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선외사女仙外史 제5회

제5회 당새아는 상의 치르려고 결혼은 거절하고
임 도령은 집을 버리고 아내에게 달려가다
唐賽兒守制辭婚, 林公子棄家就婦

임 도령이 몸소 와서 납폐를 바치는 모습을 본 당기는 그의 성격이 소탈하기는 하지만 학문에는 깊이 몰두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시는 격식에 맞춰 지을 줄 아는데 문장 실력은 어떤지 몰라서 한 번 더 시험해 보려 했다. 그래서 편지를 보내 초청하려 했으나 그는 일찌감치 “수레는 흐르는 물과 같고 말은 용과 같아서 겹겹 청산을 가볍게 지나가는[車如流水馬如龍, 行過靑山第兒重]” 격으로 사라진 뒤였다. 백청암은 또 답장을 잘 써서 임 도령이 청혼하는 일 때문에 공부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이를 보충하기 위해 서둘러 집에 돌아갔다고 하니 당기는 오히려 기쁜 마음이 들었다. 혼인 날짜가 아주 가까웠기 때문에 유모를 불러 상의한 후 여자 쪽에서 마련해야 할 혼수를 준비하려 했다. 그러자 당새아가 말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적당한 묘지를 찾아 어머님을 안장하는 거예요. 그런 혼수품 같은 거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니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내가 이미 생각해 두었다. 네 할아버지 묘지에 아직 남은 땅이 있어.”

“주혈(主穴)이 아닌 곳에 묘를 쓸 순 없잖아요?”

“설령 안장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내 어찌 임씨 집안의 돈으로 묘지를 살 수 있겠느냐? 얘야, 네가 효성이 지극하기는 하지만 후한 장례는 소박한 장례보다 못하다고 공자께서도 이미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유모, 아이한테 잘 설명해 주시구려. 그 장례는 내가 책임지겠소이다.”

“당연하지요. 당장 혼수품을 마련하는 거야 쉽지만, 한 가지는 가져오는 길이 머니 미리 챙겨 두어야 되겠어요.”

“그게 무엇이오?”

“잉첩(媵妾)으로 데려갈 시녀들인데, 반드시 영민하고 건강한 인물로 열여덟이나 열아홉 살쯤이면 좋겠으니, 젊은 과부라도 괜찮아요. 이 지역 계집애들은 우둔해서 쓸모가 없어요.”

“저 아이 외삼촌이 자주 경사에서 가서 장사를 하니, 며칠 후 출발할 때 거기다 부탁하면 되겠구려.”

그리고 사람을 보내서 외삼촌을 불러와 얘기하고, 은 일천 냥을 주면서 사람만 괜찮으면 몸값은 아끼지 말라고 했다.

잠시 후 당기의 손아랫동서 요 수재가 묘고를 데려가겠다고 사람을 보내왔다. 묘고는 언니인 당새아의 혼처가 정해진 것을 보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작별하고 돌아갔다. 당새아도 억지로 붙들기 곤란해서 둘은 차마 헤어지기 아쉬워 손을 맞잡고 흐느끼느라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결국 소매로 얼굴을 가린 채 헤어져야 했다. 당새아가 유모에게 물었다.

“혹시 묘고가 결혼이라도 하게 된다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그 아이는 너를 위해 인간 세상에 내려왔으니, 여기서는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게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어.”

당새가 한숨을 내쉬었다.

“오히려 내가 그 아이보다 못하군요!”

그녀는 부끄럽고 분한 마음에 밤낮으로 걱정하며 우울해 했다. 그러자 유모가 말했다.

“너무 애태우지 마라. 운명의 때가 도래하면 다른 국면이 열릴 테니, 그때는 자연히 만나게 될 게다.”

어느 달 밝은 밤에 당새아가 유모와 함께 뜰에 나와 있다가 물었다.

“저번에 오신 동생 분에 대해 제가 몇 번 여쭤보았는데 아무 말씀도 안 해 주셨는데, 그건 무엇 때문이지요? 설마 제 앞길을 이끌어 주지 않으실 건가요?”

“그건 천기라서 함부로 말할 수 없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말해 주어야 되겠구나. 그는 바로 신선 배항인데, 그 역시 너를 위해 인간 세계에 내려왔다.”

