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각박안경기初刻拍案驚奇 제27권 2

제27권 고아수는 기꺼이 시주물을 기부하고
최준신은 공교롭게 부용병을 만나다
顧阿秀喜舍檀那物 崔俊臣巧會芙蓉屛

이렇게 달포가 지나 바야흐로 8월 한가위가 되었다. 뱃사공은 온 배의 친척들과 선원들을 불러 모으고, 왕씨에게 술과 안주를 장만하여 선창 안에 푸짐하게 차려놓게 하고는 함께 술을 마시며 달을 감상하였다. 모두들 곤드레만드레 취하도록 마셔서 이리 비틀 저리 비틀하였고, 뱃사공 역시 배에서 잠이 들었다. 왕씨는 홀로 선미에 있었는데, 사람들 코고는 소리가 귀에 울렸다. 이때는 달빛이 대낮같이 밝아 선창 안을 자세히 살펴보니 잠에 곯아떨어지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왕씨는 속으로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또 언제 기회가 오겠어?’

하고 생각하였다. 마침 선미를 강기슭에 대고 정박하고 있던 터라, 조금만 움직이면 쉽게 뭍에 오를 수가 있었다. 왕씨는 가볍게 뛰어내려 달빛을 틈타 단숨에 삼사 리 길을 달려 한 곳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곳은 달려왔던 길과는 전연 달라 사방이 모두 물가 마을이고 갈대밭뿐인 한없이 넓은 곳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갈대밭 사이로 작은 오솔길이 나있는데, 풀이 웃자라있고 바닥이 미끄러웠다. 게다가 발은 작고 신발도 불편해서 한걸음 디딜 때마다 넘어져 그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뒤에서 추적해 올까봐 감히 걸음을 멈추지도 못하고 온힘을 다해 뛰었다. 차츰 동녘이 밝아지자 마음이 조금 든든해졌다. 그러던 중 멀리 보이는 숲 속에 집 한 채가 드러났다. 왕씨는

‘아 다행히 인가가 보이는구나.’

하면서 걸음을 재촉하여 그 앞에 다다라 고개를 들어보니 뜻밖에도 사찰인 듯했다. 문은 아직 잠겨있었는데, 왕씨는 문을 두드려볼까 하다가는 속으로 이렇게 궁리했다.

‘이 안에 남승이 있는지 여승이 있는지도 알 수 없잖아? 만일 문을 두드렸는데 열어주러 온 사람이 남승이라면, 게다가 무식한 놈을 만나 무례하게 달려든다면, 호랑이 굴에서 막 도망 나왔다가 또다시 함정에 빠지는 격이 될 게 아냐? 그러니 경솔해서는 안 돼. 어째든 날이 이미 밝아서 배에서 놈들이 쫓아온다 하더라도 여기엔 믿을 만한 사람들이 있어 살려달라고 소리칠 수 있으니, 그놈들을 겁낼 필요는 없겠지. 그냥 문 앞에 좀 앉아 있다가 그들이 문을 열고 나오기를 기다리는 게 좋겠어.’

그러고 나서 조금 있으니까 안에서 빗장을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린 하녀 하나가 물을 길러 나서는 것이었다. 왕씨는 속으로 기뻐하며

‘아아 비구니 절이었구나’

하고는 곧장 안으로 들어가니 주지가 나와 그녀를 보고는 물었다.

“부인은 어디서 오신 분인데 이른 아침부터 저희 암자에 오셨습니까?”

왕씨는 생면부지의 사람을 대하자니 그 사람됨을 알 수 없어 감히 진상을 말하지 못하고 거짓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진주(眞州) 사람으로 영가현(永嘉縣) 최현위(崔縣尉)의 두 번째 처입니다. 그런데 큰 마님이 성질이 너무 사나워 걸핏하면 저를 때리고 욕을 해대곤 했습니다. 얼마 전 바깥어른이 이임을 하셔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이곳에 배를 정박하게 되었습니다. 어젯밤에는 한가위라 달구경을 했는데, 저에게 금 술잔에 술을 마시게 했습니다. 그런데 천만뜻밖에도 그만 실수로 그걸 강물 속으로 빠뜨려버렸습니다. 큰 마님은 잔뜩 노해서 저를 꼭 죽이고야 말겠다고 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살길이 없음을 알고 큰 마님이 깊이 잠든 틈을 타서 도망 나와 이곳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말을 듣고 보니 부인께서는 감히 배로 돌아가시지는 못하겠군요. 게다가 집도 머니 달리 배필을 구하려 해도 금방 마땅한 사람이 있기도 힘들 테고요. 외롭고 힘든 몸을 어디에 의지해야 좋을지.”

