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애승람瀛涯勝覽-말라카 왕국滿剌加國

말라카 왕국滿剌加國

참파에서 정남쪽으로 순풍을 따라 배를 타면 여드레 만에 싱가포르 해협(龍牙門, Selat Panikam)에 이르는데, 해협으로 들어가 서쪽으로 이틀을 가면 도착할 수 있다. 이곳은 옛날에 왕국이라고 칭하지 않고 바다에 다섯 개의 섬이 있기 때문에 다섯 섬[五嶼]이라고 불렀는데, 국왕은 없고 다만 우두머리가 다스리고 있었다. 이 지역은 섬라 왕국의 관할을 받아서 해마다 금 40냥(兩)을 바쳐야 했으며, 그러지 않을 경우 군대를 보내 정벌했다.

영락 7년(1409) 즉 기축년(己丑年)에 황제께서 정사태감(正使太監) 정화 등에게 조칙(詔敕)을 가져가서 우두머리에게 은으로 만든 인장 두 개와 관대(冠帶), 포복(袍服)을 하사하고 비석을 세워 성에 봉해 줌으로써 드디어 말라카 왕국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후로 섬라 왕국에서 감히 침략하여 소요를 일으키지 못했다. 그 우두머리는 성은을 입어 왕이 되자 처자를 이끌고 북경으로 가서 입조(入朝)하여 감사하면서 토산품을 공물로 바쳤고, 조정에서는 또 해선(海船)을 하사하면서 돌아가 국토를 지키도록 해 주었다.

自占城向正南, 好風船行八日到龍牙門, 入門往西行二日可到. 此處舊不稱國, 因海有五嶼之名. 遂名曰五嶼. 國無王, 止有頭目掌管. 此地屬暹邏所轄, 歲輸金四十兩, 否則差人征伐. 永樂七年己丑, 上命正使太監鄭和等統齎詔勑, 賜頭目雙臺銀印冠帶袍服, 建碑封城, 遂名滿剌加國. 是後暹邏莫敢侵擾. 其頭目蒙恩爲王, 挈妻子赴京朝謝, 進貢方物, 朝廷又賜與海船回國守土.

그 나라 동남쪽은 대해이고 서북쪽은 오래된 해안을 따라 산이 연이어 있는데, 모두 소금기 강한 모래를 많은 포함한 땅이다. 기후는 아침에는 덥고 저녁에는 추우며, 밭이 척박해서 곡식이 별로 나지 않기 때문에 농사짓는 사람이 적다.

계곡 사이로 한 줄기 큰 강물이 아래로 흐르는데 국왕의 거처 앞쪽을 지나 바다로 들어간다. 국왕은 계곡에 나무로 다리를 세우고 그 위에 20여 칸 규모의 교정(橋亭)을 지었는데, 모든 물건의 거래는 그 위에서 이루어진다.

其國東南是大海, 西北是老岸連山, 皆沙滷之地. 氣候朝熱暮寒, 田瘦穀薄, 人少耕種. 有一大溪河水, 下流從王居前過入海. 其王於溪上建立木橋, 上造橋亭二十餘間, 諸物買賣俱在其上.

국왕과 국민은 모두 회교도로서 재계하고 계율을 지키면서 경전을 암송한다. 국왕은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얇고 흰 천을 머리에 두르고 세밀한 꽃무늬가 들어간 푸른 천으로 만든 긴 웃옷을 입는데 그 모양이 도포[袍]와 같다. 발에는 가죽신을 신고 드나들 때에는 가마를 탄다. 이 나라 남자들은 사각형 머리띠를 두르고, 여자들은 머리 뒤쪽에 상투를 튼다. 신체는 약간 거무스름한데, 아래쪽은 하얀 천으로 만든 수건을 두르고 위에는 색색의 천으로 만든 짧은 적삼을 입는다.

풍속은 순박하고 집은 누각과 같은 형태로 짓는다. 지붕에는 판자를 깔지 않지만 높이가 넉 자 남짓 되며, 야자수를 길쭉한 조각으로 쪼개서 듬성듬성 깔고 등나무 덩굴로 묶어 고정해서 마치 양 우리[羊棚]와 같은데 당연히 층차가 있다. 침대를 연이어 탁자로 만들고 책상다리를 해서 앉는데 마시고 눕고 요리하는 것도 모두 그 위에서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어업을 하는데, 통나무 하나를 깎아서 만든 배를 바다에 띄우고 물고기를 잡는다.