“그분은 운영 동생의 남편인데, 어떻게 저를 위해 내려왔지요?”

“네가 신선 세계에 있을 때 직녀낭낭에게 네 육신을 지켜서 요대로 날아갈 수 있도록 지켜 달라고 해서 그를 내려 보내 조화를 알선하는 수단으로 삼으신 거지. 지금은 인 도령의 집에 가서 원양을 누설하지 않는 비법을 전수하고 있어.”

“아니, 그건 그 사람을 음탕하게 만드는 거잖아요!”

“오묘하고 또 오묘한 거지. 여자가 일단 남자의 정액을 받으면 천령개(天靈蓋) 위에 까만 점 하나가 생기기 때문에, 그런 경우를 오점이 생겼다고 하지. 여자에게 이 점이 생기면 아무리 수련을 해도 시해(尸解)에 지나지 않을 뿐 육신을 지닌 채 하늘을 날 수 없어.”

“제가 전생에 달나라에 갈 때에는 어떻게 간 거지요?”

“역시 시해의 방식이었지. 여자의 경혈은 남자의 정액과 마찬가지라서 조금이라도 누설되면 원체(元體)를 망가뜨리지. 신선이 되려면 그것을 흐르지 못하게 해야 하니 이른바 ‘적룡의 목을 벤다[斬斷赤龍]’라는 것이 그것이지. 너는 내 젖을 먹었으니 바로 선액(仙液)을 먹은 셈이라서 지금까지 월경을 하지 않고 있는 게야. 이제 네게 진기(眞炁)를 수련하는 법을 가르쳐서 원음(元陰)이 여원히 누설되지 않도록 해 주마. 원음이 누설되지 않으면 월경을 하지 않고 단단한 열매를 맺게 되니,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사리(舍利)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지. 신선 세계에도 부부가 있지만 그것은 ‘기교(炁交)’ 즉 기운을 교감하는 것이니 인간 세계의 성교(性交)에 비할 바가 아니야. 그건 바로 천지교태(天地交泰)와 마찬가지지. 네가 나중에 남편과 부부 관계를 할 때에도 거의 ‘기교’와 비슷한 상황이 되어서 비록 원홍(元紅)을 잃기는 하겠지만 여전히 때 묻지 않은 몸을 유지할 수 있으니 예전처럼 달나라로 날아가 광한전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을 게야.”

당새아가 무척 기뻐하며 엎드려 절을 하고 가르침을 청하자, 유모가 말했다.

“공부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니 지금은 먼저 선천(先天)의 기운을 운행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꾸나.”

그리고 당새아에게 만물의 근원인 조기(祖炁)와 연단(煉丹)에 필요한 인체의 혈도(穴道), 그리고 기를 운행하여 단련하는 비결 등을 가르쳤다. 그런데 갑자기 노매가 달려와서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제게도 자비를 베풀어 제도해 주십시오!”

“내가 한 말 가운데 무엇을 들었느냐?”

“저는 방 안에서 훔쳐보기만 했는데 들은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저 도를 전수하는 모습이라고 짐작했을 뿐입니다.”

“너는 기질이 너무 탁하고 몸에도 신선이 될 자질이 없지만 뜻은 가상하구나. 평생 시집가지 않고 수련한다면 귀선(鬼仙)이 될 수는 있을 게다. 너에게는 우선 기질(氣質)을 단련하여 맑게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마.”

노매가 고개를 조아리며 은혜에 감사했다. 이때부터 당새아와 노매는 매일 각자 수련을 계속했다. 당새아는 뛰어난 신령의 뿌리[靈根]를 가졌기 때문에 조금만 가르쳐도 금방 순정하고 미묘한 부분까지 이해했다.

두 달이 지나가 외삼촌이 두 명의 하녀를 사서 돌아왔는데, 한 명은 과부이고 한 명은 처녀였다. 두 사람의 용모가 모두 훌륭해서 당새아는 속으로 기뻐했다.

‘나를 대신할 수 있겠구나.’

유모가 또 당기에게 말했다.

“미리 준비해야 할 게 한 가지 더 있어요. 따로 집을 한 채 샀으면 해요. 천금이면 될 거예요.”

