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이의 기록

선충원沈從文(1902∼1988年)
원래 이름이 선웨환沈岳煥으로 자는 충원崇文이었다. 후난 성湖南省 펑황 현凤凰县에서 태어났으며 저명한 소설가이자 산문가, 고고학자였다. 대표작으로 『변성邊城』이 있다.

―닭 소리

  비 그친 뒤 한여름 백주대낮에 참새가 짹짹거리는 소리는 단조롭고 적막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모래조차 바람에 날리지 않는 가운데 한 권의 책을 들고 홰나무 아래 앉아 읽노라면 그래도 아직은 무미건조한 맛은 없다.

하루 종일 길거리에서 전차가 내는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귀에 울리는 가운데 갑자기 반쯤은 시골풍인 이 학교에 왔다. 이곳 이름은 뤄퉈좡駱駝庄인데, 오히려 석회 포대기를 지고 있는 낙타는 한 필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그 놈들은 모두 쉬고 있는 모양이었다. 여기서는 생기발랄한 닭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베이징에 온 이래 새로 발견한 것이라 할 만했다. 이렇게 목울대를 울리는 소리는 농장의 어미 소가 송아지를 부르는 온화하기 그지없는 소리와 어우러졌다. 여기에 느릅나무 숲 에 숨어있는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난 자고새가 이런 소리들과 화답했다.

나는 최소 2년 이상 닭 울음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시골의 닭 울음소리는 민국 10년(역자 주 1921년)에 위안저우沅州의 싼리핑三里坪농장에서 들어본 적이 있다. 아마도 모종의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황량한 마을의 한밤중이건 청량한 나무 그늘이 드리운 백주대낮이건 그 어떤 닭 울음소리에도 나는 깊은 감동을 받는다. 여름날 그 누가 듣더라도 졸릴 수밖에 없는 길고 단조로운 소리에서 나 역시 과거의 간절한 사랑과 내 마음 속에 오래 간직했던 연모의 정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처음 베이징에 왔을 때 기차의 기적 소리가 길게 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 소리에서 나는 어떤 위대함을 발견했다. 나의 길들여지지 않은 거친 마음은 늘상 부우 하는 소리를 따라 하늘 가 그 끝을 알 수 없는 망망함 속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이것은 공허하고 적막한 나그네살이 가운데 의탁을 한 것에 불과하다. 시골 한낮에 서로 화답하는 닭 울음소리에 비하면, 사람이 받는 흥취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제껏 객지살이 하면서 한밤중에 닭 울음소리에 깨본 적이 없었다. 암탉이 알을 낳을 때 ‘꼬꼬꼬’ 하는 소리도 들어본 적이 없다. 대낮이라면 전차가 땅땅거리는 소리말고도 갖가지 음이 원근에서 합주를 하는 저잣거리 소리가 있다. 그래서 베이징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은 닭을 기르지 않나 하는 의심도 들었다. 그런데 이런 추측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매번 지인들에 이끌려 식당에 갈 때마다 ‘라쯔지辣子鷄’니 ‘쉰지熏鷄’니 하는 류의 이름을 듣게 되니 말이다. 시장에 놀러갈 때도 작은 매대 아래 대나무 우리 안에는 살아 움직이는(날개를 펼치고 뛰어다니기도 하고, 고개를 숙이고 부리로 날개를 정리하지만 소리는 내지 않는) 닭이 있었다. 이 놈들은 벙어리같이 서로 부대끼며 서 있으면서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 놈들이라고 소리를 지를 수 없는 것은 아닐 텐데 소리를 지를 수 없는 까닭은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까 모든 닭은 소리를 지르는데, 심지어 늙은 암탉도 ‘꼬꼬꼬’ 소리를 낼 줄 아는데, 혹시 놀라서 겁을 먹어서 그런 것일 게다. 날카로운 칼과 펄펄 끓는 물을 생각하면 두려운 마음에 소리 지르는 것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 같은 인간들도 걱정거리가 있게 되면 말도 하기 싫지 않은가?

하지만 또 한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베이징의 닭은 당일 도축되는 두려움 속에 빠져 있다지만 다른 곳의 닭은 가져와서 사람들이 도축하지 않는가? 왜 다른 곳의 닭은 흥이 나서 목청껏 울어 제끼는가? 여기서 나는 베이징의 괴이함을 느낀다.

말없이 침잠해 있는 짙푸른 하늘을 보면서 베이징 성의 괴이함을 생각할 제, 한 번씩 번갈아 들리는 닭 울음소리에 피곤해졌다. 햇빛 아래 작은 생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이 고약하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한 모기가 허공의 별똥별처럼 오가는 것이 더욱 유쾌하고 발랄한 듯 보인다. 갑자기 “놀란 기러가 같이 하늘하늘하고, 노니는 용처럼 나긋나긋하다翩若惊鸿, 宛若游龍” 이것은 한대漢代의 유명한 문장가인 차오즈曹植의 「낙신부洛神賦」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글의 원문에는 “飄若驚鴻, 宛若游龍”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필자인 선충원沈從文의 잘못이다. 라는 고전 문장이 떠올랐다.

1925년 6월 14일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