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즈카이豊子愷-막간산 유람기 반쪽半篇莫干山遊記

막간산 유람기 반쪽

그저께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마치 뭔가 간절하면서도 잡힐 듯 말 듯한 기분에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일 뿐 잠을 이루지 못했다. 12시 쯤이나 되었을까, 이미 하룻밤 다 자고 이제 날이 밝았다고 가정하고 정식으로 옷을 입고 침대에서 내려와 책상 머리맡으로 가서, 끝내려 했으나 미처 못 끝냈던 원고를 계속 썼다. 2시 반까지 해서 결국 원고는 다 썼는데 무척 피곤했다. 이번에는 하루를 보내고 이제 밤이 되었다고 가정하고 다시 옷을 벗고 잠자리에 들었다. 몸을 눕히자 마자 곯아 떨어졌다.

다음날 새벽 아직 곤히 자고 있는데 누군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Z선생 오셨어! Z선생 오셨어!”

누님 목소리였다. 나는 잠이 덜 깨 몽롱한 눈으로 벌떡 일어나 옷을 걸치고 Z선생을 맞이하러 내려갔다.

“단잠을 깨웠네 그려!”

“원래 진작 일어났어야지. 어제 원고 하나 다 썼는데, 거의 새벽까지 쓰는 바람에 늦게 일어났네. 이거 참 손님이 오는 것도 모르고 ……”

그리고 이런저런 한담을 나누었다. 그는 어제 밤에 항주(杭州)에 도착해서 한밤중에 남의 집 문을 두드리기가 뭐해서 어제 밤엔 여관에서 묵고 오늘 날이 밝자마자 나를 찾아와 함께 막간산(莫干山)으로 L선생한테 놀러가자고 할 셈이었다. 그는 내가 어제밤에 원고 한 편을 다 완성해서 오늘은 마음껏 놀 수 있게 되었음을 알고 몹시 기뻤는지 너무 신바람이 나서 소리쳤다.

“운때가 맞았네, 운때가 맞았어! 내가 오늘 올 줄 알았던 것 같잖아!”

나도 그의 말을 흉내내 맞장구쳤다.

“운때가 맞았네, 운때가 맞았어! 네가 오늘 올 줄 알았던 것 같잖아!”

우리는 한담을 나누고, 차 마시고, 죽을 먹고, 나설 채비를 했다. 내가 제의했다.

“어제 자네가 항주 도착한 시각이 밤중이라서 서호(西湖)를 못봤을 거 아냐. 오늘은 서호를 먼저 좀 가보지.”

“나는 항주에서 나고 자랐잖아. 서호는 지겹도록 봤어. 바로 막간산으로 가자구.”

“그런데, 막간산 가는 차가 몇 시에 출발하던가? 알고 있어?”

“몰라. 아무튼 터미널이 멀지 않으니까 일단 가보자구. 운때가 맞으면 타고 가고, 오후에 출발한다면 서호에 놀러 가자구.”

“그것도 좋지, 좋아.”

그는 가져온 가방을 들고, 나는 빈손으로 문을 나섰다.
인력거가 우리를 터미널까지 데려다주었다. 저만치 보자니 터미널 안에는 차를 기다리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다만 한 터미널 직원이 창으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다급하게 우리에게 물었다.

“어디까지들 가세요?”

“막간산 가는데, 몇 시 차가 …… ?”

그는 내가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매표소를 가리키며 허둥지둥 소리쳤다.

“빨리 표 사세요. 막 떠나요.”

저만치 터미널 안쪽 승차장 입구를 보니, 막간산에 가는 차가 이미 부릉부릉 출발하려고 하고 있었다. 나로선 좀 당황스러웠다. 원래 나는 요 며칠 막간산 가는 차는 오후에 출발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그때는 단지 시간이나 좀 물어보려고 그와 함께 갔을 뿐이었다. 그래서 빈 손으로 문을 나섰고, 메모 수첩도 가져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는 정말로 “운때”였으니, 어떻게 그냥 놓칠 수 있겠는가? 나는 표를 사서 허둥지둥 Z선생을 이끌고 차에 올라탔다. 올라타자 차는 바로 푸른 들판으로 움직였다.

자리를 잡고 나서, 우리는 서로 보며 웃었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았다. 과연 그는 또 신바람이 나서 소리쳤다.

