미 비할 나위 없이 분명하게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가 이 두 문제에 대해 다시 의심하거나 반박하려면 우습기 짝이 없는 어리석은 짓일 될 것이다. 이런 귀중한 자료를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부터 구하게 됨으로써 뒤죽박죽 섞여 있던 모든 것들을 제거할 수 있는 증거를 획득했으니, 애써 고증하는 것은 오히려 어리석음만 드러내게 될 것이다.

저우루창의 주장을 검토하기 전에 우선 후스가 어떻게 ‘저자는 조설근’이라는 주장을 건립했는지 돌아보자. 후스의 증거는 단지 두 가지뿐이다. 첫째는 《홍루몽》 본문에서 “나중에 조설근이 도홍원에서 10년 동안 읽어 보고 다섯 차례에 걸쳐 수정하면서 목록을 작성하고 장회를 나누어……”라고 한 것과 제120회에 서술된 내용 즉, 조설근이 어떻게 《홍루몽》을 전해 받게 되었는가 하는 내용이다. 둘째 증거 역시 스스로 ‘방증’이라고 부른 것으로서 원매(袁枚)의 《수원시화(隨園詩話》 권2에 들어 있는 한 대목이다. 그러나 이 두 증거는 그다지 유력하지 않다. 위핑보도 ‘저자가 조설근’이라는 주장에 대해 다른 증거를 나열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방증’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시 저우루창이 지연재 비평을 정리하여 ‘저자가 조설근’이라는 주장을 강화한 것은 나름대로 역사적 중요성이 있는 것이었다.

저우루창은 여덟 가지 비평을 인용하여 ‘저작권’을 밝혔는데, 후세의 연구자들은 이 비평들에 대해 거의 모든 항목에 대해 개별적으로 의견을 제시했다. 이제 관련된 그 비평들을 제시하되, 이후의 논의에 편하도록 각기 번호를 붙이도록 하겠다.

1. 제1회 갑술본 미비(眉批): 조설근이 읽고 수정했다면 작품 첫머리의 이 설자(楔子)는 또 누가 쓴 것인가? 이로 보건대 작자의 문장이 대단히 교활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뒤쪽 문장에도 이와 같은 것들이 적지 않다. 이것은 바로 작자가 안개와 구름으로 흐릿하게 묘사하는 화가의 방법을 운용한 것이다. 독자는 절대 작자에게 속지 않아야 큰 안목을 갖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2. 제1회 갑술본 미비: 조설근에게 옛날에 《풍월보감》이 있었으니 바로 그의 아주 당촌(棠村)이 서문을 쓴 것이다. 이제 당촌이 이미 죽어서 내가 새 필사본을 보고 옛날 생각이 났기 때문에 옛날처럼 그것을 따랐다.

3. 제1회 갑술본 미비: 책이 완성되기도 전에 조설근이 눈물이 다 말라 세상을 떠났다!

4. 제22회 말미 경진본 회말총평: 이 회가 완성되기 전에 조설근이 세상을 떠났다. 아아, 안타깝구나! 정해년 여름, 기홀수.

5. 제2회 갑술본의 두 줄로 된 협비(夾批): 다만 이 시는 너무나 절묘하다! 이런 재능과 정서는 당연히 조설근이 평생 기른 것이다. 나는 스스로 책(《홍루몽》)을 비평할 뿐, 시 비평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6. 제1회 가우촌(賈雨村)의 시에 대한 갑술본 측비(側批): 이것은 첫 번째 등장하는 시이니, 뒤쪽 문장에 나오는 여인들의 규정(閨情)은 모두 헛된 것이 아니다. 내 생각에는 조설근이 이 책을 쓴 데에는 시를 전하려는 뜻도 있는 것 같다.

7. 제30회 말미 갑술본 회말총평: ‘진가경이 음란함 때문에 천향루에서 죽다[秦可卿淫死天香樓]’라는 부분은 작자가 역사가의 필치로 쓴 것이다. 다행히 혼령이 왕희봉에게 가씨 가문의 뒷일 두 가지를 부탁한 일은 편안히 부귀영화를 누리던 사람이라면 어찌 생각해 낼 수 있었겠는가? 그 일은 비록 누설되지 않았지만 그 말과 그 뜻은 사람들로 하여금 처절한 감동을 느끼게 하기 때문에 잠시 용서해 주어서 근계(芹溪)로 하여금 삭제하게 했던 것이다.

