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각박안경기初刻拍案驚奇 제33권 3

제33권 장원외는 의롭게도 양아들을 키워주고
포룡도는 지혜롭게 각서를 찾아내다

張員外義撫螟蛉子 包尤圖智賺合同文

유안주는 오랫동안 땅에 쓰러져있다가 차츰 깨어나 부모의 유해를 향해 목 놓아 울었다. 그러다가 또

“큰어머니, 이렇게 모질게 구실 수가 있는 거예요?”

하고 말했다. 한참 울고 있을 때 앞에서 한 사람이 걸어와서 이렇게 물었다.

“형씨는 어디 사람이오? 무슨 일로 여기서 울고 계시오?”

“저는 15년 전 기근을 피해 부모님을 따라 떠났던 유안주입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는 깜짝 놀라서 한차례 자세히 모습을 보더니 다시 물었다.

“누가 당신의 머리를 때렸소?”

“이건 제 큰아버님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큰어머니께서 저를 인정하지 않으시려고 제 각서를 가져가셔서는 끝까지 잡아떼고 또 제 머리를 때렸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이사장이네. 그러고 보니 자네가 내 사위일세. 자네가 나한테 15년 동안의 일을 한번 자세하게 이야기해주면 내가 해결해줌세.”

안주는 장인이라는 말을 듣고는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울며 이야기해주었다.

“장인어른께 말씀드리건대 당초 부모님이 저와 함께 기근을 피해 산서성 노주 고평현 하마촌으로 가서 장이병 원외댁 가게에 자리를 잡았는데, 부모님은 모두 전염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장원외께서는 저를 양자로 삼아 장성할 때까지 보살펴주셨습니다. 제가 올해로 열여덟 살이 되자, 그제야 양부께서 저에게 자세한 사정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제 부모님의 유골을 메고 큰아버님을 뵈러 온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큰어머니께서 각서를 감춰버리고 또 제 머리를 때렸습니다. 이런 원통함을 어디에 고하겠습니까?”

말을 마치자 눈물이 샘솟듯 하였다. 이사장은 화가나 얼굴이 일그러져서는 다시 안주에게 물었다.

“그 각서를 이미 감춰버렸다니, 자네 그 내용을 기억할 수 있겠나?”

“기억합니다.”

“그러면 자네가 외워서 들려줘보게.”

유안주가 처음부터 한 차례 외우는데, 한 자도 틀리지 않았다. 그러자 이사장은

“과연 내 사위로구나.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그 못된 년 이렇게 경우가 없다니! 내 지금 유씨 집에 가서 말을 해보고, 말해서 생각을 바꾸게 되면 그만이고 말해서 안 될 때는 지금 개봉부(開封府) 부윤(府尹)이 매우 현명한 포룡도(包龍圖) 대감이시니, 내 자네와 함께 가서 고소하면 자네 재산을 고스란히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야.”

“모든 것을 장인어른께 맡기겠습니다.”

이사장은 곧장 유천상 집의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그들 부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친척이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소? 친조카가 돌아왔는데 어째서 인정해주려 하진 않고 도리어 그 애의 머리를 때린 거요?”

그러자 양씨는

“사장님은 그가 사기꾼이라 일부러 와서 연극을 하는 건지 모르시는군요. 그자가 우리 조카라면 당신의 서명도 있는 옛날 그 각서가 있을 거예요. 만약 그 문서가 있으면 정말 유안주겠죠.”

“그 애는 당신이 가져다 숨겼다는데 왜 부인하는 거요?”

“이 사장님도 참 웃기시네, 내가 언제 그걸 보기라도 한 줄 아세요? 그런데 아주 도둑년 취급을 하시네. 남의 집 일에 누가 당신더러 참견하래요!”

그리고는 또 방망이를 들고 안주를 때리려 들었다. 이사장은 사위가 다칠까봐 몸으로 막아서며 그를 데리고나오며 이렇게 말했다.

