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우에게 하사한 시賜蕭瑀/당唐 이세민李世民
疾風知勁草 질풍이 분 뒤에야 질긴 풀을 알고
板蕩識誠臣 나라가 혼란해야 충신을 알게 되네
勇夫安識義 한낱 용부가 어찌 도의를 알겠는가
智者必懷仁 지자는 반드시 어진 마음을 품나니
이 시는 653년에 당태종 이세민이 소우(蕭瑀)라는 신하에게 준 시이다. 본래 이 시의 첫 구절은 이세민이 처음 말한 것이 아니라 광무제 유수(劉秀)가 말하였다. 《후한서》 <왕패전(王覇傳)>에 그 기록이 있다. 광무제가 영천(穎川)에서 따라온 신하들이 모두 떠나갔지만 왕패 혼자 남아 있자 ‘질풍이 불어서야 강한 풀을 알게 된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고 말한 것이다. 이런 말을 보면 이 말이 실상 광무제 이전부터 이미 항간에 떠도는 격언 같은 말이 아닐까도 생각된다.
이세민은 여러 신하에게 그 신하에 맞는 내용의 시를 내려준 일이 있다. 방현령 등 다른 신하들도 좋은 시를 받았다. 그럼 소우란 사람은 누구이고 이세민이 이 시를 내려준 뜻은 무엇일까?
623년이 이세민에게는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그의 형과 동생이 모의하여 이세민을 죽이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때 부왕인 이연(李淵), 즉 당 고조 역시 이세민을 처벌하려고 하였다. 그 때 소우가 여러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세민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이세민은 627년 집권한 뒤에 소우를 우대하고 653년에는 정사에 참여시키면서 이 시를 준 것이다.
2구는 1구의 내용을 사회나 정치 현상에 적용한 말이다. 흥(興)의 수법을 쓴 것이다. 여기에 판탕(板蕩)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에 이세민의 마음이 들어 있다. 판(板)과 탕(蕩)은 모두 《시경》 <대아(大雅)>에 나오는 편명이다. 그런데 이 두 편의 시는 모두 긴 장시인데 그 내용이 주나라의 혼란상을 담고 있다. 즉 이 시어를 구사한 것은 바로 자신이 왕자로서 매우 위태로운 처지에 처하고 나라가 어려울 때 소우가 힘을 써 주어 고맙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다.
세 번째 구 ‘용부안식의(勇夫安識義)’에서 안(安)은 어떤 판본에는 녕(寧)으로 되어 있다. 이 말은 ‘어찌’라는 의문사로 뒤의 내용을 의문문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정말 몰라서 묻는 의문은 아니고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설의법에 사용되는 글자이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하면 ‘용맹한 사람이 어찌 의를 알겠는가?’라는 말이 된다. 일반 상식에 의를 알기 때문에 용기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인데 용기 있는 사람이 의를 모른다고 하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용기 있는 사람은 의를 아는데 편안하다.’라는 말로 이해하려고 한다. 즉 진정한 용기가 있어 자신이 죽더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의를 행한다는 말로 보는 것이다.
맞는 것 같지만 아니다. ‘부(夫)’ 자가 그걸 말해 준다. 무부(武夫)라고 하면 무인을 낮추어서 하는 말이다. 즉 무인으로서의 진정한 덕은 없고 한낱 힘만 쓴다는 폄하의 의미가 있듯이 용부 역시 한낱 용기만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리를 모른다는 말이 된다. 진정한 의리를 알려면 용기만 있어서는 안 되고 그에 걸맞는 덕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뒤에 지자(知者)는 자(者) 자를 놓아 용부(勇夫)와 구분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앞 구에 이어 식(識) 자는 중복해 쓰면서도 용부는 의도적으로 용자로 쓰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세민이 이런 말을 굳이 한 것은 이유가 있다. 소우가 충직하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강직해서 위징이나 방현령 등 이세민의 중요 참모들과 잘 어울리지를 못했다. 이 때문에 이세민은 소우에게 지혜로운 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진 마음을 가슴에 품어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이런 어진 마음을 품어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을 때 소우가 가진 충직이 진정한 의리에 맞는 행동으로 승화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것을 보면 한 편의 시도 글자 자체에 매달리면 답이 없고 보다 큰 식견을 쌓아야만 조금이라도 시의 본의에 접근해서 참맛을 알게 된다는 것을 자연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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