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과 해석 방법론-《홍루몽》의 텍스트 지위와 해석 문제 3-3

제3장 《홍루몽》의 텍스트 지위와 해석 문제
– 관통론, 유기설, 우열론, 구조학, 탐일학(探佚學)

3. 앞쪽 80회의 이문(異文) 연구에 관한 각종 문제

4) 텍스트의 잔결(殘缺)과 관통

《홍루몽》 제22회의 말미는 판본마다 차이가 적지 않다. 현존하는 경진본의 제22회는 가석춘의 해등(海燈) 수수께끼에서 끝나는데, 그 위쪽에 붉은 먹으로 “이 뒤로는 훼손되어 없어졌으니 다시 보충되기를 기다린다[此後破失俟再補]”라는 미비(眉批)가 적혀 있다. 그러므로 이 회는 작자가 이미 써 놓았지만 현존하는 경진본을 베껴 쓸 때에는 그 저본이 이미 파손되어 문장이 빠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경진본의 또 다른 페이지(p.509)에 들어 있는 비평에는 또, “잠시 설보차가 지은 경향(更香)에 대한 수수께끼를 적어 둔다. 이 회를 완성하지 못한 채 조설근이 세상을 떠났다. 아, 안타깝구나! 정해(丁亥) 여름 기홀수(畸笏叟).”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작자도 결국 이 회를 완전히 보완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각 판본의 상황을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A. 경진본, 열장본 [회말 부분이 사라짐]
1. 가석춘의 수수께끼에서 끝남. 경진본의 미비에 “이 뒤로는 훼손되어 없어졌으니 다시 보충되기를 기다린다.”라고 되어 있음.
열장본에는 미비가 없음.
2. 경진본 회말의 다른 페이지에 설보차의 수수께끼가 들어 있고, 그 앞에 “잠시 설보차가 지은 수수께끼를 적어 둔다.”라는 비평이, 뒤에는 “이 회를 완성하지 못한 채 조설근이 세상을 떠났다. 아, 안타깝구나! 정해 여름 기홀수.”라는 비평이 들어 있음.
열장본에는 설보차의 시도 없고, 경진본과 같은 비평도 없음.


B. 몽부본, 척서본, 척녕본, 서서본 [임대옥과 가보옥의 수수께끼가 없음]
1. 가숙춘의 수수께끼가 있고, 뒤쪽에 문장(생각에 잠긴 가정)이 있음.
2. 경향(更香) 수수께끼를 설보차가 지은 것으로 함.
3. 가정이 경향 수수께끼를 보고 속으로 슬퍼함. 태부인[賈母]이 가정을 내보냄. 가보옥이 나와서 농담을 함.


C. 갑진본
1. 가탐춘(賈探春)의 수수께끼 뒤에 가석춘의 수수께끼가 없음. 이어서 (임대옥이 지은) 경향 수수께끼가 나옴(내용은 경진본에서 설보차가 지은 것이라고 한 것과 동일).
2. 경향 수수께끼 다음에 가보옥이 지은 거울에 대한 수수께끼가 들어 있음.
3. 거울 수수께끼 뒤에는 설보차가 지은 “눈은 있지만 눈물은 없고 뱃속은 비었네[有眼無珠腹內空]”라는 죽부인(竹夫人) 수수께끼가 들어 있음.
4. 가정은 죽부인 수수께끼가 불길하다는 것을 깨닫지만 모르는 체함.


D. 몽고본, 정고본 [가석춘의 수수께끼가 없음]
1. 여러 사람들이 등롱 수수께끼를 지은 것은 갑진본과 같음.
2. 가정은 (임대옥이 지은) 경향 수수께끼를 보고 무척 비통한 표정을 지음.
3. 태부인은 가정을 내보냄.
4. 가보옥이 나와서 농담을 함.

