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수요와 자유往上去就是自由
‘절대 수요’라는, 절충조차 불가능한 이 엄격한 한계선을 예로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은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겨우 반세기 전의 인물인 마틴 루터 킹 목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흑인의 자유라는 집단적인 꿈을 꾸었던 이 인물은 미국 각 주에 적용되는 ‘인권법’을 성공적으로 미 국회에서 통과시킨 후, 한시도 도취하지 않고 즉시 목표를 경제 분야로 돌렸다. 자신의 과업이 완수되려면 한참 멀었다고, 흑인의 자유를 막는 다음 장애물은 바로 부라고 생각했다. 그는 빈민굴에서 살다가 숙명처럼 범죄의 거리에서 스러지는 이들이 어느 흑인 가정에나 존재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법률도 흑인이 자유롭게 버스의 좌석을 택하고 수영장과(미국은 줄곧 수영 종목에서 전 세계 챔피언이었지만 다른 스포츠 종목, 심지어 가장 귀족적인 성격의 골프와 테니스와 비교해서도 지금까지 괜찮은 흑인 수영 선수를 배출한 적이 없다) 식당과 백화점에 입장하는 것을 보장해주지 못했으며 “메이시스 백화점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라는 말 뒤에는 당연히 “당신이 돈을 치르기만 한다면”이라는 전제가 숨어 있었다.
안타깝게도 킹 목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백인 미치광이에게 암살을 당해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실패를 면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자유의 장애물을 없애는 것은 미 국회에서 민권법을 통과시킨 것보다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부는 권력보다 한층 상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게 큰 근심이 있으니, 그것은 내게 몸이 있다는 것이다”(吾之有大患唯吾有身)라는 구절에서 노자는 우리 신체의 존재에 관해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신체를 최소한도로 유지하는 것은 절대 수요와 같아서 사유로도, 의지로도, 정신적인 힘으로도, 심지어 철저한 깨달음으로도 그것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활달하고 자유로우며 강인한 정신까지 소유한 장자조차 정말 버티기 힘들었을 때 할 수 없이 오랜 친구 혜시惠施를 찾아가 그런 것들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마른 도랑에 갇혀 목숨을 잇기 위해 물을 갈망하는 물고기에 비유했다. 그 얼마 안 되는 물이 바로 “어떤 상황에서도 없어서는 안 된다고 느끼는” 절대 수요이다.
절대라는 이름이 붙은 이 한계선은 이처럼 엄격하게 그어져 있으며 사람을 실망시키고 고통스럽게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의 정신을 맑고 단순하게 만들어 명확히 목표를 정하고 희망에 부풀게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류 문제의 관건은 사람들의 이 절대 수요를 만족시켜주는 데 있지 않을까. 이를 완수하기만 하면 우리는 어떤 일에 너무 신경을 쓸 필요가, 심지어 좋아 보이지 않는 일에도 너무 신경을 쓸 필요가 없게 되지 않을까. 나바호족은 어떤 부류의 사람을 가리켜 “그는 양들이 어느 풀을 뜯어 먹어야 할지 가르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사람은 생존의 사슬을 끊어버리면 자유로워진다. 개인적인 자질, 능력, 의지, 흥미에 약간의 운만 더해지면 멀리멀리 나아갈 수 있으며 이에 뒤따르는 어떠한 성취도 전부 여분의 것이자 금상첨화에 해당한다. 사방팔방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자유로운 개인들과, 그래서 너무 자연스럽게 끊임없이 풍요를 누리는 인간 사회는 긴장도, 강요도, 갈등도, 어찌할 수 없는 갖가지 스트레스와 꼬임과 기만도 없다. 칼 마르크스는 이런 사유에 가장 가까이 갔던 인물이었다. 여러 차례 생존의 한계에 부딪혔고 외견상 난폭하고 음울해 보이는 이 대철학자는 사실 낙관적이고 편안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훗날의 사회주의자들은 반대편의 자본주의자들이 항상 발전을 명분으로 떠받든 것처럼 분배의 문제에 가장 관심을 갖고 그것을 기치로 삼았지만, 마르크스는 잘 알려져 있듯 분배에 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고 또 그럴 필요도 없었다. 단순히 말해 그는 인류의 생산력 발전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가진 사람이었으며(상대적으로 가장 음울하고 비관적이며 끝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한 사람은 토머스 멜서스였다) 앞으로 그것이 더 빨라지고, 더 규모가 커지고, 더 문제없어질 게 분명하다고(다시 말해 생산력이 인류의 절대 수요 전체를 한참 넘어설 게 분명하다고) 보았다. 아울러 문제가 생길 것은 생산관계뿐인데 그것도 구조만 손보면 된다고 생각했다(원리와 기술 면에서 완벽하므로 도덕적 힘을 동원할 필요도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미래의 이상 세계를 묘사하는 데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단지 모호하게(혹은 더할 나위 없이 가볍게) 오전에는 시를 쓰고 오후에는 낚시를 하는 식으로 노동이 ‘취미’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하면서 노동이 낳은 대규모 잉여가 노동을 개인화, 취미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인간이 완전히 빈곤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누구나 거의 무한대로 자신의 가능성을 발현하게 된다는 뜻인데, 우리는 지금도 이런 예상을 할 수 있을까? 마르크스에게는 미래에 관한 어떠한 유토피아적 청사진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인류에게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가장 근사한 유토피아적 청사진을 갖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