왕씨는 끝없이 울기만 할 뿐이었다. 주지는 그녀의 행동거지가 단정한데 불쌍한 처지에 놓인 것을 보고 깊은 연민의 정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를 받아들이려는 마음으로 이렇게 물었다.

“제가 한 가지 권유드릴 말씀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환난 중에 있는 터이니, 만약 사부님께 어떤 방법이 있다면 제가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절은 황량한 물가의 외딴 구석에 위치하여 인적이 닿지 않고 수풀과 새들이 이웃이요 친구인 터라 가장 한적한 곳이지요. 다행히 한두 명 있는 동료들도 모두 나이가 쉰이 넘고, 시자(侍者)들 몇 명도 역시 모두 순박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이곳에 은거하면서 참으로 수행의 묘미가 생겨나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부인께서는 비록 젊고 아름다우시지만 시운이 불길하니 애욕을 버리고 불가에 귀의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출가하여 승방에서 소식하며 승려의 몸으로 명에 따라 삶을 사는 것이 어찌 남의 첩이 되어 이승의 고통을 짊어지고 내세의 원수를 맺는 것과 같겠습니까?”

왕씨는 그 말을 듣고 감사해 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부님께서 기꺼이 거두어 제자로 삼아주신다면, 제게는 크나큰 다행이 아닐 수 없거늘 달리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그러니 사부님께서는 주저하지 마시고 제 머리를 깎아주십시오.”

그러자 과연 주지는 향을 사르고 경쇠를 울리면서 불상에 배례 하고는 그녀의 머리를 깎아주었다.

가련하다 현위 부인
졸지에 여래제자 되었구나

삭발을 한 후 주지는 혜원(慧圓)이라는 법명을 지어주었다. 왕씨는 부처님께 참배한 후 다시 주지께 배례하여 스승으로 삼고 동료들과도 모두 인사를 마쳤다. 이로부터 왕씨는 이 비구니 절에서 머물게 되었다. 왕씨는 대갓집 출신이라 매우 총명하여, 한 달 내에 경전 따위들을 일일이 읽고 모두 통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주지는 그녀를 매우 존중하게 되었고, 또 그녀가 사리에 밝은 것을 알고는 절 안의 크고 작은 일들은 모두 그녀의 주장에 따랐다. 이렇게 되고 보니 그녀에게 묻지 않고서는 단 한 가지 일조차 감히 경솔히 처리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녀의 성품이 너그럽고 유순해서 절 안의 어느 누구와도 다 마음이 맞아 사이좋게 지내게 되었다. 매일 아침 관세음보살 앞에 백여 차례 절을 올리면서 마음속의 일들을 몰래 털어놓았는데, 아무리 춥거나 더워도 중단하는 일이 없었다. 절을 마치면 자신의 방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미모로 인하여 일이 생길까봐 더 이상 가벼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므로, 바깥사람들도 그녀의 얼굴을 보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일 년 남짓 지난 어느 날, 어떤 두 사람이 절에 참예를 하러 왔는데, 이들은 주지가 잘 아는 근처의 시주들이어서 그들을 만류하여 식사를 대접했다. 이 두 사람은 우연히 지나다 들린 것이어서 수중에 뭔가 보답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다음날 종이에 그린 부용꽃 그림 한 폭을 가져와 절 안에 걸어놓도록 하여, 그것으로 전날의 식사에 답례하였다. 주지는 그것을 받아 병풍 위에 표구를 하였다. 왕씨는 그것을 보고는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보더니 주지에게 물었다.

“이 그림은 어디에서 온 겁니까?”

“방금 시주님들께서 보시한 것이네.”

“그 시주님의 이름은 뭐고 또 어디에 사시는지요?”

“이 곳 고아수(顧阿秀) 형제 두 사람이야.”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인데요?”

“그 두 분은 원래 뱃사람이라 강호에서 배를 빌려주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었는데, 최근에 갑자기 집안이 망했지. 어떤 사람은 그들이 객상을 겁략했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정말 그랬는지는 알 수 없네.”

“여기에 자주 오시는 분들입니까?”

“가끔 한 번씩 오지 자주 오는 건 아니야.”

