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홍루몽》의 텍스트 지위와 해석 문제
– 관통론, 유기설, 우열론, 구조학, 탐일학(探佚學)
4. ‘독특한 구조학’과 무형의 텍스트
신홍학이 건립된 이후 《홍루몽》 연구에서 원작을 중시하고 위작을 경시하는 경향은 갈수록 뚜렷해졌다. 앞서 설명했듯이 후스가 ‘고악 속작설’을 주장한 이후 학자들이 직면한 문제는 뒤쪽 40회가 조설근의 원래 구상에 부합하는지 여부였다. 신홍학 연구자들(주로 위핑보와 저우루창)이 제출한 답안은 기본적으로 부정적이었다. 뒤쪽 40회가 조설근의 원래 구상에 맞지 않는다면 《홍루몽》 연구 발전의 내재 논리(inner logic)는 자연히 학자들로 하여금 또 다른 문제로 나아가게 만든다. 즉 조설근의 원작 80회 이후의 본래 면모는 어떤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신홍학 연구자들의 저작에서는 모두들 ‘80회 이후의 《홍루몽》’을 언급하고 있다. 후스의 〈《홍루몽》 고증을 위한 새로운 자료〉에서는 “지연재 판본에서 추론한 조설근의 미완성 원고”라는 절을 마련하여 사상운과 화습인, 기관(琪官), 소홍(小紅, 즉 林紅玉), 가석춘의 결말과 “옥을 잘못 훔친 일”에 대해 논의했다. 위핑보의 《홍루몽변》에는 〈80회 이후의 《홍루몽》〉과 〈뒤쪽 30회의 《홍루몽》〉이라는 두 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여기서 그는 가씨 집안의 사람들과 가보옥, 금릉12차 등의 결말에 대해 추측했다. 저우루창의 《홍루몽 신증(新證)》에는 “지연재 비평을 통해 보는 조설근[從脂批認識曹雪芹]”이라는 절이 있는데, 여기서도 이른바 ‘진본 뒤쪽 30회’에 대해 전문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그들의 작업은 기본적으로 후세 학자들의 연구 방향을 정해 놓았으니, 바로 정고본 120회 《홍루몽》이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것이라는 점이다. 서양에도 유사한 상황이 있었으니, 예를 들면 파커는 이렇게 지적했다.
무의미함과 부분적인 작자의 의도, 그리고 부주의하고 의도적이지 않은 의미가 순수한 작자의 의도와 함께 표준적인 문학 텍스트에 혼재하고 있다.
‘진본의 뒤쪽 30회’를 찾으려는 신홍학 연구자들의 작업은 1954년에 ‘위핑보 비판 운동’이 일어나면서 단절되었다. 1980년대에 이르러 ‘뒤쪽의 내용’을 찾으려는 작업이 다시 시작되었으며, 또한 거기에 ‘구조학’과 ‘탐일학(探佚學)’이라는 명칭을 붙이기 시작했다.
‘구조학’과 ‘탐일학’이라는 명칭은 비록 새로운 것이긴 하지만 사실 위핑보와 위잉스 등의 ‘관통론’과 ‘내재 구조’(또는 ‘유기적 구조’)를 어느 정도 계승한 것이었다.
구조학: ‘구조학’이라는 단어는 저우루창이 처음 제시했다. 저우루창은 〈조설근의 독특한 구조학[曹雪芹獨特的結構學]〉이라는 글에서 조설근이 ‘큰 대칭법(對稱法)’으로 《홍루몽》을 창작하여 작품을 두 쪽으로 나누었는데, 그 봉합점이 제54회와 제55회 사이에 있다고 했다.
〈조설근의 독특한 구조학〉은 1986년 하얼빈 국제 《홍루몽》 연구회에서 발표한 논문이다. 하지만 사실 그의 초기 논저들 속에서도 이미 ‘분수령’을 주장하는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1976년에 출판된 《홍루몽 신증》에서 그는 《홍루몽》은 제54회를 분수령으로 삼아야 하고, 전체 작품은 110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나중에 그는 〈《紅樓夢》 원본은 몇 회인가?〉(1978년)에서 이전의 주장을 수정하여 전체 작품이 108회이며 제 54회와 제55회 사이가 ‘분수령’이 되어야 앞뒤가 각기 절반씩 되어서 ‘흥성’과 ‘쇠락’이라는 두 개의 큰 부분을 이룬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저우루창의 독창적인 견해가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척서본 제55회의 총평에서 이미 이렇게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는 앞쪽 글을 이어받고 있는데 황종(黃鐘)과 대려(大呂)처럼 잘 어울려서 나중에는 점차 우조(羽調)와 상성(商聲)으로 바뀌어 특별히 맑고 시원한 맛이 풍부해진다.