“운때가 맞았네, 운때가 맞았어! 1분만 늦게 도착했어도 못탔을 거 아냐!”

나도 맞장구쳤다.

“죽 한 수저만 더 먹었어도 못탔을 거 아냐! 오줌 한 번만 더 누었어도 못탔을 거 아냐! 운때가 맞았네, 운때가 맞았어!”

차 소리가 우리 말소리보다 크게 울려서 우리가 “운때가 맞는다”는 말을 더 이상 못하게 하여, 우린 그저 서로 쳐다보며 웃을 뿐이었다.

한 반 시간 쯤이나 달렸을까, 갑자기 차 앞쪽에서 “치익” 소리가 나더니, 끝없는 푸른 들판 한가운데 누런 먼지 날리는 길에서 차가 멈춰섰다. 운전사는 “니기미” 한 마디 소리치더니 뛰어내려가 살펴보았다. 승객 중 누군가 목소리 낮춰서 말했다.

“고장이군.”

운전사와 매표원이 차 앞쪽을 살펴본 뒤 번갈아서 연신 “니기미, 니기미!” 소리쳤다. 그래서 우리는 차가 확실히 탈이 났다는 것을 알았다. 승객들은 너도나도 몸을 일으켜 차에서 내려 모두 차 앞쪽에 빙 둘러 모여 구경하면서 운전사에게 물었다.

“차가 어떻게 됐어요?”

“앞쪽 바닥의 나사가 빠졌어요!”

말하면서 운전사는 차 뒤쪽 길에서 잠시 뭔가를 찾아보더니, 그러고 나서는 누런 먼지 날리는 길가에 뒷짐을 턱 지고 서서 멀리 푸른 들판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마치 무슨 운치있는 “시인”이라도 된 것 같았다. 승객이 달려가 물었다.

“허, 참, 대체 어떻게 된 거요? 차는 갈 수 있는 거요, 없는 거요?”

그는 고개를 돌리더니 침울한 얼굴로 말했다.

“꼼짝도 못해요!”

승객들이 웅성웅성하기 시작했다.

“고장이 났다구! 아니 이걸 어쩐다?”

어떤 사람은 사방 푸른 들을 한바퀴 쭉 둘러보고 쓴웃음 지으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서 점심을 때워야겠군.”

한바탕 웅성웅성하더니, 어떤 사람이 한창 경치를 구경하던 운전사를 끌고 와서 자기가 승객의 대표라도 된 듯한 태도로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 운전사에게 정식으로 물었다.

“나, 참, 그럼 어쩐다는 거요? 고칠 수 있는 거요, 없는 거요? 설마 우리를 여기에 ‘방생(放生)’하려는 건 아니겠지?”

옆에 있던 사람이 운전사의 팔을 끌고 가며 말했다.

“어이! 좀 고쳐봐요, 고쳐봐! 어쨌든 우리를 태워다줘야 할 거 아니야.”

그렇지만 운전사는 고개를 저었다.

“나사가 빠진 건 수리할 방법이 없어요. 여기서 기다리다가 다른 차가 지나가면, 수리할 사람을 보내달라는 편지를 공장에 전달해달라고 그 차에 부탁하는 수밖에요. 어쨌든 여기서 밤을 새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승객들은 “밤을 샌다”는 단어를 듣자 이게 보통 고장이 아니라 꼼짝없이 몇 시간은 지체될 것임을 알았다. 또 한 바탕 웅성거렸다. 그러나 운전사는 그저 푸르른 들판 쪽을 향해 경치만 감상할 뿐이었다. 승객들도 그를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모두들 어슬렁어슬렁 흩어졌다. 사람들은 걸으면서 운전사를 손가락질하며 욕을 했다.

“고치지도 못해, 운전밖에 할 줄 몰라, 이런 밥통!”

그 “밥통”은 처음에는 승객들로부터 그냥 비웃음 당하고 욕 먹더니, 나중에는 저 멀리 피하여 한 걸음 한 걸음 길가 녹음 속으로 들어가 “고개 들어 저 멀리 바라보는가”(矯首而遐觀) 하면 “외로운 소나무 어루만지며 이리저리 거니는”(撫孤松而盤桓) 등 그 태도가 갈수록 유유자적해졌다.

