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즈카이豊子愷-서호 유람선西湖船

서호 유람선西湖船

20년 사이에 서호(西湖) 유람선 모양이 네 차례 변했다. 어렸을 때 항주(杭州)에서 공부하면서 5년 동안 서호를 곁에 두고 산 적이 있다. 졸업 이후 상해(上海)에서 일하면서, 봄 가을 호시절이면 자주 놀러 갔다. 지금은 고향에 칩거하고 있어, 항주에서 가까우니, 더욱 자주 항주에 가서 잠깐 묵곤 한다. 그래서 난 서호 유람선 모양이 점점 변하는 걸 내 눈으로 지켜봤다. 배를 탈 때마다 이런저런 느낌이 꼭 있었지만, 일단 뭍에 오르면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아 잊어버렸다. 오늘 또 서호 유람선을 타고 돌아왔는데, 유난히 기분이 안 좋아, 펜을 들고 느낌을 기록해본다. 서호 유람선 모양은 20년 사이에 네 차례 변했는데, 갈수록 나쁘게 변했다.

하얀 덮개가 달리고 양쪽 끝이 뾰족한 조각배 모양이 서호 유람선의 기본 모양이다. 이건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자주 변한 것은 바로 승객이 앉는 뱃간의 좌석이다. 20년 전 서호 유람선의 좌석은 등나무를 씌운 직사각형 모양 나무틀이었다. 등 닿는 쪽에도 등받이 삼아서 마찬가지로 등나무를 씌운 직사각형 모양 나무틀을 댔다. 선체와 같거나 비숫한 계열의 적갈색 페인트를 나무틀에 칠하여, 그것이 그 배 설비의 일부분임이 분명히 드러났다. 나무틀에 입힌 등나무는 빙매화(氷梅花) 무늬로 입혔다. 작은 구멍 하나하나마다 통풍이 잘 되어, 부드러운 쿳션과 등받이임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고, 앉으면 기분이 아주 좋았다. 등받이와 쿳션과의 각도는 90도보다 약간 커서 — 대략 100도 정도였다. 구식 대청의 태사의(太師椅)처럼 앉으면 허리가 아플 만큼 수직으로 꼿꼿이 세운 것도 아니고, 취옹의(醉翁椅)처럼 앉으면 몸을 일으키지 못할 만큼 평탄하지도 않았다. 등받이의 나무틀은 앉는 사람의 등부분 곡선에 아주 딱 맞게 안쪽으로 반달괄호처럼 곡선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앉으면 몸이 아주 편안했다.

원래 유람이란 것은 여행으로 치자니 여행처럼 그렇게 고생하고 싶지는 않고, 휴양으로 치자니 휴양처럼 그렇게 나태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나로서는 서호 유람선의 원시적 모양이 가장 격에 맞는 유람선 모양이라고 생각한다(일단 내가 본 것을 위주로, 20년 전의 것을 원시적이라고 가정한다). 그 상태에서 좌석이 더 누추해져 나무 판자로 바뀌면 유람객이 앉기에 너무 힘들 것이고, 그 상태에서 좌석이 더 편안해져 취옹의로 바뀌면 또 유람객이 거기 누울 경우 맥이 빠지게 축 늘어져서 산수를 감상하기에 적절하지 못할 것이다. 오직 등나무를 입힌 나무틀로 만든 것이어야 유람객이 앉아도 부드럽고 기대도 부드러우면서, 보통 걸상에 앉은 것과 똑같이 몸의 자세 또한 자유롭게 움직이며 이리저리 돌아보게 할 수 있다. 하물며 그 생김새나 재질이나 색깔 또한 배의 전체 부분과 썩 조화를 이루어 유람객에게 우선적으로 편안한 마음을 가져다주니 말이다.

