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 도시의 실상을 찾아서
최근에는 도시 연구가 성행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일본사와 서양사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인간이 오랫동안 살아가면서 쌓아올렸던 여러 가지 형태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도시 연구가 특히 중요한 테마가 된 것은 그러한 저간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된 증좌라고 할 것이다. 물론 동양사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인간이 생활하는 장이라 할 수 있는 인공적인 취락지가 사람들에게 강하고 깊은 흥미를 유발 시키는 것은 동과 서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동양사, 그 중에서도 중국사 분야에서는 이러한 도시 연구의 실상이 충분히 전해지지 않아, 이해조차 되고 있지 않은 듯하다. 어쨌든 서구 지향적인 경향이 강한 일본인의 성질이 여기에서도 드러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이 점에 대해서는] 중국사 연구자에게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기회를 잡아 적극적으로 소개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자의 요구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까지의 연구는] 창안(長安)이나 뤄양(洛陽)과 같은 고대 도시에 대해서만 관광 안내서적인 소개로 일관해왔기 때문이다.
창안이나 뤄양뿐이라고 한 것은 조금 말이 지나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일본인이 흥미를 갖고 있는 중국의 도시로 다른 곳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일본인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중국 도시의] 숫자는 제한되고 치우쳐 있다. 창안과 뤄양 이외라면, 베이징(北京)이나, 난징(南京), 상하이(上海), 쑤저우(蘇州)와 같은 곳을 말할 수 있을까? 어느 것이든 근대에 접어들어 정치, 경제적인 교류 속에서 떠오른 도시들이다. [이들 도시 외에] 다른 도시에 관한 지식은 참으로 부족하다.
고래로 중국에 건너간 일본인이 반드시 상륙했던 도시는 옛날부터 무역항이었던 닝보(寧波)였는데, 그럼에도 근세에 일본을 찾은 서구인이 일본의 도시, 이를테면 사카이(堺)*에 보였던 만큼의 흥미를 보이지는 않았다. 이와 같이 일본인의 중국 도시에 대한 지식은 부족하고 한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제 슬슬 그런 관광 안내서와 같은 발상과 지식을 탈피해야 할 때가 온 것은 아닐까? 나는 앞으로 기회를 보아 중국 도시의 생태와 형태에 주의하는 것과 동시에 거기에서 퍼져나갔던 사회적인 삶까지도 탐색의 범위에 포함시키는 한편, 직접 답사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야만 균형 감각을 갖고 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도시 발전에 대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아가서 일본의 도시에 대한 이해와도 연관이 있다.
아울러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중세 도시에 관해서 한마디 해두고 싶다.
일본에서는 여기에서 문제 삼고 있는 송대(960~1279년)를 중심으로 한 시대가 중세인지, 근세인지를 둘러싸고 장기간 심도 있는 논쟁이 이어져 왔다. 주로 농촌 연구를 무대로 하여 전개되어 왔던 이 논쟁에서 일반적인 의미의 도시는 대상 밖이었다. 그것은 중국의 도시가 서구의 중세 도시와 명확하게 다른 점을 보여주고 있다거나, 그 내부 구조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등, 많은 문제점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매우 급진적인 활동의 장이었던 도시가 중세적인지 근세적인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해서 분명하지 않다. 그럼에도 중세 도시라는 제목을 사용한 것에 의문을 품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여기서는 굳이 그렇게 하고자 한다.
귀족이 지배했던 당의 화려한 도시에 비해 서민이 활동했고 난잡하고 너저분함으로 가득했던 송대의 도시. 고대적인 꿈과 로망에 대해서는 이야기 할 게 없는 송대의 도시를 중세적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물며 중국의 도시는 조숙했다. 송대에는 이미 이보다 조금 앞선 시기의 런던이나 파리, 그리고 에도(江戶)에서 볼 수 있었던 풍경이 전개되고 있었다. 사람들로 왁자지껄하고, 도시 설비가 충실하게 갖춰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현상적인 측면만으로 시대를 단정할 수는 없다.
어느 시대건 그 나름의 발전 과정에서 커다란 변화의 소용돌이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송의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눈에 띄는 현상만으로 [당시의] 도시가 근세의 한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고 보는 것은 성급한 생각이다. 도시를 둘러싼 광범위한 농촌의 바다 한 가운데에서 도시는 어떤 원풍경(原風景)을 펼쳐 보이고 있었을까? 우선 그 점에서 검토를 시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 당시의 도시 경관을 제시하겠다.
한 가지 더. 지금 왜 중세인가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두고 싶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의 문화는 르네상스에서 시작됐다. 중세의 막다른 곳 한 가운데에서 사람들은 활로를 고대의 재발견에서 구하고 근대 사회로 접어드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것이 르네상스였고, 거기에서 우리 시대로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그 의미는 우리 시대가 고대와 직결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고대의 한 가운데서 태어났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갖고 있는 중세 문화에 대한 지식은 부족하다. 고전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작품은 고대의 작품이지 않을까? 중세의 문학 작품은 지금까지도 사람들 마음에 충분히 익숙하지 않다. 그것은 중세라는 시대가 여전히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곧 우리 세계가 고대에 직결되어 중세는 의식의 바깥에 있기 때문인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에게 중세는 미지의 세계로, 여전히 깊은 안개 속에 있다. 게다가 중세는 미로의 세계다. 마치 움베르토 에코가 쓰고 르 고프 이하 7인의 아날학파(Annales School)** 사람들이 묘사해놓은 《장미의 이름》의 서고가 미로를 형성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런데 현대 사회의 퇴영적인 현상을 보면서, 사람들이 “현대 사회도 계속해서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고 있다.”고 생각할 때 활로를 찾기 위해 바라본 시대는 미지의 시대가 아니면 안 된다. 그것이 중세인 것이다.
“미래로의 창구에 우리가 서 있다.”고 느낄 때, 우리는 무엇에 의지해서 나아가는 게 좋을까? 중세 말기에는 그것이 고대의 검토였다면, 이제 미래로의 문에 서 있는 우리에게는 중세야말로 배워야 할 시대인 것이다. 고대 사회가 몰락하는 가운데 사람들이 정면으로 맞서 용감하게 열어 젖혔던 게 중세였으니 지금이야말로 중세를 재검토할 시대가 아닐까 한다.
그건 그렇고 영화나 소설 등에서 묘사된 중세의 세계는 어째서 어둡고 우중충한 것일까? 고대의 하늘이 밝게 빛으로 가득 차고 [그 기세가] 하늘을 뚫고 올라가는 것이었던 데 비해, 중세의 하늘은 어둡고 무거운 구름으로 감싸여 있다. 하지만 어느 시대건 사람들은 즐거워하고 한편으로는 괴로워했다. 단지 중세라는 시대만 음울했던 것은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