“이 나쁜 년 이렇게 악독한 음모를 꾸미다니! 잡아떼면 그만인 줄 알아? 내가 너를 가만 두지 않을 테다. 우리 사윈 걱정 말고 부모님 유골과 짐을 가지고 우리 집에 가서 하룻밤 쉬었다가 내일 개봉부로 가서 고소하자고.”

안주는 분부를 쫓아 장인을 따라 그의 집으로 갔다. 이사장은 또 그를 데려다 장모에게 인사를 하게 하고 나서 술과 밥을 차려 그를 대접하였고, 또 그의 머리에 약을 바르고 싸매주었다. 다음날 새벽 이사장은 고소장을 써서 사위와 함께 개봉부로 갔다. 잠시 기다리니 포룡도가 당상에 올랐는데, 그 광경은 이러했다.

둥둥둥 아문의 북소리에
관리들 양편으로 늘어서네
염라대왕의 명부(冥府)인 듯
태산의 지옥문인 듯

이사장과 유안주가 당상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하자, 포룡도는 고소장을 받아 읽어보고는 먼저 이사장에게 앞으로 나오라고 하여 사건의 내막을 물었고, 이사장은 처음부터 다 말해주었다. 그러자 포룡도는

“네가 소송을 맡아 돈을 벌려고 그를 교사한 것은 아니렷다?”

“그는 소인의 사위이고 문서에 소인의 서명이 있습니다. 나이 어린 그가 억울함을 당한 것을 불쌍히 여겨 그와 함께 고소한 것입니다. 어찌 감히 하늘같은 나리를 속일 수가 있겠습니까?”

“네가 사위를 알아볼 수 있었더냐?”

“그 애가 세 살 때 고향을 떠나 이제야 돌아왔으니 알아볼 수는 없었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데다 문서도 잃어버렸는데, 네 어찌 그가 진짜라고 믿을 수 있느냐?”

“그 문서는 유씨 형제와 소인 외에는 아무도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 그 문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외우거늘 어찌 확실한 증거가 되지 않겠습니까?”

포룡도는 또 유안주를 불러다 그 사정을 물으니 안주 역시 일일이 말해주었다. 또 그의 상처를 검사해보고는 물었다.

“네가 유씨의 아들이 아닌데도 그렇다고 하여 속이는 것은 아니렷다?”

“나으리, 천하의 일이란 가짜를 진짜로 속일 수 없거늘, 어찌 그런 터무니없는 일을 하겠습니까? 하물며 소인의 양부 장병이는 재산이 많아 소인이 평생 누리기에 충분합니다. 소인은 진작에 큰아버지의 재산을 나눠 갖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저 부모님의 유골을 선산에 묻기만 하면 다시 노주의 양부가 계신 곳으로 가서 살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나리께서 굽어살펴 주십시오.”

포룡도는 두 사람의 말에 일리가 있음을 보고 소장을 비준하고는 곧 유천상 부부를 잡아오게 했다. 포룡도는 유천상에게 앞으로 나오게 하고는 이렇게 물었다.

“너는 한 집안의 주인으로서 어찌 줏대 없이 오로지 처의 말만을 곧이 들었느냐? 그놈이 과연 네 조카인지만 말해보거라.”

“나으리, 소인은 지금껏 조카의 얼굴을 알지 못하여 전적으로 각서를 증거로 의지했나이다. 지금 그놈은 끝까지 주었다고 하고, 또 처는 한사코 받은 적이 없다고 하는 데다 소인 역시 뒤통수에도 눈이 달리지는 않은 터라 우물쭈물하며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습니다.”

포룡도는 또 양씨를 불러 재삼 심문하였으나 그저 본 적이 없다고 잡아뗄 뿐이었다. 포룡도는 다시 유안주에게 말했다.

“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가 이렇게 무정한 바, 내가 지금 네 마음대로 하게 놔둘 터이니 그들에게 되게 매를 안겨서 네 원한을 풀도록 하여라.”