제22회의 결말에 이렇게 몇 가지 형식이 있음으로 인해 두 가지 논쟁적인 문제가 생겨났다. 첫째, 작자의 원고는 어떤 것인가? 둘째, 텍스트의 관통 문제. 먼저 첫 번째 문제를 분석해 보자. 정칭산(鄭慶山: 1936~2007)과 주단원(朱淡文: 1943~ )은 모두 몽(蒙), 척(戚), 서(舒) 계열의 내용이 작자의 원고라고 주장한다. 다만 정칭산이 현존하는 이들 세 계열의 필사본들이 잃어버렸던 원고가 다시 발견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에 비해, 주단원은 이들 세 계열의 필사본들의 원조 판본이 경진본에서 베껴 쓴 시간은 응당 이 회의 마지막 부분이 없어지기 전일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베껴 쓴 시간이 그 부분이 없어지기 전이라고 주장하든 후라고 주장하든 간에 모두 이 세 필사본의 원류가 작자의 원고라는 것을 설명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오히려 학자들이 어떻게 몽, 척, 서 필사본을 ‘작자의 원고’라고 확인하는가 하는 부분이다.

정칭산이 제시한 이유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인물 묘사의 측면에서 몽, 척, 서 계열 필사본은 가보옥의 동작과 가정의 심리, 태부인과 왕희봉, 설보차의 표정과 말투가 “모두 들어맞는다[無不相合].” 둘째, 문장 측면에서 “간결하고 자연스러워서 인위적으로 다음은 흔적이 전혀 없다.” 주단원이 제시한 이유는 게 측면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몽, 척, 서 필사본의 내용이 회의 제목과 부합한다. 둘째, 등롱 수수께끼가 작자가 다른 곳에서 예시(豫示)한 것과 부합한다. 셋째, 경진본에 기록된 설보차의 수수께끼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므로 이것들이 “응당 작자의 원고에 들어 있는 문장일 것”이라고 했다.

정칭산과 주단원이 제시한 이유를 합치면 다섯 가지 정도가 된다. 하지만 몽, 척, 서 계열 필사본에 임대옥의 수수께끼가 없다는 점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사실 적보현(狄葆賢)은 일찍부터 이 현상에 주목했다.

설보차의 수수께끼가 지금 판본(정고본)에는 임대옥이 지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작자의 본래 의도가 가씨 집안의 쇠락 징조를 서술하는 데에 있음을 모르고 한 처사이다. 그러므로 수수께끼를 지은 사람들이 가씨 집안의 네 자매와 설보차인 것은 다섯 명 모두 가씨 집안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임대옥은 가씨 집안의 사람이 아니어서 수수께끼를 짓지 않았다.

이 설명은 참고할 만하기는 하지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서 나종쉰(那宗訓)은 《홍루몽 탐색》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당시 설보차는 아직 그녀가 장차 가씨 집안의 사람이 될 것이라는 어떤 상징도 갖지 않았기 때문에 그 신분은 임대옥과 차이가 없다. 승부에 지지 않으려는 임대옥의 성격에 수수께끼를 짓지 않았다면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또 지타오다(季陶達) 역시 “임대옥처럼 이렇게 제일 중요한 인물이 등롱 수수께끼를 짓지 않았다니!” 하고 원망했다. 이 때문에 몽, 척, 서 필사본의 문장이 작자의 원고인지 여부는 아직 신중히 고려해 볼 가치가 있는 문제이다.