20년 전 내가 한창 학교 다닐 때 서호 유람선은 모두 그런 모양이었다. 이른봄이나 늦가을이면 뱃삯이 아주 싸서, 학생의 경제사정으로도 그런대로 비용을 감당할 수 있었다. 일요일이 되면, 서너 전을 내고 배를 한 척 빌려, 두세 학우와 책 몇 권․차 한 주전자․땅콩 몇 봉지․찐빵 몇 개 싣고 가서, 호수에서 유람하며 하루를 보냈다. 게다가 그 당시 뱃사공은 생활에 여유가 있어 아주 기분이 좋은 듯, 노를 저으면서, 자기 가정 얘기, 서호에 얽힌 얘기, 그리고 이런저런 재미있는 얘기를 우리에게 다정하게 해주었다. 그런 마음과 정경을 지금 회상하면 그리울 뿐만 아니라 추억을 더듬어 그림 몇 폭 그릴 수도 있고 시를 몇 수 읊을 수도 있다. 배의 그런 좌석이 좋았기 때문에 배를 탄 사람의 자세 또한 좋았고, 뱃사공이 기분이 좋으니 배를 탄 사람은 더욱 기분이 좋아서, 언제 어디서나 시가 나오고 그림이 그려졌다. “강물 뱃놀이에는 두세 사람이 제격(野航恰受兩三人)”이라고 두보가 읊었다더니, 그런 배에서 “제격”의 상태가 가장 잘 드러난다.

항주를 떠났다가 어느 해 봄엔가 항주에 들러 서호에 놀러 가서, 배의 좌석 모양이 갑자기 바뀐 걸 알았다. 등나무식 나무틀이 철거되고, 긴 등나무 의자로 바뀌어, 뒷면에 등받이가 있고 양옆에 팔걸이가 있었는데, 전체가 등나무로 짠 것이었다. 그런 등나무 의자는 앉는 곳이 이전보다 훨씬 넓어지고 등받이도 이전보다 훨씬 높아져서, 앉으면 확실히 이전보다 편안했다. 그러나 모양은 이전 것보다 훨씬 못했다. 배 몸체는 전부 목조이고 의자는 전부 등나무이다 보니, 둘이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보통 집에서도 나무 탁자 옆에 종종 등나무 의자를 놓곤 하는데, 그때는 그렇게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는 느낌은 드물다. 집과 배는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집은 규모가 크기 때문에 그렇게 엄격하게 통일성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배는 규모가 작기 때문에 쳐다보면 한눈에 들어와 전체가 하나의 단위를 이룬다. 형식과 내용이 당연히 엄격하게 통일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므로 넓은 집에서는 나무 탁자 옆에 등나무 의자를 놓아도 그다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작디 작은 일엽편주에 등나무 의자를 놓고 쳐다보면 마치 임시로 설치한 물건같아서, 배의 몸체와의 유기적 관계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또 더 큰 불쾌함이 있다. 뱃사공은 그 등나무 의자 둘을 설치하느라고 엄청난 비용을 들였기 때문에, 유람객에게 종종 고충을 호소하면서 뱃삯을 좀 더 냈으면 좋겠다고 한다. 동업자끼리 경쟁이 심해서 부득이하게 옷을 전당잡히고 등나무 의자 두 개를 설치했다고 스스로 고백하는 경우도 있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그는 과연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기쁘게 하기 위해 낡은 홑옷을 걸치고 뱃머리의 아주 좁은 뾰족한 구석에 앉아서 살을 에듯 불어오는 동풍을 맞으며 노동을 하고 있었다.

서로의 거리가 지척지간으로 함께 일엽편주 속에 있으면서, 우리의 옷과 그의 옷, 우리의 자리와 그의 자리, 우리의 생활과 그의 생활, 양자의 처지를 대비하면, 어떻게 불쾌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설령 우리가 그에게 뱃삯을 더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호수를 유람하면서 이미 그런 불쾌함이 싹튼 뒤다. 그런 등나무 의자는 겉으로는 비록 깨끗하고 번쩍번쩍 빛이 나고 넓찍해서 유람객이 몸은 편안하게 느낄지 몰라도, 내용과 형식에 통일성이 결여되어, 유람객의 눈을 편안하지 해주지는 못하며, 게다가 그 원인이 영업 경쟁의 압박 때문이었다니, 유람객이 더 큰 불쾌감을 느끼게 한다고 생각했다. 득보다 실이 많았으니, 서호 유람선은 이때부터 나쁘게 변했다!