8. 제75회 경진본 회전총평: 건륭 21년(1756) 5월 7일 대조해 보니 중추절의 시가 빠져 있어서 조설근의 처분을 기다린다.

유서(裕瑞)의 《조창한필(棗窗閒筆)》에서는 조설근이 이전 사람의 저작을 입수하여 ‘다섯 차례의 수정’을 통해 현존하는 《홍루몽》을 만든 사람일 뿐이라고 했는데, 저우루창은 첫 번째 비평을 인용하여 유서의 주장을 비판했다. 저우루창이 보기에 기타 비평들은 모두 ‘글의 뜻이 자명해서’ 해설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으로, “이 외의 지연재 비평은 여러 차례 ‘작자’를 거론하면서도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상의 여덟 개 항목으로 작자가 조설근임을 증명하는 데에는 이미 충분하고도 남는다.”라고 했다. 결국 이런 비평들은 많은 연구자들에게 조설근이 《홍루몽》의 작자라고 믿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서 리천동(李辰冬)은 이렇게 말했다.

《홍루몽》을 조설근이 썼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정론이 되었다. 더욱이 《지연재 중평 석두기》 판본이 발견됨으로 인해 이런 정론은 증거가 확실하여 뒤집을 수 없는 사안이 되었다.

그런데 지연재 비평을 인용하여 ‘작자가 조설근’이라는 관점을 강화하는 것이 《홍루몽》의 해석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은 만약 저우루창이 먼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사실대로 쓰자면 나는 작자가 분명히 그것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實點一筆, 余謂作者必有].”라거나 “작자와 나는 실제 그대로 경험했다[作者與余, 實實經過].”(갑술본 측비)라는 등의 비평에서 가리키는 ‘작자’가 누구인지 밝힐 도리가 없으며, 자서전설도 생겨날 근거가 없어져 버린다.

이런 관계가 있기 때문에 지연재 비평에서 제기한 ‘작자’는 예외 없이 조설근을 지향하며, 게다가 많은 비평들이 모두 ‘작자’의 창작 소재와 인물의 원형을 게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저우루창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연재 비평을 읽고 더욱 자신감을 가졌으며 내 자신을 결코 (소설을 완전히 역사로 취급하는) 멍청이라고 간주하지 않게 되었다. 《석두기》가 만약 100% 사실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단지 문학상의 수법과 기교의 문제일 뿐이지 결코 자료의 구상이 허위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 때문에 〈지연재 비평을 통해 보는 《홍루몽》의 사실성〉에서 수행한 두 번째 작업은 바로 비평의 내용을 귀납하여 《홍루몽》이 ‘정밀하게 마름질된 삶의 실록[精裁細剪的生活實錄]’(p.570)임을 논증하는 것이었다. 저우루창이 지연재 비평의 연구를 통해 얻은 몇 가지 요점은 인용한 비평이 너무 많기 때문에 여기서 일일이 나열할 수 없으니 그저 종합적으로 정리만 해 보겠다.

1. “이 모든 것들을 통해 보건대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말투에서부터 지극히 미세하고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나 대화도 모두 사실대로 쓴 것이지 허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2. 가비(賈妃)는 실존 인물이었다.

3. 비평에서는 곳곳에서 독자들에게 작자의 의도는 원래 말세(末世)에 대해 쓰려는 것일 뿐이었음을 일깨우고 있다.

4. “가보옥은 바로 작자 자신을 반영하여 쓴 인물이다.”

5. 작품 속의 풍경과 사물은 종종 당시의 실제 풍경이었다.

앞서의 토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홍학에서 주장하는 ‘작자가 조설근’이고 《홍루몽》은 작자의 자서전이라는 논점들은 모두 각 필사본에 들어 있는 지연재 비평으로부터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종합하자면 지연재 비평이 다시 나타난 것은 자서전설의 완성과 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밀접한 관계는 일단 건립되자 그 영향이 지극히 커서, 나중에는 홍루몽연구의 대가들조차 국면의 대세를 바꿀 수 없었다. 가장 뚜렷한 예는 위핑보이다. 그는 1920년 이후로 《홍루몽》이 조설근의 자서전이라는 것을 믿지 않게 되었지만, 지연재 비평의 발견으로 인해 자서전설이 대대적으로 유행하자 그 거센 조류를 막을 힘이 없었던 그는 그저 침묵으로 이의를 표시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