당기는 유모가 보통 사람이 아니니 틀림없이 무슨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집이라면 적당한 게 있소이다. 우리 집 뒤쪽에 있는 이씨 집이 원래 오백 냥인데 이제 시내로 이사를 가려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갑자기 팔기가 쉽지 않아서 사백오십 냥만 받겠답니다. 하지만 임씨 집안의 돈을 쓰는 것은 제가 내키지 않으니 어쩌면 좋겠소?”

그러자 당새아가 말했다.

“그럼 제가 사는 걸로 하지요.”

당기가 유모에게 물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안 되지요. 원래 나리 명의로 해야 하니까요. 다만 계약서에 분명히 밝히면 괜찮을 듯합니다.”

“아주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는 즉시 당새아의 외삼촌과 자신의 손아랫동서를 이씨 집안으로 보냈는데, 말을 꺼내자마자 바로 승낙해서 그날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돈을 지불한 뒤에 담을 헐어서 한 집으로 만들고 원래의 대문은 자물쇠를 단단히 채웠다. 일체의 혼수품을 당기도 대충 준비하고 혼례를 치를 때만을 기다렸다.

어느새 설이 지나고 대보름이 다가오자 당기는 당새아 외삼촌의 집에서 열린 잔치에 참석했는데, 자리에 다른 외부 손님은 없어서 모두들 유모와 당대아의 신기한 점들을 얘기하면서 술을 조금 과하게 마셨다. 밤이 깊어 돌아오는 길에 그는 그만 미끄러운 얼음을 밟는 바람에 심하게 넘어져서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 따라간 하인이 황급히 부축해 일으켰지만 너무 통증이 심해서 어쩔 수 없이 가마를 대절해서 귀가해야 했다. 당기의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자 당새아도 당황했다.

“어디 괜찮은 의사가 없을까요?”

하인이 말했다.

“저번에 시내에 있는 의사가 돌아가신 마님을 보살펴 준 적이 있는데, 지금도 이 근처에 있습니다.”

“어서 가서 모셔 오셔요.”

의사가 와서 진맥을 해 보더니 넘어지면서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담이 결려서 치료를 하더라도 불구가 될 수 있고, 심지어 치료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진통제와 담을 제거하는 약을 조금 써 보았지만 강물에 돌을 던진 것처럼 전혀 효과가 없었다. 의사는 차분히 정양해야 한다고만 말하고 그대로 떠나 버렸다. 당새아가 유모에게 물으니 유모가 말했다.

“네 아버지의 수명은 이달 스무여드레 해시(亥時, 밤 9~11시)까지로구나.”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저는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지나쳐 버렸지만, 지금 아버지 슬하에서 십오 년을 자랐는데 하루아침에 헤어져야 한다니 어찌 견딜 수 있겠어요?”

그러면서 유모 앞에 무릎을 꿇고 애절하게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살려 달라고 간청했다.

“하늘의 운수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을 어찌 하겠느냐? 구할 수만 있다면 네가 간청하지 않았어도 그리 했을 게야. 지금으로서는 후사를 준비하는 게 최선이구나.”

친척들이 문병하러 오자 당새아는 외삼촌에게 은 이백 냥을 주면서 사라나무를 사서 미리 관을 만들어 액땜을 해야겠다고 했다.

25일 이른 아침에 당기가 유모와 당새아에게 말했다.

“간밤에 꿈을 꿨는데 어떤 이가 허공에서 내 이름을 부르면서, ‘상제께서 그대를 제남부(제濟南府) 상황(城隍)으로 임명하셨소.’ 이러더구먼.”

유모가 말했다.

“나리께서 평생을 청렴하고 정직하게 사셨으니 상제께서 신으로 삼으신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당새아가 무릎을 꿇고 말했다.

“아버지, 제게 한 가지 생각이 있는데 들어 주셔요. 큰아버지 댁의 셋째아들 은가(恩哥)는 기개가 맑고 빼어나니 우리 집의 대를 잇도록 해 주셔요.”

“나한테는 재산도 많지 않으니, 그러면 오히려 그 아이한테 좋지 않을 게야.”

