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노승은 가죽 포대를 헛되이 펼치고
젊은 거사는 애욕의 좌선 방석에 앉으려 하다
老頭陀空張皮布袋 小居士受坐肉蒲團
탐욕의 바다는 어슴푸레 깊지 않은 듯해도,
신선의 땅 약수1처럼 가라앉기 쉽다네.
잠자리의 날개처럼 가볍다 할지라도,
한 방울만 스쳐도 온데간데없어라.
慾海微茫似不深,却同弱水比浮沈。
饒伊輕似蜻蜓翼,點著波痕沒處尋。
원나라 치화 연간 (서기 1328年) 절강 괄창산에 법명은 정일, 도호는 고봉이라 불리는 승려가 살았어. 그는 원래 처주군의 이름난 생원2이었지. 그는 포대기에 쌓여있을 아기 때부터 쉬지 않고 옹알거려 마치 학생이 경서를 암송하듯 하였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부모는 이해할 수 없었어. 마침 행각승 하나가 집안으로 탁발하러 들어와 계집종의 손에 안겨있는 아기가 우는 듯 웃는 듯 소리 내는 것을 듣고는 말하였어.
“아이가 읊는 것은 《능엄경楞嚴大藏眞經》입니다. 이 아이는 고승이 환생한 것이오.”
그는 아이를 제자로 삶게 해달라고 간청하였으나 부모는 이를 요망한 말로 여기고 믿지 않았어.
아이는 커서 글을 읽으며 한 번 본 것은 모두 암송하였어. 그러나 입신양명을 바라기는커녕 유생의 길을 버리고 불교에 귀의하고 싶다고 누차 부모를 졸랐고 항상 크게 혼나고 나서야 이를 그쳤지. 그는 어쩔 수 없이 시험을 치르고 어린 나이에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에 입학하여 녹봉을 받는 생원3이 되었어.
이윽고 부모가 죽고 삼년 상을 치른 후 그는 모든 재산을 친지들에게 다 나눠주고 자신은 가죽포대 하나를 기워 그 속에 목탁과 불경 등의 물건을 넣고 삭발한 후 끝내 산속에 수행을 하러 들어갔어. 그를 아는 이들은 그를 ‘고봉 장로’라고 일컫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그저 가죽포대 스님이라 불렀지. 고봉 스님이 다른 중들과 다른 점은 그저 술과 고기, 여색을 금하는 계율을 철저히 지켰을 뿐 아니라 스님들이 흔히 하는 것 가운데에서도 세 가지를 계율로 삼았다는 거야.
그 세 가지 계율은 첫째 시주를 받지 않는 것, 두 번째 불법을 강론하지 않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름난 산천에 기거하지 않는 것이었어.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지.
“스님 왜 시주를 받지 않으십니까?”
“부처를 배운다는 것은 고행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라오. 반드시 힘들고 주려야 합니다. 하루하루 추위와 배고픔을 마주해야 합니다. 매일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려야 음욕이 생기지 않고, 음욕이 생기지 않아야 혼탁한 날이 가고 청정한 날이 오는 거랍니다. 이러한 날들이 오래되면 자연 성불하게 되는 것이지요. 만약 밭을 갈지 않고도 먹을 수 있고 옷을 짓지 않고도 입을 수 있으며 온종일 신도들이 가져오는 공양에만 의지하여 배부르고 등 따스우면 어슬렁거리며 산책이나 하고 편하게 잠이나 청하겠죠. 어슬렁거리면 욕심이 나는 것들이 보이고 편한 잠은 망상을 만드니 불도를 다 이루지 못할 뿐 아니라 종종 지옥에 떨어질 일들이 원하지 않아도 찾아오게 된답니다. 때문에 저는 스스로의 힘으로 살고 시주 받는 것을 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불법은 왜 강론하지 않는 겁니까?”
