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녘 심양에 정박하여 여산을 바라보며晩泊潯陽望廬山/당唐 맹호연孟浩然
掛席幾千里 돛 달고 떠돌아다닌 몇 천리
名山都未逢 명산을 하나도 만나지 못했네
泊舟潯陽郭 심양성 외곽에 배를 정박하고
始見香爐峰 비로소 명산 향로봉 바라보네
嘗讀遠公傳 언젠가 혜원공의 전기를 읽고
永懷塵外蹤 늘 속세 떠난 행적 생각했네
東林精舍近 동림정사가 여기서 가깝지만
日暮空聞鍾 저물녘 공연히 종소리만 들리네
이 시는 맹호연(孟浩然, 689~740)이 45세 때인 733년 5월 오월(吳越) 지방을 떠돌아다니다가 월주(越州)에서 고향 양양(襄陽)으로 돌아오던 중 심양을 지나게 되었을 때, 늦게 심양 강변에 배를 정박하고 여산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회포를 펼쳐 보인 작품이다.
당시의 월주는 지금의 소흥(紹興)이다. 맹호연은 소흥에서 배를 타고 심양, 즉 구강(九江)까지 오는 동안 몇 천리를 지났지만 제대로 된 명산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재미나는 증언이 있다. 동기창(董其昌)이 <화선실수필(畫禪室隨筆)>에서 한 말이다. 동기창은 반대로 악양(岳陽)에서 배를 타고 구강까지 갔는데 볼만한 산이 없다가 구강에 도착하니 여산이 높이 솟은 것이 눈에 들어와 이 시가 생각났다고 한다. 그러면서 묘한 시어는 책만 가지고는 알 수가 없고 현장에 가 봐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필자 역시 시의 현장에 가 보았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나름대로는 답사를 하려고 노력한다.
원공(遠公)은 동진 때의 혜원 선사(慧遠禪師)를 말한다. 이 분은 속성이 가씨(賈氏)인데 어려서 오경과 도덕경 등을 읽고 21살에 태항산으로 가서 스승에게 감화되어 출가를 결심한 인물이다. 나중에 여산의 동림사에 와서 주지를 하면서 선종 수행을 하여 사방에 이름이 났다. 구강에 살았던 인물이 바로 도연명인데 도연명이 이 혜원과 교유를 하였다. 혜원은 당시 절 밖을 안 나가고 수행하는 원칙을 세웠는데 도연명(陶淵明)과 육수정(陸修靜)이 방문하고 돌아갈 때 대화에 빠져 자신이 설정한 호계를 벗어난 적이 있다. 그 사실을 나중에 알고 크게 세 번 웃었기 때문에 호계삼소(虎溪三笑)라는 재미있는 고사도 있다.
지금 시인이 하는 말을 들으면 이전에 혜원 선사의 전기를 읽고 세속을 초월하여 산 삶을 흠모해 왔다고 한다. 마지막 구의 공(空) 자가 판본에 따라 좌(坐)나 단(但)으로 된 것이 있다. ‘좌’ 자가 가장 평이하고 ‘단’ 자는 약간 억양이 있다. 그러나 이 글자들은 모두 ‘공’ 자에 크게 못 미친다. 공 자로 해야 저녁이라 사찰이 지척이지만 종소리만 들린다는 진술을 넘어서서 혜원 선사의 삶을 흠모하지만 그가 이미 죽은 것이라든가 불교의 공 사상 등이 은연중 들어오기 때문이다. 은거를 지향하는 시인이 어쩌면 사표로 삼고자 했던 인물에 대한 추억과 슬픔 이런 것들이 복잡하게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필자도 이 시를 좋아하지만 청나라 왕사정(王士禎)은 이 시를 특별히 칭찬해서 신운(神韻)이 있는 일품(逸品)이라고 평가하였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그는 이 시가 영양괘각(羚羊掛角)과 같아 색상(色相)이 모두 사라진 상태라 그 흔적을 찾을 길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본래 영양이라는 짐승은 포식자의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 밤에 잘 때는 자신의 뿔을 나무에 걸고 잔다. 그럼 그 행적을 뒤쫓는 맹수나 사냥꾼은 영양의 발자국이 사라져서 그 실체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맨 먼저 한 사람은 송대의 평론가 엄우(嚴羽)라고 하는 사람이다. 이들이 그 흔적이 없다고 한 말은 시의 여운이 무궁하여 아득히 무엇이라 형언할 수 없는 그런 시경(詩境)을 말하는 것이다. 왕사정이 신운이라 한 것은 바로 이런 형언할 수 없는 운치가 깃든 것을 말한다.
그림에서 일품(逸品)이라 하는 것은 보통 사람의 상식을 뛰어넘는 것을 말할 때 주로 쓴다. 그림에 보통 능품, 묘품, 신품 이런 단계가 있는데 일품은 이런 단계와는 무관한 어떤 이색적이고 초월한 작품을 말할 때 쓰는 말이다. 나는 솔직히 그렇게 까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왕사정의 감식안으로 볼 때는 이 시의 마지막 부분에 그런 특별한 여운이 감돈다는 것이다. 한 번 음미해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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