“저는 여자의 몸이라 조상에 대한 제사를 이을 수 없으니, 훗날 성묘할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유모가 말했다.

“아가씨 말씀이 아주 도리에 맞습니다.”

그제야 당기도 허락했다. 잠시 후 삼당(三黨)의 친척들을 모셔오자, 당기가 사촌형에게 말했다.

“제딸아이 생각인데, 셋째 조카 은가에게 우리 집안 대를 잇게 하면 좋을 것 같아서, 그 일을 상의하려고 이렇게 모셨습니다.”

“이건 동생이 결심해야 할 일이지.”

그러자 당새아가 말을 받았다.

“백부님께서 아직 이해하지 못하시는 모양인데, 이건 원래 제가 아버지께 권한 일이니까 제 뜻을 밝힐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이 말은 이후에도 절대 다툼의 발단이 되지 않도록 하겠어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소유하신 재산이며 가구, 그릇들은 모두 동생에게 주고 저는 털끝만큼도 바라지 않을 테니 안심하셔요.”

그러자 그녀의 이모부인 요 수재가 나섰다.

“이건 더 이상 논의할 필요 없이 지필묵을 가져와서 서약서를 쓰면 끝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당기의 사촌형은 셋째 아들을 양아들로 보낸다는 문서를 쓰고, 요 수재가 당기를 대신해서 재산을 맡긴다는 서약서를 작성했다. 당새아의 외삼촌이 그것을 보고 말했다.

“상을 치를 때 필요한 제반 비용도 미리 정해 놓아야지요.”

당새아가 말했다.

“모든 장례비용은 응당 저 혼자 책임져야 하니 더 이상 논의하실 필요 없습니다.”

당새아가 이처럼 화통하게 나오자 큰아버지도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다.

“지금 이미 마련해 놓은 것은 말할 필요가 없지만, 이후의 비용은 도의상 물려받은 재산에서 내야지.”

“더 이상 얘기할 필요 없습니다. 어서 동생을 불러와서 며칠이나마 함께 지내는 것이 재산을 물려주는 데에도 편할 듯합니다.”

친척들은 모두 당새아의 도량에 감복했다. 이튿날 큰아버지는 몸소 셋째 아들을 데리고 와서 양아버지에게 절을 올리게 하고, 며느리도 함께 와서 살도록 했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염조(念祖)’라고 다시 지었다. 당새아는 임시 집안에서 보내온 비단 가운데 좋은 것을 골라 부친의 수의를 만들고, 하인들에게는 부친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분부했다.

스무여드레가 되자 당기가 딸에게 말했다.

“너는 여자의 몸으로 늘 편한 옷조차 갈아입지 않고 보름 동안이나 내 병구완을 했으니 내 마음이 몹시 불편하구나. 오늘은 마땅히 영원한 작별을 해야 되겠구나. 너는 여자지만 영민하고 호기가 넘쳐서 모든 일에 내가 따로 분부할 필요가 없었지. 다만 장례는 반드시 검소하게 치르고 과도하게 슬퍼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게야. 간밤에 꿈속에서 나를 부임지로 호송해 줄 여러 명의 아역(衙役)들을 보았지. 이제 너하고 지낼 시간도 한나절 정도밖에 되지 않겠구나.”

그렇게 말한 후 당기는 딸의 손을 붙잡고 한없이 슬피 울었다. 당새아는 부친이 상심하여 더 악화될까 염려하여 눈물을 머금고 위로했다. 그러자 유모가 말했다.

“나리, 정오에 목욕을 하고 새 의관으로 갈아입으셔요. 아가씨께서 벌써 모두 준비해 두었습니다.”

“몸이 삼천 근이나 되는 것처럼 무거운데 어떻게 목욕을 할 수 있겠소이까?”

당새아가 말했다.

“제게 맡기셔요. 설마 아버지 목욕조차 시켜 드리지 못할까요?”

“네 효성이야 지극하지만 아비라는 사람이 딸아이에게 어떻게 알몸을 보이고 목욕시중을 받을 수 있겠느냐?”

“이 몸을 낳아주신 게 부모님이신데, 무슨 말씀이셔요?”