항주로 돌아가는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공장에 편지를 전달해달라고 부탁하고, 공장에서 수리하러 기술자를 보내오고, 차를 다 고쳐서 다시 출발하기까지, 대략 두 시간은 걸렸을 것이다. 그 두 시간 동안 황량한 교외의 길에선 아마도 이제껏 없었을 왁자지껄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장사꾼, 노동자, 양장 차림, 모던 스타일 아가씨, 할머니, 아이, 제복 입은 학생, 군복 입은 군인, 그리고 외국인 등 갖가지 복장의 승객들이 그 고장난 뻐쓰 주위에서 이리저리 둘러보고 배회하는 꼴은 마치 농촌을 부흥시키기 위해 민간에 파견된 각 계층 대표자 같았다.

처음에는 마치 어머니 곁을 차마 떠나지 못하는 아이들처럼 모두 차 옆에 서 있었다. 차 앞쪽을 한 번 쓰다듬어보고 한숨을 내쉬는 사람도 있었다. 타이어를 발로 몇 번 걷어차며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치 나사를 찾아내서 즉각 끼워넣어 차가 다시 움직이게 하려는 듯 몸을 굽혀 차 앞쪽 밑면 나사가 빠진 곳을 들여다보고 또 다른 곳을 검사해보는 사람도 있었다. 제일 우스운 건 그 군인이었다.

그는 권총과 탄알을 가지고 기세 등등하게 차 옆에 서서 분에 겨워 욕을 하며 마치 차더러 빨리 움직이라고 권총을 뽑아 위협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권총으로는 나사를 어떻게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아는 듯 결국 뽑지는 않았고, 그저 “씨팔” 몇 마디 욕만 할 뿐이었다. 덩치만 컸지 아무 쓸모없는 그 뻐쓰는 사람들이 자기더러 “니기미” “씨팔” 욕을 해대도 그저 묵묵히 길가에 서 있을 뿐이었다. 마치 자기 잘못을 아는 듯 그런 욕을 그저 참고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 외모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날렵한 앞머리, 짤막한 네 다리, 엄청나게 큰 뱃가죽, 겉에 걸친 최신형 노란 외투, 그야말로 생기가 넘치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 속에 손가락만한 조그만 나사 하나가 모자라다는 이유로 갑자기 황야의 길가에 쓰러져 사람들의 욕을 있는대로 다 먹고 있었다.


한바탕 욕을 하고 난 승객들은 이미 죽은 자식 부랄 만지기라는 걸 깨달은 듯 모두 사방 들판으로 흩어졌다. 풍경을 감상하는 사람도 있고, 풍수지세를 따지는 사람도 있고, 조용히 밭두둑 사이에 쭈그리고 앉아 똥을 누는 사람도 있었다. 순식간에 상황이 돌변하여, 마치 차가 고장난 사건을 모두 잊고 소풍 온 무리로 변한 것 같았다. 나와 Z선생은 원래 놀러 나온 것이어서 만사를 운때에 맡길 뿐 그다지 초조하지는 않았다. 도시 승객 두 사람이 길가의 두 초가집 근처로 걸어가는 게 보였다. 그 광경이 강렬한 대조를 이루었다. 우리도 초가집 쪽으로 구경하러 갔다. Z선생 말이 또 튀어나왔다.

“이것도 운때일세, 운때라구! 아니면 우리가 언제 이런 초가집을 구경할 기회가 있겠나?”

그는 초가집 문가에 한가로이 앉아 있는 노부인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긴 몇 가구나 삽니까?”

“우리 두 집이라우.”

“그럼 시장 다니기 불편할텐데, 물건 사러 어디로 가나요?”

“시장에 가려면 3리 밖 ××까지는 가야지. 하지만 우리는 물건 살 일이 별로 없다우. 시골 사람들은 먹을 것만 있으면 그만이지.”

“이건 무슨 나무죠?”

“앵두나무, 재작년에 심은 건데, 올해 벌써 먹음직한 열매가 달렸수. 보슈, 가지 끝에 벌써 적잖게 열렸지.”