國王國人皆從回回敎門, 持齋受戒誦經. 其王服用, 以細白番布纏頭, 身穿細花靑布長衣, 其樣如袍. 脚穿皮鞋, 出入乘轎. 國人男子方帕包頭, 女人撮髻腦後, 身體微黑, 下圍白布手巾, 上穿色布短衫. 風俗淳朴, 房屋如樓閣之制, 上不鋪板, 但高四尺許之際, 以椰子樹劈成片條, 稀布於上, 用藤縛定, 如羊棚樣, 自有層次. 連牀就榻盤膝而坐, 飲臥廚灶皆在上也. 人多以漁爲業, 用獨木刳舟, 泛海取魚.

토산품으로는 황속향과 오목(烏木), 다마르 향(打麻兒香, damar), 화석(花錫) 따위가 있다.

다마르 향은 본래 수지(樹脂)의 일종으로서 흘러 나와 땅속으로 들어가 굳은 것인데, 파내 보면 송향(松香)이나 역청(瀝靑)과 같은 모양인데 불에 태우면 바로 붙기 때문에, 이 나라 사람들은 모두 이것에 불을 붙여서 등불로 쓴다. 이 지역에서는 배를 완성했을 때 곧 이것을 녹여 틈에 바르는데, 물이 들어오지 못하니 대단 훌륭하다. 그 지역에서 이것을 채취하여 다른 나라에 파는 일이 많다. 개중에 맑고 깔끔한 것은 황금색 호박(琥珀)과 비슷하며 신다로스(損都盧廝, sindarus)라고 부른다. 이 지역 사람들은 그것으로 모주(帽珠)를 만들어 파는데, 오늘날 수박(水珀)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화석은 두 곳의 산에 있는 주석 광산에서 채취하는데, 국왕의 명령에 따라 우두머리가 주관한다. 사람을 시켜서 모래를 일어 거르고 불길에 녹여서 국자 모양으로 주조한 것을 작은 덩어리로 만들어 관청에 바치는데, 각 덩어리의 무게는 관청 저울로 한 근 여덟 냥 또는 한 근 네 냥이다. 열 개의 덩어리를 등나무 덩굴로 묶은 것을 작은 꾸러미[小把]라 하고 마흔 개를 묶은 것을 큰 꾸러미[大把]라고 하는데, 시장에서 교역할 때 모두 이 주석을 사용한다.

이 나라 사람들의 언어와 문자 기록, 혼상 예법은 자바 왕국과 상당히 비슷하다.

土產黃速香烏木打麻兒香花錫之類. 打麻兒香本是一等樹脂, 流出入土, 掘出如松香瀝靑之樣, 火燒卽着, 番人皆以此物點照當燈. 番船造完, 卽用此物熔塗於縫, 水不能入, 甚好. 彼地之多採取此物以轉賣他國. 內有明淨好者, 卻似金珀一般, 名損都盧廝, 番人做成帽珠而賣, 今水珀卽此物也. 花錫有二處山塢錫場, 王令頭目主之. 差人淘煎, 鑄成斗樣, 以爲小塊輸官, 每塊重官秤一斤八兩, 或一斤四兩者, 每十塊用藤縛爲小把, 四十塊爲一大把, 通市交易皆以此錫行使. 其國人言語幷書記婚喪之禮, 頗與爪哇同.

산야에는 사구(沙孤, sagu)라는 나무가 있는데, 시골 사람들은 이 나무의 껍질을 마치 중국에서 칡뿌리를 찧어 물에 불렸다가 가라앉은 것을 가루를 걸러서 환(丸)을 만들 듯이 녹두 크기의 환을 만들어 말려서 판다. 그것을 사구 쌀[沙孤米]이라고 하는데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다. 바다의 섬 해안가에는 수초(水草)의 일종인 카장[茭蔁]이 자라는데, 잎의 길이는 도모(刀茅)와 비슷하고 생김새는 고순(苦笋)을 닮았으며, 껍질은 두껍고 성질은 부드럽다. 멸매는 여지(荔枝) 모양이고 크기는 달걀만 한데, 사람들이 그 열매로 술을 담근다. 카장주[茭蔁酒]라고 하는 이 술은 마시면 취할 수 있다. 시골 사람들은 그 잎을 짜서 작은 삿자리를 만드는데 폭이 겨우 2자에 길이는 한 길 남짓이다. 그것으로 방석을 만들어 판다.

