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는 많은 것이 필요 없다東西還可以更少
소로가 자신이 짓던 오두막에 입주한 날이 하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이었던 것은 그저 우연이었고(오두막은 벌써 그런대로 사람이 살 만했다) 공사는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마무리되었다. 그는 전체 공사비를 꽤 자세히 나열한다. “판자, 지붕과 벽에 쓴 널빤지, 욋가지, 유리가 끼워진 헌 창문 두 짝, 벽돌 1천 장, 석회 2통, 솜, 아궁이 철제 틀, 못, 경첩과 나사못, 빗장, 백묵, 운반비” 등 13가지 항목에 모두 27달러 94센트를 지출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왜 그랬을까? 바람과 비를 피할 만한 집을 한 채 짓는 것이 사실 얼마나 간단하고 저렴한지 증명해 보임으로써 누구나 따라 할 수 있게 한 것이었다(오늘날에는 이것이 어째서 불가능한지 그에게 설명해줘야 할 듯하다. 세계는 이미 변했다). 그는 대단히 의기양양한 어조로 “언제라도 기분만 내키면 콩코드 가의 가장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주택 같은 집을 지을 생각이다. 그래도 지금 이 집보다 비용이 더 들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월든』은 평범한 전원생활이 아니라 계획된 실험이었다(소로는 “나의 실험을 통해……”라는 식으로 말했다). 나아가 그 혼자가 아니라 전체 사회에 적용 가능한 보편적 프로그램에 관한 실험으로서 처음부터 목표와 시간이 설정돼 있었고 시간이 다 되었을 때 그는 떠났다.
“나는 숲에 들어갔을 때와 같은 이유로 숲을 떠났다. 아마도 내게는 살아야 할 여러 가지 다른 형태의 삶이 있어서 숲속의 삶을 더 유지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람이 얼마나 쉽게 특정한 길에 빠져들고 그것이 습관이 되는지 생각해보면 정말 놀라운 일이다. 내가 숲속에 들어가 산 지 일주일도 안 되어 내 집 문가에서 호숫가까지 내 발자국으로 길이 났는데, 이미 5, 6년이 됐는데도 여태 그 윤곽이 뚜렷하다. 누군가 또 그 길에 습관이 들어 그 길을 유지시키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두려운 생각이 든다. 땅의 표면은 부드러워서 사람의 발자국에 흔적이 남게 돼 있으며 사람의 마음이 가는 길도 마찬가지다. …… 비록 공중에 누각을 쌓을지라도 그것은 헛된 일이 아니다. 누각은 본래 공중에 있어야 하니까. 이제 그 밑에 토대를 받치면 된다.”
소로는 호숫가에서 3년을 살았지만 『월든』에는 첫 번째 해의 일들만 기록되어 있다. 그가 책의 말미에서 “둘째 해는 첫째 해와 비슷했다.”라고 말했듯이 역시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구현된 것이다. 이 무정한 법칙은 어디에나 적용된다. 게다가 문학적 글쓰기 영역에서는 보통 다른 영역에서보다 그 영향력이 훨씬 더 무자비하고 사람을 압박한다.
