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여온呂溫 잠 못 이루는 겨울밤에冬夜卽事

잠 못 이루는 겨울밤에冬夜卽事/당唐 여온呂溫

百憂攢心起復臥 온갖 근심 파고들어 일어났다 되누우니
夜長耿耿不可過 긴 겨울밤 자꾸만 떠올라 떨칠 수 없네
風吹雪片似花落 바람에 날리는 눈 떨어지는 꽃잎 같고
月照冰文如鏡破 달빛에 비친 얼음의 금 깨진 거울 같네

여온(呂溫, 771~811)은 당나라 하중(河中) 사람으로 798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좌습유 등의 관직 생활을 하다가 토번에 사신으로 가기도 하였다. 808년 가을, 형부낭중 겸 시어사로 있으면서 당시 재상인 이길보(李吉甫)를 탄핵했다가 오늘날 호남성에 해당하는 도주(道州)의 자사로 좌천되었다. 2년 뒤에 다시 형주(衡州)의 자사로 옮겼다가 그 이듬해 임지에서 죽었다.

그래서 이 시인이 남긴 문집이 《여형주집(呂衡州集)》인데 이 시는 도주 자사를 하던 시절에 쓴 시 사이에 편집되어 있으므로 808년 도주로 부임하던 해 겨울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시인은 지금 수많은 근심이 가슴을 파고들어 그냥 누워서 고민하는 정도를 지나쳐 벌떡 일어나기도 하고 다시 눕기도 하는 상태로 심각하다. 긴 겨울밤 창밖에는 설한풍이 몰아치지만 시인의 가슴에는 열불이 나고 머리는 먹물을 뿌린 듯하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고 떠오른다. 그래서 경경(耿耿)이라 쓴 것이다. ‘경경’은 주로 근심으로 마음에 자꾸 까막까막 떠오르는 것을 말한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고 무시하려 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마음을 파고드는 것을 말한다.

이 시의 가슴을 이렇게 파고드는 것은 무엇일까? 여자 문제일까? 고을 정사 문제일까? 그도 아니면 고향이 그리워서? 내가 볼 때는 이곳 도주(道州)로 귀양 오기 전의 정치 상황과 이곳 도주 온 뒤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집안 문제, 이곳의 적응 문제 등일 것으로 판단한다. 도주는 지금 호남성 남쪽 산골에 있는데 광동성 계림과 이웃하고 있다. 도주의 북쪽에 형주(衡州)가 있다. 형주는 기러기가 돌아가는 회안봉(回鴈峯)이 있는 지금의 형양(衡陽)을 말한다. 이 시인과 동시대를 살았던 문인 중에 유종원(柳宗元)이 있다. 이 사람이 좌천을 당한 곳이 바로 영주(永州)인데 영주는 이 도주와 형주의 사이에 있다. 장안에서 멀리 떨어진 도주로 온 것만도 괴로울 텐데 좌천에 불만을 가진 상태라면 더욱 생각이 복잡할 것이다.

이 시인의 복잡한 심리 상태는 후반 대구에 잘 드러나 있다. 현실의 고뇌와 번민을 아름답게 승화하려는 마음의 움직임과 자신이 처해진 현실을 마주하며 낙담하는 심리가 뒤섞여 있다. 달빛이 비친 빙렬문(氷裂紋)을 파경(破鏡), 즉 깨진 거울의 날카로운 단면으로 비유한 것이 그의 참담한 현실 인식이라면 몰아치는 바람에 날리는 눈을 봄날의 꽃잎 같다는 진술은 또 시인의 낭만성을 반영한다.

여온이 좌천된 것은 어사 중승 두군(竇群)과 친하게 지내면서 두군이 여온을 어사로 추천하였는데 이길보가 승낙하지 않자 병이 난 틈을 타서 몰래 상주하려다 들통이 난 사건 때문이었다. 여온은 시는 정밀하고 넉넉하여 사람들이 인정하지만 성격이 경박하고 음험하며 탐욕이 있었다고 《당재자전》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사고전서 제요에서는 이와는 결이 좀 다르다. 그가 본래 인품은 순수하지 않지만 학문은 연원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문집을 유우석이 편찬하였다고 하니 당대에는 어느 정도 인정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에서 당나라 시대의 글을 논하면서 중당 때의 인물로 한유, 유종원, 백거이 등과 함께 여온을 꼽았고, 주자는 《중용혹문(中庸或問)》에서 소인의 중용을 설명하면서, 중용에 반대로 행하면서도 스스로는 중용으로 인식하여 아무 거리낌이 없었던 사람으로 한나라의 호광(胡廣)과 당나라의 여온(呂溫), 유종원(柳宗元)을 지목하였다. 이런 평가를 보면 여온은 대체로 문장에서는 긍정적으로 인물됨은 다소 부정적인 견해가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여온이 도주의 관사에서 잠을 못 이루고 일어나 앉아 이 시를 지었는데 자신을 돌아보았을지 아니면 이길보 등을 원망하며 복수를 다짐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지방관을 하면서 성적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고 사람들이 여 형주(呂衡州)라고 부른 것을 보면 나름대로 존중받은 것을 알 수 있다. 한 편의 시나 사람을 제대로 알고 공정하게 평가하기가 참으로 어렵기만 하다.

宋 范宽 《雪景寒林图》

365일 한시 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