그렇다면 C, D 계열의 맺음 방식이 작자의 원고인가? 판본학자들은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갑진본과 몽고본, 정갑본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첫째, 이 판본들에는 모두 가석춘의 수수께끼가 들어 있지 않다. 둘째, 경진본 평어에는 “잠시 설보차의 수수께끼를 적어 놓는다.”라고 분명히 밝혔는데, 갑진본 등에는 그것이 임대옥이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셋째, 이 판본들에는 모두 가보옥의 거울 수수께끼와 설보차의 죽부인 수수께끼가 들어 있다. 이 세 필사본 사이의 차이는 갑진본에서는 가정이 모르는 체하는 모습을 아주 간단히 서술한 뒤 사람들이 자리를 파하는 것으로 묘사한 데에 비해, 몽고본과 정고본에서는 가정이 수수께끼를 본 뒤의 줄거리가 척본과 같다. 즉 가정이 “무척 비통한 표정을 짓고”, 그가 떠난 뒤에 가보옥이 나와서 농담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몽고본과 정고본의 등롱 수수께끼는 갑진본과 같지만, 마무리하는 문장은 몽, 척, 서 필사본과 같다. 이 두 가지 마무리 상황은 또 각기 자체의 내재 모순을 안고 있다. 첫째, 갑진본 제22회의 제목은 “등롱 수수께끼를 지으니 가정은 징조를 예언하는 말에 슬퍼한다[製燈謎賈政悲讖語]”라고 되어 있는데 본문에는 그가 예언하는 말에 슬퍼하는 내용이 들어 있지 않으니, 회의 제목과 본문이 서로 호응하지 않는다. 둘째, 몽고본과 정고본에서 가보옥은 분명히 등롱 수수께끼를 지었는데 그 다음 부분에서 왕희봉이 “조금 전에 내가 깜박 했군. 나리께서 계실 때 왜 도련님도 수수께끼를 짓게 해 보시라고 부추기지 않았을까?” 하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B계열과 C, D 계열은 모두 자체의 결함 내지 모순을 갖고 있다. 학자들이 그 가운데 하나를 ‘작자의 원고’라고 단정하려면 이런 문제들을 소홀히 할 수 없다. 맥간은 《현대 텍스트 비평에 대한 비판》과 《텍스트의 상황(The Textual Condition)》에서 모두 에서 텍스트의 전승(textual transmission) 과정에서 일어나는 ‘텍스트의 사회화(socialization of texts)’ 상황을 강조했다.

텍스트의 전승 과정이 확장됨에 따라 종적(가령 시간적)이든 횡적(제도적 공간에서)이든 작품의 의미화 과정은 점점 더 협력적이고 사회화된다.

물론 작자가 절대 잘못된 문장을 쓰지 않는다고 가정할 수는 없지만, 제20회에서 각 인물들이 만든 등롱 수수께끼는 분명히 각자의 결말을 예시하는 작용을 한다. (제5회의 ‘금릉12차’에 대한 노래와 경환선고의 《홍루몽》 노래 12가락처럼.) 그런데 현존하는 판본에서 임대옥이 지은 수수께끼가 없거나 가석춘이 지은 수수께끼가 없는 것은 현존 판본이 모두 전승되는 과정에서 후세 사람들의 보충을 거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만든다.

이어서 논의할 것은 텍스트의 관통 문제이다. 우선 학자들이 수수께끼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대해 분석한 후, 그들의 해석 관념을 논의해 보도록 하자.

첫째, 거울 수수께끼. 대부분의 학자들은 거울 수수께끼가 가보옥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수수께끼의 표면적인 어휘들이 《맹자》 〈만장상(萬章上)〉의 “순(舜) 임금이 자신의 동생 상(象)이 근심하면 자신도 근심하고, 상이 기뻐하면 자신도 기뻐했고[象憂亦憂, 象喜亦喜]”, “순 임금이 남쪽을 향해 서자 즉, 왕위에 오르자 요(堯)가 제후를 이끌고 북쪽을 향하여 그를 알현했다.[舜南面而立, 堯帥諸侯北面而朝之]” 등의 구절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보옥은 이전까지 ‘사서(四書)’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제73회에서도 그가 《맹자》의 대부분이 아리송해서 “아무데서나 한 구절을 제시하면 절대 그 뒷부분을 이어서 외울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제22회에서 등롱 수수께끼를 지을 때에 가보옥은 공교롭게도 《맹자》 하반부에 들어 있는 구절을 인용해 수수께끼를 지었으니, 약간 내적인 모순이 있다. 차이이쟝은 거울 수수께끼에서 가보옥이 경전의 구절을 인용했지만 그는 사실 “봉건 반역자 형상이 보여주는 반 유가적 경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속작자 내지 보충자가 첨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이 수수께끼는 풍몽룡(馮夢龍)의 《괘지아(掛枝兒)》 《영경(詠鏡)》에도 보이는데, 주단원은 “조설근은 일반적으로 옛 사람의 작품을 직접 베껴 쓰지 않으니” 이것은 후세 사람이 쓴 문장이라고 주장했다. 차이이쟝 역시 이에 동의했다. 이것들은 모두 논자들의 마음속에 담긴 ‘조설근의 형상’을 드러내 보여준다. (‘작자의 형상’ 문제에 관해서는 본서의 제2장과 마지막 장을 참조할 것.)