그러나 비평가는 자신의 인상만을 적었을 뿐 자세한 해석은 하지 않았다. 1954년에 이르러 위핑보는 〈《홍루몽》 하반부의 시작〉이라는 글을 발표하여 작품 전체의 분계선이 제54회와 제55회 사이에 있으니, 제55회에서 이미 하반부가 시작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글의 주요 목표는 ‘뒤쪽의 내용’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제55회에서 후반부가 시작됨’을 증명하는 증거들을 나열하려는 데에 있었다. (그는 논의에서는 그저 제53회와 제54회에서 가씨 가문이 몰락하고 사람들이 흩어지며, 가보옥이 거지로 전락하게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고 간략히 설명했을 뿐이다.) 위핑보도 앞뒤가 두 쪽의 대칭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저우루창의 주장에서 새로운 점은 ‘큰 대칭’의 개념을 구조 분석에 응용했다는 것이다. 그가 하얼빈 국제회의에서 발표한 논문은 ‘이론적으로 해설한’ 것일 뿐이었다. 1989년에 이르러 그의 《홍루몽과 중화문화》에서 비로소 이런 생각이 대대적으로 발휘되어 ‘구분론’ 즉, ‘큰 대칭’의 개념을 실제 분석에 응용하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수자의 연계’와 ‘계절의 큰 대칭’, 그리고 ‘네 번의 시작[起]과 네 번의 마무리[結]’라는 것을 제기했다. ‘수자의 연계’라는 것은 조설근이 (108명의 영웅을 묘사한) 《수호전》을 계승하여 108명의 미녀[金釵]를 묘사하려 했으며, 동시에 《홍루몽》 전체는 108회이어야 하지 정고본처럼 120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계절의 대칭’이란 《홍루몽》의 ‘삼춘(三春)’과 ‘삼추(三秋)’를 가리키는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세 개의 원소절(元宵節)과 두 차례나 직접적으로 묘사한 중추절 장면은 모두 제80회 이후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네 번의 시작과 네 번의 마무리’라는 것은 자서전, 집안의 패망, 사람(가족)의 분산, ‘시적 짜임새[詩格局]’의 시작과 마무리를 가리킨다.
‘큰 대칭’의 개념이 《홍루몽》 연구에 어떤 중요성이 있는가? 저우루창은 이렇게 주장한다.
큰 대칭은 조설근 원작에서 장을 나누는 규칙이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해야 제80회 이후의 줄거리 윤곽, 심지어 큰 사건의 발생과 중요 인물의 결말 사이의 관계와 안배를 헤아릴 수 있다.
이것은 사실상 신홍학 이래 추구했던 ‘80회 이후의 《홍루몽》’에 대한 탐색의 연속이지만, 이전까지 뒤쪽 문장에 대한 재구성이 대부분 지연재 비평을 근거로 이루어졌던 데에 비해 저우루창은 텍스트의 ‘구조’에서 근거를 찾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데에 불과하다. 바꿔 말해서 이 또한 ‘내재 구조’의 일종인 셈이다.
저우루창이 제시하는 《홍루몽》의 ‘구조’는 계속 변동하는 것인 듯하다. 예를 들어서 《홍루 12층》에서 그는 “구조학적으로 얘기하자면 제72회는 ‘8×9’의 수이기 때문에 후반부 전체는 여기서 시작된다.”고 했다. 이를 보면 후반부가 어디서 시작되는지는 그 강조점의 차이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구조라는 것이 객관성(objectivity)을 갖춘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저우루창은 그와 같은 방식으로 《홍루몽》의 ‘구조’를 즐겨 이야기하는 플락스(Andrew Plaks: 1945~ )를 떠받들면서 주도면밀하게 인용한다. 플락스에 따르면 “제49회와 제50회 사이가 작품 전체의 중간 지점”이라고 했다. 구조가 객관적인 텍스트의 속성이라면 어떻게 연구자들의 인식이 이처럼 다를 수 있겠는가?