그리고 즉시 욕조에 향긋하고 따뜻한 물을 가득 채우게 하고, 하녀와 함께 방에 들어가서 방문을 닫고 부친을 부축해 침대에서 내린 다음 온 몸을 깨끗이 씻기고 의관을 갈아입히고, 새 신을 신겼다. 당기는 두꺼운 이불에 기대앉아서 양아들을 불러 놓고 분부했다.

“얘야, 네가 열심히 공부하여 조상의 이름을 빛내 준다면, 네게 가문의 대를 잇게 한 보람이 있겠구나.”

그리고 유모를 불러서 감사했다.

“제 딸을 길러주신 은혜가 산과 바다보다 큽니다. 얘야, 너도 잘 보답해야 하느니라.”

“평생 유모에게 의지해서 살 텐데 어떻게 보답할 수 있겠어요?”

“그럼 내가 다음 생에 보답해야지!”

그리고 당새아에게 깨끗한 물을 가져오라고 해서 입을 헹구고, 다시 유모에게 물었다.

“딸아이가 장래에 어찌 될까요? 나는 이제 세상을 뜰 몸이니 한 마디 알려주셔도 괜찮지 않겠소이까? 그래야 저승에 가서 안사람에게도 얘기해 안심하도록 해 줄 수 있을 테고요.”

유모가 잠시 생각하다가 나직이 말했다.

“보아하니 여자 군주가 될 거예요.”

“임 도령은 어떻게 될까요?”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그때 갑자기 노매가 걸어 들어와 당기의 사촌형과 차남이 왔다고 알렸고, 잠시 후 두 사람이 나란히 방으로 들어왔다. 당기가 말했다.

“제 목숨이 곧 끊어질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꿈 이야기를 간략하게 들려주자, 사촌형과 처남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야말로 평생을 정직한 산 보답이구먼! 임종을 하면서도 이렇게 정신이 또렷한 경우도 우리로서는 처음 보는 것일세.”

황혼이 가까워지자 당기가 말했다.

“새아야, 네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미가 모두 여기 있구나!”

당새아가 허공을 향해 호칭을 부르며 각기 네 차례씩 절을 올렸다. 당기의 사촌형은 은가에게도 절을 올리라고 했다. 그러자 당기가 또 말했다.

“나를 데려갈 아역들도 모두 왔구나!”

그때 여러 친척들의 귀에 뜰 안에서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태음낭낭께서 여기 계시니 우리는 잠시 피해 있어야 되겠구먼.”

친척들은 다들 기이한 일이라고 여겼다. 당새아가 아버지의 손을 붙들고 흐느끼며 말했다.

“아버지! 오늘 이렇게 헤어지면 언제 다시 뵙 수 있을까요?”

당기도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설사 백년 뒤라 할지라도 결국은 이렇게 헤어질 수밖에 없지 않느냐!”

그리고 유모에게 말했다.

“아이가 지나치게 상심하지 않도록 잘 다독여 주시구려.”

그리고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에게 일일이 작별인사를 하고 미소를 머금은 채 세상을 떠났다. 당새아가 가슴을 치며 대성통곡하자 하녀가 말했다.

“장례는 큰일이고, 모두 아가씨께서 처리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통곡으로 몸을 상하면 어찌 되겠어요?”

유모가 말했다.

“정말 충심에서 우러난 말이로구먼! 아가, 충분히 곡을 했으니 이제 멈추도록 해라!”

여러 친척들도 나서서 만류하자 당새아가 겨우 울음을 그쳤다. 유모가 말했다.

“아가, 너는 천하 사람들이 모두 우러를 몸이니, 이런 큰일을 치르는 마당에 남들의 눈을 피할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뭐 하러 남들 눈을 피하겠어요?”

여러 친척들은 감히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당새아는 인간 세상에 내려오면서 울컥 하는 성격까지 가져왔기 때문에 평소에도 안색이 변해 누 눈을 부릅뜨면 번개가 치듯 번쩍이니 사람들이 깜짝 놀라 넋이 나갈 정도였다. 그야말로 여장부 영웅의 기상이어서 염파(廉頗)와 인상여(藺相如)의 위엄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각 부분에서 맡은 일들은 모두 대단히 주도면밀하게 처리되었다. 염(殮)을 마치자 당새아가 친척들에게 말했다.