그후 어느 해 봄엔가, 나는 또 항주에 들렀다가 서호에 놀러 갔다. 대부분 유람선 좌석의 모양이 또 갑자기 바뀐 걸 알았다. 바로 전의 긴 등나무 의자가 철거되고, 눕는 등나무 의자로 바뀌었는데, 그 겉모양은 보통 사람 집에서 가장 흔히 보는 눕는 등나무 의자와 똑같았다. 이번의 변화는 또 이전보다 한 술 더 떠서, 의자의 질료가 완전히 바뀌었을 뿐 아니라, 의자의 각도 또한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배를 탄 사람이 등을 기대려고 하면, 몸을 뒤로 젖혀 눕듯 하여 위를 보고 눈은 배 덮개를 쳐다봐야 했다. 배 덮개를 보다가 질려서 맞은편 사람과 대화라도 좀 나눌라치면, 두 팔에 힘을 주어 지탱해 일으켜서 사방이 붕 뜬 채 꼿꼿이 앉아서 등나무 등받이를 마치 꼬리처럼 뒤로 늘어뜨려야 했다. 이는 내 생각에 뱃사공의 영업 경쟁이 날이 갈수록 치열해져서 편안함을 탐하는 유람객의 심리를 고심 끝에 어떻게 잘 짚어내서 만들어낸 것 같았다. 호수에 놀러 온 부자․귀인․도련님․아가씨 등이 모두 땅에 발을 대거나 손에 물건을 들으려 하지 않고 오로지 편안함만을 탐하는 걸 본 것이다. 그들은 생계를 꾸려나갈 심산으로 유람객의 이러한 심리에 굴복 영합하여, 아예 배에 눕는 등나무 의자 두 개를 놓아, 유람객들로 하여금 마치 떠다니는 시체처럼 호수 위를 오락가락하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나는 이를 통해 세기말 고질병의 그림자를 보았다. 19세기 말의 퇴폐주의 정신이 근대 과학과 물질 문명의 도움을 얻어, 편안함을 탐하는 풍습을 이른바 문명인에게 오랫동안 길러놓은 것이다. 먹고 자고 생활하는 모든 일상 용품에서 극구 편리함을 추구하여, 명목상으로는 작업 효율을 증가시킨다고 하지만, 은연중에 힘든 것을 참고 고통에 익숙한 미덕을 없애고 안일을 탐하는 악습을 조장한다는 폐단을 면하기 어렵다. 그런 눕는 등나무 의자를 설치한 유람선이 서호에 등장하고 나서, 호수를 유람한다는 실용적 가치상 그것이 아무리 부적절함에도 불구하고, 유람선 모양이 미관상 아무리 어울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그런 것을 환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그렇게 일시에 유행하게 만든 것이 아니겠는가! 퇴폐정신의 독소가 이렇게 만들어놓은 것이 아니란 말인가! 정당한 유람은 그동안 고생을 위로하는 것이면서 앞으로 할 일을 대비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결코 안일이 아니며, 요양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 서호 유람선이 하늘 보고 누워 있는 유람객을 싣고 오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정말로 환자를 싣고 오는 것인 줄 알았다.