저우루창의 구조론은 성립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학자들의 반응은 다양한데, 예를 들어서 장진츠(張錦池)는 기본적으로 찬동하고 있으며, 왕궈화(王國華)의 《태극(太極) 홍루몽》도 이에 영향을 받은 듯하지만, 치우치(邱奇)는 의문을 제기했다. 어쨌든 그의 주장은 ‘탐일학’이 시작되도록 부추기는 역할을 했으며 이론적으로도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저우루창 자신도 이 점을 인식한 듯 이렇게 지적했다.
이것(큰 대칭)이 조설근 구조학의 기본적인 규칙이라면 다층적인 추측이 가능해지며, 그것은 탐일학의 가장 중요한 이론적 근거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탐일학: ‘탐일학’ 역시 저우루창이 제시한 개념이다. 탐일학은 그의 ‘구조학’처럼 정제된 틀과 맥락이 없지만 기본적인 가설은 아주 비슷해서 ‘구조’를 텍스트의 속성(identity)으로 간주한다. 예를 들어서 차이이쟝은 “《홍루몽》은 작품 전체에 유기적 통일을 이루는 총체적 구조에 따라 창작된 소설이다. 작자는 하나의 사건이나 인물을 묘사할 때 항상 전체적인 국면을 마음에 품고,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시선을 갖고 있었다.”라고 주장했다. 량궤이즈(梁歸智) 역시 “잃어버린 원고에 대한 연구에서 가장 근본적인 근거는 앞쪽 80회의 《홍루몽》이다. 80회 뒤쪽의 이야기 발전의 필연적 추세와 ……전체적인 예술적 구상의 필연적 추세는 모두 앞쪽 80회에 충분히 제시되어 있다.”고 했다. 이른바 ‘유기적 통일을 이루는 총체적 구조’랄지 ‘전체적인 예술적 구상’은 위잉스의 ‘유기성’과 ‘내재 구조’, ‘전체적인 국면을 가슴에 담고’, ‘전체적인 구상, 전반적인 배치’ 등의 논의와 대단히 비슷하다. 그러므로 탐일학이 위핑보와 위잉스의 ‘내연적 연구’의 연속이라고 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잃어버린 원고를 찾는 것과 관련된 전문 저작은 량궤이즈의 《석두기 탐일》(1983년 초판)과 《잃어버린 세계――홍루몽의 잃어버린 이야기》를 비롯해서 몇 가지 종합적인 개정본이 있으며, 차이이쟝의 《홍루몽의 잃어버린 원고》(1989)와 《석두기 탐일》 신판(1992)이 있다. 비교적 최신의 저작으로는 딩웨이중(丁維忠)의 《홍루탐일――조설근은 원래 뒤쪽 30회를 어떻게 썼는가?》와 양궤이즈의 《홍루탐일홍》이다.
잃어버린 원고를 찾는 작업과 판본학 사이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정고본 120회 판본은 제80회 이후의 이야기를 배합하기 위해 종종 앞쪽 80회의 문장을 수정함으로써 120회의 일관성(consistency)을 이루려고 했다. 탐일학 연구자들이 보기에 이런 방법은 종종 텍스트에 담긴 독특한 복선을 없애 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예를 들어서 량궤이즈는 제70회에서 가탐춘이 봉황 연을 날리는 부분은 장차 그녀가 바닷가로 시집가게 되는 일을 암시하는 복선인데 정고본에서는 삭제되어 버렸다고 주장했다. 차이이쟝 역시 “우리는 현재 유행하고 있는 120회본의 앞뒤를 하나의 통일체로 간주할 수 없다.”고 했다.
잃어버린 원고를 찾는 작업의 논리적인 결과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귀결될 것이다. 첫째, 조설근의 《홍루몽》과 정고본 《홍루몽》을 엄격히 구분하여 “두 가지 판본 계열, 두 가지 《홍루몽》”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이렇게 되면 연구자들로 하여금 필사본 계열의 문장을 더욱 중시하게 만들 것이다. 둘째, 잃어버린 원고를 찾는 연구가 비록 필사본 계열 앞쪽 80회 문장(복선, 예언, 참어[讖語], 그리고 ‘지연재 비평’ 등등)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그 목표는 제80회 이후의 줄거리(‘조설근의 원래 구상’)이다.
‘탐일학’의 영향이 나날이 커짐에 따라 조설근이 쓴 제80회 이후의 ‘진본’은 엄연히 일종의 무형적 텍스트이지만 정고본 뒤쪽 40회의 지위를 직접적으로 위협했다. (다음 장에서 지연재 비평을 논의하면서 다시 ‘탐일’ 문제를 종합적으로 논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