나와 Z선생은 그 집 문 앞 앵두나무에 다가가 구경했다. 과연 벌써 조그만 파란 알이 주렁주렁 가지 가득 열려 있어, 모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나는 빨갛게 익은 앵두만 먹어보았을 뿐 가지에 막 열린 파란 앵두는 본 적이 없다. 그저 “빨갛게 익은 앵두, 파랗게 자란 파초”라는 (완성된 모습에서 보는) 색깔 대조의 미감만 알았을 뿐 앵두가 어떻게 빨개지기 시작하는지는 몰랐다. 한 달 후 도시의 창 밑에서 양푼에 가득 담아 파는 싱싱하고 예쁜 과일들이 바로 이런 황량한 농촌의 초가집 앞 나뭇가지에서 파릇파릇한 조그만 알에서 빨갛게 변한 것들이리라. 나는 또 고향의 연연당(緣緣堂)이 걱정되었다.

재작년에 집 앞에다 내 손으로 작은 앵두나무를 심어서, 작년 봄에 가지와 잎이 무성했는데, 열매는 열리지 않았다. 올해 이맘때쯤 혹시 푸릇푸릇한 작은 알이 가지에 열리진 않았을까? 아무 까닭없이 연연당을 떠나 항주로 와 객지 생활을 하는 것이 그것들에게 좀 미안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연연당과 앵두가 지금 이렇게 감미로운 추억을 내게 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 눈 앞에 보였다면 내게 이런 호감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게 나의 약점이요, 또한 모든 사람들이 함께 지닌 약점이다. 아니, 약점이 아니라 인류의 습성 중 하나이다. 눈 앞에 있는 상태보다 눈 앞에 없는 상태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의 조건 중 하나일 수도 있겠다. 상상이 현실보다 훨씬 아름답다는 것이다. 이 푸릇푸릇한 앵두는 또 갑자기 옛날 사람 노랫말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앵두 열매 맺히면 봄은 다 간 것, 금가루 날리며 쌍쌍이 나는 나비, 작은 누각 서쪽에서 달밤에 우는 자귀.”(櫻桃結子春光盡, 蝶翻金粉雙飛. 子規啼月小樓西.)

뭉클 감상이 솟았다. 나는 앵두나무 앞에서 넋을 놓고 멀리 하늘 끝을 맴도는가 하면 인생의 근본 문제에까지 넘나들며 깊이 생각에 잠겼다. 그 순간에 Z선생과 노부인이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둘은 이미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노부인은 우리더러 당신 집에 들어가서 잠깐 앉아 있으라고 했다. 우린 들어가지는 않고 그냥 입구에서 집을 구경했다. 더 이상 들어갈 필요 없이, 입구에만 서 있어도 일목요연하게 집안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부인 집 안에는 부뚜막 하나, 침대 하나, 탁자 하나, 긴 걸상 몇 개, 그밖에 생활에 필요한 몇 가지 자질구레한 것들이 있었다. 숨겨진 곳이 거의 없어서 모든 것이 공개되어 있었다. 옷은 몸에 걸치고 있는 게 다였고, 있는 것이라곤 하나같이 먹고 자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설비였다. 그밖에 좀 관상하거나 갖고 놀 만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자 또 우리 집이 떠올랐다. 비록 항주에서 세들어 사는 가구 딸린 집이어서 잠시만 머물 예정이라지만, 이 노부인의 영원한 집과 비교하면 말할 수 없이 요란한 살림이었다. 글 쓰는 책상이 있어야지, 의자, 유리창, 베란다, 전등, 책, 문방구, 게다가 또 벽을 장식하는 서화까지, 정말 너무 요란하다! 스스로에게는 야박하고 남에게는 너그러운 것을 요즘 몸소 실천해온 Z선생도 그 노부인의 집을 보고는 매우 탄복했다. 그래서 나는 또 누군가 행각두타화상(行脚頭陀圖像)을 주제로 읊었했던 시 두 구를 떠올렸다.

“모든 것은 내 소유가 아니니라, 미련을 버리고 떠나자.”(一切非我有, 放膽而走.)

그 노부인의 집은 아직은 “있는”(有) 것이므로 아직은 그 사립문이 없으면 안되고, 아직은 미련을 버리고 떠나지 못한다. 요란한 생활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나와 Z선생이 보고 매우 탄복한 것일 뿐 사실 중국에서 우리의 생활은 모두가 요란하다고 할 수 있다. 내가 고향에서 본 바에 따르면, 농부나 노동자의 집은 의식주에 필요한 기본 최소 설비 이외에는 다른 물건이 거의 없었다. 우리 고향에서 그런 집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우리 나라에선 그런 향(鄕)․진(鎭) 또한 대다수를 차지한다. 간소하고 누추하게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 중에서 우리는 요란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렇게 요란한 공급을 누리는 우리가 세상에 대해서 그에 상당하는 무슨 공헌을 했는가? 우리 국가의 기초는 그래도 이 간소하고 누차하게 살아가는 대다수 농민 노동자 위에 건설된 것이다.