최근 어느 해 봄엔가 나는 또 항주에 들렀다가 서호에 놀러 갔다. 대부분 유람선 좌석의 모양이 또 갑자기 바뀐 것을 알았다. 바로 전의 눕는 등나무 의자가 철거되고, 소파로 바뀌어 있었다. 두텁고 탄탄한 스프링 쿳션 둘이, 어떤 것은 눈처럼 새하얀 혹은 연노랑 커버를 쓰고, 어떤 것은 자갈색 거죽을 쓰고, 거죽에는 비스듬이 체크 무늬가 그려져, 마치 기차 일등칸 좌석 같았다. 소파라는 이 물건은 정말로 앉지 않고 그저 보기만 하는 것으로도 편안함의 극치를 얻는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아마 정말 앉아 보면 그냥 보기만 할 때 만큼의 편안함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거죽은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워, 아주 주도면밀하게 사람에게 영합하여, 몸의 어디 미세한 곳 하나 감아들지 않는 곳이 없어, 때로는 마비시킬 정도이다. 그 스프링 쿳션은 굽히기도 잘하고 펴기도 잘 하여, 저항할 듯 하면서도 저항을 하지 않아, 때로 난처하게 한다. 마치 한 번 빨려 들어가면 일순간 빠져나오지 못하는 함정같기도 하다. 그러므로 나는 아주 피로하거나 병이 났을 때에만 소파가 좋다고 느낄 뿐, 건강할 때에는 내가 앉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앉아 있는 걸 보는 것이 훨씬 편안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서호 유람선에 소파를 설치한 것은 그 사정이 실내와 다르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말하자면, 물론 편안하다. 앉으면 느낌이 아주 따뜻하고 부드러워, 서호의 봄경치가 주는 느낌과 일치한다. 등받이의 각도 또한 눕는 등나무 의자처럼 그렇게 크게 벌어지지도 않고, 앉아서 한가롭게 구경하고 대화를 나누기에도 아주 자연스럽다. 그러나 서호 유람선을 하나의 공예품으로 간주하여 그 모양을 살펴보면, 그 조화가 어쩐지 껄끄러움을 면하기 어렵다. 배의 몸체는 아직도 20년 전에 등나무를 씌운 나무틀을 설치했던 구식 몸체인데, 단지 좌석 부분만 마치 기적을 만난 듯 신식 스프링 쿠션으로 바뀌어, “시대착오”의 느낌이 들게 한다. 스프링 쿠션을 표준으로 하면, 배의 몸체 모양도 세련되어야 하고, 재료 또한 꼼꼼하게 선정해야 하고, 페인트도 미관에 어울리게 칠해야 하고, 배 덮개도 깔끔하고 가지런히 정리해야 하고, 사공의 얼굴도 그렇게 초췌하지 않고 혈기가 넘쳐야 하고, 사공의 옷도 또한 그렇게 거지같이 남루하면 안되고 깔끔해야 할 것이다. 오늘 그런 서호 유람선을 타고 돌아왔다. 지금까지 말한 갖가지 느낌이 배에서 일어나더니, 뭍에 오른 이후에도 잊히지 않기에, 지금 여기에 그것을 기록해둔다. 종합하면, 서호 유람선 모양은 20년 동안 네 차례 변했다. 그런데 갈수록 나쁘게 변했다. 나쁘게 변한 주요 원인은 유람객 좌석은 갈수록 편안해지고 갈수록 사치스러워졌으면서, 배의 몸체는 갈수록 낡고, 뱃사공 얼굴은 갈수록 초췌해지고, 뱃사공 옷은 갈수록 남루해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많은 부조화의 슬픈 현상이 빚어져, 동탕하는 서호 봄빛 아래 빼어난 산수 속에 점철되기 때문이다.

1936년 2월 27일

《풍자개산문선집(豊子愷散文選集)》, 1992년 1월 2쇄, 천진(天津), 백화문예출판사(百花文藝出版社)