山野有一等樹名沙孤, 鄕人以此樹皮, 如中國葛根擣浸澄濾其粉作丸, 如菉豆大, 曬乾而賣, 名沙孤米, 可以作飯喫. 海之洲渚岸邊, 生一等水草, 名茭蔁, 葉長如刀茅樣, 似苦笋, 殼厚, 性軟, 結子如荔枝樣, 雞子大, 人取其子釀酒, 名茭蔁酒, 飲之亦能醉人. 鄉人取其葉織成細簟, 止闊二尺, 長丈餘, 爲席而賣.

과일로는 사탕수수, 바나나, 바라밀, 야생 여지 따위가 있고 채소로는 파와 생강, 마늘, 겨자, 동과, 수박이 모두 있으며, 소와 양, 닭, 오리는 있기는 하지만 많지 않아서 값도 무척 비싸다. 물소 한 마리는 값이 은 한 근 이상이며, 나귀나 말은 모두 없다.

이곳 해변의 물속에는 늘 사람을 해치는 악어가 있다. 그놈은 키가 서너 자쯤 되고, 다리가 네 개이며, 온 몸이 비늘 같은 껍질에 덮여 있고, 등에는 가시가 줄지어 나 있으며, 머리는 용처럼 생겼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을 만나면 바로 문다.

산에는 검은 호랑이가 출몰하는데 중국의 누런 호랑이보다는 조금 작다. 그놈은 털이 검고 역시 암화(暗花) 무늬가 있다. 누런 호랑이도 가끔 있다. 나라 안에서는 호랑이가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저자에 들어가 사람들과 뒤섞여 다니기도 하는데, 당연히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 잡아 죽인다.

참파 왕국의 시두만(屍頭蠻)과 같은 것이 이곳에도 있다.

果有甘蔗芭蕉子波羅密野荔枝之類, 菜有葱薑蒜芥東瓜西瓜皆有, 牛羊雞鴨, 雖有不多, 價亦甚貴. 其水牛一頭, 直銀一斤以上, 驢馬皆無. 其海邊水內常有鼉龍傷人, 其龍高三四尺, 四足, 滿身鱗甲, 背刺排生, 龍頭撩牙, 遇人則嚙. 山出黑虎, 比中國黃虎略小, 其毛黑, 亦有暗花紋. 其黃虎亦間有之. 國中有虎化爲人, 入市混人而行, 自有識者, 擒而殺之. 如占城屍頭蠻, 此處亦有.

중국 보선이 그곳에 도착하면 즉시 울타리를 치는데 성벽처럼 네 대문과 경고루(更皷樓)를 설치하고 밤이면 방울을 들고 순찰을 돈다. 그 안에 또 작은 성처럼 이중의 울타리를 친다. 곳집과 창고를 지어서 모든 전량(錢糧)을 잠시 그 안에 둔다. 각국으로 떠난 배들이 돌아와 이곳에 모이면 번국의 재화들을 정돈하여 배에 싣고 남풍이 순조로워지기를 기다려 5월 중순에 출항하여 귀국한다. 그 나라 왕도 스스로 토산품을 채집해 꾸려서 처자와 우두머리들을 거느린 채 배를 타고 보선을 따라가서 황궁에 들어가 공물을 바친다.

凡中國寶船到彼, 則立排柵, 如城垣, 設四門更皷樓, 夜則提鈴巡警. 內又立重柵, 如小城, 蓋造庫藏倉廒, 一應錢糧頓在其內. 去各國船隻回到此取齊, 打整番貨, 裝載船上, 等候南風正順, 於五月中旬開洋回還. 其國王亦自採辦方物, 挈妻子帶領頭目, 駕船跟隨寶船, 赴闕進貢.

Malacca, Photo by bari abik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