왕씨는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되어 고아수라는 이름을 기억해 두고는 붓을 가져다가 병풍 위에 사(詞) 한 수를 써놓았다.

젊어서부터 늘 풍류스런 그림 그려
사생화라면 근래의 황전(黃筌)1)에 못지않았지
부용꽃 너무도 선연하게 그려냈구나
허나 어찌 알았으랴, 그 고운 자태에 사생(死生)의 원(寃) 품고 있었음을
채색한 그림 나의 환생인 듯 처량하구나
유랑하는 지금의 신세 뉘라서 가엽게 여겨줄고
수수한 병풍만이 쓸쓸히 좌선에 동무해줄 뿐
금생의 연 이미 끊겼으니
원컨대 다음 생에 다시 인연 맺어주소서
(우조(右調) 「임강선(臨江仙)」)

절 안의 여승들은 비록 경전의 글자는 안다고 해도 문장에는 그다지 정통하지 못한지라, 이 사를 봐도 그저 왕씨가 재능을 과시하느라 그냥 한번 지어본 것이라 생각할 뿐 그 속에 담긴 연고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 그림은 최준신이 손수 그린 것으로, 역시 그날 밤 배에서 빼앗긴 물건이었다. 왕씨는 그림만 남아있고 사람은 죽었다고 생각하며 남몰래 마음 아파했다. 또 강도의 종적에 대해서도 이미 대강 알게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아녀자의 몸인 데다 또 출가까지 했으니 당장은 어쩔 도리가 없어 마음속에 담아둔 채 차차 기회를 엿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원한은 마땅히 갚아야 하고 인연도 아직 끊어지지 않았으니, 자연히 일이 생겨나게 마련이었다.

고소성(姑蘇城) 안에 곽경춘(郭慶春)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집안이 매우 부유하고 관리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을 가장 좋아하며, 문방사우나 고상한 예술품을 무척 애호했다. 하루는 이 절에 놀러 왔다가 그 부용꽃 그림이 매우 잘 그려졌고 또 거기에 쓰여진 글의 서법이 매우 뛰어난 것을 보고는 속으로 너무나 기뻐서 주지에게 그것을 사고 싶다고 했다. 주지가 왕씨에게 상의하자 왕씨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것은 지아비의 유품이라 본디 차마 남에게 넘겨줄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엔 내가 사를 적어두었고 그 속에 원한의 뜻이 들어있으니, 누군가 사려 깊은 사람이 그 내용을 감상하다가 그 연고를 캐낸다면, 그 종적을 찾아내지 못하리란 법도 없다. 만약 그냥 절 안에 남겨둔다면 무슨 득 될 게 있겠는가? 그냥 사부님께 그 사람에게 파시라고 하자.’

곽경춘은 그림을 사게 되자 크게 기뻐하며 돌아갔다. 당시 어사대부(御史大夫)인 고납린(高納麟)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관직에서 물러나 고소(姑蘇)에 머물고 있었고 서화를 제일 좋아하였다. 곽경춘은 그에게 아첨하려고 그 병풍을 사다 그에게 갖다 바쳤다. 고납린은 그림이 매우 정교한 것을 보고는 그것을 받아 두었는데, 바쁘다 보니 거기에 쓰여진 사도 보지 못하고 낙관도 살피지 않은 채, 그냥 머슴아이에게 주어 안쪽 서재에 펼쳐놓으라고 분부하고 곽경춘을 문밖까지 전송해 보냈다. 그런데 그때 밖에서 한 사람이 손에 초서(草書) 네 폭을 들고서는 가격을 붙여놓고 팔고 있는 것이었다. 고납린은 본래 이런 물건들을 좋아해서 일단 눈에 띄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터라, 한 번 보자고 가져오라고 했다. 그 사람이 두 손으로 받들고 오자 고납린은 그걸 받아들고 한 번 보았다.

서법은 당(唐) 회소(懷素)2)에 가깝고 그 청아함 세속에 물들지 않았구나
서법서의 반열 중에 놓는다면 가히 《금석록(金石錄)》3)에 실릴 만하도다

고납린은 다 보고나서

“서법이 상당히 좋은데 누가 쓴 거요?”

하고 물었다.

“제가 스스로 배워서 쓴 것입니다.”

고납린이 고개를 들어 그를 보니 매우 범상치 않은 모습인지라 자기도 모르게 놀라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고 어디 사람이오?”