그러자 안주는 측은하게 생각하여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건 안 됩니다! 제 선친은 그래도 저분의 동생이었는데, 어떻게 조카가 큰아버지를 때리는 법이 있습니까? 소인은 본래 가족 분들을 뵙고 부모의 장례를 치르는 효를 행하러 온 것이지 재산을 다투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소인더러 이런 인륜을 거스르는 일을 하라고 하신다면 죽어도 감히 할 수가 없습니다.”

포룡도는 그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이미 어느 정도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는 시가 있다.

포룡도는 신명하기 그지없으니
곡직을 가려냄에 어찌 어려움 있으리오
당장 형벌을 가하지 못한 것은
그래도 혈육지간이기 때문이라

포룡도는 곧 양씨에게 다시 몇 마디 묻고 나서 거짓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놈은 과연 사기꾼이고 정리상 용서할 수 없다. 너희 부부와 이씨는 일단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그놈은 옥에 가뒀다가 훗날 엄형으로 심문하도록 하겠다.”

유천상 등 세 사람은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났고 안주만 옥으로 갔다. 양씨는 남몰래 좋아하였고, 이사장과 유안주는 저마다 불만을 품고 이렇게 의심했다.

“여태껏 포공이 신명하다더니 오늘은 어째서 원고를 감금하는 건가?”

한편 포룡도는 비밀리에 옥졸들에게 분부하여 유안주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하였고, 또 아문 내 사람에게 안주가 상처가 덧나 머지않아 죽게 될 것이라고 소문을 퍼뜨리도록 분부하였다. 또 노주로 사람을 보내 장병이를 데리고 오도록 하였다. 며칠 만에 장병이가 도착했다. 포룡도는 그에게 자세하게 묻고는 속으로 확실히 알게 되어, 곧 그에게 옥문 앞에서 유안주를 만나 좋은 말로 위로해주게 했다. 다음날 심판 문서를 발부하고 다시 몰래 옥졸들에게 심문할 때 어찌어찌 하라고 분부하였다. 곧 사람들이 잡혀오자 포룡도는 장병이를 불러 양씨와 대질심문을 하게 했다. 양씨는 줄곧 완강하게 나오며 한마디도 지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포룡도는 곧 옥중에서 유안주를 데리고 오게 했는데, 옥졸들은

“병이 위독해 거의 죽게 돼서 움직이질 못합니다.”

하고 보고하는 것이었다. 그때 이사장은 장병이를 만나 연고를 물으니 조금도 틀리지 않아 또다시 분개하여 양씨와 한차례 설전을 벌였다. 그런데 옥졸들이 다시 와서 보고하기를

“유안주가 병이 중해서 죽었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양씨는 멋도 모르고 그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정말 죽었으면 천지신명께 감사를 드려야겠네. 우리 식구가 연루되지 않게 됐으니.”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포룡도가 말했다.

“유안주가 무슨 병으로 죽었느냐? 어서 검시관에게 살펴보도록 해서 보고하라.”

검시관은 보고 나서 이렇게 보고하였다.

“시신은 약 18세로 보이며 태양혈이 외물에 의해 손상되어 죽었습니다. 주위의 청자색(靑紫色) 상흔으로 증명됩니다.”

그러자 포룡도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어떡한다? 사람을 죽게 했으니 그 죄가 막중해졌다. 양씨 네 이년! 그자가 너하고 어떻게 되는 사람이냐? 너하고 친척관계라도 있더냐?”

“나으리, 사실 아무런 친척관계도 없습니다.”

“만약 친척관계가 있다면 너는 나이가 많고 그는 어리니 때려서 죽게 했다 하더라도 자손을 잘못 죽인 것에 불과해 살인죄에 적용되지 않고 보석으로 속죄할 수 있다. 하지만 친분관계가 없는 바에야 살인을 하면 목숨으로 갚아야 하고 빚을 지면 돈으로 갚아야 한다는 걸 네가 알렸다? 그가 너하고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라니 네가 그를 모른다고 하면 그만이다. 헌데 어떤 물건으로 그의 머리를 때려 파상풍으로 죽게 만들었느냐? 법률에 ‘죄 없는 자를 구타해 죽게 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여봐라 칼을 가져다 이년에게 씌우고 사형수 옥안에 가뒀다가 가을이 되면 처형하여 유안주의 목숨을 갚게 하여라!”

