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설古今小說-오보안이 가정을 희생하여 친구를 살려내다吳保安棄家贖友 2

곽중상이 편지를 다 쓰고 난 그때 마침 요주의 군량미 담당관을 지냈던 한 관리가 속전을 내고 풀려나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곽중상은 그의 편에 편지를 부쳤다. 다른 사람이 풀려나는 것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자기는 이곳에 갇혀 고향에 달려갈 수 없는 신세. 곽중상의 가슴은 만 개의 화살을 맞은 듯 찢어지게 아파왔다. 곽중상의 두 눈에서 눈물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정말로:

저 새는 하늘을 높이도 날아가건만,
이 내 몸은 조롱에 갇혀 언제 날개를 펴리?

곽중상이 남만에서 겪는 고초는 여기서 접고 이제 오보안 이야기를 하여보자. 오보안은 이몽 장군의 임명장을 받고서 그게 다 곽중상이 천거해준 덕분임을 알게 되었다. 오보안은 처 장張씨와 이제 갓 태어나 아직 돌이 안 된 아들은 수주에 남겨놓고 수행원 하나만 데리고서 단출하게 임지인 요주로 길을 떠났다. 도중에 이몽장군이 전사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너무도 실망하고 놀랐다. 하지만 곽중상의 생사여부를 모르는 상황인지라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곽중상의 소식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마침 이때 요주의 군량미 담당관이 속전을 내고 풀려나 돌아와서 곽중상의 편지를 전했다.

오보안은 편지를 열어보고서 곽중상이 어떤 고초를 겪고 있는지 생생하게 알게 되었다. 오보안은 즉시 곽중상에게 답장을 썼다. 그 답장에 곽중상의 편지를 장안에 밝혔다. 오보안은 군량미 담당관의 관사에 머물면서 그에게 곽중상에게 답장을 전달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런 다음 오보안은 황급히 짐을 꾸려 장안으로 발정하였다. 요주에서 장안까지는 상거 삼천리, 그 길목에는 자신의 집이 있는 동천東川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나 오보안은 자신의 집에는 들르지도 않고 곧장 장안으로 달려갔으니 어서 빨리 재상 곽진을 만나보기 위함이라. 아뿔싸, 한 달 전에 곽진은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었고 곽진 가족들은 곽진의 상여를 매고 고향으로 이미 돌아가 버린 다음이었다. 오보안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노자도 다 떨어져 버렸으니 당장 타고 온 말과 하인이라도 팔아야 할 형편이었다. 발걸음을 돌려 수주에 도착하여 아내를 보더니 오보안은 목을 놓아 울었다. 아내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물어보자 오보안은 곽중상이 남만에 포로로 잡힌 일을 세세히 설명해주었다.

“상황이 이러니 내가 기를 쓰고 곽중상을 구해주고 싶어도 속전을 구할 길이 막막하고, 그냥 두자니 곽중상이 겪을 고초가 눈에 밟히오. 내 맘이 정말 편치 않구려.”

말을 마치고 나서 또 울었다. 장씨는 남편 오보안을 달래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착한 며느리도 쌀 없이는 죽을 못 끓인다고 하잖아요. 여보, 당신의 능력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뿐이니 너무 상심하지 마시고 그냥 접읍시다.”

오보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편지를 보내어 자리를 부탁하였을 때 곽중상은 그 편지만을 보고서 나를 천거해주었소. 지금 그가 사지에서 고생하면서 그의 생명을 나에게 부탁하였는데 내가 어찌 모른 척한단 말이오? 곽중상이 남만에서 고생하도록 내버려두고 나 혼자만 편안하게 살지는 않겠소.”

오보안이 집안 전 재산을 탈탈 털어 계산해보니 겨우 비단 200필에 값한다. 처자식을 버려두고 타지에라도 나가 장사를 하고 싶었지만 남만의 곽중상에게서 언제 편지가 올지 몰라 요주 근처에서만 장사를 하였다. 오보안은 해진 옷을 입고 거친 곡식으로 밥을 해먹고 아침저녁으로 애써 일하며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고 비단을 살 돈을 모으고 또 모았다. 돈이 조금이라도 모이면 비단을 사 모았다. 비단 한 필 값이 모이고 열 필 값을 바라고 모으고, 열 필 값이 모이면 백 필 값을 바라고 모았다가, 백 필 값이 모이면 바로 비단으로 바꿔 요주의 창고에 쌓아두었다. 오보안은 꿈에서도 ‘곽중상’이라는 세 글자만 되뇌며 아내도 자식도 안중에 없었다. 이렇게 십년을 열심히 일하고 모았으나 천 필을 모으지는 못하고 이제 겨우 7백 필밖에 모으지 못하였다. 정말로:

고향에서 천 리나 떨어진 곳, 한 푼이라도 벌려고 애씀은,
내 맘 알아준 친구를 위하고자 하는 마음 하나 때문이라오.
십 년을 애써도 속전을 다 못 모았으니,
언제나 내 친구를 만나 그 마음을 위로할 수 있으리.