“선친께서는 명망 높은 효렴이셨으니 저는 사흘장을 치를 생각이에요. 부고에는 제 이름도 넣어서 돌려야 해요.”

유모가 말했다.

“너는 아직 정식 이름이 없으니, ‘훤(媗)’이라고 하자꾸나.”

친척들도 모두 괜찮다고 했고, 요 수재가 덧붙였다.

“조카의 부고를 임씨 집안에는 보내면 안 됩니다. 나머지는 다 괜찮습니다.”

이리하여 부고에는 모두 “불효하여 홀로 남은 애처로운 딸 당훤이 피눈물을 흘리며 고개 숙여 청하옵니다.”라는 내용이 한 줄 더 들어간 채 발송되었고, 곧 길일을 택해 발인하기로 했다. 당새아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모둔 것이 다 의례에 맞았다. 일을 맡아 처리할 인원들도 아주 조리 있게 파견되었고, 각자 맡은 일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다.

이 지역의 현감(縣監)은 주상문(周尙文)이라고 하는 청렴 정직한 관리인데, 그가 특별히 조문하러 오자 공(孔) 아무개라는 수재와 요 수재가 배석하여 접대했다. 현감은 영전에 술을 바치고 나서 더욱 공손하게 절을 하고 자리에 앉아 요 수재에게 물었다.

“당 선생은 우리 산동 지역의 명망 높은 학자이신데 애석하게 별세하셨으니 더욱 흠모해야 할 전형적인 어르신이십니다. 듣자 하니 규수 또한 재능 많은 여인이라서 그야말로 부친이 미완성으로 남긴 책을 이어 완성한 조대고(曹大家)와 같다면서요?”

“애석하게도 여자의 몸으로 태어났을 뿐이지요!”

그때 당새아가 은가와 함께 하얀 양탄자를 깔고 빈소에서 나와 감사의 절을 올렸다. 깜짝 놀란 현감은 미처 자리를 피할 틈이 없었기 때문에 얼떨결에 답례를 해야 했고, 곧 가마를 타고 떠났다. 그때 문지기가 황급히 첩지를 전하면서 백청암이 임 도령과 함께 문상하러 왔다고 했다. 친척들이 모두 나가 마중하자 백청암이 몇 마디 애도의 말을 했다. 그리고 영전에 술을 올리고 나서 종종걸음으로 나오니, 벌써 술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한편 임 도령은 혼례를 치르러 왔다가 장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이 너무 울적해서 다른 길일을 정하고 돌아가려 했다. 당씨 집안의 장례가 끝나고 칠칠 사십구일이 지나자 그는 곧 이모부에게 중매쟁이 유 아무개와 매파를 불러 함께 당씨 집에 가서 얘기해 보라고 청했다. 그들이 찾아와 얘기를 꺼내자 당새아가 버럭 화를 냈다.

“당신들은 중매를 서면서 도리를 모르는군요. 설마 수재씩이나 되는 백청암 어르신도 이렇게 꽉 막힌 사람인가요? 선친의 육신이 아직 식기도 전인데 딸자식이 바로 시집을 간다면 짐승과 다를 바 없지 않나요? 임 도령께서는 부모도 없답니까?”

그 말에 마음이 조급해진 유 아무개는 서둘러 매파와 함께 당씨 집을 나와 곧장 백청암의 집으로 가서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자 백청암이 말했다.

“내가 잘못했구먼. 얼마 전에 받은 부고에 그 따님의 이름이 적혀 있어서 무척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이걸 보면 분명 큰 절조를 지키고 자잘한 일에 얽매이지 않는 기특한 여장부임이 분명하구먼! 조카, 상을 치르는 기한을 다 채우고 난 뒤에 다시 얘기하세.”

유 아무개가 덧붙였다.

“듣자 하니 당 효렴께서 돌아가실 때 허공에서 누군가 그 아가씨를 태음낭낭이라고 불러서 친척들이 모두 특별히 공경하게 대한다고 하더군요.”

임 도령은 이런 얘기들을 듣자 자신이 틀림없이 아주 귀하신 몸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더욱 기분이 좋아져서, 즉시 백청암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중간쯤 갔을 때 집안의 하인이 와서 보고했다.