월든 호수에서의 그 실험은 이상적인 삶의 추구가 아니라 이상적인 삶의 추구를 위해 필요한 조건과 기초에 관해 이야기한다. 소로는 “내가 월든 호수에 간 것은 생활비를 적게 들이거나 사치스럽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최대한 장애물 없이 내 개인적인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였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 책의 핵심 사유는 이른바 진정한 ‘생활필수품’은 어떤 것들이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필수품들을 얻기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무엇이냐는 것, 다시 말해 최소한도로 얼마나 인간의 노동량과 삶의 시간을 들여야 하느냐는 것이다. 여기에서 핵심어는 “최대한 장애물 없이”이다. 인간은 확실히 그 노동량과 시간을 줄일 자유가 있다. “사람들은 생활필수품을 마련한 다음에는 계속 그 여분의 것을 장만하는 대신에 다른 일을 할 가능성이 생긴다. 그것은 당장 삶을 위한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소로의 지나치게 흥분된 문체(스승인 에머슨보다 휘트먼에 더 가까운)는 가끔 부득이하게 부자유한 부분을 가리기도 한다(“우리는 우리 안에 동물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높은 본성이 잠들어 있을수록 정비례해 깨어난다. 그 동물은 파충류와 같고 육욕적이며 우리는 그것을 완전히 몰아낼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 있을 때도 우리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기생충과도 같다. 우리는 그것을 좀 멀리할 수는 있어도 그것의 본성까지 바꾸지는 못한다.”). 장애물은 가능한 한 줄이고 없애야 한다. 소로가 자주 자문자답한 것처럼 사실 더 줄이고 더 단순화할 수 있어야 한다. 집과 옷도 꼭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특히 위도가 낮은 비교적 따뜻한 지역에 산다면 말이다. 맹물만 마셔도 마찬가지로 다른 부작용이 없을지도 모른다. 술, 커피, 차 그리고 똑같이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음악이 없어도 말이다. 나아가 하루 세끼가 아니라 한 끼만 먹어도 될지도 모른다. 꼭 세끼를 먹어야 한다는 법칙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육식도 안 해도 될지 모른다. 소로는 잠시 그럴 수 없었고 사냥과 낚시를 즐겼지만, “인류는 점차 개선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육식에서 멀어질 것이다. 야만인이 더 문명적인 문화와 접촉한 뒤로 더는 사람을 안 먹게 된 것처럼.”이라고 말했다.
곡식과 맹물, 한 소쿠리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끝까지 버틴 사람은 바로 안연이었다.
이와 관련해 『월든』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소로와 어느 밭 갈던 농부의 대화이다. 이 대화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기억 속에 깊이 남았다. 당시 내 같은 반 친구(지금은 머리가 다 벗겨진 은퇴 노인이 되었다)가 그 책을 잘못 사서 며칠 저녁을 끙끙대다가 흔쾌히 내게 선물했다. 그 식견 있는 농부는 소로에게 “채소만 먹고 살 수는 없지요. 뼈를 만들어줄 만한 음식이 아니니까요.”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그 농부는 뼈의 원료를 몸에 공급하는 데 매일 일정한 시간을 바쳤다. 그는 얘기를 하면서 쟁기질 하는 소를 뒤쫓았다. 한데 채소만 먹는 소는 농부와 무거운 쟁기까지 끌고 가는데도 아무 장애물도 없어 보였다. 이때 소로는 “어떤 물건은 늙고 병든 사람에게는 필수품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사치품일 뿐이며 또 어떤 이들에게는 알려져 있지도 않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위한 일을 시작”하는 데 있어 월든 호수는 종점이 아니라 기점이었고 소로의 삶은 좀 더 먼 곳에서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는 안연과 비슷한 결말을 맞았다. 링컨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1860년, 밖에서 찬바람을 맞고 당시에는 속수무책이었던 기관지염에 걸려 1년 반 뒤 사망했다. 겨우 45세의 나이였다. 이 나이는 고고학 연구로 밝혀진 초기 인류의 평균 수명과 상당히 가까우며, 동시에 인류가 자신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기 이전의 생물학적인 천연 수명과도 대체로 같다. 아마도 인간의 생활 필수품은 역시 좀 더 필요한 듯하다.
하지만 어쨌든 소로는 확실히 한다면 하는 의지의 인물이었다.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았고 남들은 단순하게 살라고 하면서 자기는 복잡하게 살지 않았으며(요즘 베스트셀러 작가들은 이와 정반대이다) 입만 열면 ‘시민’을 칭송하면서도 뒤에서는 정계와 재계의 유명인을 추종하지도 않았다(요즘 이른바 참여적 지식인들은 이와 정반대이다). 물론 아직 사람들이 진리와도 같은 굳건한 신념을 갖고 있었고 지구도 다소 휑했던 그 시대에는 삶의 실험을 해보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했다. 그렇게 호수에 가서 도끼 한 자루를 빌려 곧장 숲으로 들어가는 행동은 오늘날에는 너무나 불가사의하고 돈이 덜 들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무슨 명성을 얻기는커녕 미치광이로 오인되거나, 더 심하게는 홈리스나 루저 취급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