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백거이白居易 겨울밤 술을 마주 하고 황보십에게 보내며冬夜對酒寄皇甫十

겨울밤 술을 마주 하고 황보십에게 보내며冬夜對酒寄皇甫十/당唐 백거이白居易

霜殺中庭草 서리는 안마당의 풀을 죽이고
冰生後院池 얼음은 후원 연못에서 생기네
有風空動樹 나무나 흔드는 바람은 있어도
無葉可辭枝 가지에서 떨어질 낙엽은 없네
十月苦長夜 지금은 시월 괴롭고도 긴 밤
百年強半時 백년 인생 과반을 지난 나이
新開一瓶酒 이제 금방 술 한 병을 열자니
那得不相思 어찌 그대가 생각나지 않겠나

이 시는 백거이(白居易, 772~846)가 66세 때인 837년 낙양에서 태자소부 분사(太子少傅分司)라는 한직에 있을 때 지은 시이다. 이 시의 수신자인 황보십(皇甫十)은 황보서(皇甫曙)를 말한다. 황보서는 행정 관료이면서 시인으로는 백거이, 유우석과 교제가 깊었다. 당시 그는 하남 소윤(河南少尹)으로 있었다. 참고로 백거이는 831년에 하남 윤(河南尹)을 한 적이 있다. 소윤은 조선 시대로 치면 서윤(庶尹)과 같은 관직으로 평양부윤, 한성부윤 이런 관직의 부(副)가 되는 관직인 셈이다.

황보서는 황보 낭중(皇甫郎中)이나 황보십의 형태로 백거이 시에 나오며 백거이가 쓴 자전인 <취음선생전(醉吟先生傳)>에는 숭산의 승려 여만(如滿)은 공문우(空門友 불교의 벗), 평천의 객 위초(韋楚)는 산수우(山水友 산수의 벗), 팽성(彭城)의 유몽득(劉夢得 유우석)은 시우(詩友)라고 한 뒤에 안정(安定)의 황보 랑(皇甫郞)는 주우(酒友)라고 되어 있다. 황보 랑이 바로 황보서이며 이 시에는 황보 십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주우(酒友)는 조선시대에도 쓴 말인데 지금도 ‘술친구’라고 많이 쓰는 말이다. 백거이는 이런 사람들을 매일 만나 같이 노느라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잊을 정도였다고 말한다. 이 <취음선생전>을 67세에 쓴 것이니 바로 이 시의 상황과 같은 것이다.

백거이 문집에 실린 관련 시를 찾아보면, 백거이가 먼저 황보서에게 보낸 시도 있고 황보서가 보낸 시에 백거이가 화답하는 시도 있는 것으로 보아 자주 시와 서찰을 주고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백거이가 보낸 시를 보면 꽃이 피었으니 같이 감상하자거나 술이 익었으니 같이 먹자는 그런 함의를 담아 보낸 시가 많다.

이 시 역시 술 마시기 좋은 날씨와 기분 속에서 술친구를 떠올리며 한 잔 하자고 부르는 시이다. 그러니 자연 초대한다는 마지막 말 앞에 서술된 내용은 모두 술 생각이 나게 하는 조건인 셈이다. 그 내용도 통속적이며 표현도 쉬운 말로 되어 있다. 이 쉬운 말과 통속적인 내용은 백거이 시의 최대 장점이면서 동시에 또 최대 약점이기도 하다.

나무에서 낙엽이 다 떨어진 상태라 바람이 불어도 공연히 나무만 흔들어댈 뿐 떨어질 나뭇잎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아주 재미있게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음력 10월 무렵은 밤이 실제보다 길게 느껴지는 달인데 예전 사람들도 그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강반(强半)은 과반을 지난 것을 말한다. 당시 백거이는 이미 66세라 과반을 지난 지 한 참되었는데도 이런 표현을 쓰고 있으니 스스로는 아직 살날이 많은 것으로 생각했던 것일까.

나무에 나뭇잎은 하나도 없고 겨울바람이 휘익, 휘익 불어온다. 그리고 후원에는 얼음이 언 쌀쌀한 날씨, 그리고 밤도 길다. 또한 인생의 과반을 살았고 이제 시간을 허비해 가면서 시비의 총중에 빠지고 싶지도 않다. 포부도 줄이고 욕심도 줄이고 자연과 벗 삼고 좋은 이들과 얘기하면서 한 잔 술로 인생을 말한다. 백거이는 지금 이런 기분으로 살고 있다. 백거이는 눈 오는 아침이나 달뜨는 저녁, 좋은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시를 짓는다. 술이 얼근해지면 금(琴)을 연주하고 그러다 흥이 나면 가동(家僮)을 불러 악기를 연주하게 하고 더욱 기분이 나면 집안의 기생에게 노래를 시키고는 신나게 노래하고 술에 취해 고주망태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자기 집에서만 이러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나 멀리까지 놀러가 시도 짓고 술도 마시며 인생을 즐겼다.

술 먹기 딱 좋을 정도의 쓸쓸함과 우울함, 새로 좋은 술 한 병을 여니 술친구가 어찌 생각나지 않겠는가. 이 시를 받은 황보 십은 바로 한 잔 하러 가고 싶을 것이다.

清 周謙 <獨酌圖>, 출처 월인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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