西湖船

二十年来,西湖船的形式变了四次,我小时在杭州读书,曾经傍着西湖住过五年。毕业后供职上海,春秋佳日也常来游。现在蛰居家乡,离杭很近,更常到杭州小住。因此我亲眼看见西湖船的逐渐变形。每次坐到船里,必有一番感想。但每次上了岸就忘记,不再提起。今天又坐了西湖船回来,心绪殊恶,就拿起笔来,把感想记录一下。西湖船的形式,二十年来变了四次,但是愈变愈坏。
  西湖船的基本形式,是有白篷的两头尖的扁舟。这至今还是不变。常变的是船舱里的客人的坐位。二十年前,西湖船的坐位是一条藤穿的长方形木框。背后有同样藤穿的长方形木框,当作靠背。这些木框涂着赭黄的油漆,与船身为同色或同类色,分明地表出它是这船的装置的一部分。木框上的藤,穿成冰梅花纹样。每一小孔都通风,一望而知为软软的坐垫与靠背,因此坐下去心地是很好的。靠背对坐垫的角度,比九十度稍大——大约一百度。既不像旧式厅堂上的太师椅子那么竖得笔直,使人坐了腰痛;也不像醉翁椅子那么放得平坦,使人坐了起不身来。靠背的木框,像括弧般微微向内弯曲,恰好切合坐者的背部的曲线。因此坐下去身体是很舒服的。原来游玩这件事体,说它近于旅行,又不愿像旅行那么肯吃苦;说不得它类似休养,又不愿像休养那么贪懒惰。故西湖船的原始的(姑且以我所见为主,假定二十年前的为原始的)形式,我认为是最合格的游船形式。倘然坐位再简陋,换了木板条,游人坐下去就嫌吃力;倘然坐位再舒服,索性换了醉翁椅,游人躺下去又嫌萎靡,不适于观赏山水了。只有那种藤穿的木框,使游人坐下去软软的,靠上去又软软的,而身体姿势又像坐在普通凳子上一般,可以自由转侧,可以左顾右盼。何况他们的形状,质料与颜色,又与船的全部十分调和,先给游人以恰好的心情呢!二十年前,当我正在求学的时候,西湖里的船统是这种形式的。早春晚秋,船价很便宜,学生的经济力也颇能胜任。每逢星期日,出三四毛钱雇一只船,载着二三同学,数册书,一壶茶,几包花生米与几个馒头,便可悠游湖中,尽一日之长。尤其是那时候的摇船人,生活很充裕,样子很写意,一面打桨,一面还有心情对我们闲谈自己的家庭,西湖的掌故,以及种种笑话。此情此景,现在回想了不但可以神往,还可以凭着追忆而写几幅画,吟几首诗呢。因为那种船的坐位好,坐船的人姿势也好;摇船人写意,坐船人更加写意,随时随地可以吟诗入画。“野航恰受两三人”。“恰受”两字的状态,在这种船上最充分地表出着。
  我离杭后,某年春,到杭游西湖,忽然发现有许多船的坐位变了形式。藤式木框被撤去,改用了长的藤椅子,后面也有靠背,两旁又有靠手,不过全体是藤编的。这种藤椅子,坐的地方比以前的加阔,靠边背也比以前的加高,价值上去固然比以前的舒服,但在形式上,殊不及以前的好看。成了船身全是木的,椅子全是藤的,二者配合不甚调和。在人家屋里,木的几桌旁边也常配着藤椅子,并不觉得很不调和。这是屋与船情形不同之故。屋子的场面大,其所要求的统一不甚严格。船的局面小,一望在目,全体浑成一个单位。其样式与质料,当然要求严格的统一。故在广大的房间里,木的几桌旁边放了藤椅子,不觉得十分异样,但在小小的一叶扁舟中放了藤椅,望去似觉这是临时暂置性质的东西,对于船身毫无有机的关系。此外还有一种更大的不快:摇船人为了这两张藤椅子的设备费浩大,常向游客诉苦,希望多给船钱。有的自己告白:为了同业竞争厉害,不得已,当了衣服置备这两只藤椅的。我们回头一看,见他果然穿一件破旧的夹衣,当着料峭的东风,坐在船头上很狭窄的尖角里,为了我们的赏心悦目劳动着。我们的衣服与他的衣服,我们的坐位与他的坐位,我们的生活与他的生活。同在一叶扁舟之中,相距咫尺之间,两两对比之下,怎不令人心情不快?即使我们力能多给他船钱,这种不快已在游湖时生受了。当时我想:这种藤椅虽然表面光洁平广,使游客的身体感到舒服;但其质料样式缺乏统一性,使游客的眼睛感到不舒服;其来源由于营业竞争的压迫,使游的心情感到更大的不快。得不偿失,西湖船从此变坏了!