“경사에 가셨던 나리께서 돌아가셔서 큰 도련님과 둘째 도련님이 모두 상을 치르러 가셔야 하니, 셋째 도련님도 서둘러 귀가하시라고 합니다.”

임 도령은 너무 놀라 길을 더욱 재촉했다. 도착해 보니 그의 두 형은 이미 경사로 떠났고 어머니는 또 몸져누워 계셨다. 그가 어머니에게 보고했다.

“장인이 돌아가셔서 혼례는 상을 다 치르고 나서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이제 아버님 영구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되겠습니다.”

“나도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 같구나! 집안일은 네가 잘 처리하렴. 듣자하니 며느리가 아주 현숙하다고 하던데, 네 혼례가 마무리 되는 것을 보지 못하겠구나!”

그러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한 달 남짓 뒤에 임 참정의 영구가 돌아왔다.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던 부인은 부축을 받아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나 한바탕 통곡을 했다. 그리고 며칠도 되지 않아서 부인 역시 세상을 떠나 버렸다.

어리석고 성미도 고약한 귀족집안의 철없는 자식들이 어찌 이런 고난을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그저 하인들의 생각만 따르다 보니 가볍게 처리해야 할 일은 오히려 중시하고, 돈을 많이 들여야 할 곳에는 오히려 적게 쓰고 하다 보니 출상하는 날이 되자 모든 일이 난잡하게 어지러워져 버렸다. 칠칠 사십구일이 지나자 곧 묘지를 정해 안장했고, 또 그 뒤에 곧장 분가하려고 했다. 이에 삼당(三黨)의 친척들을 모셔 놓고 논의하게 되었는데, 둘째 아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는 모두 친형제들이라 피차 거리는 없지만 성정(性情)이 각기 달라서 한 집에 함께 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오히려 나중에 서로 간에 틈이 생길 염려가 있습니다. 저와 형은 결혼할 때 겨우 천 냥도 쓰지 않았지만, 셋째는 팔천 금이 넘게 썼으니 설마 무슨 황후를 들이는 걸까요? 나중에 혼례를 올릴 때 경비를 줄이자고 하면 절대 동생 마음에 들지 않을 테고, 그렇다고 많이 쓰는 것도 감당할 수 없지요. 그러니 다들 재산을 나누어서 방해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큰아들이 말했다.

“집안의 재산을 셋으로 나누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유독 셋째에게만 수천 금을 썼으니 이것은 감안해서 깎는 것이 이치에 맞겠지요. 어르신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러자 셋째 도령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친척들에게 말했다.

“두 형님들 말씀이 지극히 타당합니다. 하지만 제 혼사에 들어간 모든 잡다한 비용을 합쳐도 은으로 칠천오백 냥이니, 형님들에 비해 사오 천 냥이 더 들어갔습니다. 저는 논밭이며 건물, 가구, 그릇 따위는 일체 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세 개의 전당포를 하나씩 나누고, 금고 안에 들어 있는 현금을 셋으로 균등하게 나누면 됩니다. 그 외에 각기 두 명의 하인과 하녀들이 이제껏 제 수발을 들어 주었으니, 마땅히 제가 챙기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녕에 살지 않고 포대로 가서 거시서 혼례를 올리겠습니다. 매년 봄가을에 아내와 함께 이곳에 돌아와 성묘를 하면 되겠지요. 이러면 공평하지 않겠습니까?”

첫째 아들이 말했다.

“건물이니 뭐니 하는 것은 현금에 비할 바가 아니니 이런 말은 재산 분할 각서에 쓰기 어렵지요!”

친척 가운데 노련한 이가 입을 열었다.

“셋째 조카의 말은 그래도 본심에서 우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네. 하지만 재산 분할 각서를 쓰고 각자 헤어지면 훗날 다른 말이 없으리라 보장하기 어려우니 결국 먼 앞날을 고려한 계책이라고는 할 수 없네. 그러니 큰 조카의 말도 옳은 셈이지.”

셋째 도령이 말했다.