저만치 보자니 고장난 차 곁에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서, 우리는 노부인과 작별하고 차 곁으로 갔다. 알고 보니 무슨 소식이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승객들이 기다리다 지쳐 차 곁으로 돌아와서 다시 몇 마디 욕을 하면서 짜증을 달래는 것이었다. 누군가 운전사를 책망하고 있었다.

“왜 아직 기술자가 안 오는 거요?”

“편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한 그 차를 아예 타고 터미널까지 가서 전화했으면 훨씬 빨랐을 거 아냐!”

그러나 운전사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길게 뻗은 길의 항주 방향 한 끝을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승객들도 다 같이 때때로 그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 마치 큰 가뭄에 구름 끼기만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도 사람들을 따라 그 방향을 몇 차례 바라보았다. “드넓고 푸르른 하늘 아래 끝없이 뻗어간 도로”(靑天漫漫覆長路)의 인상이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을 만큼 지금까지도 내 눈에 역력하다. 그때 우린 병든 차를 즉각 수리하여 승객 싣고 가던 길을 다시 가게 해줄 수 있도록 나사와 수리 공구를 챙긴 가방을 든 기술 좋고 힘 센 기술자를 실은 조그만 차가 지평선에서 나는 듯 달려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중이었다. 조난당한 배가 드넓은 바다에서 표류하며 구조선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우리가 좀 부끄러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똑같은 사람이면서 우린 그저 탈 줄 밖에 모르고 운전사는 그저 운전할 줄 밖에 모르니 말이다.

한참만에, 아주 한참만에, 저쪽 지평선 위로 검은 점 하나가 솟아오르더니, 점점 커졌다.

“온다, 와!”

그 순간 우리는 한바탕 유쾌한 소란을 떨었다. 그러나 다가온 것은 아주 예쁜 신식 소형차로, 우리 병든 차의 곁을 나는 듯이 통과하여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휘발유와 향수 냄새만 어렴풋하게 남긴 채…… 우린 그 삐까번쩍한 차가 사라질 때까지 전송하듯 바라보다 다시 고개 돌려 우리의 검은 점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한참만에, 아주 한참만에, 과연 지평선 위로 검은 점이 또 솟아올랐다.

“이번에는 틀림없을 거야!”

누군가 이렇게 외쳤고, 모두 목을 길게 빼고 바라보았다. 그러나 운전사가 말했다.

“아뇨. 저건 장흥(長興) 가는 차요.”

과연 그 검은 점은 점점 커지면서 노란 점으로 변했고 결국 버스로 변하여 우리의 병든 차 뒤에 멈춰섰다. 운전사가 불러 세운 것이었다. 우리를 구해줄 방법은 없는지, 우선 승객 몇 명을 나눠 태우고 갈 수는 없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그 차 운전사가 차에서 내려 우리의 병든 차를 진찰해보더니 고개를 젓고는 자기 차에 올랐다. 승객들이 너도나도 그 차에 비집고 타려고 했지만, 차는 이미 빈 자리가 하나 없이 꽉 차 모두 거절당해 내려왔다. 매표원이 문을 닫자 차는 즉시 출발해버렸다. 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유리창 안에서 웃으며 우리를 돌아보았다. 누런 먼지 날리는 길가에 서서 눈썹을 찌푸리고 그들을 보내며 함께 타고 가지 못하는 우리가 너무나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저 멀리 하늘 끝 걸린 배가 귀향하는 배인 줄로 몇 번이나 오인”(誤幾回天際識歸舟)하고 나서 마침내 우리의 구세주가 도착했다. 다 낡아빠진 조그만 덮개차였다. 몸이 온통 지저분한 한 사람이 안에서 걸어나왔다. 파란색 노동자 멜빵옷을 입고 온몸이 기름때에 절어 있었다. 묶지 않은 회색 모자를 머리에 쓰고 있었다. 청백색 얼굴의 여기저기에 기름때가 묻어 있어 멀리서 보면 모자하고 구분되지 않았다. 발에는 고무창을 댄 큰 가죽 신발을 신고, 손에는 짐가방을 하나 들고 있었다. 그는 덮개차에서 내려 우리의 병든 차 앞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모두 경의를 표하듯 그에게 길을 양보했다. 또한 그가 솜씨를 발휘하는 걸 보려고 그를 따라 차 앞쪽으로 갔다. 그는 차 앞쪽에 가서 하늘을 향하여 몸을 땅에 눕히고 머리를 차 밑으로 집어넣었다. 내가 반쯤 옆에서 보니까, 눈에 보이는 모습이 마치 교통사고 났을 때의 끔찍한 모습과 같았다. 얼마 후에 그가 머리를 빼내고, 몸을 일으키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런 나사는 없어요. 가져온 게 다 하나도 안 맞아요.”