둘째, 경향 수수께끼는 설보차가 지은 것인가 임대옥이 지은 것인가? A계열(경진본, 열장본)과 B계열(몽, 척 계열과 서서본)에서는 설보차가 지은 것이라고 했고, C계열(갑진본)과 D계열(몽고본, 정고본)에서는 임대옥이 지은 것이라고 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청나라 때의 평론가 요섭(姚燮)은 정본(程本) 계열의 안배(수수께끼를 임대옥이 지은 것으로 함)를 보고, “제3연의 두 번째 어휘는 임대옥이 직접 쓴 것”이라고 평했다. 그러니 그는 이 수수께끼가 임대옥의 처지에 아주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평론가 홍추번(洪秋蕃)은 더욱 세밀하게 해석했다.

임대옥의 ‘경향’ 수수께끼에서 “조회 끝나면 뉘라서 양 소매에 향 연기 묻혀 오랴?[朝罷誰攜兩袖煙]”라고 한 것은 향옥(香玉)의 연맹이 누구에 의해 정해졌으며, 그 손이 오르내림이 마치 환상처럼 변하는 안개와 구름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회 끝나면’이라고 한 것은 벼슬살이를 하는 높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거문고 옆의 향과 이불에 쬐는 향은 전혀 인연이 없다[琴邊衾裏總無緣]”는 것은 가정이 사정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서 나와 가보옥 사이에 부부의 인연이 없음을 의미한다. “새벽 왔음을 아는 데에는 계인(鷄人)의 외침이 필요 없음[曉籌不用雞人報]”은 밝음과 어둠이 바뀌어도 주인에게 알리지 않음을 의미한다. “날 밝을 무렵에도 번거롭게 시녀의 시중 받을 필요 없음[五夜無煩侍女添]”은 애매하게 행동하면서 시녀까지 속인다는 의미이다. “아침마다 골치를 썩이고 또 저녁마다 계속하고, 날마다 애태우고 다시 해마다 계속하네.[焦首朝朝還暮暮, 煎心日日復年年]”에서 위 구절은 설보차가 아침저녁으로 노심초사하며 그저 임대옥의 자리를 빼앗을 생각만 한다는 것을, 아래 구절은 나이가 들어서 억울하게 결혼의 인연을 잃게 될까 두렵다는 임대옥 자신의 한탄이다. “덧없이 흐르는 세월 아깝게 여겨야지만, 비바람과 날씨 흐리고 개는 것은 바뀌는 대로 맡겨둬야지.[光陰荏苒須當惜, 風雨陰晴任變遷]”라는 것은 인생은 무상하지만 절개와 의리는 중시해야 하니, 그저 인간사가 변하는 대로 맡겨 두고 늘 자기 뜻을 굳게 지키며 변하지 않은 채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라는 뜻이다.

이로 보건대 정고본 계열이 널리 유행하던 시대에 비평가들이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자연히 임대옥의 ‘경향’ 수수께끼에 대해 조목조목 분석하여 앞뒤 문맥의 소통하게 만들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홍추번은 또한 “등롱 수수께끼는 모두 각 인물의 사정과 연관되어 있으니, 작자는 정말 심장과 간을 토해 내려 했던 것인가!” 하고 칭송했다. 이 말은 그 자신도 작자의 마음 씀씀이 즉, ‘작자의 본래 의도’를 느끼고 이해할 수 있었음을 나타낸다.