  其后某年春,我又到杭州游西湖。忽然看见许多西湖船的坐位,又变了样式。前此的长藤椅已被撤去,改用了躺藤椅,其表面就同普通人家最常见的躺藤椅一样,这变化比前又进一步,即不但全变了椅的质料,又变了椅的角度。坐船的人若想靠背,非得仰躺下来,把眼睛看着船篷。船篷看厌了,或是想同对面的人谈谈,须得两臂使个劲道,支撑起来,四周悬空地危坐着,让藤靠背像尾巴一般拖在后面。这料想是船家营业竞争愈趋厉害,于是苦心窥察游客贪舒服的心理而创制的。他们看见游湖来的富绅,贵客,公子,小姐,大都脚不着地,手不着物,一味贪图安逸。他们为营生起见,就委曲迎合这种游客的心理,索性在船里放两把躺藤椅,让他们在湖面上躺来躺去,像浮尸一般。我在这里看见了世纪末的痼疾的影迹:十九世纪末的颓废主义的精神,得了近代科学与物质文明的助力,在所谓文明人之间长养了一种贪闲好逸的风习。起居饮食用器什物,处处力求便利;名曰增加工作能率,暗中难免汩没了耐劳习苦的美德,而助长了贪闲好逸的恶习。西湖上自从那种用躺藤椅的游船出现之后,不拘它们在游湖的实用上何等不适宜,在游船的形式上何等不美观,世间自有许多人欢迎它们,使它们风行一时。这不是颓废精神的遗毒所使然吗?正当的游玩,是辛苦的慰安,是工作的预备。这决不是放逸,更不是养病。但那种西湖船载了仰天躺着的游客而来,我初见时认真当作载来的是一船病人呢。最近某年春,我又到杭州游西湖,忽然看见许多西湖船的坐位又变了形式。前此的藤躺椅已被撤去,改用了沙发。厚得“木老老”的两块弹簧垫,有的装着雪白的或淡黄的布套;有的装着紫酱色的皮,皮面上划着斜方形的格子,好像头等火车中的坐位。沙发这种东西,不必真坐,看看已够舒服之至了。但在健康人,也许真坐不及看看的舒服。它那脸皮半软半硬,对人迎合得十分周到,体贴得无微不至,有时使人肉麻。它那些弹簧能屈能伸,似抵抗又不抵抗,有时使人难过。这又好似一个陷阱,翻了进去一时爬不起来。故我只有十分疲劳或者生病的时候,懂得沙发的好处;若在健康时,我常觉得看别人坐比自己坐更舒服。但西湖船里装沙发,情形就与室内不同。在实用上说,当然是舒服的:坐上去感觉很温软,与西湖春景给人的感觉相一致。靠背的角度又不像躺藤椅那么大,坐着闲看闲谈也很自然。然而倘把西湖船当作一件工艺品而审察它的形式,这配合就不免唐突。因为这些船身还是旧式的,还是二十年前装藤穿木框的船身,只有坐位的部分奇迹地换了新式的弹簧坐垫,使人看了发生“时代错误”之感。若以弹簧坐垫为标准,则船身的形式应该还要造得精密,材料应该还选得细致,油漆应该还要配得美观,船篷应该还要张得整齐,摇船人的脸孔应该还要有血气,不应该如此憔悴;摇船人的衣服应该还要楚楚,不应该教他穿得叫化子一般褴褛。我今天就坐了这样的一只西湖船回来,在船中起了上述的种种感想,上岸后不能忘却。现在就把它们记录在这里。总之西湖船的形式,二十年来,变了四次。但是愈变愈坏,变坏的主要原因,是游客的坐位愈变愈舒服,愈变愈奢华;而船身愈变愈旧,摇船人的脸孔愈变愈憔悴,摇船人的衣服愈变愈褴褛。因此形成了许多不调和的可悲的现象,点缀在西湖的骀荡春光之下,明山秀水之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