포룡도가 명령하자 양쪽에서 우락부락한 하인들이 번개같이 대답하고는 칼 하나를 메고 왔다. 양씨는 겁을 먹고 얼굴이 흙빛이 되어서는 할 수 없이 이렇게 소리쳤다.

“나으리 그자는 소인의 조카이옵니다.”

“네 조카라면 무슨 증거가 있더냐?”

“지금 증명할 수 있는 각서가 있습니다.”

양씨는 곧 몸 안에서 문서를 꺼내 포공에게 보여주었다.

진작 확실히 말해야 했거늘

말을 지어내니 앞뒤가 맞지 않네

간단한 계책을 쓰니

금세 각서가 나오는구나

포룡도가 다 보고 나서 다시 양씨에게 물었다.

“유안주가 네 조카라면 내가 지금 사람을 보내 그의 시신을 꺼내올 터이니, 너는 마다하지 말고 가지고가서 장사를 지내주어라.”

“원컨대 소인은 조카의 장례를 치러주겠습니다.”

양씨가 대답하자 포룡도는 곧 옥중에서 유안주를 데리고 오게 했다. 그리고 그에게

“유안주, 내가 그 각서를 찾아냈다!”

하고 말하니 안주는 머리를 조아려 감사했다.

“만약 하늘같은 나으리가 아니었다면 소인은 정말로 억울하게 죽었을 것입니다.”

양씨가 고개를 들어보니 유안주의 얼굴은 그대로였고 맞아서 터졌던 머리도 모두 나아있었다. 양씨는 너무나 창피해서 뭐라 항변할 말이 없었다. 이에 포룡도는 붓을 들어 판결을 내렸다.

유안주는 효행을 하고 장병이는 인을 베풀었으니, 다 드문 일이라 모두 편액을 내려 표창한다. 이사장은 사위를 맞아 날을 택해 혼례를 올리도록 한다. 유천서 부부의 유골은 반드시 조상의 묘 옆에 장례 지내주도록 한다. 유천상은 전후 사정을 잘 알지 못하였으므로 연로한 것을 감안하여 무죄를 선고한다. 처 양씨는 본디 중죄로 다스려야 하나, 벌금형으로 속죄할 것을 허락한다. 양씨의 데릴사위는 원래 유씨의 혈육이 아니므로 즉시 축출하여 가산을 차지하지 못하게 한다.

판결이 끝나자 범인들을 모두 풀어주어 각자 귀가하도록 하니, 모두들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갔다.

장원외는 친지관계로 명첩을 써서 유천상과 이사장을 배방하고 먼저 노주로 돌아갔다. 유천상은 집으로 돌아와 유씨를 한바탕 나무라고는 조카와 함께 동생의 유골을 선영에 묻어주었다. 이사장은 길일을 택해 데릴사위를 맞아 혼례를 치렀다. 한 달이 지난 후 두 부부는 함께 노주로 가서 장원외와 곽씨에게 절을 올렸다. 그 후 유안주는 벼슬길에 높이 오르게 되었고, 유천상, 장원외는 모두 후손이 없어 두 집의 재산이 모두 유안주에게 상속되었다. 이로써 영고성쇠는 이미 정해져 있어서 억지로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물며 혈육간에 이처럼 양심을 속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원기를 상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함으로써 절대로 구구한 재산 때문에 하늘의 은혜를 상하게 하지 말라고 세상 사람들에게 권계한 것이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다.

양아버지는 오히려 덕을 베풀었거늘
친 혈육은 도리어 농간을 부렸구나
운명은 정해져 있음을 훗날에야 알았네
어찌할고 계략 쓰지 말았어야 했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