《홍루몽》 경진본이 다시 중시 받게 된 뒤로 연구자들은 제22회 마지막의 없어진 부분에 주목하고, “잠시 설보차가 지은 수수께끼를 적어 둔다.”라는 비평을 붙여 놓았다. 그렇지만 일부 논자들은 이 수수께끼가 임대옥이 지은 것으로 해야 더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서 린위탕(林語堂)과 위저우(于舟), 니우우(牛武), 류징루(劉耕路), 왕스차오(王士超), 메이졔(梅節), 샤허(夏荷), 궈웨이(郭衛), 커페이(克非), 장푸창(張福昌) 등은 모두 이 수수께끼가 임대옥의 신분과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고 주장했다. 메이졔는 “이 수수께끼는 설보차와는 하나도 들어맞지 않지만 임대옥과는 들어맞지 않는 데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 주어루창과 정칭산, 차이이쟝, 펑치용 등 또 다른 일부 학자들은 ‘경향’ 수수께끼는 응당 설보차가 지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일부 연구자들은 임대옥은 수수께끼를 짓지 않아야 정리에 부합한다고 주장한 데에 비해, 일부 연구자들은 임대옥이 수수께끼를 짓지 않았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전혀 상반된 의견을 내세웠다.

이 ‘경향’ 수수께끼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해설은 완전히 ‘내재 구조’를 근거로 추측한 것이다. 하지만 임대옥의 사정을 수수께끼에 맞추든 설보차의 사정을 수수께끼에 맞추든 간에 모두들 자신들이 느낀 ‘유기성’에 의거해 이 수수께끼의 앞뒤 문맥을 이해하고 있다. 이 예에서 볼 때 이런 문제들이 제기될 수 있다. 작자의 본래 의도는 대체 무엇인가? 작자의 원본에는 이 수수께끼를 누가 지은 것으로 되어 있는가? 하지만 논자들은 모두들 나름대로 파악한 ‘내재 구조’만을 얘기할 수 있을 뿐이다.

셋째, 설보차의 죽부인 수수께끼는 뜻을 금방 알 수 있고 천속해서 단아하고 함축적인 설보차의 인상과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논자들은 이 또한 후세 사람이 덧붙여 쓴 것이라고 주장한다.

차이이쟝은 거울 수수께끼의 문장이 유가 도덕을 선양하고 있기 때문에 반 유가적 성격을 지닌 가보옥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위저우와 니우우는 가보옥이 벼슬살이와 경세제민(經世濟民)을 주제로 한 수수께끼를 짓지 않은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가보옥의 반역적 성격을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또 차이이쟝과 주단원은 죽부인 수수께끼는 자중할 줄 아는 설보차의 형상과 맞지 않으니 원작자가 쓴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위저우와 니우우는 “‘죽부인’은 설보차의 사람됨과 그 결말에 대해 작자가 형상적으로 개괄한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논자들의 관점이 뚜렷하게 서로 어긋나지만, 그럼에도 그것들은 모두 그들이 자신들만의 ‘정리에 맞게’ 의미를 해석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우리는 학자들이 ‘작자의 원고’를 판단하는 근거가 본문 내부에서 문맥이 관통하는지 여부임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인물 형상이 앞뒤에서 일치하는지 여부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관통론 자체는 전혀 이렇다 할 객관적 기준이 없으며, 학자들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출발하지만 똑같은 방식으로 하나의 문장을 자신들의 해석 체계에 끌어들여 해석을 덧붙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관통’ 여부는 텍스트가 기여하는 객관적 특징(text’s contribution)이 아니라 대부분 독자가 구축해 낸 특성(reader’s contribution)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