한편, 오보안의 처 장씨는 어리디 어린 아들을 데리고 홀로 수주에서 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대로 수주의 관리를 지냈던 남편 체면을 봐서 마을 사람들이 호의를 베풀어 주기도 하였으나 몇 년이 지나도록 남편에게서 아무런 소식도 없는 것을 보고서는 마을 사람들의 관심도 점점 멀어져갔다. 집안에 무슨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닌데 10년을 버티고 살려니 입을 거 먹을 거가 하나도 제대로 된 적이 없으니 이제는 하는 수 없어 뭐라도 돈이 될 만한 것은 모조리 팔아서 노자를 마련하여 열한 살이 된 아들을 데리고 물어물어 요주에 사는 남편 오보안을 찾아 나섰다.

날이 새면 걷고 해가 지면 자는 식으로 열심히 길을 간다고 했지만 아녀자의 걸음걸이라 하루에 겨우 40리 길을 갈 뿐이었다. 융주戎州 근처에 이르러 노자는 모두 바닥나고 이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구걸이라도 하며 길을 더 가고 싶었지만 그놈의 체면 때문에 그리하지도 못하였다. 이 박복한 팔자 차라리 목숨을 끊어버리고 싶었으나 저 어린 자식을 생각하면 차마 그리하지도 못하였다. 해는 기울어 날은 어둑해지는데 오몽산烏蒙山 아래에 앉아 목을 놓아 울었다.

이때 지나가던 관리 하나가 이들 모자를 발견하였으니 그 관리는 성은 양楊씨요, 이름은 안거安居라, 신임 요주도독으로 이몽을 대신하여 부임하는 중이었다. 양안거는 장안에서 요주를 향해 가는 길에 오몽산을 지나다가 여인네의 애절한 울음소리에 놀라 수레를 세우고 그 여인을 불러오도록 하였다. 장씨는 아들 손을 붙잡고 신임 도독의 앞에 나아와 아뢰었다.

“쇤네는 수주 방의위 오보안의 안사람입니다. 이 아이는 바로 오보안의 아들입니다. 쇤네의 남편 오보안은 자신의 친구 곽중상이 남만에 포로로 잡혀있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의 속전 천 필을 구하기 위하여 저희 모자를 버려두고 요주로 나가서 십년 동안 소식 한 번 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쇤네는 혼자서 살림을 꾸려나가기가 너무도 힘들어 이 아들의 손을 잡고 직접 요주로 남편을 찾아 길을 나섰으나 길은 멀고 도중에 노자는 다 떨어져 어찌할 도리가 없어 이렇게 울고 있나이다.”

양안거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이 사람 오보안은 진정 의로운 선비로다. 내가 그를 직접 보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로다.”

이에 장씨를 바라보고서는 이렇게 일렀다.

“부인,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마시오. 나는 바로 요주의 신임 도독이니 임지에 도착하면 내가 남편을 꼭 찾아줄 것이며, 부인의 노자도 내가 마련해 줄 것이오. 저 앞길에 보이는 객사로 찾아오도록 하시오. 내가 부인이 머물 곳도 마련해주도록 하겠소이다.”

부인은 겨우 눈물을 거두며 양안거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하였다. 양안거는 바로 다시 길을 출발하였다. 장씨 모자도 서로를 부축하여 앞에 보이는 객사를 찾아들었다. 양안거가 이미 객사 관리인에게 장씨 모자를 잘 맞아 빈방으로 안내하고 식사도 챙겨주도록 분부해두었더라. 다음날 아침 날이 밝는 대로 양안거는 길을 떠났다. 양안거의 부탁을 받은 객사 관리인은 장씨 모자에게 노잣돈을 두둑이 전해주고 마부한테 장씨 모자를 요주 보빙普淜 객사까지 모시고 가도록 하였다. 장씨는 감사의 마음이 절로 솟아났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결국 착한 사람을 만나 도움을 받고,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결국 악한 사람을 만나 곤궁에 빠진다.

한편 신임도독 양안거는 임지인 요주에 도착하자마자 사방으로 사람을 풀어 오보안을 찾도록 하였다. 사나흘이 채 못되어 오보안을 바로 찾았다. 양안거는 도독 관사로 오보안을 불러 계단 아래까지 직접 내려와 오보안의 손을 맞잡고 당에 같이 올라 맞아들였다.

