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홍루몽》의 특수 독자와 《홍루몽》의 해석
텍스트 문제와 탐일학 문제를 논의할 때 우리는 이미 지연재와 기홀수의 비평이 들어 있는 판본이 《홍루몽》 연구에서 대단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았다. 이른바 ‘비평[批語]’이라는 것에 대해 일반 학자들은 ‘지비(脂批)’ 또는 ‘지평(脂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홍루몽》의 초기 필사본에 붙어 있는 비평이다. 또 대량의 비평이 들어 있는 몇 가지 필사본에 《지연재 중평 석두기》라는 제목이 붙어 있기 때문에 논자들은 또 비평을 모두 아울러서 ‘지연재 비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처음에는 확실히 학자들이 ‘지비’라고 아울러 불렀다. 예를 들어서 저우루창은 이렇게 말했다. “이들 지연재 판본들[갑술본, 경진본, 척서본]은 각기 일부분의 귀중한 비평을 보존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들은 지연재 판본에 들어 있는 비평이기 때문에 ‘지비’라고 부르는 것이다.”)
사실 비평을 한 사람이 지연재 혼자만은 아니다. ‘지평’ 또는 ‘지비’의 정의에 대해 학계에서는 이미 공통적인 인식이 있는 듯하다. 첫째, 양광한(楊光漢)은 〈지연재와 기홀수에 대한 고찰〉의 주석에서 “《홍루몽》 연구 학계의 관행에 따라 본서에서는 초기 지연재 비평 《석두기》에 들어 있는 지연재와 기홀수의 비평을 아울러서 ‘지비’라고 칭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둘째, 쑨쉰(孫遜)은 《홍루몽 지연재 비평 초탐(初探)》에서, “우리가 말하는 ‘지평’은 응당 지연재로 대표되는, 작자 주위의 몇몇 사람들의 비평을 포괄한 것을 가리킨다.”고 했다. 셋째, 펑치용은 〈경진본을 다시 논함〉에서,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지연재 비평은 작자와 동시대에 살았고 비교적 관계가 밀접했던 기홀수 등의 비평을 포괄한 것이며, 지연재 한 사람의 비평만을 가리키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했다. 또 일부 연구자들은 판본에 등장하는 ‘중요 인물’인 지연재와 기홀수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홍루몽》 연구에서 지연재 비평이 특수한 중요성을 갖는 상황은 20세기 말엽의 어우양졘(歐陽健)과 커페이(克非) 등이 이의(‘지연재 타도[倒脂]’)를 제기하고 나서야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지연재 타도’를 주장하는 이들과 ‘지연재 보호’를 주장하는 이들 사이의 격렬한 논쟁 과정은 어우양졘과 취무(曲沐), 우궈주(吳國柱)가 편찬한 《홍학 백년 풍운록(紅學百年風雲錄)》(杭州: 浙江古籍出版社, 1999)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러나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지연재 타도파’라고 칭해야 할 듯하다)이 바라는 천지를 진동할 만큼의 영향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어우양졘의 ‘위작설’은 아직 적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심지어 강력한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러므로 지연재의 지위는 오랜 기간 《홍루몽》 연구자들의 마음에서 여전히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서 2003년에 저우루창은 이렇게 말했다.
지연재는 비평에서 조설근 본인과 창작에 담긴 수많은 ‘속사정[底裏]’를 드러냈는데,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알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지연재를 이해하는 것이 바로 조설근과 그의 저작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경로[渠道]’가 되었다.
지연재 비평이 들어 있는 판본에 대해서도 학계에서는 여전히 소중하게 생각한다. 예를 들어서 후스가 외국에 나갈 때 지니고 갔던 갑술본은 미국 코넬 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가 2005년에 상하이 박물관에서 거금을 들여 다시 사들였다.