하고 물으니, 그 사람은 눈물을 떨구며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성은 최(崔)이고, 이름은 영(英), 자(字)는 준신(俊臣)이며 고향은 진주입니다. 부친의 음공(陰功)으로 영가현 현위를 맡게 돼서 식솔들을 데리고 부임하러 가던 중에 부주의해서 뱃사람들의 속임수에 넘어가 물속에 던져졌습니다. 재물이고 가족이고 어떻게 됐는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강가에서 자라 어렸을 때부터 헤엄치는 법을 배울 수 있었기에, 물속에서 한참 동안 숨어 있다가 그들이 멀리 가버렸을 거라고 생각되었을 때 강기슭으로 올라와 한 민가에 들게 되었습니다. 온몸이 다 젖은 데다 수중에 단돈 한 푼 없었는데, 그 집주인이 선량한 사람이라 마른 옷을 내와서 갈아입히고 술과 밥을 대접해주면서 하룻밤을 지내게 해주었습니다. 이튿날에는 또 약간의 노자까지 주어 전송하면서 ‘강도를 당했으니 관가에 고소를 하는 것이 합당하겠지만, 연루될까봐 감히 더 머무시게 할 수가 없군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곧 길을 물어가며 성으로 들어가 평강로(平江路)에 고소를 했습니다. 그런데 돈을 먹이지 않았더니 포리들이 전혀 신경을 쓰질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일 년을 기다렸지만 아직 아무 소식도 없습니다. 그래도 어쩔 도리가 없어 글씨나 좀 써서 그걸 팔아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저 궁여지책일 뿐이지 감히 스스로 글씨를 잘 쓴다는 것은 아닙니다. 뜻밖에도 졸작을 대감님께서 보시게 되었군요.”

고납린은 말을 다 듣고서 그가 관리였는데 강도를 만나 유랑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깊은 동정심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글 솜씨가 뛰어나고 외모도 의젓한 것을 보고는 그를 돌봐 줄 마음이 생겨 이렇게 말했다.

“그쪽 사정이 그렇다면 당장 먹고 살 길도 없을 테니, 일단 우리 집에 머물며 내 손자들에게 서예나 가르치면서 차차 다른 방도를 마련해 보심이 어떠신지요?”

최준신은 흔쾌히 대답했다.

“환난 중에 의지할 곳이 없었는데, 대감께서 이끌어주시니 천만다행입니다.”

고납린은 크게 기뻐하며 곧장 안쪽 서재로 들어가 주안상을 마련하여 접대하였다. 이렇게 막 즐겁게 마시던 중에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공교롭게도 전날 받았던 부용꽃 병풍이 그곳에 펼쳐져있는 것이었다. 최준신은 방안을 죽 둘러보다가 그것을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고납린이 이상히 여겨

“이 부용꽃을 보고 무슨 연고로 그리 상심하시오?”

하고 물으니 최준신은 이렇게 대답했다.

“대감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 그림 역시 그 배에서 잃어버렸던 물건 중 하나인데, 제가 손수 그린 것입니다. 그런데 왜 여기에 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다시 잘 살펴보니 그 위에 사 한 수가 있었다. 최준신은 그것을 다 읽고 탄식하였다.

“점점 더 이상하군요. 이 사는 또 제 처가 지은 것입니다.”

“그걸 어떻게 알았소?”

“그 필적은 예전부터 알아볼 수 있었고 또 사 속에 담긴 뜻도 있으니, 정말로 제 처가 지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 사는 변을 당한 후에 지은 것이니, 아마도 제 처는 죽지 않고 아직 도적의 소굴에 있는 것 같습니다. 대감께서 이 그림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아내주신다면 실마리가 생길 것입니다.”

그러자 고납린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 그림이 오게 된 곳에 원인이 있다면 선생을 위해 책임지고 도적을 잡아야겠구료. 다만 일단 이 사실이 새나가서는 안 되오.”

이날 술자리를 마친 후 손자 둘을 불러다 훈장님께 인사를 하게 하고는 최준신을 서재에서 머물도록 하였다. 이로부터 최준신은 줄곧 고납린의 집에 있게 되었다.

한편 다음날 고납린은 몰래 하인을 시켜 곽경춘을 모셔오라고 하여 그에게 물었다.

“전날 내게 주신 부용꽃 병풍은 어디서 얻으신 거요?”

“성 밖에 있는 비구니 절에서 산 것입니다.”