“불경과 참회문의 내용은 불보살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부처님과 보살이라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속인들의 입으로 설법을 하는 것은 바보가 꿈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옛날 도연명은 책을 읽어도 모두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깊이 요체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중국 사람이 중국의 책을 읽는데도 깊이 이해하려 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중국 사람이 외국의 책을 읽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찌 함부로 해석을 다시 덧붙이겠습니까? 저는 부처님께 공을 세우는 제자가 되는 것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죄인이나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죠. 때문에 설법하지 않는 것을 계율로 삼아 지키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이름난 산에는 기거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수행자는 욕심낼만한 것을 보지 않음으로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에 욕심낼만한 것들이 여색과 재물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몸을 상쾌하게 하는 맑은 바람, 마음을 보듬어주는 밝은 달, 귀를 즐겁게 하는 새들의 지저귐, 맛있는 산나물,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것이고 욕심낼만한 것이죠. 풍광이 빼어난 곳에 살면 영험하고 기이한 산과 물에 시를 짓고 글 쓰는 것을 내려놓을 수 없으며, 여신이 깃든 듯 아름다운 달빛과 바람소리에 늦은 밤까지 부들방석에 앉아 좌선하기 힘듭니다. 때문에 명산에 들어가 공부하는 자는 학업을 이루기 어려우며, 명산에 들어가 수도하는 이는 오관을 깨끗이 하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이름난 산에 절을 찾아 향을 사르러 오는 여자나 참배하러 온 벼슬아치가 없을까요? 월명화상과 유취의 일4이 그 일례지요. 소승이 이름 있는 사찰을 마다하고 황폐한 산간벽지에 온 것은 내가 보고 듣는 일에 연루되어 불도를 그르치지 않게 하려는 뜻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예로부터 어떠한 고승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고 깊이 탄복하였지. 고봉선사의 세 가지 계율로 그의 명성은 저절로 커져 방방곡곡 불교의 깨달음을 얻고자 귀의하는 이들이 매우 많았으나 그는 도리어 가벼이 제자를 받으려 하지 않고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지 속세의 미련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는지를 살핀 후에야 삭발하고 중이 되도록 하였어. 만일 조금이라도 믿을 수 없으면 거절하고 제자로 거두지 않아 출가한지 오래되었음에도 제자의 수는 매우 적었다. 그는 홀로 산골짜기 계곡 옆 초가 몇 칸을 지어 밭을 일궈 먹고 물을 길어 마시며 생활하였어. 초가집 기둥에는 다음과 같은 대련이 쓰여 있었다.
부처를 공부함에 육체의 안락은 없으니,
십팔 층 지옥을 두루 살아야 한다.
참선은 쉬운 일이 아니니,
부들방석 몇 천개를 닳아 없앴는고.
學佛無安樂身, 須活游遍一十八層地獄.
參禪非容易事, 問已坐破幾千百個蒲團.
이 대련으로 스님 평생의 고생을 가늠할 수 있지.
한편 가을바람 스산하고 나무는 앙상해져 풀벌레 소리 가득한 어느 날, 스님은 새벽에 일어나 산문 앞 낙엽을 쓸고 부처님 앞 다기물을 갈고 향을 사르며 부들방석을 깔고 법당에 앉아 있었어. 때마침 법당 문 닫는 것을 깜빡하였는데 갑자기 젊은 서생이 사내종 두 놈을 데리고 법당 안으로 들어오는 거야. 그 서생은 모습은 다음과 같았다.
기색은 가을철 깨끗한 강물과 같고
모습은 봄날 흰 구름이어라.
용모는 반안에 견주고
허리는 심약처럼 가늘구나.
얼굴은 분을 바르지 않아도 창백하여 여인네 같고
입술은 연지를 칠하지 않아도 붉게 물든 것이 처녀와 같아라.
눈썹은 눈을 지나칠 만큼 길고
허약한 몸은 옷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네.
주름진 비단 두건을 쓰고
고운 얼굴 관옥과 같이 아름다워라.
그림을 짜 넣은 비단 신발을 신고
사뿐사뿐 구름을 걷는 듯 다가오누나.
神如秋水,態若春雲。貌擬潘安,腰同沈約。面不傅粉而白皙有如婦人,唇未塗脂而紅艶宛同處女。眉長能過目,體弱不勝衣。戴一頂漆黑縐紗巾,雅稱面龐如冠玉;穿一緉鮮紅刻絲履,輕移脚步似淩雲。
이 시는 서있는 그의 수려한 모습과 운치 있는 옷매무새를 대충 말한 것에 불과해. 만약 그의 얼굴, 팔, 다리 등 온몸을 하나하나 다 묘사하려 하였다면 수십 편의 시와 수백 곡의 찬양으로도 다 그려내지 못했을 거야. 그러나 비록 다른 외모가 모두 수려하다고는 해도 다른 이들과 별 차이가 없는 곳이 단 한 곳 있었으니 두 눈이었어. 아니 두 눈은 되레 좀 이상하게 생겼다고나 할까? 왜 이상하게 생겼다고 하는지 《서쪽 강의 달西江月》이라는 노래가 잘 말해주고 있다.
두 개의 가늘디 가는 옥을 꿰매어 놓은 듯,
한 쌍의 눈은 차가운 수정에 견줄 수 있어,
눈동자의 검은자위 흰자위는 너무도 뚜렷하고,
두 눈엔 불꽃이 언제나 흐르지.
남자를 만나면 하얀색의 눈동자
여자와 마주치면 푸르른 빛의 검은 눈동자.