승객과 운전사는 모두 다급해졌다.

“어쩌죠? 나사를 몇 가지 좀 더 가져오지 그랬어요?”

그는 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런 나사는 공장에도 없어요. 주문해서 만들어야 해요.”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정말로 당황스러웠다. 몇 사람은 거의 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기술자에게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오른 듯 운전사에게 말했다.

“나무로 만들죠!”

운전사는 울상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무요? 칼은요? 그것도 안 가져왔잖아요.”

기술자는 사방 들판을 둘러보더니 단연코 말했다.

“여기 사람들에게 알아봅시다.”

그러더니 짐을 내려놓고 그 두 초가집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그는 부엌칼과 단단한 장작개비를 하나 빌려 돌아와 차 옆에서 깎기 시작했다. 초가집의 노부인이 단단한 장작개비를 새로 하나 갖고 와서, 먼저번 장작개비는 속이 비어 못쓸 것 같아서 다른 것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기술자가 칼로 몇 번 깎자 과연 그가 가져온 건 속이 텅 비었는지라, 노부인 손에 든 것을 받아 다시 깎기 시작했다. 그 때 둥글게 둘러서 지켜보던 승객들은 모두 기술자와 그 노부인에게 감사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근사한 옷을 입은 도시 사람이건 권총을 찬 승객이건 그때만은 그 더러운 기술자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당당한 항주 자동차 공장도 그때만은 황량한 농촌의 노부인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고, 물질문명이 가장 발달한 도시에서 온 자동차도 그때만은 최소한의 설비밖에 없는 그 초가집에서 공구를 빌려다 써야 했다. 승객은 운전사에게 의지하고, 운전사는 기술자에게 의지하고, 기술자는 결국 시골 사람에게 의지했다.

기술자가 초가집 노부인이 제공한 공구와 재료로 대용 나사를 만들어 우리의 병든 차에 끼우자 과연 병이 깨끗이 나았다. 그래서 운전사는 그 높디 높은 주인공 자리에 다시 앉아 시동을 걸었다. 승객들이 너도나도 차에 올라 각자 원래 자리로 돌아가 편안하게 자리잡자 차는 즉각 앞으로 움직였다. 그때 봄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봄빛이 눈 앞에 가득 비추었고 다들 득의양양해서 앞길의 풍경을 감상할 뿐 그 지저분한 기술자나 초가집의 노부인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Z선생과 오후에 무사히 친구 L선생의 집에 도착하여 며칠 좀 놀다가 항주로 돌아왔다. 원래 《막간산유람기》를 쓰려고 했는데, 회상을 해보니 쓸만한 일이라고는 오직 갈 때 길에서 있었던 이 일 뿐이었다. 그래서 제목에 ‘반쪽’(半篇)이라는 두 글자를 더 붙인 것이다. 워낙 촉박하게 차에 오른지라 스케치북을 못 가져갔다. 도중에 Z선생의 필드 북을 빌려서 스케치를 했다. 이제 그림 두 폭을 붓으로 다시 그려 지금 여기 덧붙여서 우리의 병든 차, 지저분한 기술자, 초가집 노부인의 구체적 인상을 보존해두고자 한다.

1935년 4월 22일 항주(杭州)에서

1935년 6월 1일 《論語》 66기 게재
《豊子愷代表作》, 1998년 1월 초판, 北京, 華夏出版社

by 팔보

댓글 남기기