고납린은 병풍이 오게 된 곳을 알고 곽경춘과 헤어진 후 하인을 그 비구니 절에 보내 그 부용꽃 병풍이 어디서 온 것이고, 또 누가 사를 써넣은 것인지 자세히 물었다. 왕씨는 그가 와서 꼬치꼬치 캐묻는 것을 보고는 주지에게 물었다.

“물으러 온 사람은 누구고 또 무엇 때문에 그 연고를 묻는 거죠?”

그러자 하인이 대답했다.

“이 그림이 지금은 고대감님 댁에 있는데, 그 내력을 알아보러 온 겁니다.”

왕씨는 관부의 문중에서 물으러 온 것을 알고는 혹시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주지에게 다음과 같이 사실대로 말해주도록 하였다.

“이 그림은 이곳 고아수가 희사한 것인데, 우리 절의 젊은 여승인 혜원이 거기에 제를 단 것이오.”

하인이 이 말을 다시 고납린에게 전하자 고납린은 속으로

‘혜원을 데리고 오기만 하면 이 일은 끝나게 되겠구나.’

라고 생각하고는 안으로 들어가 부인과 상의를 한 후 이틀이 지나서 다시 하인을 시켜 가마꾼 두 명에게 가마 한 채를 메고 절로 가도록 분부하였다. 하인은 주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고대감님 댁의 마름이온데, 저희 댁 마님께서 불경 낭송하기를 좋아하시지만 동무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절에 혜원이라는 젊고 고명한 스님이 계시는 것으로 들어 알고 있는데, 원컨대 예로써 스승으로 청하여 저희 부중에서 모시고자 하오니 거절하지 마시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주지는 주저하며

“절 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그 애가 담당하고 있는데 어떻게 데려갈 수가 있겠소?”

하고 말했다. 왕씨는 고대감 댁에서 그녀를 데려간다는 말을 듣자 속으로 복수의 뜻을 품고 관부의 문중에 있으면서 기회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전날 부용꽃 병풍에 대해 물으러 온 것도 고대감 댁이라고 하니, 계속 뭔가 짚이는 게 있어 주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귀한 문중에서 예로써 청하는데 어떻게 가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만일 사양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어떻게 당해내겠어요?”

주지는 왕씨가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녀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

“가겠다면 가는 거지만 언제나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으니, 절 안의 일들은 어떻게 하겠나?”

“부인을 만나 뵙고 며칠 머물러 있다가 틈을 봐서 올 수 있으면 곧 오겠습니다. 절에도 별다른 일은 없을 것 같고 또 만약 어려운 일이 있으면 고대감 댁도 성 안에 있어 멀지 않으니 와서 상의할 수 있을 거예요.”

“정 그렇다면 어서 가거라.”

하인은 가마꾼들에게 가마를 메고 절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고, 왕씨가 가마를 타자 곧장 고납린의 부중으로 갔다. 고납린은 그녀와 만나보지 않고 그냥 부인이 있는 곳으로 가보게 하고는 부인에게 그녀를 침실에 머물면서 같이 자도록 하고 자기는 혼자 다른 방으로 가서 잤다. 부인은 그녀와 경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인과응보에 대해서도 말을 나누었다. 왕씨는 하나를 물으면 열을 답할 정도로 말을 잘해, 부인은 매우 기뻐하며 그녀를 존중하게 되었다. 한가한 틈을 이용해 부인은 왕씨에게 이렇게 물었다.

“사부님의 말을 들어보면 이곳 토박이는 아니신 것 같은데, 어렸을 때 출가를 하신 건가요 아니면 남편이 있었는데 도중에 출가를 하신 건가요?”

왕씨는 그 말을 듣고 나서 비 오듯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부인께 아뢰건대 과연 소승은 이곳 사람이 아니라 진주 사람입니다. 남편은 영가현 현위이고 성은 최(崔) 이름은 영(英)인데, 지금껏 다른 사람에게 감히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부인 앞에서니까 바른 대로 말씀 드려도 괜찮을 것 같군요.”

1) 황전(黃筌) : 오대(五代) 후촉(後蜀)의 화가로, 화조(花鳥) 그림으로 유명했다.

2) 회소(懷素) : 당대(唐代)의 승려이며 현장(玄獎)의 제자로, 초서(草書)를 잘 쓴 것으로 유명하다.

3) 《금석록(金石錄)》 : 송대(宋代) 조명성(趙明誠)이 지은 책으로, 오대(五代) 이전 각종 금석문 자료와 관련 고증 내용을 수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