언제나 완적5의 무정함을 꺼리는 것은
아름다운 여인의 거울이 되지 않음이라오.
兩縫細如纖玉,雙眸堪比寒晶,瞳仁黑白太分明,光焰常流不定。遇見男兒似白,一逢女子偏青,常嫌阮藉欠多情,不作紅顏水鏡。
이러한 눈을 세상 사람들은 색안色眼 즉 ‘여색을 밝히는 눈’이라고 해. 이렇게 색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정면으로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눈을 흘겨 곁눈질로 볼 생각만 하지. 다른 곳은 말고 오로지 여인을 훔쳐 볼 때만 자신의 장점을 사용해. 또한 가까이 갈 필요 없이 당신과 수 십 미터 떨어져 흘긋 바라만 보아도 예쁜지 못생겼는지를 알지. 예쁜 여인을 만나면 추파를 던지고 그 부인이 지조 있는 이라면 고개를 떨구고 지나가며 눈도 마주치지 못해 딴 곳으로 눈길을 돌린다. 만일 색안을 지니고 있는 부인과, 같은 문제가 있는 남자가 있다면 눈빛을 이리저리 교환하고 눈짓으로 연애편지를 보내다 갈 데까지 가게 될 것이야. 그래서 남녀를 막론하고 이러한 눈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불길한 징조이며, 명예를 잃고 절개를 그르치는 것이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독자 여러분의 귀중한 눈이 만일 이러한 색안이라면 삼가고 또 삼가야해.
서생은 문으로 들어와서는 부처님께 네 번 절을 하고 스님에게도 네 번 절을 했어. 일어서서 한쪽에 단정하게 움직이지 않고 서있었지. 스님은 이미 좌선에 들어가 답례 인사를 할 수 없었어. 참선이 끝나고 부들방석을 무르고서야 그에게 꾸벅 답례를 하였지. 그를 자리에 앉게 하고 그의 이름을 물었어.
“제자는 멀리서 절강으로 공부하러 왔습니다. 별호는 미앙생이라 합니다. 사부께서 일대의 고승이자 천하의 살아있는 부처라 듣고 목욕재계하고 인사드리려 왔습니다.”
혹자는 내게 물을 거야. 아니 스님께서 이름을 묻는데 성씨가 뭐고 이름이 뭐라고는 말하지 않고 뜬금없이 별호를 말하는 거냐고. 독자 여러분들은 이때가 원나라 말기라는 것을 기억해야해. 이때 선비들 사이엔 기이한 풍조가 성행했어. 글 꽤나 읽는다는 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꺼리고 모두 별호를 사용하여 서로를 불렀지. 때문에 사람마다 모두 따로 별호가 있어 무슨 생生이니, 무슨 자子니, 무슨 도인道人이니 하며 불렀어. 대략 젊은이라면 생을, 중년이라면 자를, 늙은이들은 도인이라고 썼지.
별호의 글자는 각각 의미가 있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글자거나 혹은 자신의 성품과 비슷한 글자 가운데 되는대로 두 글자를 취해 별호를 지었어. 그 뜻은 자신만 알면 될 뿐 사람들이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는 것이었지. 서생은 여색을 탐하는 성품이라 대낮을 싫어하고 밤을 좋아하며, 뒤의 밤보다 앞의 밤을 좋아했어. 《시경詩經》에 “밤은 얼마나 되었는가?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거늘夜如何其? 夜未央.”이라는 부분에서 자기가 필요한 부분만 따서 멋대로 ‘밤이 끝나지 않은 이’라는 의미의 ‘미앙생未央生’이라고 이름을 지었지.
1 신선이 사는 땅 부근에 있다는 물의 이름, 부력이 약해 기러기의 털처럼 가벼운 물건도 가라앉았다고 전해진다.
2 가장 낮은 과거시험 즉 동시童試에 합격하여 부학府學이나 현학縣學에서 공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사람을 가리킨다. 명, 청대에는 수재秀才 혹은 제생諸生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3 생원 가운데 경전해석이 뛰어나 성적이 좋은 학생에게는 녹봉을 주었는데 이를 늠선생원廪膳生员이라 하였다. 늠생이라고도 불렸다.
4 고금소설 29회 <월명화상이 유취를 제도하다月明和尙度柳翠>를 가리키는 것이다. 유선교가 보낸 기녀 홍련과 색계를 범한 옥통선사가 유선교의 딸로 환생하여 화류계의 생활을 하다 월명화상에 의해 본래 모습을 찾는다는 내용이다.
5 위진남북조대의 죽림칠현 가운데 한 명인 완적은 눈동자의 검은자와 흰자를 자유자재로 움직여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