바로 이 지연재와 기홀수 등이 《홍루몽》 연구에서 갖는 특수한 지위와 ‘처지[際遇]’가 우리가 연구해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이전 연구자들이 “비평을 한 사람이 누구인가?”하는 문제를 확인하는 데에 많은 힘을 기울였기 때문에(작자 본인이라든지 작자의 친척, 작자의 친구라는 설 등이 있다.), 본서의 초점은 비평가의 비평과 해석 사이의 관계에 맞춰질 것이다.
1. 지연재 비평의 출현과 비평가 신분의 특수성
김성탄(金聖嘆)의 《수호전》 비평이랄지 모종강(毛宗崗) 부자의 《삼국연의》 비평, 장죽파(張竹坡)의 《금병매(金甁梅)》 비평 등등 일반적인 소설 평점(評點)은 다른 사람이 소설을 완성한 뒤에 평점이 붙여진 경우지만, 《홍루몽》 지연재 비평은 대단히 특수하다.
1) 비평이 나온 시기가 특별히 빠름
지연재 등의 비평은 《홍루몽》 본문과 거의 동시에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자오진밍(趙金銘)의 고증에 따르면 지연재가 처음 《홍루몽》에 비평을 단 것은 건륭 9년 갑자(甲子, 1744)에서 건륭 12년 정묘(丁卯, 1747) 사이라고 했다. 작자가 《홍루몽》의 수정했던 갑술년(甲戌, 1754)에 (그 뒤에 또 ‘경진년 가을 확정본[庚辰秋月定本]’이 나왔음) 지연재 등은 이미 이 작품의 판본에 비평을 달아서 ‘중평(重評)’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시작부터 지연재 등의 비평은 《홍루몽》 본문과 함께 세상에 전해졌다.
그런데 비평이 나온 시기가 특별히 빠르다는 사실이 《홍루몽》 연구에 어떤 특수한 의의가 있다는 것인가? 어떤 학자는 작자가 작품과 함께 비평이 전해지게 했다는 사실은 작자도 비평의 내용에 찬성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서 량궤이즈는 이렇게 말했다.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조설근이 살아 있을 때 《석두기》가 지연재 비평과 함께 유행했다는 사실인데, 이것은 지연재 비평이 조설근 본인의 기본적인 동의를 얻었다는 뜻이다.
또 피수민(皮述民)은 지연재가 가보옥으로 자처하는 것은 조설근이 인가한 것으로서, 그렇지 않았다면 책에다 그렇게 공공연하게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연재 비평을 “작자가 생전에 인가했다”(?)는 설이 우세함으로 인해 많은 《홍루몽》 연구자들은 지연재 비평의 평론가들을 ‘작자의 대리인’으로 간주했다. 어떤 연구자들은 지연재 비평에서부터 시작해서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다시 구성해 보려고 시도했는데, 대표적인 예가 후나고시 다치시(船越達志)의 《홍루몽의 성립에 대한 연구[紅樓夢成立の硏究]》(東京: 汲古書院, 2005) 제2장 제3절이다(pp.83~97).
2) 비평가 신분의 특수성
《홍루몽》의 원고를 쓸 때 비평가는 이미 거기에 비평을 달 수 있었다. 이것은 비평가와 작가의 관계가 아주 친밀했기 때문일 것이다. 《홍루몽》의 대표적인 비평가인 지연재와 기홀수가 대체 누구의 필명인지에 대해 연구자들은 지금도 공인된 답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주요 비평가가 조설근과 대단히 친한 벗이라는 점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현존하는 자료로 보면 지연재 등은 비평을 달았을 뿐만 아니라 원고를 정리하고 교감하는 작업까지 담당했다. 우스창(吳世昌), 다이부판(戴不凡) 같은 학자들은 심지어 비평가들이 창작에도 참여하여 소재를 제공하고 글쓰기에도 참여했으며, 책의 제목을 결정하고 본문을 수정하는 등의 일을 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우스창은 《홍루몽 탐원(探源)》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이 정교한 서술의 ‘작자’는 누구일까? 적어도 그 가운데 일부분(제18회)은 실제로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썼을 것이라는 강력한 의문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분명 지연재였을 것이다.