“저는 옛날에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우정이 있었다는 것을 말로만 들어왔더니 이제 귀하를 이렇게 직접 보게 되는구려. 귀하의 부인과 아들도 멀리서부터 귀하를 만나고자 이렇게 요주로 찾아와 객사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귀하께서 가셔서 십 년 동안 못 만나본 회포를 푸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속전으로 쓸 비단이 모자란다면 그 것은 제가 보충해드리도록 하리다.”

“친구를 위해 저의 온 힘을 다함은 응당 제가 해야 할 일이고 또 원해서 하는 일이니 어찌 도독에게 폐를 끼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다만 귀하의 의로움을 존중하고 귀하의 뜻을 이루어드리고 싶을 따름입니다.”

오보안은 머리를 조아리며 양안거에게 아뢰었다.

“도독 각하의 뜻을 이미 알게 되었으니 제가 어찌 감히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제 친구의 속전을 이제 삼분의 이를 마련하고 아직 삼분의 일이 부족합니다. 그걸 다 마련하면 당장 남만으로 가서 친구를 구해올 것이니 그런 다음 아내와 아들을 보아도 늦진 않을 것입니다.”

양안거도 이제 막 부임한 터라 일단 관청의 창고에서 비단 4백 필을 빌려 오보안에게 주고 더불어 안장을 제대로 갖춘 말을 마련해주었다. 오보안은 뛸듯이 기뻤다. 오보안은 신임도독이 마련해준 비단 4백 필과 자신이 그동안 마련한 7백 필의 비단을 합하여 천 백 필의 비단을 싣고서 말을 몰아 남만으로 직행하였다. 중국말을 할 줄 아는 남만 사람 하나를 안내원 겸 통역으로 고용하고 속전으로 쓰고 남는 백 필의 비단을 그 사람에게 주었다. 오보안은 곽중상만 데려올 수 있다면 다른 건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었다.

풀려나는 그를 볼 수만 있다면,
악양루를 가득 채울 금조차 아깝지 않도다.

한편, 곽중상은 포로로 잡히고 나서는 오라의 수하에서 지내게 되었다. 오라는 곽중상을 데리고 있으면 속전을 대단히 많이 받을 것이라 기대가 많아 먹고 마실 것도 후하게 주면서 은근히 곽중상을 대접해주었다. 하지만 해가 지나고 달이 지나도 곽중상의 속전이 도착하지 않자 곽중상을 대하는 태도가 차츰 달라져서 곽중상에게 주는 식사도 점점 달라졌다. 하루에 한 끼만 주면서 코끼리를 기르도록 하였다. 곽중상은 고향생각이 간절하고 코끼리를 기르는 일이 힘들기도 하여 오라가 사냥하러 나간 틈을 타서 발에 차고 있던 차꼬를 풀고서 북쪽을 바라고 달아났다. 하나 남만의 땅이 모두 험준하고 길조차 따로 없어 곽중상은 밤낮없이 달렸으나 얼마 가지도 못하고 발바닥만 문드러져 코끼리를 관리하는 남만 사람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오라는 불같이 화를 내며 곽중상을 남쪽으로 2백 여리나 떨어진 지역의 추장 신정新丁에게 노예로 팔아버렸다. 새 주인 신정이란 놈은 얼마나 악독한지 조금이라도 맘에 들지 아니하면 가차 없이 채찍을 휘둘렀다. 곽중상의 등은 온통 시퍼렇게 멍들고 부어올랐다. 곽중상은 고통을 참을 수가 없어 틈을 노리고 다시 도망하였다. 하나 길은 생소하여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겠으니 산과 계곡 사이를 계속 헤매다가 마침내 남만의 추격대에 잡혀 또 다시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이렇게 팔려가는 동안 곽중상은 남으로, 남으로 중국과는 더욱 멀어져만 갔다. 보살만이라고 하는 곽중상의 새 주인은 더욱 포학하여 곽중상이 몇 차례 탈주를 시도한 것을 알고는 길이 5,6자, 두께 3,4촌짜리 나무판 두 개를 구하여 곽중상의 양발에 채우고는 못질을 하여 나무판이 서로 떨어지지 않게 하여 곽중상은 앉으나 서나 그 나무판과 함께 살도록 하였다. 밤에는 동굴에 가두었는데, 동굴 입구는 나무판으로 막고 못질을 하였다. 더불어 간수를 동굴 입구에 세워 곽중상을 꼼짝도 못 하게 하였다. 나무판과 발을 고정하는 못에 발이 쏠려 늘 피와 고름 범벅이었다. 곽중상이 받는 고통은 바로 지옥의 그것이었다. 이 한 수로 이를 증거하노니:

남만에 포로로 잡힌 몸, 더욱 남으로, 남으로,
토굴에 갇히고 나무판에 묶인 몸, 그 고통을 어이 견디리.
중국에서의 소식이 끊긴 지는 이미 10년,
꿈에서도 친구를 잊지 못하나 차마 말하지는 못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