“방법이 있습니다. 분할 각서는 원래 일반적인 양식이 있지만, 따로 하나를 써서 저는 포대로 이사하려 하니 재산을 관리할 수 없고, 친척 어른들이 공정한 논의를 통해 제게 현금을 조금 더 나눠주고, 그 대신 제 혼사에 더 들어간 비용을 삭감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에 여러 친척들이 동의했다.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으니 그렇게 쓰도록 합시다.”

첫째와 둘째가 잠깐 생각해 보니 건물들이 각기 만금 남짓 되기 때문에 자기들에게 유리할 뿐만 아니라, 혹시 형제들이 나중에 후회한다 하더라도 직접 문서를 작성하고 나서 해서(楷書)로 단정하게 베껴 써서 집안 사당 안에 보관하여 훗날 증빙으로 삼으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재산이 나뉘자 셋째 도령은 바로 자기 몫의 전당포에 영업을 중지하게 하고 현금을 챙기니, 모두 십만 냥쯤 되었다. 그는 결국 포대현의 이모부 집으로 갔다. 그리고 이튿날 아끼는 두 하녀와 어린 하인 하나를 당씨 집으로 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직접 아가씨를 한 번 뵙고 금은과 진주, 보석 따위를 드리고 싶다고 전해라. 그리고 집을 사서 포대에 살 거라는 말도 전하도록 해. 너희 둘은 아가씨 시중을 들고, 너는 돌아와 내게 보고해라.”

그들은 함께 수레를 타고 당씨 집으로 가서 당새아에게 큰절을 올리고 임 도령의 말을 전했다. 당새아가 두 하녀의 이름을 물으니 각기 홍향(紅香)과 취운(翠雲)이라고 했다. 하인의 이름은 교아(巧兒)였다.

“그래, 너희 둘이 지금까지 도련님께 총애를 받았다는 말이냐?”

두 하녀는 부끄러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에 당새아는 자신이 산 두 하녀를 불러다 놓고 그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이 둘도 도련님을 위해 산 것이다. 가서 전해라. 돈이야 자잘한 일이니 줄 테면 주고 아니면 말라고 해라. 서로 만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라 불가능하다. 집을 사는 일이라면 도련님이 이곳으로 이사하려 하신다는 것을 진즉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벌써 사서 가구까지 다 마련해 놓았다. 그저 따로 대문만 하나 내면 되니, 바로 들어와 살면 된다. 너희 둘은 원래대로 도련님의 시중을 들고, 만약 도련님이 제녕으로 돌아갈 일이 생기면 여기로 와서 내 지시에 따르도록 해라. 나는 아직 정식으로 혼례를 치르지 않았으니 시부모 장례에 관여할 수 없다. 예법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도련님께 나중에 성묘하러 가서 제사를 올리겠다고 전해라. 그리고 내가 백 수재님 내외께도 감사한다고 대신 인사를 전해라.”

그리고 두 하녀와 교아를 돌려보냈다.

셋이 함께 돌아온 것을 본 임 도령이 물었다.

“너희 둘은 왜 아가씨 곁에 남아 있지 않았어?”

두 하녀가 당새아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하면서 그녀의 용모가 세상에 또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칭송했다. 하지만 그렇게 아름다운데 어찌 된 영문인지 조금 무서운 분위기를 풍긴다고도 덧붙였다. 그러자 백청암이 말했다.

“조카며느리 얘기를 들으니 참으로 현숙한 여인이로구나. 모든 일을 그 말대로 따르도록 해라.”

임 도령은 일체의 현금을 모두 꾸려서 당씨 집으로 보냈다. 당새아는 병풍 뒤에 앉아서 하녀에게 나가 임 도령에게 절을 올리고, 금은보석의 수량을 하나하나 확인하여 임 도령이 직접 장부에 기록하게 한 후 거둬들여 창고에 보관했다. 임 도령은 즉시 길일을 택해 당새아가 새로 마련해 둔 집으로 이사했고, 예전에 터 두었던 담을 다시 쌓은 후 다른 골목으로 낸 대문을 통해 드나들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있다가 또 전당포를 수습하려고 제녕으로 갔다. 임 도령이 이번 행차를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동갑의 또 다른 서방(西方) 미녀, 등잔 앞에서 웃음 짓는 이름 높은 기생을 얻을 수 있었겠는가?

이에 관해서는 다음 회를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