나중에 우스창은 〈조설근과 《홍루몽》의 창작〉에서 더 나아가 지연재가 초고를 썼다고 주장했다. 즉 “《석두기》 앞쪽 20여 회 가운데 몇몇 회는 원래 지연재가 쓴 초고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피수민 역시 이런 견해에 동의한다. 그는 “지연재는 《홍루몽》의 창작 발기인임과 동시에 초고의 몇 회를 쓴 작자”라는 것이다. 그 외에도 《홍루몽》 제22회 비평에는 “왕희봉이 연극 제목을 고르는 장면은 지연재가 쓴 것이지만 지금은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어졌다. 안타깝지 않은가?”라고 했다. 왕페이장(王佩璋)이나 자오깡, 천종이(陳鍾毅), 메이팅시우(梅挺秀, 즉 梅節) 등은 이런 해석에 동의하고 있다.
비평가가 ‘소재를 제공’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로는 우스창과 왕관스(王關仕), 류멍시(劉夢溪), 리사오칭(李少淸) 등이 있다. 우스창은 이렇게 주장했다.
지연재는 직접 황제의 남방 순시를 보고 또 조인(曹寅)의 큰딸이 시집간 일을 보았다. 또 그 딸은 군왕(郡王)에게 시집갔기 때문에 그 장면도 분명 상당히 장관이었을 것이다. 과거를 추억하여 기록하고 이런 장면에 대한 소재를 제공한 사람은 지연재 외에는 없다.
왕관스 역시 이렇게 추론했다.
《홍루몽》은 지연재와 조설근이 합작하여 만든 뛰어난 작품으로서 지연재는 초고를 쓰고 소재를 제공했으며, 조설근은 윤색을 하고 시와 산문을 보충했다.
비평가가 《홍루몽》을 ‘개작[改寫]’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로는 다이부판이 있다. 그는 “지연재와 《홍루몽》의 관계는 결코 단순하게 베껴 쓰고 비평을 단 관계가 아니라 그가 이 소설의 개작에 어느 정도 참여했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주장들은 모두 비평을 근거로 하고 있다. 비평의 내용으로 보면 비평가는 작자의 가계와 창작의 소재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설의 창작 과정을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자의 의도와 창작 과정을 중시하는 연구자들이 보기에 이 비평의 가치는 대단히 높은 것이다.
그런데 이 지연재는 대체 누구이기에 이 소설의 실제 사건의 내막을 이렇게 잘 알고 조설근의 의도와 필법(筆法)을 이렇듯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석두기》에서 그는 작자를 대신해서 얘기할 뿐만 아니라 그 바탕에 깔린 오묘한 의미까지 모두 드러내고 있으니, 이 사람의 중요성은 조설근 본인과 비교해서 거의 등호(等號)를 그어야 할 정도이다.
지연재 비평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천칭하오(陳慶浩)는 심지어 지연재 비평이 《홍루몽》 본문 이외에 《홍루몽》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자료라고 주장했다. “고거(考據)의 범위 안에서 제기되는 모든 논점과 토론은 거의 모두 지연재 비평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고, 모든 연구 논저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또 다른 연구자 쑨쉰 역시 지연재 비평이 “비교할 수 없는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저우루창은 심지어 ‘지연재학[脂學]’을 성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홍루몽》 판본 연구에서 비평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펑치용의 진술이 일반 학자들의 관점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의 이런 특수한 상황 때문에 우리는 《석두기》 필사본과 이 작품에 담긴 풍부한 내용을 연구할 때 특별히 이 작품에 대한 비평을 중시하게 된다. 필사본에 비평이 들어 있는지 여부와 비평 분량의 많고 적음은 거의 이 필사본의 가치를 평가하는 근거 가운데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